정녀들이 밤에 경찰 수의를 지었다
이중기 지음 | 산지니
이중기 지음
산지니 / 2022년 3월 / 136쪽 / 12,000원
제1부
나는 아직 멀었다맨발에 고무신이 편해지는 예순도 훌쩍 넘겼는데
나는 아직 야성 팔팔한 농민 쪽에 서 있다
젖은 윗도리 벗어 저녁놀에 걸어두고
늙은 나귀 무릎 주물러주는 구름수염 농부까지는
멀었다 아마득하다
무두질이 안 된 농민은 도꼬마리처럼 까칠하고
바지 둥둥 걷고 무논 질러가는 농부야 뭉게구름 아닌가
헛간으로 뛰어든 까투리 놀란 가슴 가라앉힌 뒤
한 점 궁리 없이 솔개 떠난 빈 하늘에 놓아주고는
돼지고기 몇 근 끊으러 가는 사람이 있다
앉은뱅이 움막에 솟을대문 휘영청 구성없이 걸어놓은
나는 외올실로 엮어 거친 난목 같은 놈
구름수염 너불너불한 농부까지는 까마득하다
우러러 높고 지극할 슬픔복사꽃 봉오리 솎아내던 코로나의 봄날에 개정판 한 젊은이를 읽었다
불별 잡아채 목에 휘감아 보인 마술사라고 예전 늙은이들은 빈정거렸는데
성엣장 아래 물소리로 다듬은 문장이었을 젊은이는 지평선 팽팽 당겨주는 나무가 되었구나
내가 처음 농사지은 열넷에 그는 노동을 벗었다
어린 솔 모가지 꺾어 하모니카 불던 송기 생각난다
하늘님 같은 신자유주의도 한방에 거꾸러뜨린 찬란한 코로나의 봄날,
오만 색깔 허거리로 입 봉한 베트남 놉들이 와서 꽃봉오리 솎아내는 복상밭에서
품값도 못한다고 나는 두 사람을 솎아버렸다
솔 모가지 꺾어 하모니카 불던 송기야 우러러 높고 지극할 내 슬픔이 아니었던 것
그러니까 나는 너무 늦은 나이에 한 청년을 읽었다는 것
가지치기 하다가새 몇 마리가 나부대며 해종일 복상나무 위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이튿날도 한 무리가 그쪽에서 종종거렸다
며칠 뒤에는 하늘 가득 새 떼가 북풍을 몰고 은하수처럼 흘러왔다
진눈깨비 날리는 한파와 함께 코로나 역병 소문이 먼 도시에서 흘러왔다
나는 얼음장 성질이 좀 눅눅해질 때까지 부초 발가락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매화나무 뿌리가 물소리 쪽으로 귀 세우는 기척 엿듣자
톱 들고 가위 차고 사다리 위로 올라갔더니
복상나무 가지마다 진흙 발자국이 백 켤레쯤 걸려 있었다
진흙 발자국은 먼 길 떠나는 새들의 항로 이정표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해마다 새들의 이정표를 싹둑싹둑 잘라버렸다는 것,
새들이 지평선 끌고 가버려 옹색해진 들판에서
서른 몇 해 농사와 내 시인 깜냥이 참 구성없다는 것이었다
논이 두 마지기나 남았는데뒷골 고래실 두 마지기 흥정해놓고 송아지 팔아온 우라부지
끝다리 오백 원만 깎아 달라며 흙 묻은 웃음 흘리자
한 푼만 빼도 안 판다며 논주인 고모는 말코지에 걸린 오재기처럼 찌그러지고
끝다리야 본래 흥정 술값에나 쓰는 거라며 재종숙이 찌그러진 오재기 만지작거리는데
소꼴은 쟈가 다했으니 그 돈은 둘째 주자며 불쑥 엄니가 끼어들었을 때,
튀어나온 우라부지 탄식이 예순 살 내 등짝에 꽂혀 있다
명색이 소가 한 마린데, 그걸 팔아 오백 원도 안 남으면 나는 우야노
도마가 놓인 자리돌아보지 않는 기러기 자세로 그는 앉아 있다
물러설 줄 모르는 생의 나침반이다
모든 거룩한 것들은 기러기의 힘으로 이 지평선 건너갔다
밥 짓는 사람의 뒷모습이 어디서 왔는가
기러기의 힘으로 와 칼질 소리 몸에 저장하는 푸른 등, 고등어 본다
도마 놓인 자리가 마지막 인간 중심이다
세상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도마 지평선에서 나는 소년 기러기처럼 자라고 있다
제2부
골벌국骨伐國목덜미로 칼 받을지언정 한판 붙어볼 깜냥은 아니었기에 서라벌로 달려간 야음부耶音夫가 논 몇 마지기 내놓듯 던져 버렸다는, 부족국가 골벌은 영천 땅 옛 이름이다 야음부 그짓거리에 칼 꺼내 들었다는 골벌 사내들 기록은 안드로메다 성운 어디쯤 가야 읽을 수 있을까 나그네 별들이 진눈깨비처럼 흘러오는 관산冠山에 올라 바람소리 더듬으면, 야음부 뒤통수로 달려가던 돌멩이들이 날개 펼쳐 전설의 새가 되어 날아가는 원시림이 보인다 국경 근처에서 왕의 위엄 벗어버린 야음부가 화사한 사슴 가죽 옷으로 치장한 처녀들과 막 서라벌로 들어서는 서사는 아직 누구도 읽은 바 없다
내가 왕에서 추장으로 강등시켜버린 야음부 이후 골벌 땅 민선 추장 넷, 제 호주머니 채우다가 내리닫이로 콩밥 먹으러 간 사실은 유사 이래 첫 기록이다
윤영실전바람나 도망간 어미와 노름판 기웃거린 주정뱅이 외딸이어서 논다니로 살았던들 누가 있어 대놓고 입방정 유난떨었겠는가
휴전 한 해 전, 능금나무 가치지기 끝난 소한 무렵이었다
스무 살 윤영선, 죄 많은 사람의 딸
그 아비 죽자 머슴 불러들여 첫날밤 서럽게 치른 뒤
새벽,
머슴방으로 시집갔다가
날 밝자 지아비 안채로 모셨다
식은 아궁이처럼 캄캄한 지아비 형제 다섯 불러
만 평, 갱변 호박돌 들어내고 능금나무 심자 은성했다
여섯 형제 슬하
서른일곱 중반과 식솔들이 고구려 백만대군 같다
양밥오빠야, 저게 뭐꼬? 싹둑 잘라 징채 삼으면 좋겠다야
근데 아이다야, 오메! 도깨비방망이다 그쟈?
참꽃 꺾어달라는 순지 가시나 데리고 애장터 갔던 날, 나 열네 살
대여섯 살 아이 기럭지만 한 다복솔이 발끝에서 머리까지 쾌지나칭칭 왼새끼 휘감고
괴상망측한 몽둥이가 되어버린 것, 본 적 있나?
내 앞에서 곧잘 엉덩이 까고 주저앉아 오줌 싸며 보지 마
새파랗게 눈 흘기던 열한 살 순지 가시나 말마따나 싹둑 잘라 징채 삼으면 딱 좋을
애장터 와서 밤새 놀다 잊어버리고 간 도깨비방망이인 것도 같이
왼새끼 쾌지나칭칭 휘감고 말라죽은 다복솔 한 채
또 몇 채
그게 짝불알 고치려고 양밥해놓은 것이라고 나는 차마 말해주지 못했다
그 말 하면 순지 가시나 손모가지가 내 바지춤 헤집을 것만 같았다
월남치마 그 여자삭불이 아잠이 그랬듯 젊은 소가가 있어 다 저문 골목길 숨어 밟는 사내처럼 보였다
월남치마를 입고 잘슴잘슴, 사내 맞이하던 여자도 그래 보였다
구절초 같은 미소가 서늘해 보이던 여잔 숨어 살았고
드문드문 생선 비린내 들고 찾아오는 중늙은이도 늘 주의 깊었는데
저물녘 제 발잔등 오래 굽어보았을 것 같은 그 사내, 여자는 서럽게도 받들어
저리 숨어서 사는 일 죄 되랴 싶기도 했는데
가끔은 허공으로 향하는 그 여자 눈빛에 먼 광야 우레가 스치기도 했다
월남치마를 입고 잘슴잘슴, 왼다리 절며
빨랫줄에 널어놓은 속옷 위에 보자기 덮어씌우던 여자,
1981년 남쪽 항구 88번 버스종점 동쪽 비탈 월세방 처마 아래
장마철 빗소리에 노다지로 젖는 한 채 적막이었던
여잔 공장에 다녔고 어딘가로 갔다 와서 왼다리 절었고 또 쫓기는 중이었고
제 발잔등 자주 굽어보았을 사낸 그 여자 배다른 오라비였고
대목장날 어물전에서 스친 아낙이 혹 그이였나?
어깨 툭 치고 잘슴잘슴, 북새통 속으로 묻혀버린 그 사람
마리안과 마가레트그늘 한 뼘 없는 불볕의 둥근 지평선 끝까지 걸어가
생판 낯선 사람 발바닥 물집에 입 맞추며 환한 사람이 있었다
젊은 몸, 소록도에 가둬 늙어버린
마리안과 마가레트
오스트리아에서 왔으나 치마폭이 넓었던 사람
남도 소리에 절어 늙은 몸 끌고 밤 썰물처럼 가버린 염치가 참 거룩하다
돌아가서도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은 쓸쓸하겠다
남도 도마 소리 그리워 눈물짓겠다
동북아시아 외딴 섬 파도 소리로 칭얼대겠다
남도 사투리가 구수했다는 사람
제3부
문을 열다등 뒤, 손가락질 붉은 누명에 오죽 치 떨었을까
농민조합이나 재건 조선공산당이 남겨놓았을 전언 찾아다니던 때였다
늙은이들은 죄다 하늘에서 전향해버린 뒤뚱뒤뚱 상형문자 벙어리 거위로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게 씁쓸해서 스무 해쯤 외돌았는데
어느 가을 다저녁때 누가 꿩 떼들이 붉은 종소리로 치솟는 곳으로 나를 불러주었다
제 발등 오래 굽어보았을 텁석부리 선교사가 머물렀다는
거기, 청계석벽 꽉 비틀어 놓은 걸레주름 계곡 불란서 문자
빨갱이 동네로 소문난 한 소읍의 거친 풍경을 나는 번역본으로 읽었다
자 봐라,
버려진 해방정국 영천 10월 아이고땜 천만 평 위에
밤에 정녀들이 경찰 수의를 짓는 계면쩍음도 거기 걸려 있었다
불란서 문자로 쓴 영천 10월 9
―1946년 10월 3일 목요일대구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읍내 주민들과 관공서 사이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2일에서 3일로 넘어간 새벽 한 시에 민중들 시위가 있었다 군수가 피살되었다 보리공출 과정에서 가혹하게 굴었던 경찰들이 암살당했다 우체국, 군청, 경찰서, 문서국이 불타고 신한공사가 훼손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집들이 약탈당했다 만주 거지와 일본 거지들 행패는 지악스럽기가 짝패가 없다고 수군거린다 주동자들은 체포되거나 수배령이 떨어졌다 원인은 미군정이 과도하게 강요한 보리공출과 식량배급 중단, 철도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 그리고 물론 독립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가련한 한국!
불란서 문자로 쓴 영천 10월 11
―1946년 10월 5일 주일마을이 텅텅 비었다 읍내 풍경은 전란에 휩싸인 도시처럼 황폐하다 수많은 경찰이 범죄자 색출에 돌입하더니 동맹자들과 함께 투옥된 사람 집들을 약탈했다 이건 조직된 노략질이다 미사 후, 나는 교우들에게 성당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불타버린 경찰서 건물 안에는 수많은 범죄자들이 잡혀와 벽 쪽으로 무릎을 꿇고 얼굴은 바닥에 댄 채 엎드려 있었다 예전 경찰서장에게 찾아가 용평본당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부탁했으나 그는 이제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피살된 한 경찰 어머니가 찾아와 옷 몇 점을 내놓았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정녀들이 경찰 수의를 지었다
불란서 문자로 쓴 영천 10월 18
―1947년 2월다가올 3월 1일을 겨냥한 혁명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나는 이곳 사람들이 준비하는 일들을 알리기 위해 대구사령관에게 편지했다 여기 사람들은 미국인이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분란만 조장했다고 비난한다 경찰은 믿어서 안 된다 행정당국은 적대집단이라고 시골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민중들과 직접 대화해 그들이 원하는 걸 알아내고 거짓은 가려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쁜 일이 시작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길게 적었다박해근에게 변호사가 정해지면서 재판이 시작되더니 무죄로 석방되었다 떠나는 군수가 아침에 들렀다 그는 경쟁자와 그 자리를 놓고 다투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 세쿤다 동정녀가 우리와 맞서서 못할 짓만 하더니 정녀들 곁을 떠났다 작년 10월부터 일한 요리사에게 첫 봉급을 드렸다
문을 닫다오랜 속박 뒤에 찾은 자유는 당장 실감하지 못한다 했던가요?
일본 점령에서 벗어난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랬습니다
태평양전쟁 말기,
궁지에 몰린 일본에 의해 빈 껍질만 남아
문화, 행정, 상업 어디에도 양성된 인재가 없었답니다
이 땅에 남겨진 일본인들은 응징 받지 않았지만
한국인들 사이에는 나쁜 본능이 휘몰아치고 말았습니다
1946년 10월 3일, 갑자기 영천에 내란이 일어났으니
마지막까지 일본 옹호자면서 재산이 많은 경찰들이 그 표적이었지요
역사가 그랬듯 여기서도 미군이 도운 응징세력이 이겼고
그들 또한 폭도들만큼 잔인했습니다
빨갱이 동네라고 소문난 이 작은 읍내에서
나는 암살과 보복이 난무하는 비극의 시간을 지켜보았답니다
무질서한 자유와 이 나라에 맞지 않는 정치를 들여온 미국인들은
그러나 내란을 억제하지 못했지요
그해 10월 3일 경찰 스무 명이 암살되었고
그 보복으로 재판도 없이 마흔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양쪽 진영에서 백 명도 넘게 희생된 뒤에야
내가 미군정에 항의해서 겨우 재판이 이루어졌고
나는 다섯 달 동안 미국인 재판관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했습니다
내가 대담하게 경찰서로 들어가 중재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친애하는 파리 외전방교회 벗들과 통신원 여러분
1940년 4월 용평본당을 떠나 영천성당으로 옮긴 지 10년,
너무 늦은 첫 소식입니다
그간의 긴 침묵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나는 영천을 떠나 백 리 동쪽 바닷가 포항에 막 정착했습니다
미래는 어떠냐구요?
이곳에서도 앞날에는 작은 일들만 있지 않고
크고 오래 걸리는 일들이 많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