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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처럼 예쁜 날

김숙자 지음 | 세종출판사


장미처럼 예쁜 날

김숙자 지음

세종출판사 / 2022년 3월 / 119쪽 / 10,000원





1부 장미처럼 예쁜 날



독일 빵집


프랑스 왕의 침실처럼

화려한 공간



조용한 왕가의 여인을 닮은

아름다운 케이크



동화 마을 무지개 같은

마법의 향기



황금 나비가 날아다닌다



달의 눈동자가

꽃 물결 위로

영혼의 배를 띄웠다



얼마나 맛있냐고?

말해 뭐해!



빵의 오감은

사랑을 위해 꽃과 향기를 바친다



사악한 설탕도

사랑을 위해 마녀처럼 헌신한다



사랑을 데생한다


너는 젖은 나뭇가지



부러진 질서에 순종하는 새의 노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퍼붓는 소나기



습관 속에 억류된 눈물



어린 새의 비명 같은 눈동자



나뭇잎 사이에 종달새처럼 숨어 있는 미소



철새가 짊어진 운명의 바구니



썩은 맛이 나는 불량 고구마



비는 슬픈 탱고처럼 춤을 춘다



여인의 녹슨 향기



아침이면 흔적 없는 유령 같은 촛불



검은 유리창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에 활짝 놀라는 새



사랑을 잊은 나는 나를 무서워한다



장미처럼 예쁜 날


행복한 남풍이 찾아왔다



향기로운 서풍이

은밀하게 속삭이고



나는 햇살의 창을 열고

꽃처럼 하늘을 바라본다



사랑의 약속으로 설레는

하늘 바다



바람의 돛을 달고

항해에 나선 구름



북풍의 치맛자락을 맴돌며

새들이 화려하게 날아다녔다



푸른 여백에는

채워야 할 상상이 넘쳐나고



나는 나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나눔, 그 소박한 속삭임


평범한 진실처럼



가장 아름다운 사랑

슬픈 미련

위대한 헌신은



마지막 케이크 한 조각처럼

열한 명이 앉은

식탁에 남겨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사랑

덤덤한 미련

초라한 헌신의 빵을



어두운 불 속에서

굽는다



여류시인의 정원


당신이 사슴처럼 거닐었을

시의 숲길을 따라갑니다



토끼처럼 따뜻한 눈동자



도토리처럼 떨어진

시를 줍고



푸른 영혼이 뿌려 놓은

솔향기 따라

바람의 징검다리를 건넙니다



어느 날은 나무를 어루만지고

어떤 날은 구름처럼 멀리

흘러간 상처를 바라보던



눈물이 이슬처럼 젖어 있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2부 갈매기 식당



깊은 산속 마을


낡은 서랍 속 몇 개의 동전처럼

인적 없는 마을



제 몸을 이기지 못한

녹슨 장승이 기우뚱거리고

담장 밖으로

손을 내밀며 뛰쳐나오는 나무



야생화 길 따라

예쁜 시냇물

개구쟁이 자갈

햇살의 은 모래가

도란도란 다정하게 속삭인다



이끼를 덮고 졸고 있는

검은 바위



좌절도 고통도 없는

조용한 꽃동산



마을의 정적이

달의 미소처럼 은은하다



집으로 돌아온 방랑자


구름의 종소리가

바다 위로 퍼진다



머나먼 수평선을 걸어온

외줄기 발자국은

백사장 가운데서 끝이 났다



해풍이 재잘거리는 놀이터

방랑자의 집에는

조개껍질 같은 기억이

순진한 환상처럼 졸고 있다



자신과의 투쟁을 끝낸 가방은

해진 헝겊처럼 웃으며



모래와 먼지로 남아 있는

텅 빈 가슴을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여름


가시덤불처럼 조여 오는

자욱한 열기



길은 하얗게

책장의 여백처럼 눈부시고



메마른 가지

오른쪽 관절이 삐거덕 거린다



무거운 햇살을 짊어진

왼쪽 다리가 덜그럭 거린다



나무처럼 굽은 자세가

참새구이처럼 만들어지고



땀으로 뒤죽박죽이 된

여름 반나절



가고 또 가도 반나절



꽃 같은 여자는 봄날을 산책한다


아이야 너울너울 나비 따라

꽃 마중 가자



푸른 들판 새들의 합창 소리

소나기처럼 꽃이 핀다



아이야 살랑살랑 바람 따라

꽃 마중 가자



아름다운 감동이

따뜻한 눈물로 춤추는



내 생애 또 하나의 봄날이

시냇물 따라 흘러간다



꽃잎처럼 날아간다



아이야 어서어서 꽃 마중 가자



그믐밤의 추억


예측할 수 없는 밤



어둠의 호수

망각의 그물 속

고래 같은 나는

눈을 감고



모래알 같이 작은

촛불의 생명처럼 깜박인다



어둠은 길을 주지 않았다



태평양을 모르는

제주 바다의 자리돔처럼

익숙한 골목을 맴돈다



여명은 전설처럼 멀고

새벽 요정은

그믐밤 속에 살지 않았다



장승처럼 생긴 예언이

검은 춤을 춘다





3부 바람과 나뭇잎



바람과 나뭇잎


톡톡

새의 날개처럼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누굴까

동그란 의심이 두근거리고



놀란 창문이

사각형 눈을 뜨면



비 오는 대나무 숲처럼

높이 자란 여름 나무



파란 고양이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두색 눈동자로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황혼의 촛불


황금의 피가

하늘을 태운다



하얀 샘물처럼

사랑이 흘러넘치고



너의 침묵은

네모난 파수꾼



동그란 꽃병의

미소를 지킨다



창밖에는

붉은 그물



새들의 햇살이

금붕어처럼

눈을 감는다



물을 나르는 새벽 휘파람 소리


하얀 달이

출렁거리는

새벽 별을 담아



당나귀보다

튼튼한 발걸음으로



산 넘어

찬 샘을 채운다



물은 생명처럼

쏟아지고



어린 샘물은

까맣게 잠자고 있다



조용한 어둠이

풀 향기처럼 신선하다



야생화


샛별의 미소



잠든 아이처럼

평화롭구나



수평선처럼 닫힌 입술



사랑의 운명을 수놓은

진줏빛 눈동자



파란 눈물

별처럼 뿌려진 꽃



영원히 아름다운

흰 슬픔이



새벽의 손길처럼 차갑다



단풍 마을


파란 바람은

은쟁반 같은 호수에 묶어 놓았다



안개가 살얼음처럼 퍼져

길을 외롭게 만든다



단풍이 까마귀 떼처럼 몰려다녔다



젖어 있는 눈빛이

늑대처럼 서늘하다



구름이 푸른 십자가를

싣고 간다



모든 것은 평화롭다

조용한 것은 여유롭다



아즈텍 문명의 색으로 채색된 나무 아래

상형문자 같은 사람들이 걸어간다





4부 낭만의 전설 을숙도



낭만의 전설 을숙도


낙동강에 피어난 백합처럼

고운 모래섬



구름의 마을

갈대밭에서 청춘의 여신은

파란 강물처럼 웃었다



휘파람새 같은 고독이 따라 걸었다



모래톱은 낭만의 함정처럼

외줄기 발자국을 남긴다



싱싱하게 강물 위로 뛰어놀던

갈대는 어디로 갔을까



추억의 그물 속으로

스스로 걸어간 늙은 잉어처럼



깊은 하늘 속으로

교회 종소리 같은

낙엽의 메아리가 흘러 다닌다



오후의 다대포


파란 하늘에 그어 놓은

물고기 수평선



흰 구름이

고래처럼 헤엄치고



멋쟁이 남풍이

파도를 몰고 간다



붉은 꽃들이

아이처럼 깔깔댄다



백지에 찍힌

점 하나 같은



바다의 오두막에서

졸고 있는 낙동강



파란 하늘의 미소처럼

화려하고 쓸쓸하고 아련하다



제주 빨간 등대


섬의 울타리 너머

푸른 벌판을 걸어가는 빨간 등대



발은 이미 물에 잠겼다

파도와 바람의 물보라



위태로운 사랑처럼

그리움이 남겨진

수평선의 발자국을 바라본다



눈물로 만들어진 운명

물결마다 출렁이는 달



파도의 섬을 잊은 나비에게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견고한 사랑



푸른 연정

첫 번째 왈츠 같은

한 송이 장미처럼 있었다



달의 아이 : 통도사


바람의 별들이 장난스럽게

처마 끝 풍경을 흔든다



물고기는 깜짝 놀라

사막의 귀뚜라미처럼 찰랑거리고



들판을 방황하는 달빛은

이슬의 눈물을 가린다



나무 그림자처럼 눕는

달의 창문 사이로

부엉이 노래가 새어 나오고



고양이처럼 잠든 나무가

꼬리를 살랑거린다



은하수 계곡으로 가는

달의 아이



어둠이 사라지는 별들의 노래처럼

내 마음의 아이가 달처럼 걸어간다



안개꽃 나라


쓸쓸한 쾌락의 이정표, 통도사 그곳에는

이상한 나라의 이웃 같은

파란 눈동자가 있다



나비가 된 성자처럼 말하고

나무처럼 축복하고

돌처럼 생각한다



비 오는 날의 이정표, 통도사 그곳에는

이상한 나라의 안개처럼

아름다운 꽃이 있다



사랑은 해바라기보다 밝게 빛났지만

바라춤에 바쳐진 노래처럼

보이지 않는다



숲속 마을, 통도사 그곳에 가면



근거 없는 믿음

나라고 믿고 있는 나는



나를 벗어난 꽃처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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