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계단 위의 카프카
노경자 외 지음 | 전망
사십계단 위의 카프카
노경자 외 지음
전망 / 2021년 8월 / 240쪽 / 13,000원
부모로,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 노경자카프카가 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를 되돌아봤다. 그의 말들은 한 세기를 지난 지금에도 이 시대의 부모들이 깊게 새겨들어야 한다. 부모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도 아이에게는 힘이 되거나 상처가 될 수 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말대꾸를 허용하지 않았고 자주 손을 올리는 행동 때문에 카프카는 아버지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거리고 우물쭈물하였다. 아버지의 강압적 교육방식인 욕설, 위협, 반어법, 악의적인 웃음 등은 오히려 자식들에게 반항과 혐오감 그리고 증오심을 불러오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편지는 계속 이어진다. 카프카는 자신의 글을 읽어보려고 하지 않는 아버지, 아버지한테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결혼과 실패,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던 공포의 근거들을 길게 편지에 적어내려 갔다.
인생은 ‘인내 겨루기’ 이상으로 많은 참을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항의에 따라 이를 정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일일이 관철할 수는 없으며 또 그렇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것을 정정할 경우에 훨씬 진실에 가까운 어떤 것에 도달할 수 있어서 그 결과 우리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고 삶과 죽음을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편지 말미에 언급한 것처럼 카프카의 소망이 이루어졌다면, 그의 죽음이 조금은 편하지 않았을까. 부치지 못한 편지, 전달되지 못한 편지는 부자간의 갈등과 관계를 끝내 회복시키지 못했다.
부모가 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첫 걸음마에 기뻐하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뿌듯했다.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온갖 체험활동을 함께 하였고,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함께 보고 아이의 마음 상태를 읽지 못했다. 분명히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했던 일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엄마인 내 생각이고 계획이었던 것이다.
1914년 11월 12일 카프카의 일기장에는 자식들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부모는 고리대금업자와 같으며, 이자만 받을 수 있다면 부모들은 기꺼이 자본을 잃을 위험도 무릅쓴다고 적었다. 이는 카프카가 평소 부모들에게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부모들은 그들의 헌신과 사랑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적잖이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옆에서 지켜봐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모의 역할은 그것만으로 족하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런데 행복의 기준이 부모의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게 문제이다. 학교, 직업, 결혼 등 모든 것이 부모가 정한 테두리 안에서 허용된다는 것이다.
행복해야 할 주체는 분명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 아이들이 없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을 바라봐야 하고 실패하더라도 질책보다 격려를 해 주어야 한다.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반복되는 실패에도 대담할 수 있도록 격려와 위로를 해줄 수 있어야만 한다.
부모와 아이들은 안정된 삶을 원한다.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이 하루빨리 안정된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행복’이 함께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도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의 행복이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부모로 산다는 것,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다. 좋은 부모? 좋은 어른?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다만 그때마다 나는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되짚어본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사막 한 가운데 내던져진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였고, 삶의 의지에 따라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가족들이 찬성하지 않았지만 공직세계에 들어가고 싶어 학원비를 벌면서 공부를 했다. 아이들과 나를 위해서 안정된 직장도 과감하게 그만두었다. 그 뒤 우울증이라는 녀석이 뒤따라왔지만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극복했다.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면서 살았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내세울만한 명예나 부는 없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를 학대하면서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자발적인 자기 학대를 하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한 치도 모를 인생에 아등바등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마음에 없는 소리도 못하고, 아부도 못하며, 이해타산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때문에 무심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고, 상처받기도 하고, 손해 볼 일도 생길 때가 있다. 그래도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진실하지 못한 마음은 언젠가 들통이 날 것이고, 거짓된 삶을 살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기 때문이다.
카프카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각자의 고유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학교와 가정에서 고유성을 말살하려는 데 급급하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교육을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아이들의 삶을 수월하도록 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아이들은 강요가 야기하는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삶의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지에 대해 어른들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행여 아이들이 인생 전부를 걸어보고 싶은 무언가를 찾을 기회를 말살하여 그들이 바라는 것을 제대로 꿈꾸지 않도록 하지 않았는지 부모님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아무리 부모가 좋은 의미에서 출발했더라도 그것이 아이들에게 기준이 되는 순간 그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칼린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자신의 삶을 열망하는 위대한 생명의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세상에 태어났지만 너희로부터 온 것은 아니라고 충고한다. 나아가 아이들이 너희와 함께 있다고 해서 너희에게 속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지만 생각을 줄 수는 없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줄 수는 없다.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도록 해 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잠시 어머니의 육신을 빌려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을 우리는 그들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부모라면 언제나 자식들을 믿어주고 사랑을 주어야 하고 언제나 달려와 안길 수 있게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어야 한다. 직접 해주는 게 마음 편하고 쉽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어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보며 걸어갈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부모들은 아이들 앞에 놓인 문제를 아이 스스로 직면하고 대응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들의 능력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게 지켜봐 주고, 아이들을 믿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부모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 숨기려고 해도 아이들은 쉽게 눈치를 챈다.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호사』의 한 구절을 부모가 된 어른과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에게 내밀어 본다.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아서, 만약 일초를 잃어버린다면 벌써 전체의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은 네가 잃어버린 시간만큼 더 긴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바로 그 정도의 길이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인데 네가 만일 어떤 길을 시작했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고 계속해서 그 길을 가라. 너는 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는 결코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너는 끝에 가서는 넘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가 첫걸음을 떼어놓자마자 뒤돌아서 층계를 내려갔다면, 너는 곧장 넘어졌을 것이다. 아마가 아니라 분명히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만일 이 통로에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면 문을 열어라. 그 문 뒤에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면 또 다른 층이 있다.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소망 하나쯤 가지고 살아간다. 마음속 깊이 들어있는 아름다운 소망들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개개인이 꿈꾸는 하나의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해 본다.
아버지의 초상 - 임영매 가끔 초등학생인 딸과 티격태격 장난치는 남편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엄격한 분이셨다. 지금의 ‘딸 바보 아빠’와는 달리 자식에 대한 표현이 서툴렀던 아버지가 대부분이던 시절,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막내였던 내게 아버지는 거목으로서 엄격하고 어려운 분이었지만 우리에게 막말을 하시거나 함부로 대하지도 않으셨다. 자식들이 모두 순한 편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버지로서 큰 소리를 치시거나 매를 든 적이 없으셨다. 자식이 많은 집안의 가장으로서 엄격했지만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자상한 분이었던 것 같다. 말로서 사랑한다는 표현은 없었지만 눈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게 부모란 존재다.
내 유년을 돌아보면 아버지는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일만 하셨다. 살림도 크고 논밭이며 어장일도 많다보니 자식들에게 세심한 아버지보다는 일만 하시는 존재로 보였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셔서 어린 내가 오로지 부모님의 사랑을 바라는 건 무리였다. 그저 엄마 아버지가 일하시는 논과 밭을 찾아다니며 보내는 게 전부였다. 가끔 한밤중 잠결에 깨서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일이 안 끝나서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일을 하고 계신 적이 많았다.
산더미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아버지는 겨울이 되면 눈썰매를 만들어주시거나, 따뜻했던 아래채 툇마루에 앉아 연을 만들어 주셨다. 연을 만들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가끔 바다에서 미역을 캐오면서 장어 몇 마리를 잡아오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와 나는 세찬 겨울바람을 피해 바닷가 앞 담벼락 밑에서 짚불에 장어를 구워 먹기도 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아버지와 모종의 비밀을 나누는 연대감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1학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자식들이 줄줄이 딸린 탓에, 병원이 아닌 집에서 진통제 알약에 의지하다 돌아가셨다. 어린 맘에 엄마가 더 애틋했던 나는 아버지의 부재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그리고 부모가 되면서 아버지의 존재가 자주 상기되었다. 남편과 딸이 함께 있는 풍경을 통해 그 시절 아버지를 회상한다. 아버지와 나는 어떤 그림이었을까?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 평생 그저 일만하다 가신 것 같은 먹먹함이 철이 들면서 든 생각이다. 어려서인지 다정한 말을 나눈 기억은 없지만 내게 보이시던 미소와 내가 뭔가를 할 때 지켜보고 기다려주시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내게 일찍 떠났지만 살면서 아버지의 존재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느낀다.
우리 딸에게 남편은 어떤 아버지로 기억될까? 아빠를 친구같이 생각하는 딸을 보면 가끔 부모 노릇을 잘하고 있는 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부모의 마음을 느꼈던 나처럼 우리 딸도 그러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작품으로 또는 모티브나 주제로 다루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호주 출신 작가인 론 뮤익은 작고한 자신의 아버지를 실리콘, 수지, 인간의 모발을 소재로 <죽은 아버지>(1996~1997)라는 작품을 통해 실물처럼 사실적으로 재현하였다. 프랑스 출신인 루이스 부르주아는 아버지로 인해 불행하였던 가정환경이 그녀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인, 거대한 어미 거미를 형상화한 청동 조각상 <마망>(1999)이 어머니를 향한 경의를 표한 작품이라면, 아버지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는 <아버지의 파괴>(1974)는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외도에 대한 상처와 불완전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한국의 이종구 작가는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농부로서의 아버지 얼굴을 아버지의 삶과 함께 했던 양곡 부대와 비료부대에 그려 넣었다<연혁-아버지>(1984). 아버지란 존재는 개개인의 삶을 통해 각기 다른 기억 속에서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다른 사람으로 형상화된다.
체코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아버지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1919년에 카프카가 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는 일반적인 편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분량의 편지다. 45쪽 분량의 편지에서 카프카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의 갈등문제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자신을 괴롭힌 고통의 원인을 아버지에게 고백하고 있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방식과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절망적 심경 등을 편지에서 조목조목 밝히고 있어 아버지로서는 무척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편지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래도록 자신을 괴롭혔던 존재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이기도 해, 이 편지는 아버지에게 쓴 것이지만 자신을 향한 고백서 같은 글이기도 하다.
아버님께서 얼마 전에 저에게 이렇게 물으셨지요. 제가 아버님을 두려워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저는 아무런 대답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아버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듯 공포를 갖게 된 데는 사소한 사건들이 하도 많아서 일일이 다 말씀 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물음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시작되는 편지에서 카프카는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어떤 의미였는지 첫 문장에서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 평생 영향을 미쳤던 아버지는 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적은 없었다. 유약하고 체구가 작았던 어린 카프카에게 강인하고 체구도 거인 같았던 아버지는 그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매질보다 더한 공포는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붉어진 얼굴, 바지 허리띠를 풀어버리거나 의자 등받이에 거는 행위들이었다. 그럴 때 카프카는 자신이 “마치 교수형이라도 집행당하는 꼴”이었다고 말한다.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그러한 분이었다. 어느 날 밤, 짜증부리며 떼를 쓴 어린 카프카에 화가 난 아버지는 내의 바람인 그를 침대에서 끌어내어 베란다로 쫓아내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사소한 이 사건은 카프카에겐 오래도록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일로 그는 순종적인 아이가 되었지만,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사실에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음을 아버지에게 고백한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에도 거인인 아버님이, 즉 최종 심급인 아버지가 별 이유도 없이 나타나서는 한밤중에 저를 침대에서 끌어내어 낭하로 데려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제가 아버님에게 그처럼 가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고통스러운 상념이 되어 저를 괴롭혀왔던 것입니다.
최종심급인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카프카에겐 두려움이자 공포의 존재로서 엄하고 징벌하는 지배자의 상징이었다. “아버님은 팔걸이의자에 앉아 세상을 통치하셨습니다. 아버님의 의견이 옳았고, 다른 모든 의견은 얼빠진 것이고, 터무니없고, 정신 나간 것이며,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이럴 때 아버님의 자신감은 워낙 커서 일관성이 전혀 없음에도 옳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또한 아버님께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전혀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사안에 관한 일체의 의견들은 예외 없이 모두 거짓일 수밖에 없다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카프카에게는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인 기질이 “모든 폭군들이 갖고 있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