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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 SISO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시소 / 2021년 6월 / 368쪽 / 16,000원



완벽한 하루


회사에 다니던 어떤 남자가 아니, 회사를 다니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던 서른 후반 즈음의 어떤 남자가 벌써 몇 달째 회사에 가지 않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사람들 종종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 나이에 그 정도로 긴 쉼을 갖고 있는 남자 회사원의 일상에 돋보기를 대고 확대해보면 의외로, 몹시 치열한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새로운 직업을 찾아 인생을 걸고 용맹하게 퇴사를 했다거나, 현재의 대한민국으로서는 전혀 보편화되지 못한 남성 육아휴직을(쉬는 건 아니지만 회사에 가지 않는다는 범주만으로 생각해보자면) 갖가지 불이익을 무릅쓰고 썼다거나, 직업이 김앤장 변호사이거나 행정고시에 합격한 고위 공무원쯤 되는 사람이므로 하던 일을 멈추고 조직에서 공짜로 보내주는 해외 유학을 가게 되었다든가,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간다든가, 큰 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고 투병을 시작했다거나, SNS에 꼬물꼬물 올려댔던 글들이 세간의 이목을 끌어 전업 작가를 제안받았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회사에서 ‘정직’ 같은 징계를 받아 강제로 쉬고 있다든가 하는 사건들 말이다.

고백하건대, 서소 씨는 마지막 케이스였다. 그는 정직 처분을 받고 몇 달 전부터 회사에 가지 않고 있었다. 그가 회사에 가지 않게 된 사정, 그러니까 징계를 받게 된 사정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마도 그는 그걸 밝히지 않을 것이다.

서소 씨는 “나도 그걸 무척 밝히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요.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필요한 싸움을 준비해야 할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에게 적용된 혐의가 무고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 논리와 증거를 면밀히 준비해 두었으며 그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알고 있는 동료와 변호사들로부터 넉넉한 지지 또한 받을 수 있었지만, 싸움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는 대신 그는 자신의 사정을 편지 형식을 빌려 써냈다. 그의 사정이 정당하다는 근거 또한 촘촘히 보태어 회사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해를 시켰다.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었지만 회사는 서소 씨에게 근신이 끝나면 반드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저 운이 좋지 못했던 것일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서소 씨는 거기에 마음이 조금 풀어져 버렸다.

징계로 받은 사 개월의 정직에 휴직을 한 달 더하니 무려 다섯 달을 쉴 수 있었다. 서른 후반의 평범한 회사원에게 오 개월의 쉼이라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나 결심 같은 게 있지 않다면 절대로 갖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절한 모양새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 앞에 놓인 안식은 무척이나 달콤해 보였으므로 덥석하고 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막상 회사와 싸우게 된다면 돈이 없어서 무조건 질 것 같았다. 이겨도 돈을 많이 잃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유와 계산의 결과로, 서소 씨는 회사의 처분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휴식을 갖게 되었다.

십이 년을 일했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끔찍했던 순간은 얼굴에 종이가 뿌려지던 신입사원 때도 아니었고, 못 먹는 술을 억지로 먹다가 코피를 쏟으며 기절했던 날도 아니었다. 그건 ‘지난 십이 년이 어찌어찌 버텨냈고 오늘도 하여간 살아냈으며, 내일도 그럭저럭 힘을 내어 견뎌볼 순 있겠으나, 나는 앞으로 이십 년 아니, 어쩌면 삼십 년쯤 더 이런 나날들을 반복해야만 하는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느닷없이 깨달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회사를 다니건, 프리랜서를 하건 아니면 장사를 하건, 하여튼 남의 돈을 먹기 위해서는 견뎌야 했고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나만은 아무래도 그러기가 좀 어렵겠습니다’라는 핑계를 도무지 댈 수가 없었다. 그보다 약하고, 힘들며, 어려운 사정의 사람들조차 다들 해내고 있었다. 환갑을 지난 그의 어머니 또한 강남의 부잣집에서 상주 베이비시터로 일을 하고 있었다.

서소 씨는 그 일을 계속하겠다는 어머니에게 그런 식모살이 같은 일은 좀 그만두라며 화를 내보았으나, 그의 어머니는 이유식 조금 만들어 주고 기저귀만 제때 갈아주면 부잣집 며느리가 한 달에 이백만 원씩 주는데 내 나이에 이보다 더 나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네가 그 돈을 줄 거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한 달에 이백만 원씩 줄 수가 없었으므로 가만히 있었다. 거기서 정말 아기만 보면 되는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든 일일 것이다. 남의 집에서 먹고 자는 일인데 쉬울 리가 없다. 누구나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그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한데. 나만 유독 힘든 것 같은데’와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티브이에서 또는 어디선가 읽거나 들었던 퍽퍽한 사연들이 떠올라 그를 부끄럽게 했다.

엊그제 티브이에서 본 것은 북한의 수용소에서 살다가 탈북한 사람이 눈물 이분의 일, 콧물 이분의 일, 그 틈 사이에 그녀의 서사를 욱여넣어 토해낸 삼 년간의 탈북기였다. 그녀는 수용소에서 먹을 게 없어서 나무뿌리를 캐 먹다가 변비가 생겼는데 더 이상 똥을 누지 못하면 큰 병이 날까 봐 서로의 똥구멍을 나뭇가지로 후벼주며 살았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했다. 똥구멍을 언급할 때는 웃으라고 한 이야기였겠지만 패널들 중 아무도 웃지를 못했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그보다 고달픈 사람들 천지 같아서 찍소리도 못 하고 버텨내던 와중이었다. 그러므로 서소 씨에게 가해진 징계는, 차라리 반가운 것이었다. 덥석하고 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징계를 받다니 내 인생도 참…”이라고 말하며 서글픈 표정으로 위로를 갈구했지만, 내심은 기뻤다.

정직 첫날부터 서소 씨는 바빴다. 그간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일들을 할 것이다. 서소 씨는 평소 버킷리스트 같은 걸 만들어 다이어리에 적어두는 성격이 못 되었고, 특히 이번 휴식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와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걸 세울 틈이 없었으나, 어쨌든 오늘 하루만큼은 만족스럽게 보낼 자신이 있었다.

휴식의 첫날. 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항불안제와 마그네슘, 그리고 녹차 카테킨 성분이 들어있다는 시큼한 가루를 한 숟가락 가득 퍼먹고는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켰다. 느긋하고 꼼꼼한 샤워를 마친 뒤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기운을 품은 바람이 소매 밖으로 삐져나온 양팔을 간질이며 남은 잠기운을 날려 보내주었다. 늦봄과 초여름이 바통을 주고받는, 딱 그 며칠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하고 선선한 바람이 그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로꾸꺼 로꾸꺼 로꾸꺼 말해 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다만, 하늘빛이 새침한 게 조금 아쉬웠다. 슬며시 찌푸린 것이 환한 햇살까지 내어주진 않을 눈치였지만 바람이 포근하여 괜찮았다.

의욕이 넘치고 만 서소 씨는 그의 개(이름: 꿀단지, 5세, 푸들)와 함께 평소보다 훨씬 길고 힘든 코스의 산책을 마친 뒤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왔다. 입 안으로 자꾸만 배어 들어오는 땀을 퉤퉤 하고 뱉어 내면서 앞으로는 조금 찝찝해도 산책을 먼저 시키고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얼려둔 밥을 하나 꺼내 데우고 동물의 복지를 고려했다는 달걀로 만든 프라이와 간장, 마가린, 어머니가 담가준 열무김치를 썰어 넣어 슥슥 비벼 먹고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잠시 누워 있다가 문득 일어나서는 합정동에 있는 교보문고에 갔다.

재작년에 서소 씨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했었다. 그때 법학적성시험 공부를 하면서 접했던 토막토막의 철학 지문들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과 자극을 주었다. 이를테면 ‘사유는 이렇게 하는 것이었구나’, ‘이 지루한 글의 끝에는 사실 대단한 위로가 있었구나’ 하는 것들 말이다. 특히, 니체의 영원회귀를 읽고 느꼈던 야릇한 감동 - 왜 사는가에 관한 분절되어 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이어지며 조금씩 삶의 의미를 찾아낸 것 같은 - 은 언제든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이 글귀들의 전문을 찾아 반드시 읽어보리라 다짐했지만 일이 바빠서, 바쁜 일이 끝나면 개 목욕을 시켜야 한다든가, 다이소에 가야 한다든가 하는 소일거리들이 은근하게 적지 않아서 미뤄 두고만 있었다.

서소 씨는 쉬는 동안 철학과 과학을 실컷 읽어볼 요량이었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를 사다가 처음부터 다시 풀어보고 싶었고 한자 자격증도 갖고 싶었다. 아직 펴보지 못한 책들이 집에 많이 쌓여 있었지만, 새 책을 살 것이다. 옷장에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은 옷들이 그득하더라도 때때로 새 옷을 갖고 싶듯이, 매장 언니의 달콤한 말에 속아서 샀다거나 아무도 그 옷을 사라고 종용하지 않았음에도 홧김에 구입해버린 별로 어울리지 않는 옷들을 억지로 입을 수는 없으므로 새 옷을 사야만 하듯이, 새 책을 살 것이다.

서점에 가서 시간과 돈을 쓰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왠지 행복하면서도 게으르지 않은 휴식의 첫날을 보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요즘 숨을 쉴 때마다 담배를 피우는 기분이었다.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징계나 받고 다니는 사람’이라며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을까 봐 두려웠다. 얼마 전, 왜곡과 와전을 반복하면서 괴물처럼 자라난 소문이(미쉐린 맨 비벤덤처럼 나왔다) 그의 목을 조르는 꿈을 꿨다. 나쁜 생각들이 텁텁한 연무가 되어 그의 가슴 길목 한켠을 틀어막고 있는 느낌에 답답했다. 서점의 공기라면 그런 답답함을 잠시나마 날려 보내줄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망원예찬


망원동은 아름다운 동네다. 서소 씨는 망원동처럼 완벽한 동네는 없다며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다는 호언을 자주 했다. 그가 사는 집은 깨끗하고 아담한 빌라였는데 전세 보증금이 조금 비싼 편이긴 했으나 부동산 중개인과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 뒤 분위기에 반해 곧바로 계약을 해 버렸다. 삼억. 대출을 꽤나 받아야 했고, 혼자 살기엔 조금 넓은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혼을 했다고 좁은 원룸에 웅크려 오직 생존만을 희구하는 사람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주차공간이 넉넉했으며 위층에 방방 뛰는 아이도 없었다. 쓰레기통을 복도에 내놓고 사는 할머니 때문에 가끔 냄새로 골치를 앓기는 했지만 그래도 말을 하면 치워주었다. 잊을 만하면 자꾸 그런 일을 반복하긴 했지만.

그가 사는 빌라 앞에는 무얼 파는지 간판도 없는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주말이 되면 사람들이 그 앞에 길게 줄을 섰다. 하지만 평일에, 그것도 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는 아무 때나 거기에 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한 알에 이천팔백 원짜리 마카롱을 파는 집이라 한 번도 가지 않았으나. 자신이 사는 집 앞에 누군가는 어렵사리 찾아와야만 하는 가게가 있다는 사실은 삼억이라는 비싼 전세보증금에 합리를 부여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 가게 말고도 이곳 망원에는 그런 가게가 많았고, 서소 씨는 주말만 아니라면 언제든 그런 가게들을 여유롭게 드나들며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가게에 별로 가본 적은 없지만 가든 혹은 가지 않든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기분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그의 집에서 걸어서 삼 분 정도의 거리에 망원시장이 있었다. 시장을 다녀본 적이 별로 없는 그였으나 망원동에 살면서부터 시장을 자주 찾게 되었다. 더 신선하다거나, 더 저렴하다거나, 그런 것도 시장을 찾게 만드는 좋은 이유가 되었지만, 집에서 삼 분 거리에 시장이 있으면 음식이든 식재료든 혼자서 한 번에 먹을 수 있을 딱 고만큼만 조금씩 사다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는 맛없는 음식도 대체로 잘 먹는 편이었지만 도무지 먹기 싫어하는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재탕한 음식, 전자레인지로 데운 음식들이 그러했다. 망원동에 이사를 온 뒤부터는 갓 만들어낸 탱글탱글하고 바삭한 음식들로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

서소 씨는 스물여덟 살 때부터 혼자 살았다. 회사 근처에 살면서 출퇴근 시간을 줄이려고 그렇게 했던 건데, 그런 만큼 이직이나 사옥 이전과 같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다. 그런 연유로 여러 동네에서 살아볼 기회가 많았던 그는 ‘언덕이 없는 동네’에 산다는 것이 주거 만족에 대단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언덕이 있고 없고가 그 동네의 분위기를 좌우했다.

언덕이 많은 동네는 이쪽 편에서 저쪽 편이 보이지 않아 우울하였다. 집들도 삐뚤빼뚤 정돈되지 못한 모양새로 지어졌다. 으슥한 골목이 많았다. 공영 주차장 같은 게 생기기 어렵고 걷기도 힘들다. 외부 사람이 찾지 않는다. 그러니 좋은 가게가 생기기 어렵다. 언덕이 많은 동네는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활기를 잃어가는 것 같았다.

망원동에는 언덕이 없었다. 저기 멀리서도 차가 지나다니는 게 잘 보여서 안전하게 개를 데리고 걷기 좋았다. 아담하고 예쁜 가게가 많았고 프랜차이즈가 별로 없었다. 망원시장이 있는 한 이곳은 더 이상 개발되지 않을 것이다. 망원시장이 있는 한 이곳에 사람이 계속 모여들 것이다. 앞으로도 한참 동안 이곳 망원동은 너무 조용하지도 너무 복작거리지도 않은, 적절한 활기를 가진 동네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언덕이 딱 하나 있었는데(언덕이라고 해봐야 걸어서 2분, 약간 볼록하게 솟은 것이 ‘둔덕’ 정도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언덕을 올라가면 망원 한강공원이 나왔다. 이 공원 또한 몹시 적절한 것이 서소 씨의 마음에 쏙 들었다. 여의도 한강공원처럼 ‘나 오늘 힐링하러 왔소’ 하는 사람들이 폭풍처럼 다녀가는 곳이 아니었으며 성수대교 바로 아래 강변처럼 몇 년째 관리되지 않아 무성하게 자라다 누렇게 죽어버린 잡초더미와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곳도 아니었다. 시멘트에 싸구려 분홍색 페인트를 조악하게 발라놓은 것이 아닌, 오르내릴 때 삐걱-하며 느낌 좋은 소리가 나는 큼직한 나무 계단이 있었고, 아담한 잔디밭과 농구대, 달리기 트랙이 하나씩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누군가 내게 ‘아는 사람만 아는 멋진 곳을 하나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여기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작은 공원이었지만 거기서 바라보는 한강은 여의도공원에서 한강을 바라볼 때 못지않은 가슴 벅찬 청량함을 충분히 전해주었다. 늦은 밤 산책을 나가 그 공원에서 한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콘래드 호텔과 국회의사당에서 어룽어룽하게 빛나는 조명이 은은하여 아름다웠다. 비록 그 안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빠루를 들고 휘두르거나 서로 팔짱을 끼고 드러누워 있을진 몰라도 망원 한강공원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상관없었다. 그 공원에는 그가 ‘개들의 동산’이라 이름 붙인 작은 잔디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밤마실을 나와 조우한 동네 개들이 서로의 엉덩이 냄새를 맡으려 쫓아다니는 모습이 그곳의 정경에 생동감을 더했다. 나무 계단에 앉아 그의 개를 쓰다듬으며 그런 것들을 가만 보고 있자니 몹시 그윽한 감정이 들면서 눈물이 핑하고 돌 때도 있었다. 서소 씨는 그런 정경이 있는 망원 한강공원을 무척 좋아했다.

전날 완벽한 하루를 보낸 서소 씨는 완벽한 아침을 맞고자 했으나 이른 아침부터 전화기가 울려대는 통에 실패했다. 그것도 여러 번, 그가 신경질이 난 것인지 전화기가 신경질이 난 것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전화기는 신경질적으로 랄랄거리며 한참을 자지러졌다. 회사에서 갑자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업무 연락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나 자주 올 줄은 몰랐다. 받아보면 대개 별일도 아니었다. 강제로, 그것도 정직 중인 사람에게 업무를 묻는 전화 때문에 잠이 깼다는 사실에 불쾌해진 서소 씨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자마자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억지로 비벼 뜨는 일은 없을 것이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수학책을 폈다. 몇 개의 공식을 외우고 비슷한 문제를 반복해서 풀었다. 수학책을 펼치기 전에는 혹시 기억이 나지 않거나 재미가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우려했던 것과 달리 꽤 재미가 있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지 않을 때까지 외우고 문제를 반복하다가 수학책을 덮고 철학책을 하나 골라 집을 나섰다. 하늘이 채도 높은 짙은 푸른색을 띠는 것으로 보아 오후 서너 시쯤 된 듯하다. 정확히 어디로 갈지 정하진 못했지만, 아무튼 카페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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