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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따위, 잊고 살랍니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 이터


나이 따위, 잊고 살랍니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이터 / 2020년 7월 / 228쪽 / 14,000원



1장 나이라는 요물



사람들은 왜 남의 나이를 궁금해 할까?


대체 왜 사람들은 남의 나이를 알고 싶어 하는 걸까요?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반드시 나이를 묻곤 합니다.

“그분은 몇 살이지요?”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감성을 가진 사람인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의식적으로 나이를 묻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은 사람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 사람의 나이를 가르쳐주거나, 잘 모르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답을 해줍니다.

남의 나이를 아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도대체 무엇이 알고 싶은 걸까요? 나이를 알면 어쩐지 안심이 되는 걸까요? 그저 자신이 만들어놓은 카테고리 안에 그 사람을 끼워 넣는 것뿐일 텐데요.

물론 어떤 사람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외적 정보 중 최고는 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나이를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친근감을 느끼거나, 동시대를 살아온 것에 대한 동질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는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1936년 5월 29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 씨의 생일은 1937년 5월 29일로 저와 태어난 날이 같습니다. 저는 노래방에 가면 늘 히바리 씨의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또 중학생 시절에는 히바리 씨의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서 일주일간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 적도 있습니다. 저에게 히바리 씨가 특별한 가수로 여겨지는 것에는 생일이 같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생년월일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호적에 기재되어 있는 것일 뿐, 그날 태어난 것을 본인은 전혀 자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의 일을 갓난아이였던 자신이 알 수는 없습니다. 생년월일이 진짜인지 아닌지 스스로 기억해낼 방법은 없고, 그저 부모님이 알려주신 대로 믿을 뿐인 것입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아이가 연말에 태어났을 때 부모가 다음해 1월 1일로 호적 신고를 하거나, 주변 사정으로 인해 생년월일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년월일을 단지 호적에 기재되어 있는 그대로 믿거나, 혹은 억지로 믿어버리려 하는 것은 아닐까요? 스스로 확인할 수도 없는 자신의 나이라고 하는 정보에 무게를 두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자립한 순간부터 나이를 세야 하지 않을까?


제가 나이를 처음 자각한 것은 1945년, 전쟁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서류상에 적힌 생년월일은 1936년 5월 29일이었지만 제 기억에는 없었습니다. 그즈음 저는 이른바 착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 자아에 제대로 눈뜨지 못하고 있다가 패전으로 인해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의 시간을 제 나이에 포함시키는 것을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 스스로 행동하게 된 날이 저의 진짜 생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전할 당시 저는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전쟁 탓에 학교에서 받은 교과서는 모두 까맣게 변해 참혹했고, 읽을 수 있는 부분은 몇 줄 안 되었습니다. 매일 조례시간에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교장선생님을 시작으로, 전선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선생님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발언을 하셔서 우리 어린이들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어째서?’라고 물어도 선생님이나 부모님, 주변 사람들은 명확히 대답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들 자신이 혼란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기에 우리 어린이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지고 나서 승전국인 미국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귀에 익숙하지 않은 말도 빈번히 등장하였습니다. 누구도 확실히 그 뜻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전쟁은 실수였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지만, 전쟁 후 일본이 부흥함에 따라 일찍이 군인 시절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학교에서는 군인의 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 저는 결의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눈앞에서 돌변한 어른들은 이미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해서 선택하고 행동하자.’

그렇게 자각한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저는 그때의 저를 0살이라고 정하고 싶습니다. 이때가 저에게는 원점이고, 이때부터 지금의 저에게로 향하는 길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2장 살아가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고?



나이가 들어도 일은 계속 하고 싶은 마음


중년에 접어든 여성의 재취업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어렵습니다. 여성이 재취업 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출산과 육아 등으로 인해 일을 한번 그만두면 그 후에는 좀처럼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 사람에게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지원하는 시점에 이미 탈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고령 인구는 점점 늘고 있고, 100세 시대가 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지혜와 경험을 살리지 않을 수 없겠지요?

예를 들어 여든두 살의 제가 지금 취직을 하려고 이력서를 낸들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요? 면접 장소에 제가 나타난다면 마치 희귀한 것이라도 본 듯 불쌍히 여기며 “가족은요?”, “남편분이나 같이 사는 사람은요?” 등의 질문을 끈질기게 하고 우리 집의 수입원이나 제 나이 등을 상세하게 파고들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든두 살에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까요? 저는 이따금 글을 쓰느라 일에 쫓기곤 하지만 가능하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을 하고 싶고, 어딘가에서 저를 계속 필요로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 앓았던 결핵으로 인해 편두통 등 이런저런 병에 오랜 시간 시달려왔는데 이제는 건강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제일 ‘건강하고 의욕이 넘친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편두통도 나이가 들면서 사라졌고, 일을 하고 있으면 언제나 기운이 납니다. 고령자에게서 일을 빼앗는 것은 빨리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고 활기차게 자기실현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행복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설에 들어가거나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리면서 손자만 돌보는 것이 정말 행복한 삶일까요?

저는 싫습니다.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골절이 되면 고정을 하면 될 것이고, 치료가 안 되면 휠체어를 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골절이 되었어도 휠체어로 이동을 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의 귀중한 시간, 절대 한가할 틈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저는 나이에 너무 얽매이는 젊은 여성들이 안쓰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을 한 권 펴내기로 했습니다. 제목은 바로 ‘꺼져버려, 결혼 적령기!’

직접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타이틀이라고 생각했는데 출판 직전에 클레임이 들어왔습니다. 출판사 대표가 품위가 없다며 제지를 했던 것입니다. 저는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에 얽매이는 당시의 여성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편집자와 상의 끝에 제목을 바꿨지만 어정쩡한 표현에 머무는 바람에 책은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의 양육법’이라는 제목을 정했을 때에도 남자들에게 실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정말이지 원고를 회수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담당 편집자의 노고를 알고 있었고, 그녀가 그 후 어떻게 될지도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이것 역시 타협을 해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제목으로 정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일을 너그럽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 두 가지는 지금까지도 용납이 안 됩니다.

“품위가 없다”, “남자들에게 실례다”라는 말에서는 남성 우월주의가 느껴집니다. 이렇게 말하는 남자들이 많기 때문에 ‘남자들의 양육법’이 중요하고, 이것은 지금도 통용되는 좋은 타이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꺼져버려, 결혼 적령기!’ 대신 붙여진 제목에는 ‘자발적 적령기 추천’이라는 부제목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적령기라고 하는 것은 나 자신의 것, 적령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곧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손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한다. 선택의 연속인 것이다. 그 소중한 선택을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하는가.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개념이나 상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 말하고 있는 것과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저의 사고방식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최근 제가 쓴 책을 보고 ‘전혀 흔들림 없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해주신 분도 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한 것은 서른여섯 살 때였습니다. 따라서 서른여섯 살이 저의 결혼 적령기였던 것입니다. 결혼하는 나이는 사람마다 달라도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결혼할 나이를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을 어떤 틀 안에 가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장 나이와 함께 인생을 배우던 시절



이제부터 내 나이는 영원히 60살


60살부터 저는 새롭게 다시 태어나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해나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나이 먹는 것을 그만두자. 그러기 위해 일단락을 짓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주저 없이 떠오른 것이 노래였습니다. 스스로 기획도 하고 연출도 하고, 피아노 반주 외에는 전부 제가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중고생 시절에 도쿄예술대학교 출신 선생님에게서 노래를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전쟁 후 겨우 안정이 되어 연주회도 열게 되었을 즈음 저는 프리마돈나를 꿈꾸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몸에 침대 시트를 휘감거나 입에 장미꽃을 물고 <춘희>나 <카르멘> 등 아리아의 흉내를 내곤 하였습니다.

‘나도 저렇게 화려한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



동경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 방과 후에 선생님을 찾아가보았습니다. 대학을 선택하기 전에 선생님에게 상담을 하니 다른 노래라면 괜찮겠지만 오페라는 수천만 명 앞에서 마이크 없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작고 마른 내 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그냥 듣기만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는데 그 꿈이 되살아난 것이었습니다.

‘그래, 노래 리사이틀을 해보는 거야!’ 취미 삼아 오페라 가수이면서 예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분에게 레슨을 받아 발성 연습을 한 결과 오페라 아리아를 그럭저럭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제 분수는 알고 있었기에 샹송을 일곱 곡 하고, 오페라 아리아를 앙코르로 <나비 부인>과 다른 한 곡 정도만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치든 말든 부르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 뒤로 그날을 맞이할 때까지 정말 즐거웠습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행복하였습니다.

60살인 만큼 60명을 초대하기로 하고, 이제까지 저를 지지해준 친구들과 지인들만 엄선해 지방에서도 올라오도록 하였습니다. 장소는 어느 프렌치 레스토랑.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지인이 프로 성악가나 연주가를 초대해 디너쇼를 열곤 하던 가게를 하룻밤만 빌리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딱 60인분의 풀코스를 이제까지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모두에게 대접하고, 식사가 다 끝난 후 잠깐 쉬면서 제 노래를 듣는 시간을 마련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시작으로 친한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 제 18번 등 샹송을 일곱 곡 부를 계획을 세웠습니다.

제가 60살이 되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기에 각지에서 친한 사람들이 달려와주었습니다. 사회자는 물론 저였습니다.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서로 환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와인도 제가 음미를 해보고 직접 골랐습니다. 저는 각 테이블을 돌면서 한 명, 한 명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디저트가 나오기 전 잠깐 쉰 다음 드디어 리사이틀이 시작되었습니다. 뭔가 순서가 바뀌지 않았냐고요? 보통 디너쇼에서는 노래를 들려준 다음 식사를 하는데, 그 순서를 바꿔서 식사를 먼저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나가도 싶어도 가만히 참고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연의 구성도 제가 했기에 적당히 애드리브를 넣으면서 무사히 일곱 곡을 마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앙코르 시간, 물론 사람들의 앙코르는 있었습니다. 만약에 대비해 바람잡이도 심어놓았었으니까요.

관객 중에는 편집자나 방송국 관계자 등 일과 관련된 사람도 있고,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나 지인도 있었습니다. 제 일을 뒤에서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성대한(?) 앙코르에 응해 드디어 <나비 부인>을 불렀습니다.

본격적으로 부르면 꽤 긴데, 높은 음역부터 대사 부분까지 그럴듯하게 해서 저 자신은 정말 만족하였습니다. 손님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 기분이 좋았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틀림없이 프랑스 요리는 맛있었을 테니까요. 그러한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무사히 끝맺음을 하였습니다.

그날을 위한 예산은 미리 모아둔 상태였습니다. 그저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제가 조금 흥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낭독을 할 때 침착함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노래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노래방에서도 여러 장르의 노래를 부르곤 했지만 역시 무대는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듣기 싫다며 제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밖에 나가버렸는데 그것이 정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리사이틀을 끝내고 나니 기분이 후련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60년 세월과는 작별을 하였습니다. 이로써 저에게는 더 이상 나이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인생, 다시 한 번 0살부터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0살이라고 하면 이제까지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제 나이는 60살에서 끝내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제 나이는 60살. 누군가 제 실제 나이를 언급한다고 해도 그것은 남들이 보는 나이에 지나지 않는 것, 제 나이는 저 스스로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생년월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우리는 생년월일에 의해 실제 나이가 정해집니다. 만 나이로는 그해 생일이 되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지만 일반적으로는 해가 바뀌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합니다.

구청이나 은행 등에서 본인 확인을 할 때에는 반드시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봅니다. 출생신고서를 내면 그해, 그달, 그날이 생년월일이 되지만 예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러 다른 날로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생년월일이 맞는지 아닌지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라에 따라 생년월일이나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계절이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나라, 예를 들어 열대기후의 나라 같은 데서는 생년월일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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