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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올 때마다 주워 간다

쏭즈 지음 | 스토어하우스


나는 네가 올 때마다 주워 간다

쏭즈 지음

스토어하우스 / 2020년 4월 / 210쪽 / 13,500원



느끼다




진심에는 사소한 힘이 있다


사람의 진심은 말로든, 글로든, 행동으로든, 눈빛으로든 전해지는 길이 분명 있다. 진심에는 사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힘에 의해 자연스럽게 끌려간다. 마음은 자석의 양극 같아서.

나의 마음으로는 당신이 향하고 당신의 마음으로는 내가 향하게 되어 있다.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우리


당신의 봄 속에 스며들어 있는 색들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늘 바쁘다.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면 아침이 밤이 되어 있고, 겨울은 지나 봄이 되어 있다. 우리 삶에 있어 가장 큰 핑계는 ‘바쁨’이다. 바쁘기 때문에 우리 사이의 안부를 묻는 횟수가 줄었고, 따라서 만남의 횟수가 줄었다. 서로를 잊지 않으려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우리가 되었다.

노력을 하며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바쁘다. 바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눈앞에 놓인 상황에 급급해하다 보니 우리의 노력은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일상의 가장 기본적인 ‘자연스러움’을 놓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자연스러움은 ‘자연’은 억지로 꾸미지 않아 어색한 데가 없는 그러함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대로의 것이 자연인 것이다. 자연은 억지로 노력하지 않는다. 자연이 하는 노력이 있다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 부지런히 애를 쓴다는 본래의 의미만이 있을 뿐이다. 그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다.

봄이 다가옴에 따라 동백꽃이 피고, 목련, 진달래, 개나리가 따라서 피어난다. 우리는 그저 봄날 어느 길가의 저 나무가 벚꽃인지 아카시아꽃인지 여직 헷갈리기만 하는 그들이 ‘피는구나’ 했다가, ‘지는구나’ 하는 게 다인데 말이다. 우리는 봄만이 갖는 모습을 그리고 색을 분명히 보았다. 보았음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유는 바쁘기 때문이다.

자연은 아무 일 없는 듯 때가 되면 그 일을 당연히 해내고 돌아선다. 어떠한 핑계나 바쁨이 없다.

저리도 아름답고 고운 색으로 지금 당신이 지나고 있는 시간은 여기 즈음이라고 늘 우리 주변에서 손짓한다. 그걸 못 보고 지나친 건 바로 우리다. 도리어 그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자신들을 놓치며 사는 우리를 보며 안타까워했을지 모른다.

지금이 아니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그들이다. 우리 1년을 다시 열심히 살기 위해 바쁠 것이다. 그리고 또 1년 뒤의 그때가 되어 그 일을 해내고 있을 그들을 놓칠지도 모른다. 이름만으로, 생김새만으로 우리 기억에 존재하는 그들일 뿐이다. 정작 그들이 보여주려던 것은 그즈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봄의 따스함과 시간의 흐름에 의해 깨어나고 있는 봄의 자연스러움이었을 텐데 말이다.

인생의 네 가지 계획을 ‘사계’라고 부른다. 공교롭게도 ‘사계’의 동음이의어인 이 말의 의미는 이러하다.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가정의 계획은 화목함에.’ 이 말에서도 봄이 말해 주지 않는가.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다. 사계 중 봄은 1년의 시작과도 같은 계절이다. 봄은 당신의 1년을 응원하는 계절인 것이다.

우리 인생의 계획이 현재에 머물러선 안 된다. 우리 인생의 목표가 바쁨이어선 안 된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자. 너무 바쁘게 노력하지 말자. 나의 하루는 반복이고, 시간은 순환한다.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바쁘게 돌보지 말자. 시간에 관대해지자. 봄을 느끼자. 이 봄을 느끼다 보면, 그들이 내뿜는 분위기를 느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또한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눈을 뜨고 하루라는 전쟁터에 입장한 어느 봄날, 아침의 기운을 받아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고, 일 년을 보내고, 그렇게 세월을 쌓여 가다 보면 나의 이룩함이 곧 봄의 자연스러움을 닮아 있을 테니. 조급해하지 말자. 계절의 어느 날, 은연중 나의 입속에서 흘러나오는 한숨 소리가 바로 바쁨에 대한 방증이다. 그럴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안부의 인사를 묻자. 갑작스런 만남을 기약해 보기도 하자.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우리가 되지 말자. 기억으로만 존재하던 봄꽃의 이름들처럼.



내가 일으킨 물결을 넘어서는 것


인생이란 이런 건가 싶어 모든 전의를 잃어버리는 시점이 있다. 어느 날 어두워진 거실 소파에 앉아 이제 막 11시를 가리키기 시작한 시계 바늘과 눈이 마주쳤는데, 문득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행복이야 애당초 나의 관심 밖의 것이다. 무엇 때문에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걸까.

늘 표류하는 기분으로 산다.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다. 둥둥 떠다니다 어느 집단에 속해 있었고, 둥둥 떠다니다 시간은 벌써 한 해 마감에 다가섰었고, 둥둥 떠다니다 만남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날들이 있었다. 생각의 끝에 다다를 즈음,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한 물결을 타고 그렇게 표류 중인 나를 발견하고 만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인생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 내가 나의 시간을, 나의 인생을 주변인들에게 의탁하며 살아온 것이다. 즉, 내가 행복하지 못한 건 스스로를 방관한 바로 ‘나’ 때문이다.

왜 하기 싫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하고 싶다고 우기지 못했을까. 누군가로부터 무엇이 하고 싶느냐 라는 물음을 듣기에는 나이가 한참을 물러서 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네가 원하는 게 무어냐고. 네가 하고 싶은 게 지금 이게 맞느냐고.

일 초, 일 분, 한 시간, 그리고 하루. 다가오는 시간은 늘 도전의 실전이고, 나 자신의 감정과 이성이 머물렀던 시간의 넘김이다. 시간의 페이지는 정해진 시계 눈금을 밀고 지나가는 시계바늘과 동시에 넘어간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시간 위로 우리의 감정과 이성은 늘 잡히지 않고 떠다닌다.

인생이라는 표류하는 시간 위로 떠다니는 나에게 던져지는 수많은 물음들. 잡고 싶지 않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그 물음들에 당당히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매일을 묻는다. 하지만 매일을 헤매고 만다. 타인에 의해 일으켜진 파동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만다. 현재 나의 상황이 목적지가 불분명한 표류 중일지라도 자의에 의한 작은 파동의 행복으로 도달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지는 않을까 매일을 생각한다.

행복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나에 의한, 나로 인한 물결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시간의 페이지 위로 ‘후회’라는 두 음절을 새기지 않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열정을 쏟는 것이 어딘가 있을 행복으로 나아가는 망망대해 위에서 희미하게나마 빛을 내어줄 별 하나가 되어줄 것이다. 후회의 반대말은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행여 후회를 남긴다 해도 그건 타인이 해결해 줄 수 없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내가 일으킨 물결을 나 스스로 넘어서는 것.

어느덧 시계의 짧은 바늘과 긴바늘이 12시를 가리키며 서로를 품는다. 시간의 페이지가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는 중에도 나는 계속 표류 중이다. 내가 일으킨 물결을 넘어서는 것. 지나간 페이지 위로 한 글자 새겨 넣은 것도. 나의 심장을 펄떡펄떡 뛰게 만드는 한 글자. 그래, 이거구나. 내가 일으킨 물결, 바로 ‘꿈’이다. 나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매일의 나를 직시해야 한다. 나를 놓치지 말자.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가 서로의, 서로가 서로를


모르던 사람의 하루를 듣게 되었다. 그 하루를 다 들여다본 거 같고, 그 사람을 다 알아버린 거 같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에 자주 놓인다. 나이를 불문하고, 성별을 가리지 않으며, 출생지나 학력 그리고 직업까지 나에게는 대화에 있어서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물론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보다는 슬프고, 아프고,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고민들이 듣는 이야기들 중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도 덩달아 슬프고, 아프고, 고민이 되어버린다.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있는 일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이입이 되어버린다.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있는 일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이입이 되어버린다. 내가 소설책에 쉽게 빠지는 것도 어쩜 직업병인지 모른다. 등장인물이 나인지, 내가 등장인물인지 가끔은 드라마보다 더 깊게 빠져들고 만다. 여기에는 활자의 마력이 더해짐이 분명하다.

몇 해 전부터 서점가에는 ‘장르의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통 평대에 올라오거나 베스트셀러 서가에 놓이는 책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주로 정치인이나 대기업 임원급 거물들의, 그리고 내국인보다 외국인의 책이 많았다)이거나,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들의 소설책 정도가 다였다.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심리학 및 처세술에 관련된 책들이 대거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인기는 소설이나 다른 장르를 이미 넘어섰고, 붐을 일으키며 해당 장르의 신간도 다양한 접근법으로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 인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책 속의 내용은 대부분 이러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과 불안, 그리고 이를 극복한 본인의 경험, 스스로를 도닥이며, 서로를 위로해주자는 이야기들이다. 그 시점을 지나갈 즈음 나 역시 정신과 전문의의 저서나, 심리학자들의 책, 그리고 일반인이지만 본인의 처지를 미루어 볼 때 타인에게 도움이 될 법한, 위로가 될 법한, 극복을 한 법한 이야기를 실은 책을 수 권 보았다. 나는 책들을 보고 난 후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세상은 이상한 사람들 천지다. 책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특히, 책에서 하는 말들에 대해 심하게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면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요즘 사람’이라는 말이다. 요즘 사람이라는 말에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지만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나만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모두’가 이상하다는 말이기에.

‘이상하다’는 표현을 했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상 ‘평범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안다. 서로의 불안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서로의 아픔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서로의 슬픔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말이다.

충분히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서로가 서로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우리는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더 앞서고 우위에 있어야 한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늘 알지만, 늘 잊는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 보면, 기가 막힌 유전자의 속셈을 알 수 있다. 같은 종족 간 경쟁 구도는 불가피한 유전적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유전자가 타고 나기를, 생겨 먹기를 경쟁을 하게끔 만들어졌으니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다. 경쟁의 최종적인 공동의 목표를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생존의 기회로 정의된다. 생존을 위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경쟁해야 한다. 경쟁으로 쟁취될 행복을 위해 고전분투 중인 유전자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가 바로 ‘사람’이다.

행복을 위해 우리 안의 유전자는 작동한다. 우리는 생각할 줄 아는 사고를 지닌 종이다. 평생을 몸속의 원래 그렇게 타고난 유전자에 복종하지 않을 ‘방어능력’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학습’하여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곧 경쟁하기 위해 타고난 유전자를 서로 배려하고 이해할 줄 아는 유전자로의 방향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속한 문화 속의 ‘교육’을 받는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상대성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게 우리 몸속 유전자가 만들어낸 인간들이 이루어내야 할 궁극적이고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우리 인간은 이미 타 종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큰 자비와 배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기꺼이 받고 지금의 이 세상을 이룩해 왔으니 말이다.

유전자의 반을 공유하는 부모 자식 간에는 이해 대립은 발생한다. 하물며 혈연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발생하는 대립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불안이 되고, 아픔이 되고, 슬픔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라보다




나는 네가 올 때마다 주워 간다


계절 너는 올 때마다 나에게 내던져지고

나는 계절 네가 올 때마다 주워간다.



달리는 차의 정면으로 난 차창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생각은 유치하지만 참 자주 하는 거 같다. 사실 달리 표현이 안 된다. 멈춰 선 자동차 너머의 풍경에 대한 감흥은 덜 하지만, 열심히 달리는 자동차 너머의 풍경에 대한 마음의 울림은 생각보다 크다.

저기압으로 변덕이던 봄이라는 계절이 완전히 여름이라는 계절로 넘어서면서 하늘의 그림도 따라 변하고 있다. 봄이 그려진 캔버스 위로 시간을 덧발라 완성된 6월의 하늘, 여름이다. 유독 우리가 하늘색이라 부르는 그 푸르고 청명한 색감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하늘 전체를 뒤덮기 시작한 때가 아마도 지금부터.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뭉게구름 열차가 눈에 들어오는 그런 하늘. 저 구름은 계절이라는 시간을 나에게 내던져놓고 다시 바람을 타고 떠나버린다. 그리고 또 다른 계절이라는 시간을 실어 또다시 내 눈앞에 잠시 멈춰 설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 계절이라는 시간을 주워 담는다. 아직 구름을 내던져놓고 간 그 시간 속에 무어가 있을지 모른다.

가끔은 하늘의 속내가 궁금하다. 이렇게 예쁘게 있다가도 방심하는 틈을 타 시커먼 먹구름을 내세워 잔뜩 찌푸리기 십상이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예쁜 구름 떼를 몰고 오면, 그 서운했던 마음이 죄다 바람을 타고 저 구름을 뒤로 숨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다시 예쁘기만 하다. 계절의 색이 강해지기 시작한 시점. 7월의 초입. 그래도 나는 네가 좋다.

헤어짐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


만남이 잘못된 것일까, 헤어짐이 잘못된 것일까. 만남의 끝을 헤어짐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이들은 아마도 없겠다. 그런데 만남의 시작은 어떻게 나에게 당도하였던 것일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다른 이들도 아닌 당신과의 만남은 어떤 바람을 타고 왔기에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기대도 못 하고 있던 나의 어깨를 스치고, 나의 손등을 스치고, 그렇게 당신의 손가락이 수줍게 나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들어와 내 손바닥과 당신의 손바닥이 맞닿았고 나의 손을 온전히 당신의 손에 쥐어지는 그 순간부터 만남의 초시계는 1초, 2초, 3초… 소리 없는 무음의 시계가, 그렇게 작동되기 시작했다.

어느 이의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그것은 사실 헤어짐의 이야기였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픔의 이야기였다. 사랑했고, 이별했으며, 그 아픔으로 인해 또 다른 사랑을 위한 만남의 방향 전환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이는 만남이 잘못되었다 하였다. 만남의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 만남을 시작했기에 여태 다른 만남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만남의 끝이 헤어짐으로 마침표를 영영 찍고 말았다.

다음의 문장을 써 내려갔어야 할 마음이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버린 그이였다. 새하얀 백지장은 아픔으로 접히고 접혀 다음의 문장을 적어 내려갈 공간이 없다. 겨우 끄적거릴 법한 여백조차 한숨과 쓴웃음으로 물든 그이의 마음이었다. 놓일 자리 없는 마음은 허공을 떠돌았고 나는 그런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심심치 않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오면 만남이 헤어짐으로의 귀결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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