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김강미 지음 | 봄름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김강미 지음

봄름 / 2020년 3월 / 268쪽 / 14,800원



1단계 일상 새로 고치기




번아웃에 빠진 날


“이건 다 네 책임이야. 이렇게까지 일을 몰아온 건 너의 지나친 욕심 때문이었어.” 보기만 해도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그분의 도톰한 입술에서 튀어나온 첫마디였다. 새빨간 크레용으로 얼굴 위에 역삼각형을 그리면 정확히 아래 꼭짓점에 위치할 그의 주둥이에서 일주일 만에 나를 향해 날아온 비수였다. (그간 온갖 핑계로 그를 피해온 내 탓도 있다.)

무조건 ‘네 책임’이라고 했다. 지금 일어난 모든 사태를 이 잡듯이 요목조목 짚으며 마지막에는 반드시 “네 책임이야”라고 덧붙였다. 계속해서 듣다 보니 정말 ‘내 책임’인 것도 같았다. 진행하고 있는 일도 많고 팀원들도 만사가 귀찮다는 듯 맥 빠진 눈빛을 보이는데, 또 일을 덥석덥석 물고 온 것도 모자라서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내 뜻대로 일을 밀어붙인 것은 물론, 마지막까지 객기에 가까운 자존심을 놓지 못한 것도… 다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분과 10분 정도 간격을 두고 힘없이 회의실을 나와 내 자리로 돌아왔다. 따뜻한 봄 햇살이 눈치 없이 내리쬈다. ‘아, 지친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마음 편히 밥 한 끼가 먹고 싶어졌다.

팀원이자 직속 후배인 A와 회사 근처 횟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소맥으로 바짝 마른 입안을 축이고 싱싱한 회 한 점을 초장에 찍어 억지로 몇 점 쑤셔 넣었다. “힘들다 힘들어. 일도 회사도…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지. 전부 내 마음 같지는 않아도 할 만큼 했는데… 이제는 숨이 막힌다.” 나 못지 않게 깊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며 내가 내민 잔을 말없이 받던 후배 A는 나를 물끄러미 본다. 그 눈빛엔 분명 억울함과 원망이 서려 있었다. “팀장님만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저희는요…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았을까요?” 순간 술이 번쩍 깼다. 그런 거였다. 내 잘못이라는 게, 내 책임이라는 게.

새로 맡은 그 프로젝트는 누가 봐도 거절했어야 했다. 다른 팀장들이 고개를 돌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영악하지 않음이 미덕은 아니었다. 사회에서 최소한 이만큼 뒹굴었으면 영악함은 실력보다 생존을 위한 필수 덕목이 되어야 한다는 걸 나는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니, 이건 눈치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절대적인 부족함이 분명했다. 소위 출세라는 과업 달성을 위한 사회성의 결여이며, 나를 믿고 따르는 팀원을 향한 민폐였다.

그다음 날, 나는 사표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나를 위해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욱더 노력해야 하는, 다음 과제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그런 삶을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천직이라고 굳게 믿었던 이 일을 향한 어떤 구차한 변명과 미련도, 매번 발목을 잡았던 징글징글한 애정도, 이제는 더 이상 가슴속에서 요동치지 않을 거라는 또렷한 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충분히 활활 불타올랐고, 이제 남은 것은 바람 불면 날아가고 말 새하얀 잿더미뿐이라며 나는 스스로 절규하고 있었다.

그 후 회사라는 곳에서 내 몸과 마음의 짐을 모두 옮겨 오기까지 딱 한 달이 걸렸다. 그간의 세월과 역사가 담긴 손때 묻은 산물들을 커다란 슈트 케이스 하나에 모두 구겨 담았다. 나는 회사라는 동네와 그동안 얽힌 모든 금전 관계를 정리하고, 다양한 버전의 희로애락을 주고받던 돈에 주민들과 몇 차례의 눈물겨운 이별 의식을 치른 후, 새 동네로 왔다.

그리고 소위 출근하지 않는 사람, 때 묻지 않은 하얀 손의 주인공이 되었다. 내일부터 뭘 할지 딱히 계획이 없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 계획 따위는 당분간 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 그냥 일이 없는 새 동네에 적응해보기로 한다.

스무 살의 내가 그렸던 나는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광고 회사에 입사한 것은 순전히 나의 겉멋과 뻔뻔한 오버 액션 덕분인지도 모른다. 전문직이니까, 제법 그럴싸해서, 대기업 공채를 뒤로하고 광고 회사에 덜컥 지원했다. 그리고 최후의 당락을 결정짓는 임원 면접 날, 내가 얼마나 이 일을 간절하게 하고 싶은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꽤 드라마틱하게 어르신들에게 어필했다. 그 순간 아마도 그분들의 치기 어렸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내게 반짝 투영되었을 것이며, 그것이 그날의 홍일점이었던 내게 심적으로 플러스 점수를 더해줬고, 결국 치열한 경쟁률 속에서 합격이라는 행운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문학을 전공한 덕에 4년 동안 어찌어찌 갈고닦은 글재주로 실기 시험도 무사히 통과하고, 나름 주목받는 신입 사원으로 회사에서 가장 뜨거운 팀에 배치되는 기적까지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시련의 시작이었다. 여유롭게 일을 즐기는 듯하지만 찬바람이 부는 프로들 사이에서 나는 한없이 주눅 들었고, 그것을 티 낼 틈도 없이 쏟아지는 일들 앞에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하루하루가 절망이고, 나의 무능함을 매 순간 확인받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 시간마다 숙제 검사받듯 뒤죽박죽 엉망인 아이디어와 습작에 가까운 카피들을 쏟아내야 했고, 속을 알 수 없는 선배들의 차가운 미소와 어색한 침묵의 순간은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당시 나의 정신적인 멘토였던 동종 업계 선배의 조언은 힘든 순간마다 내게 버틸 힘을 줬다. “지금이 아닌 2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라. ‘그때의 내’가 되기 위해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역으로 생각해보라. 하루하루 그것을 하다 보면 어느덧 당신은 20년 후의 내가 되기 위해 반드시 경험해야 했던 20대의 행보를 걷고 있으리라.” 매일 아침 쏟아지는 잠을 가까스로 밀어내면서, 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꽉 막혀오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불 꺼진 사무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눈물을 훌쩍이면서, 나는 수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그 주문은 내게 분명 효력이 있었다.

나는 다른 동기들보다 제법 굵직한 기회가 많았고, 그 덕분에 몇 달 앞서 승진을 하고, 더 좋은 회사로 터를 옮긴 소위 날고 기는 선배들의 오른팔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진흙탕 속에서 온갖 발버둥을 치고, 때론 영혼도 아낌없이 팔아가며 나의 30대를 고스란히 상납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좀 슬프지만 누군가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연코 “노!”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마흔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이 사회 속에서 갈 길을 잃은 미아가 되었다. 스무 살의 내가 마음속에 그렸던 ‘나’는 내 곁에서 영영 사라졌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문을 나오는 순간, 어제까지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던 마음속의 ‘나’는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분명 작별을 고해야 했다. 아울러,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며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해주고 견디게 해줬던 ‘나’에게. 나를 미치게 하고 아프게 했던 ‘나’에게. 참으로 힘들었던 순간에도 나를 떠나지 않았던 ‘나’에게.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그리고 아낌없이 사랑했었다고.



2단계 일상 새로 느끼기




인생에 좋은 날은 얼마나 될까


비가 온 다음 날의 하늘은 화장을 말끔히 지운 소녀의 뽀얀 얼굴처럼 맑았다. 저 눈부시고 영롱한 얼굴에 다시 분을 덧칠하기 전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출근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청바지와 후드티를 꺼내 입고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아홉 시를 갓 넘긴 아침은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한 달 전에 오픈한 길가의 카페는 부지런히 커피를 내리는 청춘들의 풋풋한 웃음소리와 시큼한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물오른 봄날의 꽃처럼 생기가 피어올라 있었다. 미소가 정겨운 알바생이 요리조리 주전자를 돌려가며 정성껏 내린 커피 한 잔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좋은 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 중에 좋은 날은 얼마나 되었을까? 뒤돌아보면, 내게 좋은 날이란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실수를 몇 번 줄인 날, 계획대로 그럭저럭 풀린 날, 내가 어제보다 덜 한심해 보이는 날, 꾸지람보다 칭찬을 몇 모금 더 먹은 날, 골칫덩어리 같은 일들이 실마리를 찾은 날, 퇴근길의 발걸음이 무겁지 않은 날, 늘 복잡하고 멍한 내 머릿속에 약간의 평온이 찾아온 날….

나보다 타인을 의식하고, 내가 아닌 타인의 잣대에 휘둘리고 평가되었던 내 지난날들은 결코 완벽하게 좋을 수 없었다. 내가 좋아야 하는 게 아니라 남이 좋아해야 좋은 날이 되니까. 나의 좋은 날의 중심에는 내가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위한 좋은 날들을 만들면 그만이지만 나를 위해 좋은 게 무엇인지도,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도, 솔직히 까마득했다.

우선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자. 이유나 결과 따위는 무시하고,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스스로에게 떼를 쓰자. 저걸 하게 해달라고. 무조건 하고 싶다고. 그걸 하면서 하루가 가고 또 새로운 하루가 기다려졌다면 그날이 바로, 좋은 날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자꾸 무언가가 되기


나는 더 이상 한 우물만 파는 인생을 살지 않기로 했다. 자꾸 무언가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계속 무언가가 되고 또 되면서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그 출발은 무언가를 하나씩 하는 거였다. 지금까지 내 일이 아니라고 등 돌리며 살아왔던 것들,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일찌감치 거리를 두었던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결과와 상관없이 끝까지 완수하고 이어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도전’이라는 거창하고 부담스러운 말도 필요 없었다. 단순히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나만의 두둑한 배짱과 언젠가 쓸모를 발휘할 숨은 재능이 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드는 그 평범한 시간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눈치 보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즐겁게 하면서 사는 것만으로 인생은 꽤 근사해질지도 모른다.

하나의 목표에 나를 가두지 않겠다는 결심은, 무엇이든 가벼운 마음으로 해볼 수 있는 자유를 갖게 한다. 내가 하나의 정체성(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듯, 오로지 성공만 바라보며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무엇보다 성공은 얻을 수 있는 것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가 되면 그냥 오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아이디어를 낸다. 그리고 모든 일의 시간과 끝에 ‘무심코’와 ‘어쩌다’라는 느낌표를 찍는다. 매번 ‘무심코’ 시작한 일이 ‘어쩌다’ 잘되었다는 총평을 하며 나의 일상을 기특해했다. 때때로 대단한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 생각보다 대단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참고 이겨내야 하는 미션이 아니므로 어려움에 봉착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 끝에서 ‘오늘도 괜찮았네’라고 생각하며 만족하는 밤을 이어가고 이어가면 그만이다.

나를 먹이는 일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생활하다 보면 요리는 나만의 재미난 오락이 된다. 처음엔 라면을 끓이고 즉석 밥을 데우는 게 전부였는데 점점 간단한 반찬거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나를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 동안 부산을 떨어 완성한 음식을 먹어줄 사람이 고작 나뿐이라는 게 시시했다. 내게 요리를 하는 행위는 누군가를 먹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혼자 밥을 먹기 위해 네모반듯한 식탁 위에 테이블보를 깔고 구색을 갖춘 그릇에 차려내는 근사한 한 끼를 순전히 오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넓적한 용기의 즉석 밥과 도시락 크기의 반찬 통이 그대로 식탁에 오르고, 국물로 얼룩진 냄비가 국그릇이 되는 나의 밥상에 짜증이 났다. 한마디로 초라함을 넘어 궁색해 보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누구도 아닌 나를 먹이는 일에 이렇게 홀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좋은 것을 제대로 먹여주자고 결심했다. 요리를 해본 적도, 잘할 자신도 없었지만 일단 수년간 식품 회사 광고를 담당해온 이론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만한 요리책 하나를 샀다.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인사들의 요리책이 차고 넘쳤지만, 나는 일본에서 사내 식당으로 유명한 『타니타 직원식당』을 골랐다. 재료가 간단하고 특별한 조미료도 필요 없고 무엇보다 건강식 위주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먼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확인하고 책을 뒤적여 바로 요리할 수 있는 오늘의 메뉴를 정했다. 그리고 천천히 재료를 손질하고 아끼던 냄비를 꺼내 레시피를 따라 차근차근 요리했다. (그릇과 냄비 욕심이 많은 절친을 따라 하나둘씩 사 모은 냄비와 그릇 들이 어느새 싱크대 위의 커다란 선반을 꽉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처음 도전한 아스파라거스와 새송이버섯을 볶은 요리는 참기름 덕분인지 윤기를 내며 맛깔스러워 보였고, 은은한 하늘색 사기 그릇에 담긴 시금치 된장국의 자태는 단아했다. 쓰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두기만 했던 테이블보를 꺼내 식탁 위에 깔고, 손잡이에 나뭇잎 모양이 새겨진 은빛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로지 나를 먹이기 위한 근사한 밥상을 차렸다. 내게 비싼 옷을 사준 것보다 더 흐뭇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혼자 먹는 밥에는 추억이 없다고 생각했다. 밥이라는 것은 달그락달그락 서로의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내게 혼자 먹는 밥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요리 과정은 즐거웠고, 먹는 내내 흐뭇했다. 그렇게 나만의 추억이 생겼다. 나를 먹이는 일, 생각보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3단계 일상 새로 다듬기




그때도 외로웠다


“둘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만큼 외로운 건 똑같아요.”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일본 영화 <황색 눈물>에 나오는 대사이다. 간절히 짝사랑하던 남자 쇼이치와 첫날밤을 보낸 후 돌아서는 토키에의 뒷모습은 참으로 외로워 보였다. 그 순간, 회사 안에서 그토록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녀처럼 외롭고 허전했던 내가 떠올랐다.

특별히 직장 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새로 만든 사내 동호회에서 회장을 맡기도 했고, 지긋지긋한 야근을 끝내고 아직도 회사에 남아 있는 후배들을 모아 밤새 술을 마시기도 했고, 친한 선배들의 생일도 꼬박꼬박 챙겼다. 그러나 나는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에 늘 혼자였다. 그때마다 그들은 처음 만나는 사이처럼 낯설었고 서늘한 거리감마저 느껴졌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었고, 내가 믿었던 그 사람은 나를 믿지 않는 듯했다. 나는 참으로 외로웠고, 그런 그들을 마음속으로 원망했다.

전체 회식 날 갑자기 월차를 내거나, 퇴근 시간쯤에 일부러 외근을 나가거나, 일을 핑계로 온종일 회의실에서 나오지 않는 등 숱한 고립의 순간을 자처하면서 모든 게 다 내 탓이라는 자학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독은 억눌린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지만, 그때의 내 고독은 어디에도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차가운 감옥 속 처절한 외로움이었다.

일이 사라진 나의 일상은 혼자 시작하고 혼자 끝내는 날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으니 혼자 보내는 시간은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다. 그러나 가끔 누군가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저 동네 카페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팝콘처럼 터져 나오는 그 흔하디흔한 수다가 간절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