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의 방황에 함께하기를
루쓰하오 지음 | 북스토리
누군가 당신의 방황에 함께하기를
루쓰하오 지음
북스토리 / 2020년 2월 / 264쪽 / 15,800원
part 1 그럼에도 사랑
함께 공명할 수 있는 사람 예전에 나는 “당신이 누군가를 곱게 보지 않는다면 이는 당신의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보고서 허튼 소리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건데 왜 내 잘못이란 말인가? 예전에는 사소한 일로 싸우게 된 이유를 잊어버리더라도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느라 상대도 나도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말을 좀 적게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독하게 굴수록 들어오는 것도 더욱 독해지는 듯하다. 남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결국에는 나 자신에게도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남이 틀렸다고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편이 낫다. 다툼은 세상에서 가장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만일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떠나면 된다. 당신이 남을 설득할 수 없고 남도 당신을 설득하지 못하듯이 사람들은 다 자신만의 고집이 있다.
예전에 영화 <관음산>에서 이런 대사를 보았다. “고독은 영원하지 않고 동행이야말로 영원하다.” 당시에는 매우 감동적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동행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고독이야말로 영원한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것이 있고, 나는 내 것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생활이 있고 나도 나의 생활이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생활이 아무리 천차만별이어도 늘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든 말든 사람들은 모두 고독을 느낀다는 점이다.
생활이 힘든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그저 당신을 고독하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고독 때문에 사람들은 무리를 짓기 원한다. 같은 무리가 있으면 같은 것을 보고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좋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느낌을 공유할 사람이 있고 힘들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운인지 깨달을 수 있다.
만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성공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상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이라도 여전히 자신의 희열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고 있을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세상의 골짜기 밑에서 넘어져서 자신과 함께 빠져나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 사람들은 함께 걸어가 줄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명이라는 것이다. 가치관에는 옳고 그름의 구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누군가에게 적용할 때는 그 구분이 쉽지 않다. 그
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해줄 수 있고 자신과 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2009년 애니메이션 <메리와 맥스>에서 나를 가장 감동케 했던 이 대사가 기억난다. “내가 너를 용서하는 이유는 네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너는 결코 완전무결하지 않아. 나도 그렇지. 완전한 사람은 없어. 문밖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이지. 내가 어렸을 때는 그저 나 자신을 제외한 어떤 사람이든 되고 싶었어. 버나드 하젤호프 박사님이 말씀하셨어. 만일 내가 어떤 외로운 섬에 있다면 나는 혼자서 생활하는 것에 적응을 해야 한다고. 거기에는 오직 야자나무와 나밖에 없지. 박사님은 내가 나 자신과 결점 그리고 나의 전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어.
우리는 자신의 결점을 선택할 수 없고 그것들도 나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들에 적응해야만 해. 그러나 우리는 친구를 선택할 수 있지. 나는 너를 선택해서 정말 기쁘단다. 사람의 인생은 아주 긴 길이라서 아주 깨끗한 길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의 길은 바닥이 갈라지고 바나나 껍질이나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어. 네 길도 내 것과 비슷하지만 내 길만큼 심하지는 않아. 언젠가는 네가 나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때가 되면 우리는 연유 캔을 함께 나눠 먹을 수 있겠지. 너는 내 최고의 친구이고 유일한 친구야.”
사람마다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모두 다르다. 유일한 공통점은 그 과정이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길고 견고하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나는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을 때는 그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클럽에 자주 가는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없고, 늘 빈둥거리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미래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늘 웃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리 상처를 주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인생의 길은 아주 길어서, 깨끗한 길도 있고 갈라지고 패인 곳이 가득한 길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길은 어느 날 만날 수 있다. 그때는 당신의 길이 어떤지, 과거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사랑도 그렇다. 진정한 사랑은 두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함께 성장하면서 감정이 공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그 길은 수만 가지가 있어서 길을 합칠 만한 친구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또한 사람들은 누구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몇 번씩은 좌절감과 슬럼프 그리고 외로움을 겪기 때문에 서로를 깔보거나 비난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서로 공명할 수 없다면 최소한 상대방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남을 비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활에 참견하지 않는 일이 쉽지 않은 수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을 곱게 보지 못하는 것이 자기 수양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함부로 비판하거나 잘 모르면서 참견하는 것은 자신의 수양과 분명 관련이 있다.
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꿈을 얕잡아보지 않는 사람을 존경한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꿈을 얕잡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인내심과 관용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살면서 이런 면을 잘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면모를 바탕으로 하면 더 멀리 걸어갈 수 있다.
모든 강물이 흘러서 결국에는 바다에서 모이듯이, 먼 곳까지 걸어가면 당신의 길과 나란하거나 교차하는 길을 만나게 된다. 공명이라는 것은 여러분의 생각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는 전제에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어떤 것에 감동을 받는지와 같은 부분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교차로는 당신이 충분히 멀리 걸어갔을 때에만 만날 수 있고 공명이라는 것도 당신이 많은 것을 준비해두었을 때에만 만날 수 있다.
영화 <백야행>에는 태양에 대한 이런 묘사가 나온다. “나의 세계에는 태양이 없어서 어둠만이 있었다. 그러나 태양을 대신할 빛이 있었지. 비록 태양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 공명의 유효기간이나 사람이 가고 오는 일과는 상관없이, 누군가가 내 삶에 나타나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 덕분에 당신은 고독 속에서 배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이지만 일단 함께 공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만 있다면 세월이 아무리 되풀이되더라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이 오랫동안 공명할 수 있고 무슨 말이든 함께 나눌 수 있는 그 사람을 찾길 바란다.
part 2 꿈꾸는 청춘
인생은 한판의 도박 그 유명한 2012년 세계 최후의 날, 사실 나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새 책의 내용을 구상하고, 제출해야 하는 논문으로 골치를 앓았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최후의 날을 기대했는데 한편으로는 정말로 최후의 날이라면 이상하게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막 새 책의 원고를 넘기고 GMAT를 준비하고 있었다. 올림픽도 끝났고, 출판사와의 진통도 끝났으며, 타향살이의 애환도 겪었다. 비록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앞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후의 날은 오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는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새롭게 삶의 계획을 세우면서 최후의 날도 비켜갔으니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로는 매일이 최후의 날인 것 같고, 미래가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의심이 든다. 하지만 아침은 여전히 매일 약속대로 도착하고 삶도 아직은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을 더 이상 믿지 못할 듯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자신의 결정을 밀고 나가려는 부분도 있다. 이런 모습 속에서 나는 자기모순을 느낀다.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왜 포기하지 못할까? 반대로 확실하다면 또 왜 끊임없이 의심하는 걸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성장하고,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회의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자아가 확고해지며, 끊임없이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면서 현재의 자신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다니며 때로는 벽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하고 넘어져서 정신을 잃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인생이 사실 한판의 도박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꿈이 현실을 지탱해줄지 아니면 현실이 꿈의 움직임을 압도할지, 당신에게 모든 것을 주고는 다시 가져가버린 그 사람을 잊을 수 있을지, 당신이 현재 만나는 이 사람이 당신의 백마 탄 왕자님일지, 그와 한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지는 모두 도박이다.
만난 지 10일 만에 초고속으로 결혼을 하고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년을 만나고도 헤어져서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모든 일이 잘 풀리는 한 해였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하는 일마다 안 되는 힘든 한 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상관없다. 꿈을 위해서 시간을 걸고 도박을 하고 싶다면 하면 된다. 또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걸어보고 싶다면 한번 해보자. 꿈을 위해서라면 진다고 해도 깨끗이 승복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졌을 때 깨끗이 물러날 수 있다.
예전에 나는 꿈이 아주 많았다. 경찰이나 변호사, 또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어릴 때는 아주 멋진 사람이 되거나 멋진 직업을 갖기를 꿈꿨다. 조금 자라고 나서 나 자신이 그런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선량한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더 자란 후에는 선량한 사람이 되는 일이 어떤 면에서는 과학자가 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나중에는 온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작년의 나는 다른 도시에서 지금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지금과는 다른 짐을 지고 있었다. 당신이 믿든 말든, 유심히 관찰을 하든 말든,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당신이 지금 듣는 음악, 보는 책, 가는 도시, 만나는 사람, 현재의 심난함, 몸부림, 고통, 고난은 서서히 쌓여서 당신의 미래를 바꾸고, 점차 당신이 원하는 그 미래가 된다.
몇 년 동안 성장하면서 얻는 최고의 수확은 다름 아닌 인내심이다. 이는 맹목적으로 참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전에 자신을 넘어지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극복할 수 없었던 것들이 지금은 별것 아니라고 느껴지고, 끊임없이 원망했던 것들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극복하려고 노력할 수 있으며, 예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들에 이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혹시 미래가 순탄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도 불안해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얻는 또 다른 모습은 더 이상 행운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달이 시작될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시작이나 좀 더 나은 생활을 기대하지만 사실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힘든 일은 여전히 힘들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떻게 이 힘든 나날들을 견뎌내는가이다. 당신은 불안하고 초조해할 수도, 담담하고 침착할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해도 늘 행운이 당신과 함께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행운에 깨끗이 패할지언정 찜찜하게 노력에 지지는 말자.
미련해도 좋고 똑똑해도 좋다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자신을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어떻게 달라질지, 앞으로 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일이 있는 한 흐릿함과 불확실성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또한 오늘 하고 있는 일들의 의미도 아마 오랜 후에야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이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는 일뿐이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공항에서 책을 한 권 구입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책의 한 부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강의 내용은 이랬다. 저자는 비행기를 탈 때 설사 그녀 앞에 앉은 사람이 등받이를 뒤로 젖히더라도 자신은 좌석의 등받이를 조절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너무 힘들거나 어쩔 수 없이 등받이를 조절해야 할 때는 마치 자신이 뒷사람의 개인 공간을 침범이라도 한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내가 제목을 잊어버린 책의 이 부분을 여전히 기억하는 이유는 나만큼 미련하게 사는 사람을 책에서 찾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나는 이렇게 답답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미련한 사람도 분명 자신에게 맞는 생활방식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미련하기 때문에 정말로 한 가지만을 끝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처음부터 나는 내가 미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는 갖고 싶은 장난감을 얻으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그 말을 하기가 부끄러웠고, 커서는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필요가 없는 슈퍼마켓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발명의 결과라고 기뻐했다.
나의 대학 생활은 집과 학교만을 오다가다 가끔 여행을 가는 식이었다. 친구들이 미래를 위해서 인맥을 쌓기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항상 내실 있는 사람이 되면 그에 걸맞는 친구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맞선을 보기 시작하고 결혼하느라 바쁠 때, 나에게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상대도 없었다. 그러다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도 책을 쓰겠다는 고집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몰랐지만, 글쓰기라도 꾸준히 해야 자신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다른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이기도 했고 사람들이 다 자신만의 고충이 있기 때문에 남에게는 최대한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수많은 길을 돌아갔지만 요령을 배우지는 못했다. 나는 한 번도 이것이 좋은 태도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사실 어떤 분야는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일을 할 줄 알게 되었지만 생활에서는 여전히 요령을 익히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나는 타고난 재능도 없었고 많은 일들이 노력을 거듭해야만 겨우 지금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빼어난 글솜씨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내가 우연이라도 그런 뛰어난 글을 쓴다면 그 이유는 길고 지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할 때에도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고, 때로 낭만적인 일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필요한 첫 번째 요령은 역시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타를 배우고 싶었지만 늘 배우지 못했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잘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중에 나는 이런 것들이 바로 나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미련해도 좋고, 똑똑해도 좋다. 이제 나는 내가 바로 이런 사람임을 그대로 시인한다. 지금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담담하게 나의 모든 결점과 어리석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