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로 삶을 편집하다
서재윤 지음 | 예미
_로 삶을 편집하다
서재윤 지음
예미 / 2020년 02월 / 260쪽 / 15,000원
Chapter1. 방황의 시기
다시 태어나다시간이 흘러 겨울철이 되었고 바닷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받은 월급은 동이 났고 재떨이를 뒤져 가장 긴 꽁초를 두어 개 주워서는 원재료가 입항 되는 부둣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라이터를 꺼내서 담배 필터를 대충 소독하고 불을 붙여 연기를 뿜어댔다. 나도 모르게 한숨 소리가 튀어나왔고, 이 모습을 본 어린 형이 나를 쳐다보며 한마디 던졌다. “와, 무슨 고민 있는기요? 내 저쪽에 가서 일 좀 하고 올 테니 좀 쉬소”하고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바닷바람 소리는 나의 한숨이요 추운 냉기는 내 마음과 같이 느껴졌다. 남은 꽁초를 마저 피우고 몸이라도 좀 녹이려고 원재료를 퍼 나르는 대형크레인으로 올라갔다. 정신이 나갔는지 고소공포증도 느껴지질 않았다. 마침 운전자는 없었고 선풍기형 전기 온열기가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운전석이 내 자리인 양 털썩 눌러앉았다. 따뜻한 온기를 받아들이니 육신의 따스함은 느껴졌지만, 텅 빈 내 가슴은 먹이를 얻기 위해 추운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마냥 쓸쓸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잠시 뒤, 운전자가 화장실을 다녀왔는지 손을 옷에 문지르며 올라왔다. 일어서려는 순간 나를 내려다보면서 한마디 뱉었다. “어디 앉아 있는기요, 그 더러운 궁둥이로 내 자리를……” 하면서 옆에 걸려 있던 수건을 들고는 운전석을 ‘탈탈’ 터는 것이었다. 이제 내 마음은 더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내려앉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고 곪을 대로 곪은 고름 덩어리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운전자를 향해 나도 한마디 세게 쏘아붙였다.
“그래, 너는 여기서 마르고 닳도록 일하다가 늙어 죽어라. 나는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될 거다…….”
한참을 쏘아붙이고서 크레인운전자를 보니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길로 회사에 퇴사 신고를 하고는 바로 집으로 향했다. 지금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으나 아마도 눈물을 보일 정도면 좀 지나치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다. ‘친구야, 미안해. 그때의 내 마음은 그랬었나 봐. 용서해 줘. 잘 살기를 바라. 친구도 나도 강한 느낌들을 받았고 생각들이 많았을 거야. 그리고 나를 크게 깨우쳐 준 계기를 만들어 줘서 너무 고마워.’ 이 시점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큰 전환점이 아닌가 싶다.
Chapter2. 삶 속으로 들어가다
반전의 기회가 찾아오다날마다 한 발짝이라도 전진하겠다는 마음으로 대형서점을 향해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고, 예나 다름없이 열심히 일을 거들다 보니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간판급 출판사의 영업국장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나는 최대한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추려고 자는 방까지 따라가며 애를 썼다. 그런데 나의 참을성이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영업국장의 어깨에 들어간 후까시(튀어나온 모양)가 마치 낙타 등만 같았다.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거만한 거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딩 때에는 ‘뿔뚝이’, 성인이 되어서는 ‘한 성질 하잖아’ 이런 소리는 들어봤지만 적어도 약하다거나 고분거리는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쥐뿔도 없는 게, 아니 있어도 마찬가지다. 대가리 바짝 쳐들고 나불거릴 때에는 나도 미치광이가 되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그런데 ‘어데 대가리를 조아리는 놈한테’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폭발했다. 일어서서 영업국장의 어깨를 누르면서 “보소, 내가 당신 출판사 책 안 받으마 될 거 아니오” 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주위 사람들이 뜯어말려 상황은 간신히 진정되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내가 왜 그랬지? 일이 잘 안 풀리니 내가 미친 것인가?’ 온갖 괴로움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간판급 출판사 영업국장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니 ‘이제 나는 죽었구나, 어떻게 살아가지?’ 하다가 마음을 가다듬으며 ‘내일 전화해서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과하자’라고 마음을 정리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기죽은 마음 상태에서 그 영업국장에게 전화기를 돌렸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저어 어제 만났던 정문서점의……”까지 말을 하고 있는 중인데, “야, 인마, 다 필요 없고 앞으로 너하고는……”이라며 언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흥분에 빠지고 말았다. 나도 말을 끊어버리고 “뭐, 야 인마? 이 자식이 어제 손 좀 봐주려다가……” 하며 거친 말들이 오가고, 중간지점인 대전역에서 만나 결투를 치르기로 했다.
그렇게 통화가 마무리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툭툭 쳤다. 뒤를 돌아보니 그 출판사의 대구 지사장이었다. “뒤에서 살짝 들어봤는데, 우리 국장 아닌가?” 하고는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쿠 참 나, 앞으로 국장한테 좀 씹히겠구만” 하는 것이었다. 이 지사장은 초창기에 내가 어느 서점에서 일을 배울 때, 나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날이 지나 지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의 실적이 크게 나쁘지 않아 국장으로부터 크게 괴롭힘은 안 당했는데, 그 이후로는 국장이 대구의 어설픈 깡패 만날까 봐 대구에 오는 것을 꺼려했다고 한다.
맏형 격인 출판사 영업국장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하우! 앞으로 어떡하지?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해?’ 등으로 머리가 지근지근했다. 그런데 의외의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그 국장 밉상이었는데 자알 당했구만. 강아지가 호랑이를 건드렸네’ 등 반전이 일어나며 우리 서점에 영업자들의 방문이 더 늘어나는 것이었다. “야아! 이제 드디어 기회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찾아오는 영업자들을 저녁만이 아니라 술 접대까지 해서 호감을 사려고 노력했고 출판사의 영업 비수기를 빼고는 거의 매일 술판이 벌어졌다. 이런 일들이 잦아지니 일의 성과는 앞으로 일어나겠지만, 우선은 돈줄이 문제였다. 고민 끝에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논마지기마저 처분하고야 말았다. 이 시기의 술값을 금액으로 표현하면 아마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흥청망청(?)이었다.
시작부터 완전 무장해야특정 출판사와 4년 반 동안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운 적이 있다. 마지막 느낀 점만 이야기하자니 이해가 덜 될 것 같아서, 긴 기간의 사건이라 추려도 좀 길지 싶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사건의 진실은 이러하다. 내가 바깥에 외출 중일 때 ㅋ출판사의 영업부장에게서 나의 폰으로 전화가 왔다. “그 학교의 저자 교수가 이번에 출판을 했는데 수강인원이 150명쯤 된다고 하니 100부의 금액을 송금하고 사가라”는 것이었다. “귀 출판사는 반품을 10%만 허용하니 서점에 들어가서 확인한 후에 주문을 할게요”하고 서점으로 들어왔다. 수강인원을 확인하니 정확히 123명이었다. ㅋ출판사로 연락을 해서 여직원과 통화를 하고서 50부를 주문하고 60만 원을 송금했다. 얼마 후 여직원이 내게 전화해 “책은 보낼 수 없고 60만 원을 도로 송금을 받으라”고 했다. 내가 물었다.
“여보세요, 그 출판사는 반품을 안 받아 주는데 남으면 그 책은 어떻게 해요?”
“윗선에서 출고를 금지시키니 어쩔 수가 없네요.”
“아니요, 책을 받으려고 송금했지 도로 돈을 받으려고 송금한 건 아니에요.”
그렇게 통화를 끝냈다. 추가 설명을 좀 하면, 출판사에서는 우리 서점이 돈을 내고 100부를 사라고 하고, 나는 50부 정도밖에 팔리지 않을 것 같으니 50부만 사겠다했다. 100부를 사 와서 다 팔지 못하고 남는 도서는 타 출판사의 경우는 100% 반품을 받아 주니 손해가 없지만 ㅋ출판사는 반품을 받아 주지 않으니 적자 판매가 되는 셈이다. 이러니 나는 100부를 사서 다 팔 자신이 없으니 50부만 사겠다는 것이다.
학기 중에 엄청 바쁜 시기지만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다. 지금까지도 이토록 화가 난 경우는 잘 없었다. ‘어떻게 갑질을 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어. 이런 출판사는 처음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출판사 단단히 고쳐줘야겠어’라는 생각에 나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바쁜 것은 뒷전이 되었고 ‘공정위원회로 신고를 할까’ 하다가 그래도 상대가 너무 크게 다칠까 봐 공정거래조정원으로 서류를 만들어 신고를 했다. 며칠 뒤 공정원에서 양쪽을 불렀다. 상대는 대표가 나오지 않고 실장이라는 사람이 나왔다. 앉자마자 “그 서점만은 반품을 다 받아 줄 테니 신고를 취하해 주세요.”였다. 내가 무슨 정의파라고.
“그건 아니지요. 다 똑같은 입장인데 다른 서점도 마찬가지지요.”
이렇게 해서 조정은 깨어지고 공정위원회로 올라갔다. 공정위에서는 달이 지나도록 나를 부르지도 않았다. 또 화가 치밀었다. 공정위로 전화해서 “왜 안 불러주는 겁니까? 잘못하면 나 돌아버려요”라고 한 후, 며칠 뒤 호출이 왔다. 공정위는 사무실로 바로 올라가지 못하고 민원인 대기실이 따로 있었고 담당자가 내려와서 의뢰인을 데리고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기다리며 옆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정말 가관이었다. 기본이 수백억 이상의 사건들이었다. 나는 60만 원짜리 사건이니 부르지 않을 만도. ‘쯧쯧.’ 조금 기다리자 상대도 도착했고 이어서 담당 사무관이 내려와서 우리를 데리고 검색대를 통과해서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관이 이렇게 말했다.
“우린 전국에 OOO의 인원으로 일을 합니다.”
즉, 공정위 직원들이 너무 바쁘니 잔챙이는 좀 빠져달라는 뜻으로 이해가 되었다. 결론은 여기서도 나질 않았다. 처음에는 ‘당연한 것을 무슨 자료가 필요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이때부터 자료 수집을 하고 탄원서를 만들어 전국의 대학서점과 출판사를 대상으로 가까이는 찾아가서 도장을 받고 먼 곳은 팩스로 전송을 받아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나는 60만 원 사건이지만 경우가 맞지 않아 화가 난 일이고, 상대는 회사 전체의 명운이 걸린 일이어서인지 변호법인도 대형 로펌을 선정했고 ‘준비서면’에 등재된 대표변호사는 과거 언론에 보도되었던 유명한 사건으로 S 회사를 변론한 거물급 변호사였다. 재판 결과는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서류를 보완하고 항소를 했다. 고등법원 재판에서는 꼭 대표자가 출석해야만 되어서인지 이번에는 출판사의 대표자가 법정에 참석했다. 재판 결과는 ‘원고 일부승소판결’로 설명했지만 내 판단으로는 ‘원고 완전패소판결’이었다. 법으로는 이길 재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재판이 끝나고 나오면서 상대의 대표를 불렀다. “대구까지 내려왔으니 내 밥 한 그릇 살 용의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예, 재판 다 끝나고 나서 연락 한번 하겠습니다” 하고는 줄행랑치듯 가버렸다. 다시 상고를 하려고 자료준비를 하면서 법을 아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대법원에서는 더 이상의 준비 자료는 필요가 없고 기존 자료 내에서 법리 해석이 올바르게 되었나를 판단하는 재판이라며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고 그만하라고 했다.
여기서 깨달은 점이 꽤나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주문자가 필요한 양만큼 주문하는 게 순리이지 공급자가 양을 결정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밀어내기’와 마찬가지 아닌가?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당연한 것을 뭘 자료를 준비하고 자시고 할 게 있어?’라고 생각한 자체가 잘못이었다. 어떤 싸움이든 시작을 하게 되면, 영화 제목처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는 마음으로 초전박살을 낼 태세로 자료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상대의 대처과정을 보면서 느슨해져도 될 거 같다. 처음부터 이렇게 준비를 하고, 또 법정인 쟁점으로 미리 서둘렀다면, 그리고 보존 유효기간도 놓치지 않고 법정에서 ‘사실조회’를 신청해 상대와 통화한 기록이 확인되었다면, 이토록 허망한 긴 싸움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오기가 여러 번 발동해서, 엉뚱한 짓을 저지르려고 벼르고 있었다. 이때 아내가 눈치를 채고는 ‘제발, 제발’하고 파르르 떨며 ‘이것 이기고 더 큰 것이 날아가면 어떡할래요’ 한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어떤 싸움이든 다툰다는 것은 체력 소모에 시간, 때로는 비용도 든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것처럼 싸우지 않고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라면, 사전에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 것만이 이길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Chapter3. 세상 들여다보기-잡다한 이야기
엄마의 18번 곡아버지는 6년 전에 돌아가셨고 엄마는 말 못하는 친고모랑 둘이서 생활한다. 신학기 중이라 한 달 가까이 되어서 엄마 집을 방문했다. 엄마가 한마디 쏘아붙였다.
“안 죽고 살았네, 너거 본 지가 1년도 넘은 같다. 와! 어데 갈 데가 없더나?”
“아아 요즘 신학기라 바빠서.”
“아아 그냥 케봤다. 너거 바뿐 줄 안다. 바뿐데 말라꼬 왔노.”
엄마 집은 30분 거리라 가끔은 들르는 편이다. 평소에 우리가 엄마 집에 가면 엄마가 반가운 마음에 “말라꼬 왔노” 소리를 잘한다. 그러면 “와, 오갈 데가 없어서 왔다. 와!”라고 대꾸하곤 한다. 식당으로 옮기고 고기를 굽는다.
“소주도 한 빨 하자 와.”
“쪼매마 무래이.”
“기안타 인자 이 나이에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렇게 해서 소주를 한 병 나눠 마시고는 내 글에 대해서 슬쩍 운을 떼봤다.
“엄마, 내 생활한 거하고 내 생각을 넣어서 책으로 한번 만들어 볼라 칸다. 인자 약 반 정도 썼데이.”
“그래 잘 했다. 니 농띠이 부린 것도 썼나? 그렇게 애를 먹이디마는. 너는 평소에 마음을 잘 쓰니 이것도 잘 될끼라” 하며 응원을 보내준다. 아내가 차를 몰고 식당에서 엄마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엄마는 기분이 좋은지 옛날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기 시작한다. 나도 같이 목청껏 따라부르고, 엄마의 노래가 끝날 때쯤 엄마가 즐겨 불렀던 ‘달 밝은 이 한밤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노래를 내가 선창해 부르자 엄마는 신이 나서 거의 쓰러질 정도가 되며 차 안은 잠시 노래방이 된다. 말 못하는 우리 고모도 분위기에 젖어 손뼉을 치며 ‘어 어’를 한다. 연세가 90인지라 곡이 올라갈 때는 혹시라도 엄마가 잘못될까 봐 아내가 나를 쿡쿡 찌른다. 엄마 집에 도착해서 나도 엄마도 인사를 나눈다.
“할마씨! 입맛이 없어도 무야 산데이.”
“그래, 무꾸마. 인자 또 언제 올끼고”하고는 집으로 돌아간다.
환율의 착각수년 전에 친구랑 블라디보스토크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친구 세 명이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한 친구가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이로 인해 나랑 친구랑 친구의 여친 세 명이서 여행을 떠났다. 나는 대낮부터 독한 보드카에 빠졌다가 저녁이 되고 혼자서 자자니 옆방이 괜히 떠올랐다. 친구에게 둘이서 한잔하자며 꼬드겼다. 수소문 끝에 한인이 운영하는 술집으로 이동했다. 술에 취해서 기억이 없고, 지금부터는 다음 날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술집에 들어서더니 100루블(2천 원)을 꺼내어 놓고는 온갖 꼴불견을 부리면서 꽥꽥거리더니 나중에는 음식을 게워냈단다. 이런 모습을 전해 듣고 주인이 나타났고, 결국은 쫓겨났다고. 다음 날 아침, 아마 술이 덜 깬 상태일 텐데도 좀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 혼자서 나가서는 언어도 안 되는 주제에 택시를 잡아타고서 한 시간여 동안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택시비를 얼마를 주었느냐 하면 5000루블(10만 원)을 지불했다. 요금을 받은 택시기사가 나를 향해 꾸벅꾸벅 여러 번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절의 의미를 몰랐다. 숙소로 들어가서 친구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이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