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는 꽝이고 내일은 월요일
이하루 지음 | 홍익출판사
로또는 꽝이고 내일은 월요일
이하루 지음
홍익출판사 / 2020년 03월 / 224쪽 / 14,800원
제001회. 월요일이 싫어요 회사가 질려요
월요일 회사는 위험해월요일은 위험하다.
정확히는 회사로 출근해서 일하는 월요일이 그렇다. 나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느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증명된 사실이다. 아래 내용은 우연히 본 뉴스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길 권한다.
일본 아이치 현의 아사히 산재병원이 실시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고가 특히 월요일 오전에 발생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 기무라 원장은 “심혈관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월요일에는 가급적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일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밀린 업무를 월요일 오전에 급히 처리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_<월요일 아침, 심혈관질환 위험 높다>, 추현우, 파이낸셜뉴스, 2018년 4월 22일자.
그랬다. 우리 직장인은 ‘그냥’ 회사에 가기 싫었던 게 아니다. 예민한 촉으로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일요일 저녁마다 기분이 우울했던 이유, 일요일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 월요일 아침마다 예민해지는 이유. 모든 것엔 이유가 있었다. 어렴풋이 예감한 것들이 사실로 밝혀지는 순간은 늘 이렇게 찜찜하다.
이렇게 월요일이 위험하다는 게 증명됐건만 예방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고릿적 시절 그대로다. 그놈의 스트레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조언은 회사를 관두라는 말과 마찬가지 아닌가. 돈에 눈이 먼 세상에서 밥벌이를 대신 찾아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마시고 주말에는 푹 쉬세요. 일요일에는 일찍 주무시고요.”
예전에 자주 가던 병원 의사는 늘 내게 이런 처방을 내렸다. 위염에 걸렸을 때도, 장염에 걸렸을 때도, 마지막으로 대상포진으로 찾아갔을 때도, 그는 스트레스와 잠을 운운했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찾아갔을 때마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하는 그를 보자 멱살을 잡고 이렇게 따지고 싶었다.
“딱히 할 말이 없으면 그냥 불치병이라고 해.”
하지만 끝내 내 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왜냐하면, 의사의 얼굴이 환자인 나보다 더 안돼 보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유행하는 감기 때문인지 병원에는 대기 환자가 가득했다. 처방전을 받고 나오면서 나는 의사의 심혈관이 걱정스러웠다.
월요일은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 환자가 의사를 걱정할 정도니까.
제002회. 퇴사 씩씩거리며 씩씩하게
퇴사해보니 돈은 허구가 아니더라전년 대비 26.8퍼센트나 올랐다. 주가 얘기가 아니다. 2019년 1분기 과자 맛동산 가격이 인상된 폭이다.
1990년대 초반 맛동산은 500원이었다. 초등학생이던 내게 무시무시하게 고소한 맛이 나는 이 과자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맛동산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전력 질주할 때가 많았다. 아빠에게 맛동산은 팝콘 대용이었다. 비디오 가게에 입고되는 최신 영화를 제일 먼저 대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빠였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 준비되어야 할 것이 쟁반에 올려진 맛동산이었다.
이토록 중요한 맛동산이 늘 집에 있는 건 아니었다. 과자가 없을 때는 누군가 잽싸게 나가서 사와야 했다. 그렇다. 그 누군가는 집에서 제일 어린 나일 때가 많았다. 불공평한 처사였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아빠가 내 손에 쥐여준 1,000원 덕분이다. 암묵적으로 맛동산을 사고 남은 500원은 내 것이었다. 이것은 심부름 값이자 구매대행 서비스 이용료였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아빠가 시킨 심부름은 딸을 위한 경제 교육이 아니었나 싶다. 돈은 일해야 생기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맛동산을 살 수 없다, 이런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안타깝게도 아빠의 노력에도 내게 경제관념이 생긴 건 퇴사하고 무일푼이 된 후였다.
내게 돈은 허구였다.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읽은 내용에 따르면 돈은 예측할 수 없는 종이다. 본래 돈이라 불리는 종이는 과거 금과 은을 교환하는 증서였다. 한데 영리한 은행이 증서를 이용해 부를 쌓기로 한다. 증서를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실제 은행에 보관된 금보다 많은 증서를 찍어내게 됐다. 그러다 세계 강국인 미국이 무역적자로 어려워지자, 금으로 교환받던 증서가 미국을 믿고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화폐로 바뀌었다. 이제 돈은 실물자산인 금으로 교환되지는 않는다. 가치도 시장에 의해 달라졌다.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한들,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 돈은 정말 종이에 불과할 수도 있다. 더는 맛동산을 500원에 살 수 없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돈을 허구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사회초년생 때는 돈을 꽤 열심히 모았다. 점점 불어나는 통장 숫자가 든든하기도 했으니까. 그때 나는 투잡을 뛰었다. 평일에는 직장에 다녔고 주말에는 과외를 했다. 악착같이 살려던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취업하기 전에 했던 과외를 관두기 어려웠을 뿐이다.
그때 나는 신입 기자였다. 주말에도 취재를 나가야 할 때가 많았고 그런 와중에 과외까지 맡았다. 당연히 놀 시간이 부족했다. 친구들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예쁜 옷을 입었고, 좋은 곳에 갔으며,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었다. 한데 난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아쉬운 마음도 통장에 돈이 쌓이는 뿌듯함과 바꿀 수 없었다. 그때 내 연봉은 2,400만 원 정도였는데, 6개월 만에 통장에 1,000만 원이 모였다. 백수로 지낼 때 생긴 빚까지 모두 청산한 후에도 말이다.
그렇게 8개월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쓰러졌다. 과로사는 아니었다. 막걸리 한 잔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원래부터 술을 잘 못 마신다. 그렇다고 막걸리 한 잔에 쓰러질 주량 또한 아니었다. 몸에 나타나는 이상 신호는 더 있었다. 별일이 없으면 금요일 밤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잠이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다음 날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금요일 밤 10시에 잠들어 토요일 밤 10시에 눈을 뜬 날도 있었다. 몸이라도 개운했으면 좋았으련만. 물먹은 도톰한 니트처럼 몸이 무거웠다. 그 후 생리 주기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한 달에 두 번, 두 달에 한 번, 이런 식이었다.
병원에 가 건강검진을 받았다. 갑상선 결절, 만성 위염, 허리 디스크 초기 등 열심히 일한 몸뚱이는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과외를 관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녔다. 금요일 밤에는 친구들과 가격은 사악하지만 사진 찍기 좋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말에는 이름조차 발음하기 어려운 작가들의 전시회에 다녔다. 쇼핑도 했다. 난해한 디자인에 편히 착용하기 힘든 옷과 액세서리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소비에 편향된 욜로였다.
독립도 했다. 회사 근처에 집을 구했다. 창문을 열어두면 금세 발바닥이 까맣게 변하는 대로변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하얀 화장대, 하얀 침대, 더 하얀 소파. 그것들을 집안에 들여놨다. 마지막은 와인 장식장이었다. 야근 후 와인을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8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성난 자동차 소리뿐인데도, 내 삶이 꽤 그럴듯해 보였다.
욜로의 끝은 퇴사 후 장기간 여행을 떠난 후부터였다. 8개월 만에 빚을 청산하고도 1,000만 원을 모았던 성실한 사회 초년생은 모은 돈을 여행에 쏟아부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통장에는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
돈은 봄볕에 녹는 눈 같았다. 조용히 사라졌고, 흔적이 남지 않았고,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서른이 넘어 무일푼이 된다는 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 때마침 아빠의 사업도 어려워졌다. 오빠까지 함께 일하는 사업장이었다. 아빠 주머니 사정이 곧 우리 집 경제 상황으로 직결됐다. 백수로 돌아온 집은 형편이 녹록지 않았다.
“혹시 돈 좀 있어?”
정신 차리고 다시 프리랜서 일을 시작할 때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돈 얘기를 먼저 꺼낸 적 없던 아빠가 물었다. 생활비를 카드로 썼는데 갚을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에게 돈을 빌려만 줬지, 빌린 적이 없던 아빠가 뻔한 형편이란 걸 아는 딸에게 손을 벌리기까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때 문득 맛동산이 떠올랐다. 이 말을 꺼내기 얼마 전 아빠와 나는 마트에 갔었다. 과자가 진열된 코너를 지나는데 맛동산이 보였다. 아빠는 잠시 그 앞에 머물다가 이내 지나쳐버렸다.
그제야 돈이 아까웠다. 내 몸보다 자주 닦아야 해서 얼마 앉지 못한 하얀 소파, 언제 쓸지 기약 없는 물건을 한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낸 비행기 수화물 추가 비용, 시차 적응을 하겠다며 통장에 남은 돈으로 사 마신 아메리카노까지. 그동안의 가벼운 소비가 무거운 손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네덜란드에 이런 속담이 있단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침대를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시계를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지만, 지식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약을 살 수 있지만, 건강을 살 수 없다.
언뜻 돈과 행복이 무관하다는 것처럼 들린다. 문장을 바꿔봤다.
집이 있으면, 가정은 더욱 안정적이다.
침대가 있으면,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
시계가 있으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잇다.
책이 있으면, 지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약이 있으면,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그렇지만 돈이 있으면 불행할 확률이 줄어든다. 이것이 내가 소비를 손실로 느낀 이유다. 돈 때문에 삶이 불행해질지도 모를 위기를 느꼈으니까.
내가 소득과 소비의 균형을 맞춰가며 이루고픈 것, 돈으로 이루고픈 미래 경제력은 어마어마한 게 아니다. 우선 26.8 퍼센트가 아닌 268퍼센트가 인상되더라도 아빠에게 맛동산을 사주고 싶다. 비록 거실에 내 몸보다 소중히 다뤄야 하는 새하얀 비싼 소파는 없더라도, 대출금 없는 집에서 살고 싶다. 아주 가끔 가성비를 무시한 소비를 하고 싶다. 작은 실패에 와르르 무너져 세상에 야박해지기 싫다. 무엇보다 모래시계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싫다.
이제는 안다. ‘회사에 받은 스트레스’를 ‘회사에서 받은 월급’으로 소비해도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003회. 일도 사람도 리셋하고픈 월요일
왜냐하면, 거절은 어려운 거니까아직 거절에 대해 할 말이 남았다.
직장생활은 거절로 시작해 거절로 끝난다.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부터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회사의 거절로 회사생활이 마감된다. 따져보면 어디 직장생활 뿐이겠는가. 거절은 우리 인생 마디마디에 촘촘히 파고든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그밖에 살면서 얽히고설키는 관계에서 불편한 부탁은 일상다반사로 일어난다. 그 때문에 거절은 필수다.
거절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늘어난다. 그렇다면 거절, 어떻게 하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
1. 아니다 싶은 것은 아닌 게 맞다: 누가 봐도 무리한 부탁인데 너무도 해맑게 부탁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무리한 부탁을 하면서 관계를 운운하는 이들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부탁이라는 것은 부탁하는 자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고로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상대가 해맑든 탁하든 상관없이 내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다.
2. 결정은 빠르게, 거절은 천천히: 아니다 싶은 곤란한 부탁은 거절하는 게 맞다. 그러나 부탁한 사람과 덜 어색해지고 싶다면 바로 거절하지는 말자. ‘생각 좀 해볼게’, ‘확인 좀 해볼게요’, ‘의논 좀 해볼게요’처럼 상대의 부탁을 고민한 듯한 인상을 남기며 정성스럽게 거절하자.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상대도 거절을 염두에 두고 다른 사람을 물색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너무 늦게 거절하진 마시길.
3. 거절로 끊어질 관계는 언제든 끊어진다: 거절하기 미안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거절하지 않고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보다 미안한 게 낫다. 거절했다고 나빠질 관계는 이 기회에 정리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거절은 관계를 거절하는 게 아닌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다.
4. 미안해하지 말고 미안한 척만 하자: 실망할 상대가 걱정된다면 ‘미안한 척’을 하자. 여기서 주의할 점은 뼛속까지 진짜 미안해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직접적인 ‘미안하다’란 말은 최대한 언급하지 않도록 하자. ‘나도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는데 안타깝다’, ‘잘 해결되길 바랄게’ 정도가 좋다. 거절은 상대에게 빚을 지는 일이 아니다.
5. 상대에게 거절을 설득해보자: 부탁하는 사람만 상대를 설득하는 게 아니다. 부탁받는 사람도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설득’과 관련된 수많은 책은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방법을 알려준다. 역으로 이 방법을 이용해 거절을 설득해보자. 이런 책을 보면 알겠지만, 상대에게 신세 진 기분이 들게 만들기, 일단 부탁하기, 공감대를 형성하기, 거절하는 이유를 이용해 설득하기 등 수많은 기술이 담겨 있다. 역으로 이를 이용하자.
혹시 ‘왜냐하면’이란 말과 함께 부탁하면 거절당할 확률이 낮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는지. 심리학자 엘런 랭어(Ellen Langer)는 1978년 양보와 관련된 실험을 했다. 도서관 복사기 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말로 먼저 복사할 수 있겠냐며 부탁을 한 것이다.
①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 다섯 장을 복사해야 하는데 먼저 복사기를 사용해도 될까요?”
②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 다섯 장을 복사해야 하는데, 먼저 복사기를 사용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 굉장히 바쁜 일이 있어서요.”
결과는 어땠을까. 첫 번째 말로 부탁했을 때는 60퍼센트가, 두 번째 말로 부탁했을 때는 94퍼센트가 양보를 해줬다. 이 실험 결과와 같이 ‘왜냐하면’이란 단어는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게는 이런 심리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직장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매번 이런 식으로 내게 부탁을 하곤 했다.
“하루 씨, 혹시 내일 아침에 데일리리포트를 대신 써줄 수 있을까? 왜냐하면, 내가 내일 아침까지 보도자료를 완성해야 하거든.”“하루 씨, 이번 주말에 있는 행사 말야. 대신 가주면 안 될까? 왜냐하면, 주말에 부모님 생신이거든.”“하루 씨, 이번 여름휴가 말이야. 나랑 날짜 바꿔줄 수 있어? 왜냐하면, 비행기 표가 그때밖에 없더라고.”그러나 ‘왜냐하면 효과’는 내게 통하지 않았다.
“힘들겠는데요. 왜냐하면, 저도 내일 아침까지 제출할 기획안이 있거든요.”
“못 갈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희 부모님도 이번 주가 생신이거든요.”
“어렵겠네요. 왜냐하면, 제가 구할 비행기 표도 그때가 제일 싸거든요.”
거절은 어렵다. 왜냐하면, 저마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제004회. 쓸데없이 회사생활을 이롭게 하는 것들
쓸데없는 욕의 부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