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호갑사 이필신
이성민 지음 | 나무와열매
착호갑사 이필신
이성민 지음
나무와열매 / 2020년 02월 / 192쪽 / 13,000원
1장 “이동욱 교수님. 정말로 호피가 맞겠죠?”
윤상중 회장은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떨어질지 궁금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회의실 바닥에 펼쳐놓은 호피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거대한 크기의 흰색 호랑이 가죽이었다. 얼핏 보아서 길이가 2미터 1, 20센티미터는 족히 될 듯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백호(白虎)의 호피네요?”
흰색 호랑이 가죽은 나도 처음이었다. 나는 아무리 백호라도 호랑이 특유의 얼룩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예단을 했었는데, 잡티 하나 없는 순백색이었다. 흰색 밍크 껍질을 벗겨다가 이리저리 뜯어 맞춰 백호 가죽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믿어지지 않는 것은 백호라는 사실뿐이 아니었습니다. 400년이 훨씬 넘은 호피인데,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관리되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윤 회장 입장에선 자신이 구입한 호피가 진짜 호랑이의 가죽인지 궁금해하는 것이 당연했다. 크기도 크기이려니와, 바로 엊그제 제작한 호피처럼 보존 상태가 완벽했다. 게다가 말로만 듣던 백호라는 사실도 꺼림칙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제 어머니께서 아내에게 결혼 선물로 사주신 밍크코트가 있습니다. 34년 전에 결혼을 했으니, 밍크코트도 그즈음 제작된 것이겠지요. 그런데 겨우 34년 전에 제작한 밍크코트를 지금은 아내가 입지 못합니다. 적당한 습도 관리를 못했기 때문에, 입기만 하면 가죽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수선만 서너 차례 맡겼다가, 요즘에는 아예 수선을 포기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내에게 해주신 결혼 선물이라 버릴 수도 없어서, 요사이는 아예 옷장에 걸어놓기만 하는 형편이지요. 과학기술이 발전된 요사이에 만든 밍크코트도 이 모양인데, 400년 전에 만든 호피가 지금까지 말짱하다는 것이 저로서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마감 상태도 좋은데요. 이런 마감 기술은 일본에서 들여온 호피 중에는 처음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윤 회장님의 백호 호피는 저희 집안에 전해져오는 호피 두 점과 마감 방식이 똑같습니다. 호피 마감을 같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솜씨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윤 회장님은 이 호피가 일본에서 제작된 호피라고 하셨는데, 그게 사실일까요? 혹시 일제 강점기나, 그 이전에 조선에서 만든 호피를 몰래 일본으로 빼내간 것은 아닐까요?” 내 감정평가에, 윤 회장은 단호하게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분명히 일본에서 400년 전에 제작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 호피를 판매한 다니구치 요스케 상이 가문의 명예를 걸고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잖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라면, 정말이겠지요. 그런데 그건 그렇다고 치고, 도대체 마감 상태가 어떻다는 것입니까?”
“호피의 솔기 마무리를 할 때는 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호랑이 가죽이 보통 두꺼운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약품으로 호피 끝이 갈라지지 않도록 처리합니다. 장인들은 그런 마감 용어로 ‘심을 바른다’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호피에는 심을 바른 흔적이 없습니다. 그 대신 쌈솔을 했습니다. 쌈솔이란, 시접을 싸 넘겨서 박는 기술인데, 호피를 강제로 말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호피가 바느질이 가능한 정도로 굳기가 딱딱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느질을 한 것입니다. 이 정도의 쌈솔질을 하려면 적어도, 석 달 이상 매달려서 호피를 제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쌈솔질에 들어간 정성입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놀라운 바느질 솜씨입니다. 재봉틀이 아닌 손바느질로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하게 쌈솔을 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여길 한 번 보십시오. 솔기 간격이 재봉틀로 박은 것처럼 촘촘하지요? 이건 남자의 바느질 솜씨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한 기술입니다. 그렇다고 두껍고 억센 호피의 바느질을 여자가 했을 리는 없으니, 도대체 이런 기술을 가진 장인이 누구였는지 참으로 궁금할 뿐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호피를 여러 차례 제작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솜씨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호랑이의 두골을 만지면서,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호랑이의 생전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땅바닥에 펼쳐져 있는 호랑이의 껍질에 생기가 들어서는 것 같았다. 한 장의 껍질로 남아있던 호피에 근육과 골격이 갖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사지골에 생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착지한 앞발과 뒷발에 숨어있던 발톱이 날카롭게 삐져나왔다. 백두대간 깎아지른 절벽 위에 버티고 서 있는 호랑이의 용자가 선연하게 그려졌다. 그림에서나 보던 진짜 백두산 호랑이의 웅장한 자태였다. 전신에 생기가 들어선 호랑이는 천지사방이 진동하도록 엄청나게 큰 소리로 포효를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주춤거리면서도 얼른 장지골과 하지골을 곧게 펴며 도약하는 호랑이의 전신을 살펴보았다. 두골과 동골, 척추골을 일자로 날렵하게 펼치는 호랑이는 그야말로 백두산신 풍모 그대로였다. 한반도를 뛰어 달리던 백색 호랑이의 용자가 두 눈에 선명했다. 나는 숨을 쉬지도 못할 만큼 호랑이의 풍모에 압도되었다.
“손을 이리 줘 보십시오. 그리고 호피표면에 손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호랑이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나는 윤 회장의 손을 당겨, 호피의 두골 아랫부분을 만지게 했다. 쇄골과 견갑골이 상지대를 이루며 두골을 바치는 부분이었다. “느껴집니다. 이 부분이 바로 사람의 어깨에 해당하는 곳이지요?”
정말로 느끼는 것인지, 호피를 통해 살아있던 시절의 호랑이의 모습을 연상하며 감동받고 있는 나를 보고 분위기를 맞추려는 것인지, 윤 회장도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윤 회장의 손을 이끈 내 손끝으로도 다시 한 번 호랑이의 생전 모습이 전해지고 있었다. 천 길 낭떠러지 위에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포효하는 호랑이의 생동감이 절절하게 전해져왔다. 높은 언덕을 단숨에 뛰어오르는 모습도 느껴졌고,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인 멧돼지와 고라니, 사슴과의 전투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껍질만 남은 호랑이의 근육과 골격기 살아 숨 쉬는 듯하여 전율이 온몸으로 일었다. “호랑이의 기운을 느끼셨지요?”
“예, 느꼈습니다.”
“호피는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윤 회장에게 호피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그것은 이제껏 호피를 감정해오면서 가지고 있는 내 소신이자, 철학이기도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은 말 그대로 가죽을 남긴다는 뜻이 아니다. 가죽 속에 담겨있는 호랑이에 대한 정보를 남긴다는 말이었다. 호피로 남은 호랑이는 껍질이 벗겨진 한 마리 동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한 야생의 제왕의 역사였다.
2장 “그런데 이렇게 대를 이어 호피를 관리해오던 다니구치 가문의 13대손 아키나리 상이 왜 호피를 팔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돈 때문은 아니었을 텐데요? 관리하는 일이 힘들었을까요?” 나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윤 회장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윤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시원하게 곧바로 대답을 했다. “자식이 없다고 하더군요. 다니구치 가문에서는 대대로 메이분도 상점을 이어온 장자들이 호피 관리도 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키나리 상은 아쉽게도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본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일본에는 양자 제도가 발전되어 있어서, 사위나 조카를 아들로 입적시키는 일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13대를 이어온 호피 관리라면, 아마도 일본 내부에서도 관심이 집중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를 잇는 전통을 끊고,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에 호피를 넘기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은 뭔가 곡절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피를 가져온 한반도로 다시 호피를 돌려주겠다는 결심을 내리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 저도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니구치 상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운메이(運命)라고 하더군요.” “운명이요?”
나는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일에 운명을 건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호피를 관리하는 일, 더 나아가 한반도의 호랑이를 보존하는 일에 인생을 거는 일을 개인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나 이외에 또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 사람은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이었다. “다니구치 상은 분명히 운메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조선 백호와 관련된 일은 자신은 물론, 다니구치 가문의 운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윤 회장의 운명이라는 말에 갑자기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순식간에 심장을 타고 돌던 피가 가슴에서 펄펄 끓는 기분이 되었다. “정말로 다니구치 상이 운명이라는 말을 사용하던가요?”
나는 윤 회장에게 다시 한 번 운명이라는 말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윤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대답을 해왔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조선 호랑이를 가문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두 집안이 있었던 것이다.
3장 “호피 관리를 위해서 강원도 태백산까지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호피를 등에 지고 앞장서는 나를 따르며, 뒤에서 윤 회장이 말을 걸어왔다. 윤 회장도 호피 관리에 필요한 도구를 배낭에 매고 지고 오는 터라, 진작부터 씩씩 소리가 나게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매달은 아니고, 일 년에 두 번만 오시면 됩니다. 봄과 가을, 택일을 해서 한 차례씩 오는 것입니다.” 나는 뒤에 따라오는 윤 회장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새벽 5시에 오르는 산길이라서, 헤드랜턴을 켰지만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순전히 감으로 가고 있었다. 봄과 가을에는 거의 한 달에 두 번 이상 찾아오는 길이라서, 눈을 감고도 지리를 훤히 파악하고 있는 터였다. 내가 관리하는 호피가 20피 이상이라서, 두세 피씩 모아서 함께 가지고 와도 철별로 십여 차례 가까이 태백산에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초여름으로 들어가는 5월에, 윤 회장의 백호 호피만 따로 가지고 오게 된 것은 일본에서 4월에 질풍(疾風)을 맞았다는 다니구치 요스케 상의 2012년 호피 관리 기록 때문이었다. 교토의 4월은 대한민국의 5월 정도의 날씨에 해당하므로, 나는 윤 회장이 백호 호피를 구입한 3월부터 백호 호피의 대한민국에서의 첫 질풍맞이 시기를 5월로 잡고 있었다. 호피 관리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질풍맞이와 거풍이다. 매달 한 차례씩 해주는 거풍은 호피 보관 장소에서 늦은 오후부터 저녁 시간까지 호피를 응달에서 바람을 쏘여주는 것이어서 호피 주인이 혼자 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이지만, 질풍맞이는 동이 튼 후에 거친 바람에 말리는 것이므로 매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거풍과 질풍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대단한 호피라도 곰팡이가 피게 되고, 가죽이 끈기가 약해져서 쉽게 풀어져 내리게 된다. 이제 백호 호피는 매달 윤 회장이 스스로 거풍을 해야 하고, 1년에 두 차례 5월과 11월에 이곳 태백산의 장군봉에서 질풍맞이를 해야 하는 것이다. 호피는 구입하는 것이 쉬울지 몰라도, 관리하고 보존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호피를 갖고 있는 사람은 호피를 훼손하지 않고 다음 세대로 넘겨줘야 할 책임이 있다.
6장 우리가 탄 비행기는 어느새 한반도를 벗어나 대한해협을 건너가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 창문 밖으로 내려 보이는 대한해협을 바라보았다. 일본인들이 겐카이나다(玄海灘)라고 부르는 것처럼, 대한해협은 수심이 30m 이상 되어 검은 바닷속을 볼 수 없는 깊은 바다이다. 대한해협을 건널 때마다, 나는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패인 깊은 정서의 골은 대한해협의 영향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건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드는 대한해협의 두려움 때문에,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대대로 서로에 대해서 오히려 필요 이상의 불편한 많은 감정을 갖게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해왔었다. “한반도 이남에는 야생 호랑이가 이제 더 이상 서식하지 않겠지요?”
스튜어디스가 가져다준 비빔밥을 먹다 말고, 윤 회장이 내게 물었다.
“많이 아쉽지만, 사실입니다. 자연 상태의 한국 호랑이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학설입니다. 한반도 가운데 남한 지역에서 가장 최근에 포획된 호랑이는 1921년 경북 경주 대덕산 부근에 붙잡힌 수컷이었습니다. 북한 지역에서는 1964년과 1965년, 1974년과 1987년까지 각각 포획 기록이 있습니다. 평양 중앙동물원에서 보셨던 호랑이도 아마 그때 포획된 호랑이 가운데 한 마리였을 것입니다. 학자들 말로는 한반도는 몰라도, 남한 지역에는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내가 이야기를 하자, 윤 회장은 한반도에 호랑이가 더 이상 서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운지 내 의견을 물었다. “이 교수님께서도 그럼 한반도에 더 이상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고 믿으십니까?”
윤 회장의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야 할까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윤 회장에게도 사실대로 말할 자신이 없었다. 또 그렇게 말한 뒤의 결과를 책임질 수도 없기도 했다.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윤 회장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도 예전에 한반도 호랑이 생존 여부를 취재한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삼팔선이 생기면서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서식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높이가 4미터도 넘는 철책을 호랑이가 뛰어넘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심마니나 등산객들로 북적여서, 백두대간이 수목이 울창하긴 해도 호랑이가 은폐하기에는 쉽지 않은 환경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교수님은 호피를 관리하시니, 저보다 호랑이에 대한 애정이 더 많으실 텐데, 한반도 호랑이가 멸종한 것에 대해서 가끔씩 답답한 마음도 드실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윤 회장의 호랑이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20억 원짜리 호피를 구하기 위해 2년간 일본을 들락거린 열정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호피가 필요했다면, 몇만 원짜리 벵골산 호랑이 가죽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윤 회장은 호피를 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한반도 호랑이에 대한 간절함으로 호피를 구입한 것이었다. “한반도에 호랑이가 서식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한국 호랑이가 멸종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극동 러시아 연해주의 야생 서식지에 살아있는 약 400마리 정도의 아무르 호랑이가 한반도에 서식하던 한국 호랑이와 같은 아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학교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 연구진이 한반도에서 포획되어 반출된 100년 전의 호랑이 두개골과 뼈 표본을 일본과 미국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찾아내서 시베리아 호랑이라고도 불리는 아무르 호랑이와 유전자 염기 서열을 비교해보니, 100% 같은 호랑이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연구진은 아무르 호랑이의 활동 범위가 2,000km²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에 극동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의 시호테알린 산맥에서 활동하던 아무르 호랑이가 만주의 장백산맥을 거쳐, 함경산맥을 따라 백두대간으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윤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6ㆍ25 한국전쟁으로 철책이 생긴 이후에 한국 호랑이의 이동 경로가 제한되어, 아무르 호랑이가 한반도까지 이동할 수는 없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르 호랑이를 시베리아와 만주, 그리고 한반도를 서식지로 삼아 활동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르 호랑이가 한국 호랑이인 셈이므로, 한국 호랑이 자체가 멸종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