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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마음의 온도

김옥림 지음 | 미래북


법정 마음의 온도

김옥림 지음

미래북 / 2019년 11월 / 328쪽 / 14,000원





무소유의 참의미




무소유의 참의미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정, 무소유

무소유란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음’을 뜻한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지독한 가난, 궁핍함을 뜻한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천형’과도 같을 만큼 비참한 일이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컵라면 하나를 먹으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하고, 버스를 탈 때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 무소유적인 삶은 인간의 삶을 불행으로 이끄는 그 자체일 뿐이다.

하지만 법정스님이 말하는 무소유의 의미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데 있어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만 소유함을 뜻한다고 하겠다. 이를 좀 더 부연해서 말한다면 가난해서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가난, 즉 ‘청빈한 삶’을 말하는 것으로 가진 자들이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라고 하겠다.

물론 풍족하고 편안한 삶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들이 이렇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달콤한 마시멜로에 길들여진 어린이들이 쉽게 달콤함을 끊지 못하는 것처럼 지독한 고행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낭비를 줄이고, 검소한 삶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삶이 아닐까 싶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한국의 헨리 소로우라고 불리었다. 그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월든』의 저자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월든’을 찾아가는 등 깊은 관심을 가졌다. 소로우는 2년 2개월 동안 월든 호숫가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최소한의 것을 소유함으로써, 무소유의 삶을 실천에 옮겨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법정스님은 소로우의 삶을 동경했으며 자신 또한 그처럼 실천에 옮김으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의 명저로 많은 독자가 사랑한 『무소유』는 그의 청빈한 정신을 잘 보여준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삶 속에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소유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는 관점의 차이


똑같은 조건 아래에서도 희로애락의 감도가 저마다 다른 걸 보면, 우리들이 겪는 어떤 종류의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에 보다도 주관적인 인식 여하에 달린 것 같다. -법정, 너무 일찍 나왔군

같은 대상을 놓고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이를 ‘주관적 관점의 차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어려움을 성공의 디딤돌로 여긴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긍정적인 사람이 삶을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은 마음의 스위치를 ‘긍정’의 모드에 두고 있음이며, 부정적인 사람이 더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사는 것은 마음의 스위치를 ‘부정’의 모드에 두기 때문이다.

영국의 평론가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은 “길을 가다 돌을 만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보더라도 주관적 관점의 차이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대인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법정, 녹은 그 쇠를 먹는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온전한 사람을 일러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문제에 이르게 된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스스로를 다듬고 가꿀 수 있어야 한다. 사리 분별력을 길러 옳고 그름을 가림으로써 잘못된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둘째,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정체된 삶을 산다면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되고 만다. 셋째, 타인과 사회를 위해 자신을 쏟아 부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곧 사랑이며 관심이다. 이런 마음이 삶을 따뜻하게 하고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나아가 법정스님은 대인관계를 원만히 하라고 말한다. 대인관계가 막히면 자신의 인생 자체가 얼룩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인생을 녹슬게 하는 비생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관계가 막히면 모든 것이 막히게 된다. 그것은 발갛게 녹슨 못이 쓸모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 되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고 안으로 진지하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법정, 명상으로 삶을 다지라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신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물음은 어쩌면 어리석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앞서 살았던 동서양의 선각자들은 평생 이 물음의 해법을 찾기 위해 살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완전히 알았다고 말한 사람은 없다. 그만큼 자신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오랜 시간 명상과 수행을 통해 인생의 일부를 깨우쳤을 뿐 완전히 깨달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들의 삶의 일부분도 깨닫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기 속의 또 다른 자기와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대답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되고, 삶에 대해 깨닫게 된다. 물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수행자의 그것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과의 대화를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의 결함을 줄이는 일이며, 자신을 새롭게 하는 정신세례와도 같기 때문이다.

시작과 끝은 하나다


작시성반, 이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사자성어로 무슨 일이든 처음에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끝마치는 일은 어렵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바른 지적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땐 망설여지게 된다. 이 일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일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갖게 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에 계속 갇히게 된다면 그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없고, 시작한다고 해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제약을 받게 된다. 시작하겠다고 결심을 하면, 걱정은 뒤로 물리고 열정을 다해 그 일에 매진하도록 해야 한다. 땀을 흘리고 열심히 하다보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왜 그럴까.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시작이 좋은데 어떻게 끝이 안 좋을 수 있는지를. 끝이 안 좋을 때에는 거기엔 반드시 안 좋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가령, 시작을 하면서도 일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최선을 다해 열정을 바치지 않았거나 하는 등의 부정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든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철저하게 준비한 다음 긍정적인 마인드로 기분 좋게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자신의 꽃을 피워라




그 일이 그 사람을 만든다


캐나다 출생 컨설턴트, 자기계발 동기부여가이자 강연가이며 저술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집이 가난하여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어린 나이에 조그만 호텔에서 접시 닦는 일을 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여기저기를 떠돌며 노숙을 하거나 온갖 막노동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 그는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심리학, 철학, 경제학, 경영학 등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공부했다. 그리고 그는 대학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배움만이 자신의 꿈을 더욱 구체화시킬 수 있고, 힘이 되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만이 터득하고 확립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노숙을 하고 막노동을 하던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새로운 인생으로 탈바꿈하여 그의 인생의 가치는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그 일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사람의 가치는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각고의 노력을 들인 일은 그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다.

냉정한 판단력 기르기


제정신을 지니고 살려는 사람들은 냉정하게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법정, 화전민 오두막에서

부화뇌동이란 말이 있다. 우레 소리에 맞춰 함께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어떤 일에도 주체가 되지 못하고 항상 남의 뒤에서 눈치나 보게 된다. 그러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사물이나 어떤 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을 살필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옳은 일은 옳다, 그른 일은 그르다 하고 스스로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냉정한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남이 내리는 결정에 따르지 말고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논리력을 길러야 한다. 논리적이지 못하면 판단력을 기르는 데 문제가 있다. 정확한 논리는 판단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삶을 자기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만족하게 되고, 그만큼 행복도도 커지게 된다. 그러나 남의 눈치나 보고, 비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만족도 떨어지고 행복도 또한 떨어지게 된다. 여기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기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삶은 순간순간이다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법정, 낙협은 뿌리로 돌아간다

삶의 소멸,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면 왜 인간은 삶의 소멸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것은 갖고 있던 소중한 것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허망하게 하고 슬프게 하는지를. 그렇다. 이는 인간이기에 보일 수 있는 일이다.

법정스님은 순간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순간순간 자신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아름답고 축복된 삶은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순간순간을 기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노력으로 인해 순간순간마다 기쁘고 행복한데 어떻게 소멸을 두려워할 수 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순간순간을 살다보면 세상과의 이별도 행복하게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지금을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당신이 돼라.

진정한 자유인


우리가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무심코 익혀왔던 그릇된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만을 받아들일 게 아니라, 내게 꼭 필요하고 긴요한 것만을 가려서 받아들일 줄을 알아야 한다. -법정, 아름다움과 조화의 신비

진정한 자유인이란 어디에도 매이지 않으면서도 지킬 것을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생각이 트여야 하고, 몸과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또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자칫 하다가는 진정한 자유인이 아니라 방종과 무절제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인은 자기 제어능력을 반드시 지녀야 하고, 책임과 의무감을 갖춰야 한다. 이처럼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고통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자유가 스스로에게 진실하면 모든 것은 자유에 예속된다.” 이는 영국의 정치인이자 정치철학자인 에드먼드 버크가 한 말로 자유의 개념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를 배반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가리되 그렇지 않은 것만 의연하게 대처할 줄도 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인의 자세다.

마음의 여백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 -법정, 버리고 떠나기

무엇이든 차지하고 채우려는 생각은 마음의 여유를 가로막고, 오직 차지하고 채우려는 데에만 안간힘을 쓴다. 이런 삶의 습관이나 자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차지하고 채우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로 인해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철학자인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불행과 정신적 고뇌의 원인은 정신이 물질에 대한 애착과 결부되어 있고, 불가능한 것을 가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차지하고 채우려고 하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삶을 여유롭게 즐겁게 살아가게 된다.

행복의 지수


분수 밖의 큰 것과 많은 것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는 늘 목말라 할 것이다. 물속에 있으면서 목말라 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 -법정, 햇차를 들면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행복의 지수가 낮지만,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행복의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다. 삶을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은 행복의 지수가 낮은 만큼 행복을 느끼는 대상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작은 일에도 감동을 잘 하고 감사하게 여긴다. 그러나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행복의 지수가 높은 만큼 행복을 느끼는 대상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매사에 불평하고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긴다.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네팔, 부탄 같은 세계 최빈민국 사람들 중엔 자신을 행복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크고 좋은 많은 것에서 행복을 찾지 마라. 작은 것에 감사할 때 행복은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건강할 때 최선을 다하라


오랜만에 차 안에서 전에 듣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울컥 눈물이 났다. 건강을 되찾아 귀에 익은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고 손수 채소를 가꿀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내 몸이 성했을 때 순간순간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법정, 다시 채소를 가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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