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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가족

김혜연 지음 | 사과나무


서툰 가족

김혜연 지음

사과나무 / 2020년 01월 / 296쪽 / 13,000원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고



‘나’라는 주제


말하지 않은 벌: “네 저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 그래, 형은 괜찮아.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나보다 OO이를 더 사랑하시나보다. 괜찮아.”

수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첫 밤을 보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지만 밥을 해먹고 빨래도 했다. 깊이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자 낮에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들으려던 것은 아닌데 입원실 문 앞에서 통화 내용이 들려왔다. 시댁 식구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안부 전화였다. 하지만 우리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발언에 피가 솟았다. 그럼 나는? 위로도 좋고 화목도 좋지만 지금은 우리만 생각해야 되는 때 아닌가. 나는 신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아이를 갖지 못하고 누구는 사랑받아서 쉽게 아이를 갖는 것인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운명 같은 것. 내가 믿고 기도했던 신은 그런 존재인가. 내가 사랑한 남자는 지금까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걸까.

잠을 잘 수 없었다. 말할 사람이 없어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용은 알 수 없다. 분노라는 단어에 모든 것을 담기에는 뜨거움이 너무 컸다. 저주의 말이었던 것 같다. 나를 향한 저주. 아침이 되고 싸움이 일어났다. 싸워서는 안 되는 시간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다시 담기 어려운 말들을 서로 쏟아냈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가 다 복수하고 말 거야!” “그만해! 도대체 당신이 우리집에 한 게 뭔데?”

정신이 들었다. 아니다. 정신이 나갔다. 남편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 머리가 빙글빙글. 빈혈도 없는데 왜 이러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뭐라고 소리라도 내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설마 내가 죽은 건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장모님, 혜연이는요?” 퇴근하면 남편은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좋아하는 초콜릿을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소담하게 핀 꽃다발을 품에 안겨주기도 했다.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잤는지, 약은 잘 먹었는지 꼼꼼히 물었다. 다리를 주무르고 얼굴을 살폈다. 별안간 울컥하며 손을 꼭 잡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우리 여행 갈까?” “…….” “당신이 조금만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우리 여행 가자. 당신 유럽에 가보고 싶어했잖아. 신혼여행 때 가보려고 했던 체코에 갈까? 프라하 말이야.” “…….”

답은 할 수가 없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은데 여전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모든 게 귀찮다. 지난 일 년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도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다. 서재에서 목놓아 우는 그를 달랠 방법이 없다. 그는 어떤 기도를 하고 있을까. 잠이 다시 쏟아진다. 꿈속에서 상담사를 만났다. 아마 꿈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아이고 불쌍한 사람아, 왜 그렇게 말을 못 해.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나 죽겠다고 말을 해야 알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ㅡ 이게 다 내 잘못 때문이냐고ㅡ 화를 내라고! 억울해 죽겠다고!!” “…….” 꿈인데 역시나 한마디도 뗄 수 없다. 따라해 보고 싶은데 입술이 얼어붙었다. 상담사의 얼굴이 검은 괴물이 되어 나를 덮친다. 악몽이다. 식은땀이 흐른다. ‘말할게요. 이제는 말할게요.’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사람들로부터 종종 말 좀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편한 감정들을 쌓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이야기하라고. 참고 참다가 폭탄이 되어서야 터뜨리니 당하는 사람이 황당하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말하는 것이 어렵다. 혹시라도 상대방의 마음이 상할까봐 눈치가 보이고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두렵다. 하지만 결국 내 감정을 돌보지 못해 폭발하고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준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상이자 벌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 상대방이 끊임없이 나를 관찰하고 돌보게 되었고, 말하지 않음으로 생각이 멈춰 고통받지 않았다. 그리고 말하지 못함으로 보복성 핵폭탄 발언을 금지 당했다. 눈을 뜨니 남편이 보인다.

“여보, 혜연아… 미안해, 정말 몰랐어. 당신이 그렇게까지 마음 아픈 줄. 난 그냥 당신도 나 같을 줄 알았어.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그렇구나, 내 인생에 아이를 주시지 않는구나 받아들이자. 당신이 그렇게까지 아이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어. 난 그냥… 우리 둘이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당신도 알잖아… 내가 장남으로 커온 거. 내가 좀 힘들고 불행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어.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었어. 당신이 내 아내니까, 당신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정말 미안해. 당신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렇게 아프게 해서.”

신혼 초, 남편은 고3 수험생처럼 바빴다. 이직한 직장 적응에 실패했던 나는 패배자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나. 바쁜 남편을 원망할 수 없으니 아이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 외로운 시간도 끝. 직장인도 엄마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도 끝. 주변 사람들의 부당한 요구도 아이를 핑계로 단칼에 끝. 얽혀 있는 섭섭함을 아이로 풀어내려 했다. 나의 존재 가치를 아이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 순간을 상상하며 병원에 다녔다. 하지만 매달 임신 테스트기의 한 줄보다 남편의 무관심에 더 낙담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편이 아니라는 것. 부부라는 이름으로 맺어졌지만 고통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 격렬한 전쟁을 겪은 전우가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와 나는 우리에게 들이닥친 사건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불필요하게 서로를 살피느라 다름을 살피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어쩌면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이해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나 좀 봐달라고 싸운 것이겠지.

울 수 있다면 울고 싶다. 나도 미안하다고. 무작정 몰아붙이기만 해서 미안했다고,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를 바랐다고. 나 역시 당신 입장과 생각,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고.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만들지 못하면 실패할까봐 두려웠다고.

우리 함께할까요?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봉사활동 다녀온 날은 낯빛이 다르다며 남편이 물었다. 좋으니까 좋은 거지 좋은 걸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아기들을 만난 지 반년째, 남편도 따라나섰다. 입이 닳도록 칭찬한 홍이도 만나고 신생아 여드름 때문에 사춘기 형아 같은 요한이도 만났다. 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아 말이 서툰 정이도 만났다. 남편은 네가 정이구나, 요한이구나, 홍이구나, 한눈에 알아보며 반가워했다. 나는 보았다. 그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그동안 나 때문에 내색도 못한 채 가슴 한켠에 움켜쥐고 살았음을.

틈이 보이면 아기들 옷과 신발을 샀다. 그리고 틈이 없던 가을, 공모전에 나갔다. 상금 타서 아기들 크리스마스 때때옷을 사는 것이 목적이었다. 뒷걸음치다 얼떨결에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12월 24일, 남편 옷밖에 살 줄 몰랐던 내 손에 아기들 내복 박스가 들려 있었다. 감사하게도 민망한 소문을 접한 남편의 지인 한 분이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했다. 바쁜 자신을 대신해 좋은 일을 해달라고. 나는 아기 옷가게의 만수르, 아니 메신저가 되어 아기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날랐다. 사연을 궁금해 한 옷가게 사장님이 자신도 꼭 동참하고 싶다며 아기 양말이며, 손수건, 인형 등을 매번 챙겨주었다.

아기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서 시작한 일이다. 내 아이가 없어서 허전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나를 ‘아이가 없어 슬픈 사람’으로 정의했지만, 아기들은 나를 ‘반갑고 헤어지면 섭섭한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나는 아기들을 ‘베이비박스 아기’가 아닌 ‘사랑둥이’의 시선으로 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편견 없이 마주했다. 엄마가 아니어도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고, 그 사랑으로 나는 두려움의 껍질을 또 한번 벗었다.

결혼 전, 오랜 시간 청첩장 문구를 고민하던 남편이 성경 말씀 하나를 보내 왔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허투루 보았던 그 말씀이 오늘따라 더 가슴에 닿는다.

지난하고 오랜 우리의 출산



49개의 서류,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입양을 합니다: 이후로도 서류 제출은 끝없이 이어졌다. 두 달을 기다려 부모교육 이수증을 받았고, 유효기간이 지난 서류들을 다시 제출했다. 두 차례의 가정방문 끝에 가정방문 조사서가 나왔다. 아기를 입양한 뒤 필요한 서류가 추가되었고, 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는 행정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것들이 뒤따랐다. 남편과 나의 이름 아래 딸아이의 이름이 적히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서류들이 오고 갔다.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만 하면 된다는데, 입양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담당자의 전화가 점점 받기 싫어지고 낯선 이름의 서류가 더해질 때마다 맥이 풀렸다. 내가 이렇게 가진 것이 없었나, 보잘 것 없는 숫자 앞에 어이가 없었다. 잠재적인 아동학대 행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우울했던 이유가 난임 때문인데, 우울하면 입양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 모순처럼 들렸다. 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우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서류 몇 장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썩 괜찮은 내가 있는데 증명하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억울하다.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을 달갑게 받아들인 것은 우리와 한 가족이 될 아기를 생각해서였다. 아기에게 새로이 만나게 될 부모는 미지의 세계다. 얼떨결에 만난 엄마 아빠가 흔들린다면 아기의 세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내 욕심만으로 입양을 진행할 수는 없다. 이미 헤아리기 어려운 아픔을 겪은 아기를 위해 최소한의 검증 과정은 당연한 절차다.

서류의 징검다리를 밟으며 앞으로 걸었다. 사이가 너무 멀어져 용기를 내어 펄쩍 뛰어야 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잡고 함께 걷는 사람이 있었고 파이팅을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지만 한 장 한 장 야무지게 밟으니 내가 보이고, 우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우리 아이가 있었다. 이보다 더 멋지고 드라마틱한 여행이 있을까.

오늘 아기를 만나러 갑니다


아기 선보기의 최후: “딸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앳된 얼굴 한 담당 선생님의 질문에 짤막하게 대답했다. 입양기관에서 진행한 첫 상담 자리였다. 사회생활 12년차, 온갖 면접을 치러 왔지만 이토록 간절한 적이 없다. 진솔하고 담담하게 대답하려 했지만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혹여 말하다 눈물이라도 흘리게 되면 어쩌지. 가감 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와 우리 부부, 양가 가족, 경제적 상황, 난임, 우울증, 입양하려는 이유, 입양 후 계획… 처음 만난 사람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아니 털어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해야 했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게 될 아기 입장을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한 과정도 거쳐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결국 눈물이 뚝 떨어졌다. 단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실패다.

애타게 기다린 전화가 걸려온 건 한낮의 교정에서였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 졸업을 앞둔 무렵이었다. 아기가 집에 오면 졸업하기 어렵다는 담당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아기와의 만남을 6개월째 미룬 상태였다. 논문이 늦어지면 아기도 늦게 만난다는 생각에 불도저처럼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드디어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보육원 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아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예쁘장한 여자 아기가 누워 있었다. 이제 막 목욕을 마친 아기의 몸에서 풋풋한 살내음이 났다. 한눈에 보아도 선생님들께서 정성껏 돌봐온 것을 알 수 있다.

“한번 아기와 시간을 가져보세요. 가족이 되면 어떨지, 대화를 나눠보셔야죠.”



어리둥절했다. 만나면 그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기의 눈을 쳐다보았다. 아무런 미동이 없다. ‘까꿍~ 만나서 반가워 아가야’ 웃음을 지어보았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작은 아기의 움직임과 표정 하나에 마음속 동요가 일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행복하지가 않다. 분위기를 파악한 담당 선생님이 아기를 몇 번 더 만나보고 결정하기를 권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양쪽 어깨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엇이 우리를 어색한 기분에 휩싸이게 만든 것일까. 고대했던 순간 기쁨과 감사가 아닌 낯설고 성긴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남편과 밤늦도록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대로 더 만나보면 친근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둘만이 느낀 어색함이 있다. 그것은 아기의 외모나 기질과는 상관없는 별개의 무언가다. 아무리 주변에서 아빠 될 사람과 아기가 닮은 것 같다고 부추겨도 설득당할 수 없는 명백한 자각 같은 것.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아기와 만나는 날을 상상했다. 그리고 첫 번째 만난 아기와 한 가족이 되리라 다짐했다. 낳은 자식을 선택할 수 없듯이 입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종 두 번째 만난 아기와 가족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이기적이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식인데 감사히 받아야지 어떻게 물건 고르듯 고를 수 있냐고. 남들보다 어렵게 돌고 돌아 만났으니 더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니냐며 비난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나라니. 숨고 싶었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윤리와 의무감 때문에 아기를 입양 할 수는 없다. 잠시 멈춰서자. 원점으로 돌아가는 생각해야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입양에 대한 확신이 차오르면 다시 움직이기로 했으나 매번 죄책감과 두려움이 앞섰다. 섣불리 아이 선보기를 다시 진행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나를 만나게된다면. 아이를 만난 순간 어색한 기분을 또 느끼게 된다면. 입양과는 영영 멀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론 놓아버리면서 입양에 대해 줄다리기를 했다. 그리고 마음이 정돈되어 갈 무렵 다른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어렵게 찾아간 보육원. 원장님은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가족이 되는 문제인데 어떻게 단번에 이 아이예요 할 수 있겠어요? 오랫동안 지켜보니 부모님과 아이들이 다 제 짝이 있더라구요. 우리 생각에 이 아이가 이 부모님과 잘 어울리겠다 싶지만, 정작 다른 아이와 연결되기도 해요. 가족은 가족이 알아보지 다른 사람이 추천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감사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기들과 관계 형성을 하며 관찰해 보라고, 만날 수 있다고 응원해주시는 말씀에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아득했다. 면담이 끝나자마자 아기들이 있는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뜻밖의 만남에 어안이 벙벙했다.

원장님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방 안에는 아홉 명의 아기가 함께 살고 있었다. 세 명은 이미 부모를 만나 법원 절차 중에 있다고 했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보았다. 모두… 가슴이 저릴 만큼, 예뻤다. 그중 한 아이에게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바로 어제 배냇머리를 밀었는지 둥그런 머리에는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민둥산 같은 머리가 압도적이어서 이목구비가 상대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동그랗고 말랑말랑한 볼 위로 앙증맞은 코와 오동통한 입술, 쌍꺼풀은 없지만 작지 않은 눈, 커다란 펭귄이 그려진 보라색 옷을 입은 모습이 깜찍하다. 말랑말랑한 떡이 생각났다. 밀가루 옷을 입어 폭닥거리고 동글동글한 모양이 예뻐서 자꾸만 만져보고 싶은 찹쌀모찌. 앞으로 이 아이를 모찌라 불러야지. 남편은 아기를 번쩍 들어 안았다. 샛별 같은 눈이 반짝반짝, 까르르르~ 재미있는지 웃음이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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