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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유영만 지음 | 나무생각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유영만 지음

나무생각 / 2019년 8월 / 293쪽 / 13,800원





1부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그러나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다.” 황지우의 시집 『게 눈 속의 연꽃』에 실린 <산경>이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사람을 만나지만 그 관계가 이해타산으로 이어지면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도 달라집니다. 어긋난 관계는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첫 만남의 출발은 어떠했는지요? ‘이타심’이었는지요? ‘이기심’이었는지요? 내가 나를 위하는 행위는 우선은 이익인 것처럼 보이지만, 모래 위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그 파장이 미미합니다. 저 사람을 위하겠다고 생각하고 행한 일들이 돌고 돌아 호수 위의 물 동그라미처럼 번지고 번지는 일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진정한 예술이다.” 영화 <위대한 쇼맨>의 이런 주옥같은 대사도 있습니다. 이타적 베풀기는 결국 나의 행복을 담보하는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처음에 이타적 마음으로 시작했던 관계가 어느 지점에는 방향을 잃은 것일까요? 어느 정도 노력하고 상대를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동안 공들여 쌓았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관계가 공허해지는 것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향하는 방향만 볼 뿐, 그가 어떤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의 편견을 깨고 그와 함께 계단 끝까지 내려가는 숙제를 하는 것이다.”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나오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한 숙고 끝에 상대를 이해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우리는 단편적 현상으로 모습만 보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도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렇게 생각해버립니다.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드러난 행동으로만 판단하는 순간 관계에 대한 오해의 싹이 트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 시작합니다.

또 친밀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겉으로 들리는 육성보다 들리지 않지만 몸으로 전해지는 울림과 파장을 고요 속에서 감내해낼 때 관계의 깊이와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관계 속에서 힘들고 지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식어가면서 애정 어린 호기심과 상대에 대한 물음표가 실종되기 때문입니다.

귀 막힌 사람: 그는 만나자마자 따발총을 쏘듯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기만 합니다. 밥을 먹는 중에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틈새를 노리다 내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해도 기회를 주지 않고 본인의 주장을 늘어놓기 바쁩니다.다른 사람이 말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계속 끼어들고 잠시 침묵이 흐르는 순간도 놓치지 않습니다. 나오는 대로 말을 쏟아냅니다. 시간이 지나면 도무지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여러 명이 모여도 언제나 그는 혼자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마도 개나리처럼 무리를 이루어 피는 꽃이나 집단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군무는 좋아하지 않는가 봅니다. 그는 모란꽃처럼 혼자 화려하게 피는 걸 좋아하고 혼자 춤을 추는 독무를 즐깁니다. 그를 만나고 집에 오는 날에는 귀가 먹먹합니다.

귀를 닫고 듣지 않는 사람은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미 자기 안에 답을 갖고 있습니다. 타협하거나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습니다. 자기만 옳고 자기만 중요하기 때문에 심지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대를 깔보거나 업신여기기까지 합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소통의 문은 닫히고 불통만이 남습니다. 자리가 길어지면 울화통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빨리 이야기를 끝내고 자리를 뜨는 게 상책입니다.

귀(貴)하게 대접받으려면 귀(耳)를 기울여야 합니다. 경청할수록 겸손해지고 상대를 존중하게 됩니다. 나를 내려놓고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내가 기울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의 자존감을 세워줌으로써 나도 더불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자세를 낮추고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대화는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겸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말 잘하는 입담의 달인보다 귀를 기울여 듣는 경청의 달인이 이끌어갑니다. ‘입’으로 한 가지를 말할 때 ‘귀’로는 두 가지를 듣기 바랍니다.

책(冊)을 읽지 않고 책(責) 잡히는 사람: 이들은 지금 갖고 있는 지식만으로도 얼마든지 사회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공부는 일종의 지적 호흡입니다. 호흡을 멈추면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듯 지적 호흡을 멈추면 정신적 성장도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배움의 끈을 절대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멈춘 사람’은 어떻습니까? 배움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책을 읽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항변합니다.

얼마 전 저에게 왜 그렇게 치열하게 뭔가를 배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지 묻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굳이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아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을 데려다 쓰면 된다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또 책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의 삶에 진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꼭 책을 통해서만 공부를 하란 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멈춘 사람’이 위험한 이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접속해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데 있습니다. 삶을 통해서 배운다고 하지만 그가 가진 오만함으로 인해 과연 제대로 된 공부가 될지 의문입니다.

물론 바쁘게 사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핑계 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책 말고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보다 쉽고 편리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주장합니다. 먹고사는 게 더 바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달리기만 하다가는 결국 자신도 모르게 무리에서 내쳐질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점검합니다. 그들은 자만하지 않고 부단히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공부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공부하는 사람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의 공부를 이어갑니다. 책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나를 생각하면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먼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부끄럽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노력합니다.

공부를 멈춘 사람은 성장을 멈춘 사람입니다. 반면에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은 언제 봐도 표정이 즐거워 보이고 몸도 가벼워 보입니다. 배움으로 깨닫는 즐거움과 행복 덕분입니다. 공부를 멈추는 순간 사람은 늙기 시작합니다. 건강하고 젊게 사는 비결은 비교적 오랫동안 배우고 익히면서 즐거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배움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설레는 여행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마음이 설레는 것처럼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배움도 시작하기 전부터 설렙니다.

익숙한 세상에서 낯선 세계를 발견할 수도 있고, 당연한 생각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입니다. 뭔가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남다른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관찰하고 삶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지나가다 만난 특이한 간판조차 그에게는 관찰과 공부의 대상입니다. 인생의 주연은 설렘과 호기심을 가진 이런 사람들이 차지합니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밥은 매일 먹으면서 운동은 매일 하지 않는 사람: 운동하기로 결심을 하면서도 운동을 시작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작심삼일도 못 갑니다. 내일부터 운동하려고 결심했는데 때마침 비가 옵니다. 주변 환경이 알아서 자기를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비가 그치면 내일부터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전날 회식하면서 마신 술이 덜 깬 것 같습니다. ‘숙취 중에 운동을 하면 오히려 몸에 안 좋을 거야. 술 깨고 내일부터 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또다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또다른 핑곗거리를 찾습니다. 그래서 아예 내년부터 운동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되면 정말로 운동을 시작하게 될까요? 새해 첫날 대단한 각오로 운동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연초부터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빙판길도 생기고 운동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안 한 것만도 못하다는 자기 합리화로 다시 운동을 미룹니다. 운동에 대한 결심은 이제 결심공판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렇듯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는 운동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모든 환경이 나에게는 좋은 핑곗거리입니다.

밥 먹듯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일을 해보고 싶지만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건강한 몸에서 나오는 힘과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몸은 그 사람의 능력이기도 하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성공과 행복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야의 경지에 오르거나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체력을 잘 관리해서 자기 관리의 기반을 마련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몸이 망가진 사람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허약한 몸은 허약한 정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 관리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관리할 자격도 없습니다. 자기 극복이 선행되어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난관이 극복됩니다. 운동을 밥 먹듯이 해야 밥맛도 좋아지고 행동할 수 있는 힘도 생깁니다. 운동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입니다. 실천하는 운동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자 지름길입니다.

다짐을 많이 해서 무거운 짐이 된 사람: 결심은 반복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않는 사람, 계획은 세우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 선거 때마다 공약을 발표하지만 당선한 후에는 실천하지 않아서 공약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헛된 다짐만 차곡차곡 쌓이면 결국 무거운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를 뿐입니다.

밥을 매일 먹는 이유는 활동 에너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마음을 먹는 이유는 실천으로 가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마음만 먹고 결연한 각오로 실천에 임하지 않을 경우에는 패배 의식이나 자괴감으로 이어집니다. 마음먹은 일을 밥 먹듯이 실천하지 않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신의 존재감에도 의심과 회의가 들면서 활기를 잃어버립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거창한 계획이나 전략을 하루아침에 실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작은 일이라도 진심을 담아 꾸준히 반복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움직인다는 ‘우공이산’이 바로 위대한 성취의 숨은 비결입니다. 이들은 크게 마음을 먹지 않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한번 마음을 먹으면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행동이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행동입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면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온몸을 던져 행동합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 일을 사랑하면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크게 다짐하지 않아도 내 일을 사랑하면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크게 다짐하지 않아도 내 일을 사랑한다면 진심을 다하고 묵묵히 맡은 일을 완수합니다.



2부 이런 사람 피하세요



이런 사람 만나면 위기가 찾아옵니다

장인은 질문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일을 어제보다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일은 원래부터 이랬을까?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이렇게 자기 일에 대한 만족도가 끝이 없는 사람이 바로 장인입니다. 장인의 관심은 남보다 잘하는 데 있지 않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고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는 데 있습니다. 장인은 자기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질문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에 비해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은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질문거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 했던 방식을 늘 반복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방식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어제보다 나아지려는 마음도 없기 때문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습니다. 장인은 아침에 출근할 때부터 한걸음이라도 빨리 가서 이제까지 했던 방식과 다르게 시도해보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출근하기 전부터 심장이 떨립니다. 이에 반해 직장인은 출근길이 고통스럽습니다.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가 줄을 이어갑니다. 나는 장인인지 직장인인지 되돌아보며 위기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도전을 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우연성ㆍ아이러니ㆍ연대성』이라는 책에서 ‘마지막 어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어휘는 자신의 행동과 신념, 그리고 삶을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단어입니다. 개인 혹은 집단이 딜레마에 빠지거나 결연한 결단을 내릴 때 의사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는 데 최후까지 의지하는 신념을 말합니다. 마지막 어휘는 보통 의식 아래 있다가 삶이 흔들릴 때 표면 위로 솟아오릅니다.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결연한 어휘입니다.

예를 들어 간디에게 마지막 어휘는 ‘비폭력’이고 부처에게는 ‘자비’, 공자에게는 ‘인’입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혁신’이고, 리처드 브랜슨에게는 ‘상상’입니다. 플라톤에게는 ‘이데아’, 사르트르에게는 ‘실존’, 스피노자에게는 ‘코나투스’, 니체에게는 ‘아모르파티’, 라캉에게는 ‘욕망’,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언어’가 마지막 어휘입니다.

저마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한 가지 단어,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견인차 같은 단어가 있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어휘가 지금 여기서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소중하고 숭고한 삶, 자기를 넘어 타자와 공동체로 연결되는 삶을 꿈꾸게 만듭니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호기심의 발로이자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삶의 원동력이며, 능력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내 삶의 어휘는 바로 ‘도전’입니다. 오늘도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려는 호기심이 꿈틀거리고 가보지 않은 세계를 모험하면서 쌓은 체험이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보험입니다.

인간의 한계는 몸으로 도전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삶에 안주하기보다 한계에 도전하는 삶으로 나의 마지막 어휘를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소한 일상보다 거창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내일을 위해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쓴 『인생수업』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정법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만약 여윳돈이 생기면 해외여행을 떠날 거야.” 하지만 실제로 여윳돈이 생겨도 다른 물건을 사느라 바빠서 여행은 뒤로 미룹니다. 그리고 또다시 가정법으로 된 미래를 꿈꿉니다. 그렇게 꿈만 꾸다가 인생은 마지막을 향해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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