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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잘 지내는 중입니다

김쾌대 지음 | 상상나무
생각보다 잘 지내는 중입니다

김쾌대 지음

상상나무 / 2019년 3월 / 208쪽 / 13,000원





첫 번째 이야기



혼밥 이야기

여러분은 혼밥 좋아하시나요? 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밥을 먹었어요. 좋아해서라기보다는 편했기 때문에 어릴 적 부모님께서 너무 많이 다투셨기 때문에 늘 조금은 주눅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밥을 함께 먹으면 금방 친해지고 마음을 여는 사이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철도 일찍 들어 조숙했어요. 삼 남매의 첫째라서 동생들을 이끌어야 하는 처지였고, 반에서도 반장이나 부반장을 맡으며 늘 책임감을 느끼는 환경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비로소 짐을 벗고 해방된 느낌이 들었나 봐요. 전에는 혼자 밥 먹는다고 하면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소외되었기 때문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밥을 먹는 걸 즐겼어요.

이제 시대가 바뀌고 혼밥의 시대가 온 것 같네요. 사방을 둘러보면 1인용 먹거리가 넘쳐서 고르는 데도 힘들 지경이에요. 이렇게 많은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는 건 혼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겠지요. 그 사람들이 집밥을 그리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더 좋아졌어요. 혼밥의 매력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당하게 간섭받을 필요도 없고, 대신에 불필요하게 누군가를 참견할 이유도 없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게다가 요즘 나오는 먹거리들이 간편하고 맛도 제법 좋은 편이라서 만족도가 높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름 혼자서 밥을 잘 먹고 지냈는데 요즘은 문득 자문하곤 해요. ‘혼밥’ 하면 ‘혼자’라는 말에 온통 신경을 쓰느라 혹시 ‘밥을 먹는다’에 무심했던 건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언제 한번 밥 먹자.”라고 할 때, 그건 단순히 만나서 음식을 위장 속에 채우자는 뜻은 아니잖아요. 거기에는 밥을 먹으면서 사는 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도 말 못할 심정도 나누고, 고민거리도 털어놓자는 뜻인데 제가 살면서 그런 인간적인 교류를 소홀하게 생각한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1인용 제품들에서 문득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어서 씁쓸하기도 해요. 말 그대로 음식에서 사람 냄새가 많이 없어져 버린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요. 아마 그릇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플라스틱 용기 비닐봉지, 종이팩, 나무젓가락 등이 주는 산업용품의 재질감 때문에 소비 자인 저 역시 산업사회의 한 부품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집밥이라는 게 단순히 집에서 먹는 밥이라는 뜻은 아니잖아요? 거기에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새벽부터 일어나신 어머니의 졸린 하품과 시간 맞춰 음식이 탈 새라 쫄 새라 뒤척인 손길과 음식이 다 만들어지면 많이 먹고 힘내서 열심히 살아가라는 정성스러운 염원이 담겨서 나오는 거잖아요. 오직 합리성과 가격 경쟁력만을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용기에는 그런 사연이 없죠. 마치 흙과 쇠가 뜨거운 온도를 지나 도자기 그릇들과 숟가락, 젓가락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음식들에도 그런 사연이 녹아들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어느 날은 일회용 즉석 음식들을 꺼내서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커다란 접시에 골고루 담아서 먹어 보았습니다. 용기 하나 바꿨을 뿐인데 보다 인간적이고 정성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지금까지 될 수 있으면 꼭 그런 식으로 먹곤 해요. 가뜩이나 졸혼을 하고 혼자 서 지내는 형편인데, 행여 간편하다는 이점에 매몰되어 그렇게 확보된 남은 시간 동안 기계문명의 부품처럼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어떠세요? 혹시 시간이 된다면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초라하게 느껴질 때

살면서 초라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가요? 예전에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초라하다는 감정을 느꼈는데 점점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누군가 찍어준 단체 사진 속에서 어느 중년 사내의 모습인 나를 발견할 때 초라해지는 느낌이에요. 저 자신의 젊은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시간이 참 무심하게 빠르구나 하면서 시간 앞에서 무력하게 작아지는 사실을 느낍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들로 채워주고 싶은데 지출할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할 때 초라한 기분이 들어요. 다른 사람들과 경제적인 비교를 해서 작아지는 게 아니라 해주고 싶은 마음 앞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거죠. 사랑이란 게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은데 그걸 채우기에는 가진 게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창회나 경조사 자리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들 때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번듯한 명함 한 장,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슬그머니 망설이는 제 모습을 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서열의 문제가 아닐 텐데 세상에서 통용되는 힘의 논리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못난 마음인 거죠.

젊었을 때는 초라한 기분이 들면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나서는 툭툭 털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지냈어요. 시간이 내 편이니까, 다시 기회는 올 테니까. 그렇게 희망의 힘으로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자칫 비참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아집니다. 초라해서 쓸쓸하더라도 비참해지면서 망가지면 안 되는데 하는 위기감이 오고, 그래서 그걸 넘어설 방법을 고민하게 돼요. 외모와 돈과 지위 같은 외부 변수를 바꿀 능력이 안 된다면 멘탈을 강하게 해서 극복하는 수밖에는 없겠지요. 생각을 더 긍정적으로 하고 예전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 쳤던 부분을 깨달아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새로운 도전_ 독서

제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지금부터 2년 전 여름이었어요. 그렇게 마음먹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 년 동안 읽은 책이 평균 두 권도 안됐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결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습관을 몸에 붙이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학창 시절에는 책을 좋아했기에 지금은 일주일에 한 권씩은 무리를 해서라도 읽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언뜻 떠오르는 대답은 ‘뭔가 얻기 위해서’입니다.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리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무형의 지식이나 지혜를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하지만 집이나 자동차나 보석 같은 대상을 수집하듯 지식이나 지혜를 책에서 얻어 보겠다고 접근하는 태도는 결국 소유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소유욕을 기반으로 책에 접근하게 된다면 자신이 책에서 얻은 내용들을 과시하고 싶지는 않을까요? 마치 자신의 부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부자들처럼 말이죠. 저도 책으로 얻은 지식을 뽐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걸 느끼곤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바람직한 책 읽기 자세는 무엇일까요? 캄캄한 밤바다에서 배들이 운항할 수 있는 건 등대가 있어서 가능하듯이 독서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의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의 목표는 ‘날마다 부정하기’입니다.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었던 내용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는 책을 찾아서 읽기, 미처 자신이 몰랐던 세상과 느끼지 못하고 지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읽기. 그러니까 저의 ‘날마다 부정하기’란 기존의 생각을 좀 더 합리적으로 바꿔주고, 미처 몰랐던 세상과 감정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게 말은 참 쉬워도 막상 부딪혀서 해보려고 하면 자꾸만 예전의 관성으로 돌아가서 익숙한 책들만 주워 담곤 해서 힘이 빠질 때도 많더라고요. 그래도 의지를 가지고 제 의식의 지평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그 위로 가지를 치며 넓어질 수 있도록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매일매일 죽고 또다시 그만큼의 세포들이 날마다 새롭게 생겨남으로써, 생명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매일 죽어야 다시 매일 살아난다는 몸의 이치처럼 제 자신도 그렇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자기 부정을 통해 새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지내는 요즘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아빠, 허무해

몸을 추스른 이후 몇 해 동안은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했어요. 조금 살 만해지면서 뭔가 재기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아 기회를 잡아볼 요량으로 밖으로 분주하게 다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이 자랐고 양육은 대부분 아내가 맡아서 지냈는데 일 년에 한두 번 가족 여행을 가는 정도가 전부였죠. 그러다가 아들이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아들이 다니던 중학교는 학교 교칙이 비교적 엄해서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분위기였는데요. 제 아들 녀석을 비롯한 몇 명이 반항을 했던 모양입니다. 수업시간에 무단으로 외출하거나 잠을 자는 등 차곡차곡 쌓이는 벌점에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던 그 아이들이 급기야 사물함을 부수고 화장실에서 물을 뿌리며 소동을 일으키면서 학내 폭력 건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가 되었던 거죠. 이쯤 되니 아내도 두 손을 들고 저한테 도움 요청을 해서 제가 학교로 갔습니다.

징계위원실로 들어가니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앉아 계셨고, 간략하게 위반 내용과 벌점 상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주에 최종 결과가 발표될 거라는 통보를 받고 방을 나왔는데 아이가 제게 교무실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학생주임께서 돌아가기 전에 꼭 잠시라도 들러 달라고 하셨다는 거예요. 안 좋은 일일까? 걱정스러워서 떨리는 마음으로 교무실 문을 여는 데 학생주임께서 의외로 밝고 환한 얼굴로 저희 부자를 맞이하시며 한마디 당부를 하셨습니다, <세 얼간이>라는 영화가 최근에 개봉했는데 아이와 꼭 함께 보라는 말씀이셨어요. 고개를 숙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는데 배려해 주시는 마음에 눈물이 흘러서 서둘러 교무실을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아이와 함께 영화 <세 얼간이>를 관람하니 거기서는 얼간이들이 실은 모순에 차 있는 세상에 맞서 어리석을 만큼 저항하는 멋진 청년들의 이야기였는데, 서울에서 부동산 가격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저희 집 주변에는 진짜 얼간이 부모들이 많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물론 저도 그중에 한 명이었고요. 학교에서 나와 아이를 데리고 집 앞 상가에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생맥주 한 잔과 콜라 한 병을 사이에 두고 아들과 마주 앉았는데 어떤 할 말도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그냥 뭐랄까,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낯설게 느껴지고 눈을 마주치기도 어렵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를 보는 건 아들 녀석도 마찬가지였고요. 한참을 지나서 제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기분이 어때? 아빠는 다음 주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길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들은 대답이 없었고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들은 콜라를 마시지도 않고 바닥만 쳐다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어서 한마디를 했습니다. “아빠, 나 허무해.” 아이의 입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이 나왔어요. ‘허무’라는 말이 마치 폭음처럼 크게 제 귓가를 때렸습니다. 아이가 다시 고개를 숙이는데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어요. 갑자기 숨이 턱 막히다가 식도에서 뭔가가 입으로 치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과연 뭘까요? 핏줄을 나누어서 DNA 검사를 하면 친자임이 확인되고, 가족증명서를 떼어보면 거기에 틀림없이 이름이 함께 올라와 있는 게 자식이고 가족임을 증명하는 걸까요? 저는 그때 그동안 제가 아이의 진정한 아빠가 아닌 채 지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어요. 서로의 진심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르지 못한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호칭이나 형식은 그저 죽어있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저는 지금도 문득문득 제 아이가 그때 마음을 먼저 열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아 준 점을 늘 고맙게 생각해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열려라 참깨’라는 마법의 주문이 동굴 문을 열었듯이, ‘아빠, 허무해’라는 신뢰와 진심의 고백으로 못난 아빠의 굳은 마음의 빗장이 풀리며 그 안으로 사랑하는 제 아이가 들어왔고. 바로 그 순간 저는 비로소 아빠가 되었습니다.

부부라는 이름

사업이 망하고 아내와의 관계도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수입이 여의치 않은 저 때문에 밖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담당하는 일도 맡아서 하랴, 어린 자식들 키워내랴, 틈틈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시는 시부모님들 눈치 살피며 죄인처럼 비위도 맞추며 맏며느리 역할도 하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거예요. 마음을 의지할 대상인 남편이 아이들한테만 마음을 쓰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고난 심지가 굳고 늘 밝은 얼굴로 웃는 모습이 예쁜 사람이었는데 점점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지만 무심하기만 했던 저는 따뜻한 배려와 위로의 말도 변변히 전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일들에도 심사가 뒤틀려 삐지거나 불편한 내색을 비치고 옹졸한 마음에 잔소리타박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못난 남편 상대하며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낸 아내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결혼제도가 일종의 계약관계라면, 저는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자격도 없는 갑의 위치에서 온갖 특권을 누리며 지냈던 건 아닌지 그런 반성이 들기도 해요. 심근경색을 거쳐 제 삶에 대한 각성의 시간이 찾아오고 그래서 그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상일 텐데, 삶이란 게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동화책이나 소설에서는 이런 경우 두 사람이 극적으로 화해하고 다시 꿋꿋하고 씩씩하게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스토리로 끝나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사실 저와 제 아내는 요즘 숙려기간을 지나고 있어요. 아직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법률적으로 결별하는 것까지 합의를 한 상태입니다.

우리 둘 사이에 근본적인 문제라는 건 과연 뭘까요? 그건 어쩌면 결혼 당시 우리 모두 집에서 빨리 독립하고 싶어서 급하게 서둘러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겉으로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협력했다고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모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부부관계가 없이 지내면서 살가운 정을 느끼며 나누는 게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네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둘이서 합의를 하면서 공감한 내용은 하나입니다. 함께 지내면서 서서히 말라서 죽느니 차라리 각자 홀로 서서 남은 생을 활기차고 보람 있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되묻고 또 고민해 보지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보이네요. 그리고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렇게 거리를 두고 서로의 삶에 집중하면서 둘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고 신뢰가 쌓이는 체험도 적지 않게 생겼다는 점이에요.

그전에는 사소한 일들로 서로 신경이 곤두서서 다투고 그랬을 일들이 이제는 웬만하면 양해하고 협력하는 과정으로 변했습니다. 그전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마음속에만 머물던 고마움과 미안함과 소중함의 표현들도 부담 없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마치 적당한 거리에 있는 남들에게는 오히려 더 솔직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앞으로 아내와의 최종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알량한 혼인서류 한 장으로 껍데기를 삼아 그 안에서 곪고 썩어가는 그런 가식적이고 병든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아울러 아이들 양육에도 서로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부부라는 말이 한자로는 서로 다른 뜻이지만 우리말로 보면 똑같은 글자인데,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동등한 인격체로 마주 서서 각자 의 삶이 충만한 삶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아버지, 흔들리는 촛불처럼

여러분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마주하기가 참 어렵고 깐깐한 분이셨어요. 잔소리가 심하신 편이었고, 의심도 많으신 분이라 좀 답답하고 그랬죠. 그래도 사업에서 자수성가 하신 분이라 자식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신 점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버지는 말년이 조금 힘드신 편이셨어요. 십 년 전쯤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시고 투병을 하셨는데, 간호하시던 어머니도 힘에 부치시며 당신의 병세가 짙어지셔서 따로 방을 얻어 독립하시게 되었습니다. 까다로운 아버지 수발하는 게 더는 감당이 안 된다고 하시는데 차마 조금 더 참아보시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어머니가 안 계시게 되니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셨는데 나날이 상태가 나빠지시더군요. 간병인 아주머니가 계시긴 해도 워낙 까다로우신 분이라 주말에 방문하면 늘 편편하지 않은 심경을 토로하시는데 사실 진심으로 마음을 쓰며 그 고통이나 불편함을 공감해 드리지 못했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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