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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이 밥 먹여 주니

조승현 지음 | 아스트로캠프
천문학이 밥 먹여 주니

조승현 지음

아스트로캠프 / 2018년 11월 / 196쪽 / 14,000원





1부 천문대 이야기 아이들 앞에 서는 직업



조금은 이상하고 생소한 천문대

‘선생님’이라는 단어의 무게: 입사 3일째 되던 날이었다. 홀로 칠판 앞에 서서 자기소개만 수십 번을 했다. 겨울철 별 이름을 수백 번 되뇌고, 강의 흐름을 몇 번이고 되짚었다. 그래도 떨리는 건 여전했다. 덜덜덜. 이래서는 초짜인 게 다 티 나겠다 싶지만, 제멋대로 떨리는 손은 이미 뇌의 통제를 떠나 버린 후였다. 천문대 강사가 되고 처음 맡은 수업이니 경험도 실력도 부족했지만, 그것은 아무렴 괜찮았다. “아이들하고는 정말 자신 있어요!” 하고 당당히 대장님께 말했던 만큼 수업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저 멀리 차 몇 대가 보였다. 그대로 직진하는가 싶더니, 이내 좌회전하며 천문대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날은 내 수업뿐이니 내 아이들이 분명했다. 간신히 추스른 심장이 이내 또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안내를 하기 위해 간신히 발을 뗐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님께 뭐라고 할지 계속 고민했다. 표정과 목소리 톤까지도 혼자 몇 번이고 연습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아주 생소했다. 대학을 다닐 때까지 나는 줄곧 ‘학생’이었다. 음식점에서도, 체육관에서도, 심지어 핸드폰을 사러 들어간 대리점에서도 나를 학생으로 불렀다. 밤하늘 아내 만난 누군가에겐 곧바로 ‘선생님’이 되었다. 그것이 그토록 어색하고 미묘했다.

내가 그런 자격이 되는지 의심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선생님은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지혜의 전달자였다. 세상에 널린 돌멩이 같은 지식 몇 개를 주워서 던지듯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날카롭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지혜를 골라 조심스레 쥐여 주는 사람이 ‘선생님’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 정도 준비가 된 사람인가’라는 물음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따가운 의심이었다.

어떤 호칭이 나에게 던져졌다. 그리고 그 호칭은 아직 사회라는 공간에 젖지 못한 나를 우악스럽게 책임감으로 잡아끌었다. 나는 지금 학생이 아닌 강사로, 선생으로 있다.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가깝지 않은 하늘

별이 어디 있어요?: 천문대 강사에 지나지 않은 내게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그 세 음절짜리 단어는 어느새 책임감으로 바뀌어 나를 짓눌렀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첫 수업인 만큼, 아이들도 어머님들도 모두 별을 목말라했다. 가끔 첫 수업에 날씨가 안 좋을 때면 하늘을 붙들고 ‘왜 제게 이러시나요?’라고 하고 싶을 만큼 날씨가 중요하다. 맑은 하늘 아래 별이 총총히 떴으니 일단은 됐다. 아이들은 오늘 진한 밤하늘을 만날 수 있겠다.

강의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 여덟 명과 여자아이 네 명이었다. 아이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도시의 불빛에 가렸던 별을 본다는 게 좋았는지,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여행처럼 온 게 좋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방금 꽃망울을 터트린 수선화처럼 해사한 얼굴을 하고는, 헤헤 하고 웃는 모습에 나도 따라 웃을 뿐이었다. 열 두 명의 아이들을 쪼르륵 이끌었다. 기차처럼 한 줄로 세워서는 “출발!” 하고 다음 역으로 출발했다. 칙칙폭폭, 열차가 옥상 관측실에 닿았다. 아이들은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른 만큼 우주에 가까웠다.

캄캄한 하늘에 보석처럼 별이 빛나고, 그 사이를 수많은 별자리가 수놓았다. 오리온자리, 큰개자리, 작은개자리, 쌍둥이자리…. 아이들은 대국이 끝난 바둑판처럼 별이 빼곡히 들어찬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별이 어디 있어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별이 어디 있냐니? 이게 다 별이잖아!” 그러나 아이들은 아주 밝은 별 몇 개만을 간신히 구분해 냈다. “여기에, 일곱 개 정도는 있어요!” 하고 아이들이 인심 쓰듯 말했다. “선생님은 서른 개도 넘게 보이는데?” 하고 말해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별빛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지구로 쏘아 댔지만, 아이들은 받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은 적응에 관한 문제였다. 아이들은 별을 접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캄캄한 밤하늘에 뜬 별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작은 개울에 떼를 지어 움직이는 송사리를 알아보는 일처럼 무언가를 인지하는 데는 경험과 직관이 필요하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보이지만, 그전에는 전혀 볼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별빛을 앞에 두고도 어둠을 더 잘 찾는다. 첫 아이들과 함께 별을 보며, 아이들은 밤하늘을 어떻게 느낄지 계속 궁금했다. 짧은 두 시간을 함께한 후, 나의 밤하늘이 아이들의 밤하늘과 같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쩌지’ 손에 든 초록 레이저를 초조하게 만졌다. 그리고 이내 꽉 쥐었다. 레이저 버튼을 누르자 초록빛 광선이 일직선으로 아름답게 어둠을 헤쳐 나아갔다. ‘이것으로 될까?’ 가벼운 의심과 무거운 시선이 레이저 광선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서 내가 가진 것이라곤 몇 쪽짜리 지식과 레이저가 전부였다. 이것으로 아이들과 나의 시선이 같아지길 소원했다. 별빛을 찾아 주는 길잡이가 되길 원했다. 그런 간절한 바람을 담아 초록빛을 이리저리 쏘았다.

마술 지팡이처럼 가리키는 곳마다 별이 튀어나왔다. 아이들의 함성 소리도 함께 터져 나왔다. 비로소 아이들에게도 무언가가 보였다. 늘 환한 불빛 아래서 무언가를 찾던 아이들은 거꾸로 어두운 하늘에서 희미한 밝음을 찾았다. 새롭지만 어색했다. 어떤 이름이 입안에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면, 분명 무언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어떤 경계를 넘은 것이 분명했다.

그 짧은 이름을 입 밖으로 소리 내 부를 때마다 혹은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무게가 더해졌다. 아이들의 입에서 별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별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분명 ‘시작’이었다.

질문하는 아이들

호기심 나무 아이들: 얼마 전 한 칼럼니스트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은 궁금증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더 이상 새롭고 신기할 게 없는 사람들에겐 시간이라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으로 보자면, 아이들의 시계는 매우 자주 멈춘다. 매 역에 정차하는 것도 모자라 중간 중간 더 쉬었다 가는 것 같다. 그만큼 많은 것을 궁금해 한다. 주렁주렁 열리는 포도처럼 한 가지에 수십 가지의 질문이 동글동글하게 열린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경험해 본 적 없는 우주를 상상할 때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가진 엉뚱함은 언제나 상상 이상이다. 다양한 질문이 장대비처럼 쏟아지지만 자주 하는 질문은 정해져 있다. 의외로 그 질문들은 ‘별’과 관련이 적다. 아이들의 질문 베스트3을 알아보자.

① 망원경 얼마예요? - 아이들에게 망원경은 신비한 물건이다. 분명 눈으로 봤을 때는 별이 하난데 망원경으로 보면 두 별이 사이좋게 붙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맨 하늘을 망원경으로 보자 수많은 별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수십만 개의 별이 뭉쳐 있는 구상 성단이나 별들이 태어나는 가스 덩어리(성운)도 보인다. 렌즈에 눈을 대기 전까지 망원경은 마치 선물 상자와 같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망원경의 크기는 더욱 아이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망원경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기에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천문대에서 사용하는 망원경의 경우에는 수백만 원, 아니 수천만 원을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대형 망원경은 돔 시설이 필수적이다. 주변의 빛을 막기 위해 천장에 구멍을 뚫고 돔 형태의 인공 천장을 만들어 천장이 돌아가게 하는 시설이다. 그래서 망원경은 그 자체로 가격을 매길 수 없다.

② 오늘 밖에 나가요?(구름이 가득한 날) - 무시무시한 망원경의 성능이 위력적으로 느껴졌는지 아이들은 곧잘 물어본다. “선생님, 오늘은 뭐 볼 거예요?”, “오늘은 구름이 많아서 별이 안 보여!”, “네? 망원경으로 보면 되잖아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별도 척척 찾아내는 망원경이니 쉽게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름과 비에 가로막힐 별빛은 땅에 도달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그런 물음을 들을 때면 구름 낀 날에도 한 줌 희망을 품고 온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말 보였으면 좋겠다’ 하고.

③ 레이저 빛은 어디까지 나가요? -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물건은 별 지시기다. 초록빛 직선광을 발사하는 레이저 말이다. 문구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빨간 레이저 포인터와는 아무래도 차원이 다르다. 저 먼 산을 비추면 나무에 초록빛이 맺히고, 땅을 향해 쏘면 주변이 밝아지는 아주 강력한 레이저다. 하늘에 쏘면 끝없이 날아가 마치 별에 다다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별을 처음 보는 아이들은 별빛보다 레이저에 먼저 반응한다.

워낙 진하고 강력해 보이는 빛 줄기지만 실제로 레이저 빛은 가까운 하늘까지만 다다른다. 수증기와 먼지에 가로막혀 대기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레이저 빛이 별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무한히 뻗은 빛 줄기가 괜히 신비롭게 느껴진다.



2부 밤하늘을 꿈으로 삼다 어쩌다 이곳으로



밥은 먹고 살 수 있는 게냐?

그거 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는 게냐?: 조금 놀란 듯한 아버지가 말했다. “그거 하면, 밥은 먹고살 수 있는 게냐?”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중학생 아들 말에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아버지의 질문에 무덤덤하게 답했다. “몰라요.”

사실이었다. 그저 밤하늘이 좋아서였지,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따위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의 서툰 꿈이었으니까. 아버지의 “그래, 알았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어떤 충고나 당부도 없었다. 다소곳이 계시던 어머니도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먼저 꿈을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가 ‘진짜로’ 되고 싶어졌을 때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가 컸다. 처음으로 표현한 진심이니까. 하지만 미지근한 세 마디로 대화가 끝나자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나의 꿈이 부모님을 뿌듯하게 만들지 못한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부모님과는 ‘천문학자’에 관해 다시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무덤덤함과 어머니의 침묵이 낯설어서였다.

일주일 뒤였다. 띵동, 혼자 있는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보통 택배는 부모님 직장으로 배달되었는데 그날은 집으로 왔다. 택배는 내게 온 게 맞았고, 그 안에는 정말로 선물이 들어 있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우주 이야기』 전집이었다. 부모님은 말 대신 책으로 아들의 꿈을 응원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정이었다. 책은 몇 달 동안 내 손을 떠난 적이 없었다. 고향 집 책장 한편에는 너덜너덜 해어진 전집이 여전히 꽂혀 있다. 그날의 추억을 머금은 채로.

그날 이후, 나는 줄곧 생각했다. 언젠가 내 아이가 무언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이 온다면, 9시 뉴스를 볼 때의 표정으로 “그래, 알았다.”라고 말하겠다고. 그러고는 가만히 책 한 질을 선물하겠노라고.

천문학과 엿보기 2 - 예상과는 조금 다른 천문학과

천문학은 언제 배워요?: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수강 편람(학년별 강의 계획서)를 보던 후배가 물었다. 온통 물리와 수학으로 채워진 과목들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눈빛이 날카로워진 후배는 마치 분풀이 하듯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아니, 스무 살이 되고 부푼 마음을 안고 천문학과에 입학했을 때도 1학년은 기본 교양을 쌓아야 한다며 필수 과목만 들어야 했잖아요! 미적분, 논술, 영어요! 따분하고 지루한 수업들을 이겨 내고 겨우 2학년이 올라왔는데, 왜 수업은 또 이 모양이냐고요. 온통 물리, 수학, 화학! 천문학은 도대체 언제 배우냐고요!”

후배의 소나기 같은 하소연에 정통으로 맞으면서도 나는 별말을 하지 못했다. 어벙하게 서서 그저 “참아… 그래도 3, 4학년 땐 천문학 수업이 좀 있어.”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가 생각해 온 천문학은 무엇이었을까.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해 줬어야 했을까?

복싱의 줄넘기와 ‘원투’가 천문학에선 물리와 수학이다. 때론 화학이나 지구과학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학문들이 바탕이 되어야만 비로소 프로페셔널한 천문학에 들어설 수 있다. 천문학이야말로 최초의 융합 과학일 것이다.

1학년 때는 후배 말처럼 천문학의 ‘천’ 자도 들어 볼 수 없었다. 미적분학과 일반 물리학, 물리 실험과 기본 과목만 있었다. 2학년이 되고 나서야 천체 물리학이라는 과목이 추가되었다. 그나마도 천체 물리학은 ‘물리’에 가까웠다. 천문학과의 과목은 온통 이런 식이다. 천문학의 탈을 쓴 천체 물리학이나 기본 물리학이 있고, 대놓고 수학인 다변수 미적분학이나 선형 대수학 수업도 있다. 천문학과에는 기본기에 해당하는 필수 교양 수업이 꽤 많다. 우리는 천문학 수업을 ‘천문학’이라 쓰고 ‘종합 과학’이라 읽었다. 천문학은 열을 알아야 하나를 깨칠 수 있는 과목이었다.



3부 천문대 일상



천문대의 계절

가장 무서운 계절: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천문대는 늘 봄을 정통으로 맞는다. ‘정통으로 맞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그 어떤 곳보다 봄의 정취가 짙다는 뜻이다. 주변을 둘러싼 청청한 나무와 꽃들은 마치 무지개 같아서, 형형색색이 빛이 저마다 귀하다. 보지 않으려 해도 보게 되는 청초한 여인 같다. 벚꽃은 또 얼마나 흐드러지는지 산들바람이 불 땐 꼭 무대의 피날레 장면 같다.

게다가 천문대의 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산 안쪽에 자리한 탓에, 평균 기온이 근방의 도시보다 2도 정도 낮기 때문이다. 2도는 2주의 시간 차이를 만들어 낸다. 모든 것이 도시보다 2주 늦다. 얼음이 녹는 것도, 벚꽃이 지는 것도 모두 보름이 늦다. 그 때문에 도시에서 벚꽃철이 끝났다며 여름을 준비할 때, 천문대의 봄은 여전히 한창이다. 이곳이야말로 ‘벚꽃 엔딩’에 어울리는 곳이다.

하지만 주변의 풍광과는 달리 ‘봄’은 천문대에서 가장 무서운 계절이다. 별을 관측하기에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따스한 햇살은 꽃만 피우는 것이 아니라, 구름도 피운다. 데워진 공기의 반항이다. 그래서 봄에는 맑은 하늘 대신 구름 가득한 하늘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설령 날씨가 맑다 해도, 봄철 밤하늘에는 볼 게 별로 없다. 별자리의 개수도 적거니와 망원경으로 볼만한 대상이 많지 않다. 자칫 지루한 밤하늘만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봄에는 늘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나마 봄이 되면 구세주처럼 떠 주는 행성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봄의 밤하늘은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땅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텅 빈 밤하늘 속에서도 아이들은 우주를 만난다. 꼭 화려하게 반짝이는 것만이 우주의 모습은 아니니까. 봄의 양면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떨 때는 참 고달프다. 어느 것 하나 마음 놓고 즐길 수가 없다. 햇볕이 좋은 날은 구름 낄 밤을 걱정하고, 밤하늘이 맑은 날은 봄날의 정취가 사라질까 걱정한다.

커피와 함께하는 천문대의 겨울: 반면에 겨울은 다르다. 겨울의 밤하늘은 어느 계절보다 찬란하고 화려하다. 밝은 별들과 성단, 성운, 은하가 가득하다. 그렇지만 나오는 한숨은 막을 수 없다. 추워서다. 겨울이 오면 ‘아, 또 발가락이 고생하는 계절이 왔구나’ 한다. 이놈의 발가락은 왜 갈라져 있는지, 덕분에 추위를 두 배로 탄다. 허벅지나 배처럼 똘똘 뭉쳐 있는 곳은 쉽게 추위를 타지 않는데 말이다. 이번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알고 싶다면 발가락을 쳐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천문대의 겨울은 아주 춥다. 사실 여름을 제외한 모든 날이 춥다. 가을도 춥고, 봄도 춥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기운에 10월부터 패딩을 입어야 한다. 그러니 12월에는 패딩 한 벌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내복을 껴입고 장갑과 목도리까지 착용해 온몸을 꽁꽁 싸매야 한다. 그럼에도 겨울이 좋은 이유를 딱 한 가지 꼽으라면, 바로 커피 때문이다. 입김도 얼어붙을 만큼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을 때면 따뜻한 커피가 당긴다. 장갑을 벗고 커피 잔을 포근하게 감싸면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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