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나를 치유해준 말 한마디
전문우 지음 | 시간과공간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나를 치유해준 말 한마디
전문우 지음
시간과공간사 / 2018년 12월 / 264쪽 / 13,800원
PART 01.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법
내 안에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나는 친형과 그다지 친하지 않다. 평소에 말도 거의 나누지 않는다. 늦은 밤 11시, 전화가 온다. 큰형이다. 무슨 일이지? “어,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엄마 아프셔서 지금 응급실에 와 있어.” “어디가 아프신데?” “심장 혈관이 막혀서 수술 받아야 할 것 같아.” “나 지금 친구랑 술 마시고 있는데…….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갈까? 심각한 상황이야?” “지금 서울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려고 대기 중이야. 그럼 내일 수술 끝나고 와.” “응, 알겠어, 그럼 내일 아침에 바로 갈게.”
어렸을 적 나는 형한테 많이 맞고 자랐다. 그래서 지금도 같이 있는 게 불편하다. 심지어 무섭기조차 하다. 어린 시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두려운 마음은 여전히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 몸은 자랐지만 어린 시절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받은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살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 어린아이의 존재를 ‘내면아이(inner child)’라고 부른다. 내면아이 치료전문가 존 브래드쇼는 그의 저서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에서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지 않고 어른으로 성장하면, 여러 종류의 중독적이고 강박적이며 정신적ㆍ신체적인 문제들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나는 과거에 무시당하고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바로 사람들이 겪는 모든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아이를 잘 발견해서, 상처 난 부분을 회복시켜 주고 잘 돌보아 주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된 우리의 인생에 계속해서 나쁜 영향을 끼치면서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 우리가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핵심요소를 바꾸어야 한다. 인간의 핵심요소를 즉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면의 아이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다. (……) 따라서 아이였을 때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욕구들의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일생 동안 반복되는 패턴, 즉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발견해 고통을 느끼고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지속적으로 일깨우는 치유 작업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기 싫다는 이유로, 회피하고 도망치며 중독에 빠져 우리의 삶을 낭비한다. 그리고 새로운 성장을 멈춰버린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어린 시절의 파괴적이었던 유사한 상황을 다시 만들어낸다. 알코올 중독자의 자녀들이 성장해서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학대받고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을 폭행하고, 마치 불속으로 날아드는 나방처럼, 학대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거나 결혼 후에 결국 자신의 배우자를 학대한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의 고통을 되풀이해서 경험하는 이것을 ‘반복 강박’이라고 불렀다.
힘들었던 기억을 지우는 네 가지의 말
힘든 기억을 정화하는 네 가지 말: ‘호오포노포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와이 말로 ‘호오(Hoo)’는 ‘원인’을, ‘포노포노(Ponopono)’는 ‘완벽함’을 뜻한다. 따라서 ‘호오포노포노’는 완벽함을 목표로 수정하는 것, 즉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하와이인들은 생각이 고통스러운 기억들로 얼룩져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믿었다. 호오포노포노는 불균형과 질병을 유발하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기억들, 즉 오류의 에너지를 밖으로 밀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호오포노포노는 약 4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하와이 원주민의 전통적인 문제 해결법이다. 그 모든 과정은 우리의 마음속인 내면에서 이루어진다.
하와이 원주민의 전통의료치유자였던 모로나 날라마쿠 시메오나 여사가 이를 현대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게 ‘셀프 아이덴티티 호오포노포노(SITH)’라는 트레이닝 법을 고안해냈다. 실제로 시메오나 여사의 제자 휴 렌 박사는 하와이에 있는 살인, 강간, 폭행 등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자가 수감된 폐쇄 병동에서 호오포노포노를 실천한 결과, 놀랄 만한 성과를 올렸다. 휴 렌 박사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들에게 뭔가 치료를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진료 기록을 살펴보면서 치유 작업을 실행했다고 했다. 호오포노포노는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며, 자기 안의 부정적이고 원치 않는 에너지를 제거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내 안에 유해한 생각들을 닦아내고 대신 그 자리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 나가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치유와 정화 방법은 자신의 기억 중에 “내 안의 무엇이 이 문제를 일으키는 걸까?”를 자문한 후, 다음의 네 가지의 말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PART 02. 검게 변한 감정을 치유하는 공감 수업
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크리스마스 휴전의 기적을 다룬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는 전쟁터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크리스마스 전날 밤,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로 맞선 서부전선의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 두 진영의 병사들은 수백 킬로미터도 넘게 구불구불 구덩이를 파서 진흙 참호를 급조해 만들었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된 참호 속에서, 그들은 아무렇게나 몸을 웅크린 채 먹고 자고 움직이면서 적의 사격을 피했다. 상황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참호 속으로 총탄과 포탄, 진눈깨비와 눈발이 쏟아졌고, 살을 에는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겨울비가 무릎까지 차오른 참호엔 시체가 뒹굴고 쥐와 해충이 우글거렸다. 화장실도 턱없이 부족하여 곳곳에서 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양쪽 참호 사이에는 어느 쪽 진영도 아닌, 좁고 길다란 무인지대가 있었다. 적진으로 공격하다가 죽은 병사들의 시체가 이 무인지대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아직 살아 있는 동료들이 바로 앞에서 뻔히 지켜보는 가운데 시체가 썩어갔다. 심지어 부상당한 병사들조차 땅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적의 공격이 두려워 어느 누구도 손을 쓸 수도 없었다.
그런데 땅거미가 질 무렵, 그곳에 기적 같은 평화가 찾아온다. 노랫소리가 고요한 저녁 공기를 뚫고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바리톤으로 부르는 독일 병사의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영국 병사 몇몇이 머뭇거리다 박수를 쳤다. 조금 뒤엔 앙코르를 외치며 갈채를 보내고 환호성까지 질렀다. 화답이라도 하는 듯 영국 병사들도 캐럴을 불렀고, 독일군으로부터 똑같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더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용감한 한 독일 병사가 무기를 버리고 참호에서 올라와 “쏘지 마라. 우리도 쏘지 않겠다.”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금지된 땅인 무인지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 영국 병사도 똑같이 참호 바깥으로 나와서 마주 오는 독일 병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수십 명의, 그리고 수백 명의 병사들이 주춤주춤 뒤를 따랐고, 곧이어 수천 명의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악수를 나누고, 담배와 기념품을 주고받았으며, 지갑 속에서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 주었다. 서로 고향 이야기를 하며 지나간 크리스마스 추억을 나누었고, 이 터무니없는 전쟁을 키득거리며 비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총을 겨누며 서로를 죽이려 했던 그들은 이미 친구가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수만 명이 넘는 병사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축구 경기를 하고, 서로 이발을 해주기도 하며, 음식을 같이 먹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얼어붙은 땅을 파서 전우들의 시신을 묻어주는 작업도 함께 했다.
그러나 이 꿈같았던 임시 휴전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령부 장군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끝나 버렸다. 그리고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런 평화는 전쟁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앞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으리라! 상부의 명령으로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우리 시대에 최고로 감동적인 크리스마스 이야기이다. 약 백 년이 지난 지금, 역사책에서는 이 일을 ‘크리스마스 휴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크리스마스 휴전’에 대해 이렇게 고찰했다.
플랑드르의 병사들이 보여 준 것은 보다 심오한 인간적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서 드러난 감정으로, 시대와 사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병사들의 모습에 왜 감동을 받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들은 인간이기를 택했다. 그들이 드러낸 인간 능력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공감이었다. 인간의 능력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면서도 소홀히 다루어졌던 공감 능력은 사실 모든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보편적 조건이다.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 핑계이고 억지이고 거짓일 뿐이다.
공감하는 능력: 최근 과학자들은 인간의 두뇌에 ‘공감회로’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 지아코모 리촐라티가 이끄는 연구팀은 원숭이의 뇌에 머리카락 굵기의 예민한 미소 전극들을 삽입해 세포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연구원이 땅콩을 집어 드는 것을 원숭이가 본 순간, 원숭이 뇌 안에 심어놓은 전극과 연결된 컴퓨터에서 신호음이 들려왔다. 원숭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마치 자신이 직접 땅콩을 집어 든 것처럼 반응한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원숭이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되자 실험실의 연구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이 뉴런을 공감뉴런, 즉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라고 이름 붙였다. 너와 나 사이의 장벽을 없애주는 내 머릿속의 거울 뉴런은 공감이 우리의 본성이며,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철학적 명제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발견이었다. 저명한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은 거울 뉴런의 발견을 DNA의 발견에 맞먹는 위대한 발견으로 보았다.
인간은 공감의 동물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공감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는 종, 즉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인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역사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공감이며 미래는 확실히 ‘공감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다 함께 공감 능력을 키워봅시다!”
PART 03.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네 개의 엔진
현대인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커다란 코끼리가 가느다란 쇠사슬에 묶여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땅에 박아 놓은 작은 말뚝을 뽑고 쉽게 도망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코끼리는 그 말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늘 머물러 있다. 코끼리는 왜 도망치지 않는 것일까?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은 생각 보다 간단하다고 한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새끼 코끼리의 뒷다리를 말뚝에 묶어 놓는다. 그러면 처음 쇠사슬에 묶인 새끼 코끼리는 온 힘을 다해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뚝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새끼 코끼리는 온 힘을 다해 탈출을 시도한다. 쇠사슬을 당기고, 말뚝을 밀어 보기도 하며 애를 쓰지만 아직 어린 코끼리가 감당하기엔 그 말뚝은 너무도 견고하다. 시간이 흘러 코끼리는 점점 자라 그 말뚝을 뽑아버릴 힘이 충분히 생겼다. 하지만 코끼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더 이상 끊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은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쇠사슬은 코끼리의 발목이 아니라 마음을 묶어 버린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 극복하기: 미국의 호기심 많은 한 청년은 동물이 무기력을 학습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시험을 고안했다. 그는 우선 개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집단은 우리 속에서 전기 충격을 받긴 하지만 버튼을 코로 눌러서 전원을 끌 수 있었다. 전기 충격을 받지만, 자신의 반응에 따라 충격을 멈출 수 있는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둘째 집단의 개들에게는 버튼이 없었다. 그래서 첫째 집단과 완전히 똑같은 전기 충격을 받지만 스스로 전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둘째 집단의 개는 오로지 첫째 집단의 개가 버튼을 눌러야만 전기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셋째 집단은 아무런 전기충격도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이 개들을 이번에는 하나의 칸막이가 있는 실험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개들은 낮은 장애물만 뛰어넘어 다른 칸으로 이동하면, 전기충격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는 이랬다. 코로 버튼을 눌러 전기충격을 끌 수 있었던 집단과 아무런 전기충격을 받지 않은 집단은 쉽게 장애물을 뛰어넘어 전기충격을 피해 다른 한쪽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버튼이 없어 전기 충격을 견뎌야 했던 둘째 집단 대부분의 개들은 전기충격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포기한 채 그냥 주저앉아 엎드려버렸다. 두 번째 집단, 즉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개들은 희망을 포기하고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험으로 인하여, 다른 상황에서 자신이 실제로 피할 수 있거나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현상을 말한다.
10여 년간에 걸친 이 실험으로 마틴 셀리그만은 동물의 학습된 무기력 실험이 인간의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30여 년간 우울증 환자들과 비관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의 습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누구나 낙관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낙관성 치료법’을 개발해냈다.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반복적인 고통이나 실패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예전에 실패한 기억과 알 수 없는 힘 때문에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미리 생각하고 포기해버려 작은 행동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무기력은 학습되고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벼룩은 몸길이의 137배나 높이 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벼룩을 병 속에 가두고 뚜껑을 덮어버리면 자신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벼룩이 점프할 때마다 뚜껑에 부딪히면 더 이상 높이 뛰는 것을 멈춘다. 이후 잔디밭에 꺼내놓아도 다시는 유리병보다 높게 뛰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인생도 유리병 안에 갇힌 벼룩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가족들이, 학교와 직장이, 특히 주변의 사람들은 우리가 유리병 안에만 머물러 있기만을 바란다.
우리도 어쩌면 유리병에 갇힌 벼룩, 무기력에 빠진 개, 서커스의 코끼리처럼, 수백 개의 마음의 쇠사슬에 묶여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뚝을 뽑아버릴 충분한 힘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말뚝에 묶여 평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낮은 장애물만 뛰어넘으면 고통을 쉽게 피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포기하고 그냥 주저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결국 유리병 안에 갇혀버린다.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먹거나 무언가를 꿈꿀 때는 우리는 언제나 안 되는 이유부터 떠올린다. ‘난 학력도 안 좋고, 인맥도 없고, 돈도 없어. 나는 앞으로 절대 못할 거야.’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거나, 마음의 족쇄를 만들지 말자. 빨리 상자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기본 요소에는 동기ㆍ인지ㆍ정서ㆍ행동이 있다. ‘동기(Motivation)’는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고, ‘인지(Cognition)’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이다. ‘정서(Emotion)’는 마음이 외부에 반응하는 감정과 느낌이고, ‘행동(Action)’은 우리가 실행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다. 실제로 10년간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었던 『문제는 무기력이다』의 저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박경숙은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길을 인지과학을 토대로 ‘통합적 마음 전환(Unified Mind Transition)’이라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