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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고양이기 때문이지

박은지 지음 | 북스토리



왜냐하면 고양이기 때문이지

박은지 지음

북스토리 / 2018년 9월 / 248쪽 / 13,800원





PART 1 혼자도 괜찮을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고양이가 있으면 말이야

행복해지는 방법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밤을 넘기며 몰두해 일하는 시간에, 때로는 퇴사라는 중대한 결정을 했을 때, 또 어떨 땐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휴가에, 그러다가도 정적이 낮게 깔린 고요한 집 안에 홀로 머무는 시간에 불쑥 행복이 있는 날이 있었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행복하게 살자고 결심했는데, 문득 나의 행복을 다른 사람의 잣대로 재게 되는 때가 있다. 내 안에서 만든 것이 아닌 바깥의 기준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이게 진짜 행복인지 아니면 그저 남들처럼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믿는 건지 요즘은 종종 알 수가 없어진다.

대학교 졸업 후 동기와 후배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친구도 있고, 결혼 계획이 없는 친구도 있었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나누던 중 반년 전쯤에 결혼한 후배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양가 부모님들이 아기를 너무 원하시는데, 낳아야 할까요? 아직 저희는 생각이 없긴 한데, 아기를 안 낳으면 불효를 하는 것 같아서…….”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아기를 낳을지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그 마음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았고, 결혼과 출산을 당연한 인생의 단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과정처럼 여겼던 것이다.

지금도 남들이 대부분 걷는 큰길을 벗어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려 하면 한 걸음마다 수없이 많은 질문을 들어야 한다. 그 질문들이 대개 손가락질하듯 질책하며 날아온다는 것도 문제다. 그 탓에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 앞에서 자주 머뭇거리게 된다.

몇 년 전, 어쨌든 자리를 채우고 앉아 있기만 하면 매달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나랑 통화할 때마다 ‘그래도 남들처럼 회사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걱정했다. 엄마 친구 아들딸은 다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엄마가 보기에는 낯선 일의 형태가 불안했을 것이다. 나는 그냥 나에게 잘 맞는 방식을 선택한 거라고 당당하게 대답했지만,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것이 보통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엄마와의 대화를 할 때마다 애써 정돈하여 넣어둔 불안감이 슬며시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오늘은 괜찮다, 그런데 내일도 괜찮을까?

마스다 미리의 원직을 영화화한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은 모두 삼십 대 중반을 넘긴 여성이다. 그들은 우리가 평범하게 느끼고 겪어온 일상의 습관이나 생각에 대해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이걸로 행복해’라고 생각하는 한편, ‘이대로 괜찮을까?’라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는 세 주인공의 심리는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카페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수짱은 능력을 꽤 인정받아 점장 제의까지 받자 내심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다고 느낀다. 사와코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엄마, 셋이서 살고 있다. 우연히 만난 동창과 결혼을 꿈꿔보지만 할머니와 엄마 둘만 남는 것이 걱정이고, 심지어 남자는 일방적으로 임신 가능 확인서를 요구하며 그녀를 실망시킨다. 사와코는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임신을 했다. 아기를 생각하면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내가 나로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두렵다. 아이를 낳는 동시에 ‘나’를 일부 잃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를 다소 우울하게 한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그들의 일상 속에는 특별한 행복도, 특별한 불행도 없다. 그 점이 우리를 세 사람 모두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 한다.

우리가 불안한 건 아마도 많은 게 확실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려줄 미래 버전 구글 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확실한 건 어디에 있을까? 누구의 지도에도 정확한 목적지와 지름길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단 한 번만 사는 삶 속에서 우리는 오로지 내 직감으로 선택과 결정을 해야만 한다.

오롯이 나의 행복만을 위해서 관성적인 일상을 내던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칼로 무 자르듯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행복한 일은 오히려 담담하게 지나가는데 이상하게 상처나 실패에는 무뎌지지 않는다. 남들 다 가라는 대학에 애써서 가긴 갔는데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이 전혀 아니라면? 안정적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떠났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행복하지 않으면?

원해서 한 선택이든, 떠밀려서 걸어갈 길이든 결국 모든 결과는 자신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SNS에서는 모두 행복의 조각을 잘라 공유한다. 나 빼고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결정에 따라오는 번잡한 일들은 모두 현실에 있다. 그건 SNS에는 올라오지 않지만 다들 알아서 감당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뒤돌아보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든, 모험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든 그에 따라오는 모든 옵션들은 전부 나의 몫이다.

그런데 자신과의 심각한 논의를 거쳐야 하는 일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면, 주변 사람들이 도무지 가만히 지켜봐 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심지어 결혼이나 출산은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다. 이래라 저래라 조언해놓고 ‘어? 이게 아니었네, 미안’ 하고 어깨를 토닥이며 빠지면 되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이가 찼으니 결혼해야지’, ‘더 나이 먹기 전에 아기 낳아야지’ 한다고 해서 그들이 그다음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삶의 변화가 설레거나 두려운 것은 모두가 당연히 느끼는 과정이며, 그걸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은 개인의 몫인 것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의 사와코네 집에는 고양이가 있지만 이 영화에서 고양이는 별다른 역할이 없다. 고민 많은 친구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고양이는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고 아픈 할머니의 이불 속에 들어가 마음껏 자다가 일어나 얼굴을 내민다.

고양이란 그런 존재다. 남의 기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비싼 캣타워를 사줘도 사준 사람의 성의는 거들떠보지 않고 너덜너덜한 택배 상자에 몸을 밀어 넣는 게 고양이다. 집사가 고양이를 베개처럼 베고 있거나 고양이가 비닐봉투 안에 들어가 있더라고 혹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할 것 없다. 고양이는 자기가 싫은 행동은 누가 뭐래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고양이는 각자의 일상에서 흔들리는 그녀에게 온몸으로 꽤 괜찮은 답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안에 있다. 사회가 깔아놓은 표지판을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 SNS에서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 듯한 행복을 나는 스스로에게 주지 못한다고 생각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사방에 보이는 내 모습을 신경 쓰느라 맘 편히 힘을 빼지도 못하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냥 고양이처럼 살면 어때?



PART 2. 둘이 되는 것도 쉽지 않다



고양이 장례식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여러 번 보는 동안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끝난 사랑을 붙잡아 다시 관계를 시작한 건, 그들이 운명적이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남들보다 조금 긴 마무리를 하고 있는 많은 연애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많은 연인들이 놀랍도록 나와 똑같은 경험을 거쳐 두 번째 이별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운명’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이렇게 달콤할까? 이제 갓 사랑의 실루엣을 발견한 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는 운명이라는 게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한 단어처럼 느껴졌다. 그와 내가 만나기 위해 온 우주가 힘을 보태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스스로 제법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시에는 ‘그 거창한 힘이 나를 위해 기꺼이 작동했을 리 없다’라는 판단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좀 돌아가면 어떠한가? 나는 운명이 흘려준 사랑에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사랑이 뜨거웠던 만큼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길고 지루했다. 나의 연애는 결코 꺼지지 않을 것 같았고, 뭔가 특별할 것 같다는 믿음은 그만큼 견고했다. 하지만 헤어짐이 필요한 순간은 왔다. 혼자일 때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를 만났는데 그가 있어서 나는 오히려 빛을 잃어갔다. 가끔씩 그와 나 사이에 뾰족뾰족 가시가 설 때면 나는 오히려 한없이 혼자였다. 이럴 바에야 애초에 혼자인 편이 좋았다고, 수많은 밤이 지나가는 것을 또렷이 지켜보며 여러 번 생각했다. 우리는 분명 연애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처음부터 다른 길에 서 있었던 건 아닐까. 그 거리의 폭이 조금 좁아졌다고 해서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사랑에 빠져 미처 보지 못했던 어딘가의 이면에, 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굳은살처럼 배겨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의구심이 머리를 내미는 사이에 우리는 각자 혼자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마무리가 짧지 않았기에 사랑이 끝나는 지점을 나는 고통스럽게 쭉 지켜보았다.

아직 우리 사이에 희망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잔해인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는 뭘까? 불씨가 남아 있는 사랑의 조각, 혹은 이 사랑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분명한 증거, 둘 중 하나를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 이별의 순간이 먼저 왔다. 내가 찬 걸까, 차인 걸까? 그것도 분명치 않은 와중에 우리 두 사람은 이별에 묵묵히 동의했다.

영화 <고양이 장례식>은 평범한 연인이 동거를 하다가 이별을 하고, 당시 함께 키웠던 고양이의 죽음 때문에 다시 만난 고양이를 묻어주기 위해 같이 하루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가난한 뮤지션 동훈은 둘이 함께 키웠던 고양이 구름이를 이별 후에 혼자서 키우다가, 고양이가 죽자 여자 친구였던 재희에게 연락을 해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사귈 때 여행을 갔던 섬으로 다시 가서 고양이를 묻어주기로 한다. 같은 장소지만 전혀 달라진 마음을 안은 채.

두 사람은 왜 헤어졌던가, 각자 과거를 회상하지만 이 이별에 분명한 원인 제공자는 없다. 동훈은 재희가 잘나가는 선배의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재희는 동훈을 위해 선배에게 콘서트 티켓을 받아왔지만 그것을 보고도 그가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서로의 진심을 말하면 곧 풀릴 오해가 깊어진다. 많은 연인들의 싸움이 그렇게 시작되듯이.

<고양이 장례식>이라는 제목처럼 고양이는 회상에서만 종종 등장할 뿐 초점이 그다지 깊숙하게 맞춰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동물을 함께 키운다는 것은 특별하고 오묘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실망하고 관계가 시들어가는 중에도, 구름이가 아프면 둘이서 한밤중에 동물병원으로 달려가 구름이가 무사하기를 같은 마음으로 기원한다. 그 마음을 겪어봤기에 동훈은 헤어진 이후에도 구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재희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구름이는 아직도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기 때문에.

나는 헤어진 연인을 2년쯤 지난 후에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번째 이별을 완전하게 납득하지 못했던 것 같다. 헤어질 이유를 온전히 찾지 못했고, 무엇보다 큰 이유는 그렇게까지 집중할 수 있는 상대를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완벽한 사람이어서는 아니었다. 그 사랑에 몰두해서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그때의 내가 특별했다. 고통스럽게 지나간 밤들조차 사랑 때문이었기에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우리가 이전에 왜 헤어졌더라, 그런 건 기억나지 않고 나의 서툴고 뜨거운 청춘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한숨이 난다. 몇 번의 사랑이 지난 지금은 결코 그렇게까지 무모한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고, 현실을 함께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이 조금 미지근할지라도 더 좋다.

결국 두 번째 만남은 이렇다 할 감정도 피어오르지 못한 채 애매하게 끝났다. 우리가 그때 왜 헤어졌는지 나는 차근차근 기억해냈다. 실망하고 상처받은 지긋지긋한 시간이 비로소 떠올랐다. 기억 속의 찬란한 시간은 거기에 머물 때 아름답다는 것을 꼭 겪어봐야 깨닫게 된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는 것이 내게는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이 비슷한 상황에 대해 상담하면 나는 말리지 않는다. 겪지 않으면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털어내는 것이 낫다. 우리는 아직 젊고, 사랑에 빠지고 아파하고 다시 회복할 시간이 충분하니까.

동훈과 재희는 구름이를 묻어주고 돌아오며 몇 번이나 머뭇거린다. 저기, 잠깐만, 그렇게 부르는 말 뒤에 금방이라도 ‘우리 다음에 같이 밥이라도 먹을래?’ 같은 말이 나올 것 같아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그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들이 공유했던 시간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구름이를 묻어주는 것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비로소 종결된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고양이 장례식>은 영화 같다기보다 나의 스무 살 일기장 같았다.

다만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로서, 고양이의 죽음을 다루는 동안 제대로 슬퍼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 상당히 낯설고 동떨어지게 느껴졌다.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갈 때 이동장을 쓰지 않는다든가, 캣타워에서 평범하게 놀고 있는 고양이에게 ‘왜 이렇게 사고를 쳐!’ 하고 화를 낸다든지 하는 깨알 같은 디테일이 부족한 점도 아쉬웠다. 하지만 오히려 고양이의 죽음에 감정 몰입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 완전히 끝났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PART 3. 넓은 세상에서 길을 잃더라도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세상이 날 두고 어딘가로 가버렸을 때

외로움은 어디에서나 온다. 떠들썩한 모임 안에서도 누군가는 외로울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손을 맞잡아주는 그 순간에도 외로움은 어디엔가 있다. 숟가락으로 푸딩 가운데를 움푹 파낸 것처럼, 마음 한가운데에 구멍이 움푹 파여 있기 때문이라고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는 표현한다.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이 공허한 외로움의 구멍을 채우는 데에는 고양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영화 속 사요코는 알고 있다.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카모메 식당>으로 유명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작품이다. 오니기리를 파는 작은 식당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낸 <카모메 식당>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는 커다란 사건이나 긴장되는 에피소드는 없다. 그저 주인공인 사요코가 리어카에 고양이들을 싣고 외친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라고. 그러면 마음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이들이 머뭇머뭇 다가와, 이 고양이 빌릴 수 있나요 하고 묻는다.

이름, 고양이 종류, 빌리는 기간, 겨우 세 가지 항목만 작성하면 되는 허술해 보이는 고양이 렌탈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고양이가 잘 지낼 수 있는 집인지를 둘러보고, 이곳이 마음에 드는지 고양이의 의지도 제대로 물어보고, 그들이 지닌 외로움의 구멍을 확인한다. 사요코의 역할은 그게 전부다. 영화는 외로운 사람들을 굴곡 없이 편평한 장면 위에 그려내고 있을 뿐 어떤 조언도 섣불리 건네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고양이의 역할일 것이므로.

사요코에게 고양이를 빌리려는 첫 손님은 나이 많은 할머니다. 고양이를 대여하는 기간은 할머니가 죽기 전까지. 할머니에게, 마찬가지로 나이 많은 고양이를 빌려주면 사요코는 말한다.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주세요.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도요.” 가냘픈 인연의 끈이 사요코와 할머니를 잇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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