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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엔도 슈사쿠 지음 | 북스토리



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엔도 슈사쿠 지음

북스토리 / 2018년 8월 / 196쪽 / 12,800원





Chapter 1.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다



한번쯤 나에게 깊이 던져야 할 질문

나는 참 괜찮은 사람: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가지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매일 거울을 보며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반드시 실력 있는 사람이 될 거야.” 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그때 자신이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을 말해도 좋다. 예를 들어 화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아주 멋진 그림을 그리겠다거나, 작가 지망생이라면 훌륭한 소설을 쓰겠다, 혹은 영화감독을 꿈꾼다면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매일 거울 앞에서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꿈을 이뤘을 때의 모습, 요컨대 자신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것을 매일 하다 보면 반드시 희망하는 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방법은 아직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미처 알기도 전에 하는 행동이므로 일종의 허세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타인에 대한 허세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허세이다. 나도 실제로 이 방법을 실천했었고 친한 사람들에게도 권했는데, 대부분 잘 되어가고 있다. 단, 이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어디까지나 나만의 비밀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두 번째로 권하고 싶은 방법은 평소 아무리 초라한 행색을 하고 다니더라도, 보너스를 받거나 여유가 좀 생기면 자신이 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좋은 옷을 사 입으라는 것이다. 물론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멋진 옷을 입었을 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으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져 주뼛거리거나 두리번거리지 않고 당당해질 것이다. 그런 행동으로 인해 자연스레 성격도 그런 사람이 된다.

좋은 복장을 갖춰 입으면 반드시 그 옷에 어울릴 만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그렇다고 해서 빚을 내면서까지 입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조금 투자를 한다는 생각으로 우아한 옷 한 벌쯤은 꼭 마련하라. 자신이 꿈꾸는 인물이 입을 법한 옷을 미리 준비해 입어보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두세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는 것도 좋다. 물론 자신의 돈으로 언젠가 그런 곳에 갈 기회가 왔을 때 너무 당황하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근사하고 세련된 옷을 입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의 허영심이라 할 수 있다. 타인에게 자랑하거나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함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것을 좋은 허영심이라 하는 이유는 좋은 옷을 입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할 만한 경험을 해보는 이러한 연습은 배우가 연기하는 것같이 허황되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그리며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물론 회사에 최고급 실크 소재로 된 옷을 입고 가서 온종일 불편하게 지내는 건 웃긴 일이다. 평소 활동적인 복장으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입어도 좋지만, 고급스럽고 우아한 옷 한 벌쯤은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평소 라면이나 우동을 먹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대접받는 식사를 하라는 것이 내가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허세나 허영심을 갖는다는 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연습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또 다른 인생을 만나는 순간: 내 본업은 소설가이지만, 실은 다양한 일을 하며 지낸다. 사교댄스를 배우러 가기도 하고 간단한 수묵화를 배우기도 하며 클래식 음악회를 주최하거나 합창단 활동도 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것은 바로 아마추어 연극 극단이다. 아마추어 극단 중에서는 아마도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일 것이다.

10년 전 공연 때는 단원 수도 적고 별로 알려지지도 않아서 신주쿠의 조그만 극장을 빌려서 했었는데, 올해는 10주년을 맞이해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3월 2일, 단 하루 공연이었는데, 티켓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10년 전에는 우리 극단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지금은 대기업 입사 시험에까지 나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물론 아마추어 극단이다 보니 모두 본업이 따로 있다. 회사원, 가정주부, 의사, 프리랜서 등 저마다 각자의 일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단원들에게 극단의 신조를 정해주었다. “생활 속에서 인생을!” 생활과 인생은 서로 다르다. 가정이나 회사는 생활의 장이라 할 수 있지만, 극단은 바로 당신의 인생을 담은 장이라는 의미에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무대에 서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쑥스러워하거나 자기는 그런 주제가 못 된다느니 하는 말들을 하지만, 사실은 무대에 서서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는 소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매일 회사에서 상사에게 혼나는 회사원도, 온종일 부엌에 바쁘게 움직이는 주부들도, 이때만큼은 무대에 서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배경으로 백작이 되거나 왕비로 변신할 수 있다. 게다가 늘 입는 옷이 아닌 전혀 다른 시대의 복장을 하고 무대에 서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자는 것이 바로 우리 극단의 취지이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시작하면 단원들은 일을 마치고 서둘러 연습장을 찾아온다. 그러곤 다들 최선을 다해 배우고 연습한다. 그러는 동안 인생에 충만한 감정이 생겨서, 피곤하고 지칠 법도 한데 다들 즐겁고 기쁘게 연습하며 공연을 기다린다. 공연 당일이 되면 너무 긴장한 나머지 대사를 까먹는 등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오히려 관객들은 그런 장면에서 크게 재미있어 한다. 그거면 된 거다. 다들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준비했고, 어차피 우리는 아마추어들이 아닌가.공연이 끝난 후, 모두 모인 뒤풀이 자리에서 다들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이야기하고,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도 이 즐거움을 알 수 있게 하고 싶다며 새로운 단원을 또 모집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우리 극단의 단원들은 매년 새로운 얼굴들이 가득하다.



Chapter 2.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다



스스로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나의 단점을 좋아할 수 있는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다. 소위 말하는 자기혐오라는 것. 예를 들어, 한밤중에 자려고 누워 있는데 문득 예전의 부끄러웠던 일이 떠올라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른다든가, “이 바보 멍청이!” 하며 소리를 지를 때가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자기혐오가 일어나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혐오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능력이나 일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을 때, ‘나는 뭘 해도 안 돼!’ 하고 자책하며 자기혐오에 빠지는 경우다. 두 번째는 인간관계, 특히 이성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상대에 비해 평균 이하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육체적인 열등함을 자각하는 순간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심각한 병에 걸린 경우라면, 회복하더라도 건강을 잃으면서 예전의 자신감이 사라져 삶의 즐거움이 없다고 생각하고 더러는 남은 인생을 저주하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그 경험에 따르면, 현재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에게 내일 당장 그것을 낫게 할 묘약이란 없다. 가장 좋은 약은 자기혐오 역시 실연의 아픔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야만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기혐오의 감정이 자신을 성장시킨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데, 젊은 시절에는 그런 말을 들어도 전혀 실감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중년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사실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아직 20대에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러나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점은, 한밤중에 갑자기 이가 아플 때 이 세상에서 치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라는 착각에 사로잡히지 말았으면 하는 점이다. 결코 나란 사람 혼자만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만약 한 번도 자기혐오에 빠진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친구들 사이에서 결코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길 바란다. 그리고 자기혐오가 아닌 자기만족밖에 모르는 사람은 이성에게도 인기가 없다. 자기혐오에 빠진 적이 없는 사람은 “1+1=2”라는 단순한 명제에는 매우 충실하다. 세상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자신의 인생 역시 명쾌하게 딱 떨어진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어쩌면 둔감하기 때문에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시기는 1 더하기 1이 정말로 2가 맞는지, 혹은 4나 5가 되진 않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방황하는 시절이다. 그러한 방황을 해본 사람들만이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지간히 둔감하지 않는 한 누구든 자기혐오의 감정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위대한 철학자인 마르크스나 헤겔이라 할지라도 모두 자기혐오의 시절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란 인간 정말 한심하구나! 나라는 인간 정말 싫다!” 하고 말이다.

그런 때 ‘이렇게 하면 나아진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고난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식의 말들을 아무리 들을지라도 실질적으로 와닿지도 않을뿐더러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마치 어두운 동굴에 갇혀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세상에서 제 일 형편없는 인간이 나다’라고 혐오스러운 생각이 지배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자기혐오는 젊은 시절에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간혹 중년이 되어서도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지만 젊었을 때만큼 더 치열하게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자기혐오의 동굴에 들어가 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금 똑같은 일로 고민하고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런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커다란 위안이 될 것이다.

그다음 기억해야 할 것은 본인의 나쁜 성격은 좋은 성격이, 단점은 동시에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좋은 사람은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으며, 나쁜 사람은 그 사람만의 남다른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예술적으로 뛰어난 장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자칫 소심하거나 이기 적인 성격의 에고이스트일 수 있다는 말이다. 대범하고 남성적인 성격이란 것도 장점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신경이 둔하다는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렇듯 장점과 단점이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사실을 인생을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성격이라는 것은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어떻게든 성격을 고쳐보려고 이때까지 갖은 애를 써봤지만 결국 고치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칠 수 없다면 그런 단점이나 약점을 나만의 강점이나 좋은 점으로 만들려고 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혼자인 나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날: 내가 제일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여행을 했던 것도 역시 20대 때였다. 나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1950년, 최초의 유학생 신분으로 프랑스에 갔다. 당시에는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여행을 하던 때라 요코하마에서 마르세이유까지 35일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그 당시 일본은 패전한 후라 다른 나라에 대사관이나 영사관도 없던 시절이었다.

난생처음 하는 여행이었으니 보는 것, 듣는 것이 전부 신선하고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그 여행은 정말 고생스러웠다. 돈이 없어서 4등칸 객실에 꾸역꾸역 들어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난민들과 함께 뒤섞여 새우잠을 자면서 한 달 가까이나 배를 타고 갔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음식이나 생활용품 같은 것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사람들 사이에서 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또 마닐라에 도착했을 때인가는 태평양전쟁 후 처음으로 일본인이 왔다는 소문에 필리핀 사람들이 격분을 해서 어설픈 일본어로 “살인자, 살인자!”라고 하는 소리까지 들었다. 전쟁 중에 일본군이 마닐라에서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일본인 유학생은 마닐라의 한여름에 사흘간 배 바닥에 있는 짐들 사이에 숨어서 꼼짝 않고 있어야 했다.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일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진정한 여행이구나!’ 하는 뿌듯함이 남아있다.

프랑스 유학을 가기 전까지 나는 대학에 남아 연구를 계속 할 생각이었는데, 그 35일의 여행을 계기로 대학에 남아 계속 공부만 한다는 것이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이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셈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파리에 도착하고 보니 지구 동쪽 끝에서 온 나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워 보였고 엉뚱한 실수도 많이 하며 다녔다. 예를 들어 길을 가던 중에 한 여인이 웬 야구방망이 같은 것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빵이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바게트가 그런 모양인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외국어를 가르쳐주는 어학 공부기관이 많아서 현지인처럼 외국어를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시절에는 회화를 하기까지는 꽤 고생스러웠다. 학교에 지정된 외국인 선생님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프랑스의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회화 공부를 위해 프랑스의 가정집에서 하숙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로 접시닦이를 하기도 했고, 농가에 가서 젖소의 우유를 짜는 일도 했다. 워낙 일처리가 서툰 탓에 실수도 많이 저질러 금방 해고되는 일이 많았지만 그러한 경험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고용했던 농가, 나를 받아주었던 하숙집과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는다.

최근에는 상당히 기쁜 일이 있었다. 내가 다녔던 리옹 대학의 같은 과 친구에게서 얼마 전에 편지가 도착해서, 웬일인가 했더니 불어로 번역된 내 소설의 서평이 실린 신문을 읽고 혹시 그 소설가가 본인이 알고 있는 엔도가 맞는가 하고 확인차 편지를 보냈던 것이었다. 편지에는 그 당시 우리들의 에피소드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이미 결혼을 하고 할머니가 된 그녀에게 나는 답장을 썼다. “네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엔도가 맞아, 나도 자네를 기억하고 있어.”라고.

5년 전에도 리옹 대학 시절의 친구였던 인물이 일본에 온다고 해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나타나질 않았다. 열심히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혼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대머리 영감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곁에 다가갔더니 역시나 그였다. 우리 두 사람 모두 30년 전의 풍성한 머릿결을 가졌던 이미지만으로 서로를 찾느라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제는 머리숱이 많이 허전해졌을 거라는 생각도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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