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오종남 지음 | 공감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오종남 지음
공감 / 2018년 3월 / 267쪽 / 15,000원
Easterlin Paradox
우리나라는 1973년 1인당 국민소득 406달러를 달성하며 UN이 정한 빈곤선인 ‘하루 1달러’를 넘어섰다. 이로써 하루 세끼 밥 먹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 2년 뒤인 75년 필자는 공직에 입문해 2006년 말까지 31년 동안 경제 관료로 봉직하며 1인당 600달러 소득 수준에서 2만 달러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국 경제론’ 강의를 하다 보면 그들이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국민이나 언론이 우리 경제를 평가할 때는 긍정적 면보다는 부정적 면을 훨씬 더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국민들 스스로가 느끼는 행복감이 경제 발전 정도에 비례하지 못하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라고 설파했다.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욕구도, 권력을 갖고자 하는 노력도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수단에 불과한 돈이나 권력을 얻기 위해 궁극적 가치인 행복을 희생할까? 필자가 칼럼 집필을 요청받고 고민 끝에 ‘오종남의 행복세상’이란 제목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74년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 교수는 ‘경제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논문의 결론은 일반적 상식과는 다소 배치되는 것이었다. 인간은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돈이 많을수록 더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고 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여기에 대해 반박 논문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행복이 소유한 재산에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가 발전한 만큼 행복해졌는가를 물어보면 긍정적 답변도 있지만. 부정적 답변도 만만치 않다. “차라리 모두가 가난했던 옛날이 더 낫다.”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개정된 헌법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 여섯 분 가운데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첫 사례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파면 사유로 여러 가지를 적시했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국민을 불행하게 느끼도록 한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국정 비전으로 제시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되고 말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많은 국민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배신감에 분노했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의 51.6%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 한편,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도 48.0%로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적 현상이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의 대선 결과를 보면 압도적 결과보다는 팽팽한 접전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브렉시트 결정에도 불구하고 영국 경제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이유는 브렉시트에 반대했던 국민도 투표결과에 승복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도 EU 탈퇴 협상을 국익에 최선이 되도록 하려고 고민하고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영국이 국민투표 이후 아직도 투표 무효소송이나 재투표 요구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대립하고 있다면 영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이것이 진정한 정치의 역할이 아닐까,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적 통합을 이루어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이 정치인이 해야 할 일 아닐까? 5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전 국민의 역량을 결집시킬 진정한 정치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짐 되는 노인 vs. 보탬 되는 어르신
필자는 지난 3월 사무실 근처 주민센터에 가서 ‘어르신 교통카드’를 발급받았다. 평소 운동 삼아 자동차보다 지하철을 더 많이 이용하는 필자로서는 이때부터 승차권을 구입하는 번거로움 없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혜택을 곧바로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실 교통카드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65세라는 나이만을 기준으로 교통카드를 발급해주는 시책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적어도 상위 몇%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에게는 교통카드 발급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정의로운 처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설령 필자가 어르신 교통카드를 발급받는다고 하더라도 별도로 승차권을 구입해서 이용할 생각까지 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막상 교통카드를 받고 보니 애초의 생각은 사라지고 이제까지 잘 활용하고 있다.
지하철을 무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필자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어르신 교통카드라는 국가시책을 나 혼자의 힘으로 바꿀 수 없을 바에야 일단 혜택을 누리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을 뜻 있는 곳에 기부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노인’이 되지 말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어르신’이 되자는 다짐을 했다.
내년에 백수(白壽)를 바라보시는 김형석 교수님께서는 ‘노년의 미학’이란 “행복을 누릴 권리, 존경받아야 할 의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에 따라 필자는 나이만 먹은 노인이 아니라 존경받는 어르신이 되려면 행동도 그에 걸맞게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지하철을 탈 때 극도로 피곤한 경우가 아니면 경로석에 앉지 않고 더 연세가 드셨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께서 앉으시도록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다.
고령자가 사회에 짐이 되지 않는 것을 넘어 도움이 되는 ‘어르신’이 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설화를 반추해 보게 되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산 채로 산속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후 장례를 지내는 고려장 풍습이 있던 시절 이야기다.
한 효자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 눈물로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하자 노모는 네가 길을 잃을까 봐서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고 말한다. 효자는 그런 노모를 차마 버릴 수 없어 동네 사람들한테는 고려장을 했노라고 소문을 내고 남 몰래 노모를 봉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사신이 똑같이 생긴 말 두 필을 끌고 와서 어미와 새끼를 구별하라는 문제를 내고 만일 답을 못 맞히면 조공을 올려 받겠다고 말했다. 조정에서는 전국적으로 방을 내려 답을 구했는데 그 효자는 노모의 지혜를 빌려 쉽게 답을 맞힐 수 있었다. 말을 며칠 굶긴 뒤 여물을 주고 살피면 여물을 먼저 먹는 말이 새끼고 나중에 먹는 말이 어미라는 것을 노모에게 배운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고려장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일화인데 그리스 격언에 “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말이 있음도 매우 흥미롭다.
고려장에 얽힌 일화나 그리스 격언은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준다. 고령자라 할지라도 이 사회에 ‘짐이 아닌 보탬’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해 주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노인 복지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이렇게까지 발전하는 데 기여하신 어르신 세대에게 보답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인력난 해소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고령자의 경륜과 지혜를 잘 활용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번에 ‘어르신 교통카드’를 발급받은 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짐이 되는 노인’이 아니라, ‘보탬이 되는 어르신’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뇌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우리들의 안타까운 자화상
필자는 지난 15, 16일 이틀 동안 말레이시아 고등교육부와 말라야 국립대학이 주최하는 ‘대학의 리더십과 거버넌스 회의’에 다녀왔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교육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수익성 분석을 할 필요조차 없는 좋은 투자로 생각하고 대학을 보냈다. 그 덕에 많은 대학이 생겨났고, 교육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그리고 졸업생들은 산업역군으로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고도성장이 가능하지 않게 되고, 졸업 후 취업도 어렵게 되자 부모들은 자식 교육의 수익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이를 덜 낳는 풍조가 늘어나면서 대학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위 회의는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한 대학 책임자들이 함께 모여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회의였다. 필자는 마지막 세션에서 한국의 경험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참석했다.
이번 회의의 첫 강연은 ‘지식의 탈식민화’라는 다소 철학적인 주제였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과거부터 이제까지 지식이 어떻게 해서 생성되고 확산되었는지를 강의하던 연사는 끝날 즈음에 뜻밖에도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부러운 점을 이야기할 것으로 기대하던 필자에게 연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내용을 발표했다. 요지는 말레이시아가 동방정책을 배우고자 노력해온 한국이 경제 발전은 이루었으나 오늘날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말레이시아는 1981년 제4대 마하티르 수상 취임을 계기로 일본과 한국을 배우자는 소위 ‘동방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지금까지 서양 특히 옛 종주국인 영국을 향했던 말레이시아의 자세를 동방 특히 일본, 한국으로 눈을 돌려 기술과 경영을 배워 말레이시아의 공업 발전과 근대화를 가속화하자는 정책이었다. 그 일환으로 말레이시아 공무원을 우리나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위탁해서 3주 동안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필자는 몇 년째 그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강의를 들은 말라야 국립대학의 한 공무원이 필자를 연사로 추천한 덕분에 위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한국의 자살률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필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뇌 끝에 필자는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소개하기로 했다. 한국이 경제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1961년 1인당 소득은 100달러 미만으로 300달러에 가깝던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 여건에서 경제 발전을 도모하다 보니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능력을 개발해서 활용하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정부 조직마저 교육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로 바꿀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교육이 사람을 인적자원으로 보고 개발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인간개발을 할 때가 되었다는 필자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한국은 신정부 출범과 더불어 가난 극복을 위한 고도성장 과정에서 소홀히 했던 인간의 존엄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한국이 경제성장은 이루었다고 하지만 행복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외국 학자의 지적을 들으면, 필자는 우리의 교육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친구도 경쟁 상대가 되는 입시제도 하에서 99%를 패배자로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을 키워낼 역사적 책무가 우리 어깨 위에 놓여 있다는 심정으로 필자는 귀국길에 올랐다.
도움은 주는 사람이 먼저 행복하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1960년 52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15년에는 82세를 넘어섰다(남자 79세, 여자 85세). 55년 동안에 30세나 늘어난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평균수명이 90세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그만큼 은퇴 후 살아야 할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생이 길다는 것은 생각만큼 즐거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노후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맞는 노년은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
노년의 가장 큰 걱정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준비’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언론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노후자금은 얼마’라는 식의 보도가 자주 나온다. 하지만 필자는 ‘노후를 위한 필요자금’이라고 특정 금액을 보도하는 것에는 의견을 달리한다. 은퇴 시점에서 필요한 노후자금이 5억 원이라는 보도를 보고 3억 원 정도의 노후자금을 준비해 놓은 사람이 모자라는 돈을 채우기 위해 사업을 벌이다가 날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노후생활의 지혜는 ‘주제 파악’과 ‘분수’를 지키는 삶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은퇴 시점에서 ‘있는 돈에 맞추어 지출을 통제’하는 소위 ‘양입제출(量入制出)’을 권장한다.
다음은 행복지수에 관한 이야기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다. 불만이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채우지 못했을 때 느끼는 심적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행복지수는 자기가 바라는 것 가운데 얼마만큼 채워졌는가에 대한 비율이다(행복지수=자기가 성취한 것÷자기가 바라는 것). 따라서 행복지수를 높이는 길은 ‘더 많이 성취하는 방법’도 있지만 ‘더 적게 바라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필자는 가끔 주례사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결혼식이 끝난 후부터는 서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수준을 반으로 줄이라는 당부를 하곤 한다. 설령 상대방이 예전 기대치의 70%만 해준다고 하더라도 기대수준을 50% 낮춘 후라면 불만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 원칙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친구 간에도, 직장 동료 간에도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끝으로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라’고 권한다. 사람들은 흔히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비결’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그와 반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남과 비교하는 습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간에게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해가 안 떴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다만, 비교할 때 나보다 나은 사람만 쳐다보지 말고 전후좌우를 두루 살펴보도록 권한다. 그러면 세상 살기가 나만 힘든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각자 나름 힘들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걸 깨달으면 위안도 받게 되는 측은지심도 생길 것이다.
세계는 지금 저출산 고령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복지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 재정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개인이든 시민단체든 모두가 힘을 모아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지경이다. 이러한 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개인도 사회도 두루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여기서 필자는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를 떠올린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이를 조금 바꾸면 ‘도움 주는 것은 도움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가 된다. 필자가 잠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교훈이기도 하다.
‘적자’ 생존으로 성공하는 삶을
최근 정부가 새로 시작한 ‘퇴직 공무원 사회공헌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베이비붐 세대 공무원의 퇴직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 우수 인적자원을 재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경륜과 전문성을 갖춘 퇴직 공무원에게 청탁금지법 교육이나 신규 공무원 공직 적응 코칭 등 업무를 맡기자는 것이다. 그런데 청년 일자리가 부족한 이 시점에 공무원 연금까지 받는 퇴직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이 사업은 대체 왜 하는 것일까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최근의 고령화 추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0년까지 여성 한 명이 평균 6명을 낳던 우리나라 출산율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1, 2명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한편 1960년 52세였던 평균수명은 2016년 82세를 넘어서 그사이 평균수명이 30년이나 늘어났다. 문제는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령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