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지음 | 더숲
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지음
더숲 / 2018년 1월 / 248쪽 / 13,000원
그렇게 못할 수도 - 제인 케니언
건강한 다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
흠 없이 잘 익은 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개를 데리고 언덕 위 자작나무 숲으로 산책을 갔다.
오전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누웠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은촛대가 놓인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벽에 그림이 걸린 방에서 잠을 자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느 날인가는
그렇게 못하게 되리라는 걸.
시인이며 번역가인 제인 케니언이 백혈병으로 죽기 1년 전에 쓴 시다. 대학생 때, 문학을 강의하던 19살 연상의 시인 도널드 홀을 만나 결혼한 제인은 뉴햄프셔의 농장에서 스무 해를 살았다. 그들의 삶은 다큐멘터리 <함께한 삶>으로 제작되어 에미 상을 수상했다. 도널드도 자연과 인생에 대한 경이감을 시와 산문으로 표현한 계관시인이다. 그는 죽어 가는 아내를 보살핀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아내의 죽음은 내게 일어난 최악의 일이었고, 아내를 보살핀 것은 내가 한 최고의 일이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는 사실 잘 모른다. 그것들은 그냥 일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일상은 얼마나 많은 사고, 갑작스러운 병과 재해에 가로막히는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그들을 보러 가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인생 수업』에서 한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해에 막 뉴햄프셔주의 계관시인으로 선정된 시인이 48세에 생이 끝나 가는 것을 절망하거나 비관하는 대신 삶의 사소한 행위들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두 다리로 걷고, 우유에 시리얼을 타 먹고, 복숭아의 둥근 맛을 깨무는 것까지. 그것들이 곧 불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얼마나 축복된 시간인가. 살아 있다는 것은 큰 기회이다. 그 ‘특별한’ 일상들이 사라질 날이 곧 올 것이기 때문이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두 발로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 삶은 수천 가지 작은 기적들의 연속이다. 그것들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행간마다 ‘늦기 전에 깨달으라’라는 말이 숨어 있다.
원 - 에드윈 마크햄
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원주민들의 생활을 연구하던 인류학자가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부족의 아이들에게 한 가지 놀이를 제안했다. 그는 사탕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멀리 떨어진 나무에 매달아 놓고 자신이 출발 신호를 하면 맨 먼저 그곳까지 뛰어간 사람에게 사탕 전부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신호를 하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다 같이 손을 잡고 바구니를 향해 달려간 것이다. 그리고 나무에 도착한 후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 행복하게 사탕을 나눠 먹는 것이었다. 놀란 인류학자는 충분히 일등으로 도착해 바구니에 든 사탕을 다 차지할 수 있었던 한 아이에게 모두 함께 손을 잡고 달린 이유를 물었다. 아이는 대답했다. “다른 아이들이 슬퍼하는데 어떻게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요?” 그 말에 아이들 모두가 “우분투!” 하고 외쳤다. 인류학자는 말문이 막혔다. 몇 달 동안 그 부족을 연구했지만 그제야 그들의 정신을 이해한 것이다. 우분투는 ‘사람다움’을 뜻하는데,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혼자서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서 자신의 주장과 다르거나 자기 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동그라미 밖으로 밀어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실제로는 다 같이 연결된 ‘우리’인데도. 여기에 놀라운 진리가 있다. 계속 밀어내면 원은 점점 작아진다. 더 초대하고 끌어들일수록 원은 넓어진다.
미국 오리건주 계관시인 에드윈 마크햄(1852~1940)은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농장에서 힘들게 노동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학비를 벌며 대학에 다녔다. 47세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묘사한 시 <괭이를 든 남자>를 발표해 일약 유명해졌다. 자신의 시 중에서 어떤 시를 가장 높이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마크햄은 이 시 <원>(원제는 <한 수 위Outwitted>)을 꼽았다.
“다른 사람의 삶에 무엇인가를 보내면 그것은 모두 우리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온다.”라고 마크햄은 말했다. 더 큰 원을 그리자. 그리고 그 원 안으로 가능한 한 모두를 초대하자. 처음에는 세상이 당신을 원 밖으로 밀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세상을 껴안아야 한다. 당신의 더 넓은 원으로. 하시다즘(유대교 신비주의)에는 둥글게 원을 그려 춤을 추는 종교 의식이 있는데, 한 사람이 슬프고 우울한 표정으로 한쪽에 서 있으면 그의 손을 잡아 원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면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기쁜 에너지를 받아 슬픔을 잊고 즐겁게 춤을 춘다.
천사와 나눈 대화 - 윌리엄 블레이크
나의 탄생을 주관한
천사가 말했다.
‘기쁨과 웃음으로 만들어진
작은 존재여
가서 사랑하라,
지상에 있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라는 시로 유명한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격언 시편』에 실린 시다. 어릴 때부터 블레이크는 창가에서 신과 이야기하거나 나무 위의 천사를 보는 등 신비 체험을 했으며, 훗날 그것을 시로 표현했다. 자신에게 그림을 배운 남동생이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었을 때는 동생의 영혼이 ‘기쁨의 박수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고통과 상실을 겪지만 이 세상과 자연 속에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었다. 살아 있을 때는 몽상가와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으나 20세기에 와서 예언자적 시인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도 탄생을 주관한 천사가 있을 것이다. 연약하고 순진무구한 우리를 세상에 보내며 그 천사가 우리에게 해 준 말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우리는 우리 귀에 대고 속삭인 그 천사의 말을 잊어버리게 된 걸까?
누가 도와주거나 설명해 주지 않아도 세상은 경이로운 대상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의무는 그것들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은 우리를 취약하게 만들고, 정체성을 흔들며, 과거의 상처를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짧은 생 동안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은 사랑이다. 본래 기쁨과 웃음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우리, 가끔은 자신의 탄생을 주관한 그 천사와 나눈 대화가 기억나는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 - 찰스 레즈니코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 나는 지쳤다.
이제 나의 일을 해야 할 날이
하루 더 사라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나의 힘이 되돌아왔다.
그래, 밀물은 하루에 두 번 차오르지.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자란 소년이 있었다. 부모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이민 온 세대였다. 아버지는 모자 공장을 운영했지만 곤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쓴 소년은 시인 하이네와 괴테가 법률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로스쿨에 입학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뉴욕주 법정 변호사로 취직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모자 판매와 재판 기록 정리로 생계를 이어 가며 시집을 자비 출판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대공황이 닥치고, 가업인 모자 공장이 문을 닫았으며, 직장도 잃었다. 주급 25달러를 벌기 위해 매일 시간제로 일해야 했다. 폴 오스터가 『굶기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그를 예로 들 정도로 늘 허기가 졌다. 그럼에도 계속 자비 출판으로 시집을 냈다. 독자도 비평가도 무관심했다. 그렇게 이 무명 시인은 60세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를 썼다. 생계비 버는 일에 하루를 보내고 물 먹은 솜처럼 피곤했지만 하루에 두 번, 밀물이 차오른다는 걸 믿었다. 어떤 상황에도 실망하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구매 담당자에게 상품 견본을 보여주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시를 썼다. 60대 후반이 되어서야 세상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인 찰스 레즈니코프(1894~1976)의 생애이다. 그의 사후, 자비 출판했던 시집들이 꾸준히 재출간되고, 객관주의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확고해졌다. 자신의 인생 자체를 객관화시켜 시의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객관주의 시인으로 불리지만,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신의 삶인데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짧은 시지만 이보다 더 절묘할 수 없다. 그는 삶의 헛된 희망에도 속지 않았지만 섣부른 절망에도 속지 않았다. 그렇다. ‘하루에 두 번’ 틀림없이 밀물은 차오른다. 그때 우리 영혼은 비상하고, 의지가 솟고, 짧은 시간이지만 가슴 뛰는 일에 몰입한다. 평생을 무명 시인으로 보냈으나 레즈니코프의 시에는 분개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생계비를 버느라, 그리고 ‘밀물이 들어올 때’는 창작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폴 오스터가 지적했듯이, 레즈니코프에게 시는 세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양식이라기보다 세계 안에 존재하는 방법이었다.
넓어지는 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넓어지는 원> 일부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언어의 거장으로 불리는 릴케(1875~1926)가 우리는 동심원을 그리며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확대되어 가며, 아마도 마지막 원은 어디선가 미완성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마지막까지 그 원을 넓히는 일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난 릴케는 9세 때 부모가 이혼했으며 군사학교에 입학했으나 몸이 병약해 중퇴했다. 이후 각지를 유랑하며 고독, 불안, 죽음에 대해 번뇌하다가 만년에는 산중에 있는 성에서 고독하게 생활했다. 그러나 자아의 원을 넓히는 일에 생을 바쳐 『말테의 수기』,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등의 대작이 주로 만년에 탄생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살아 나가면서 원이 넓어지는 사람과 좁아지는 사람. 타인이 들어올 수 없는 옹색한 원을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세상에 대한 무한한 수용으로 신까지도 그 원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릴케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어떤 원을 그리며 살고 있는가?
사금 - 호세 에밀리오 파체코
십 대 때부터 나는 금을 찾아다녔지.
모든 산골짜기 개울마다
내가 파헤친 모래는
사막이 되고도 남았어.
하지만 아무 금속도 발견하지 못했어.
기껏 구리 동전 몇 개와
돌멩이, 반짝이는 뼛조각, 납동사니뿐.
왔던 것처럼 나는 떠날 거야.
그러나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니었어.
비록 내 두 손 사이로 모래는 빠져나갔지만
모래가 내게 준 끝없는 기쁨이 있었으니
한번 시도해 본다는 것.
나도 그런 사람을 안다. 그녀는 결혼 이후 줄곧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마침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실현했다. 꽃나무를 그리고, 농부인 남편의 삐딱한 초상화를 그리고, 내 얼굴을 그려 주고, 뿔 난 염소를 그렸다. 이름난 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전시회를 연 적도 없다. 일을 해서 물감과 캔버스를 사고 밤마다 그리고 또 그렸다. 시도해 본다는 것, 그것에 대해 그녀는 후회가 없다. 그리하여 삶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후회하는 것은 시도한 일보다 시도하지 않은 일들이다. 인생의 광물을 끝없이 캐내지 않은 광부에게 남는 것은 불만뿐이다. 행복 여부는 우리가 외부에 행사하는 통제력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시도에 달려 있다. 잘랄루딘 루미는 “너는 자신이 문의 자물쇠라고 생각하지만 너야말로 그 자물쇠를 여는 열쇠이다.”라고 썼다. 자신이라는 열쇠로 어떤 자물쇠를 열려고 시도해 보았는가? 산골짜기 모래를 파헤쳐 사막을 만들려고 해 본 적이 있는가? 금을 발견하든 발견하지 못하든 쇳조각이라도 캐내 한번 깨물어 보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니고 무엇인가?
멕시코시티 출신의 호세 에밀리오 파체코(1939~2014)는 연대기 작가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뛰어난 시인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친구들인 여러 작가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문학과 가까워졌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멕시코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열아홉 살부터 학교 신문과 문학잡지 등에 글을 발표하면서 작가가 되었다.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스페인어권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은 각자에게 삶의 지도를 주었다. 그 길을 여행하는 자만이 지도 위의 선들을 입체적인 세상으로 만든다.
때로는 막히고
때로는 도달하기도 하는 너의 삶은
한순간 네 안에서 돌이 되었다가
다시 별이 된다.
릴케의 시 <해 질 녘>의 구절이다. 삶 속으로 뛰어들 때 돌이 별이 된다.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이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더 큰 신비가 적혀 있다. 섣불리 책을 덮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을 알려면 - 존 모피트
어떤 것을 볼 때
정말로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
초록을 바라보면서
‘숲의 봄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신이 보고 있는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땅 위를 기어가는 검은 줄기와
꽁지깃 같은 양치식물의 잎이 되어야 하고,
그 잎들 사이의 작은 고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 잎들에서 흘러나오는
평화와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잠깐 보고 판단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에 충분하지 않은가? 삶에 충분하지 않다. 자세히 보지 않는 삶은 편견과 관념이 지배한다. 알기 위해서는 깊이 들여다봐야 하며, 그때 우리는 더욱 알 수 없게 된다. 그 알 수 없음이 모든 존재가 본래 지닌 신비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깊이 들여다볼수록 더욱 알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 신비인지도 모른다.
존 모피트(1897~1989)는 신비의 백만장자라 불린 조금은 특별한 시인이다. 생을 마칠 때까지 60년 동안 미국 워싱턴주의 캐슬 록에 은둔해 살며 시를 쓰고 숲을 가꿨다. 주위의 많은 학교와 자선단체들이 매해 그의 기부를 받았지만 그가 철저히 익명에 부쳤기 때문에 사후에야 사실이 알려졌다. 이름이 알려지면 기부를 중단했다. 정작 자신은 닭장과 다를 바 없는 판잣집에서 살았다. 그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열차 차장이면서 사탕 장수였는데 그가 두 살 때 열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미모의 어머니는 두 번 재혼했다. 계부 한 명은 알코올중독자로 재산을 탕진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더러운 옷에 종종 밥도 굶고 신발도 없이 학교에 나타났기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다. 친척집이나 위탁 가정에서 산 적도 여러 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