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정원
이용범 지음 | 도어즈
지혜의 정원
이용범 지음
도어즈 / 2017년 8월 / 240쪽 / 13,000원
1부 행복의 씨앗_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마호메트와 유대인
위대한 예언자 마호메트는 아침 일찍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산책 코스는 마을 밖 오아시스까지였다. 오아시스까지 가려면 유대인 마을을 반드시 지나야 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이슬람교가 태동하던 그때 아랍인과 유대인의 반목은 무척 심했다. 때문에 새벽마다 유대인 거리를 지나는 마호메트를 곱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한 유대인이 마호메트가 자신의 집 앞을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을 열고 쓰레기를 쏟아 부었다. 마호메트가 화를 내면 한바탕 붙어 볼 속셈이었다. 하지만 마호메트는 열린 창문을 잠시 일별한 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뒤집어쓴 쓰레기를 툭툭 털어 내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유대인은 마호메트가 화를 내지 않자 더욱 약이 올랐다. “저런 겁쟁이 같으니라고!”
다음 날 유대인은 마호메트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다시 쓰레기를 쏟았다. 그는 전날처럼 태연히 쓰레기를 털어 내고 산책을 계속했다. 마호메트의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듯 유대인의 쓰레기 세례는 한 달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호메트는 산택을 하다가 유대인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시간이면 늘 머리 위에 쏟아지던 쓰레기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 방문이 열려 있어 마호메트는 유대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병이 든 유대인이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유대인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왜 오늘은 쓰레기를 쏟지 않았습니까?” 병들어 누워 있던 유대인은 마호메트의 말에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 유대인은 훗날 마호메트의 열렬한 제자가 되어 이슬람교를 전파하는 일에 앞장섰다. - 전재성, 『거지 성자』
남의 밭에 거름을 주다
중국 양나라에 송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초나라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현령이었다. 당시 그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참외를 길렀다. 양나라 사람들은 참외밭에 물과 거름을 주며 열심히 보살폈다. 때문에 양나라에서 나는 참외는 모양이 예쁘고 맛도 좋았다. 반면에 초나라 사람들은 참외밭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연히 초나라에서 수확한 참외는 모양이 신통치 않고 맛도 형편없었다.
어느 날 초나라 사람들이 국경을 몰래 넘어와 양나라 사람들의 참외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도망쳤다. 자신들이 참외밭을 돌보지 않은 것은 생각지 않고 양나라 참외밭에 시샘이 난 것이다. 아침 일찍 참외밭에 나간 양나라 사람들은 새순과 열매가 모두 짓밟힌 참외밭을 발견했다. 그들은 바로 고을 현령 송취를 찾아갔다. “이는 분명 초나라 사람들의 짓입니다. 우리도 똑같이 되갚아 주고 오겠습니다.” “복수는 결국 화를 부를 뿐이오.” 송취는 그들을 만류하며 자신이 생각한 비책을 알려주었다.
양나라 사람들은 어둠을 틈타 국경을 몰래 넘었다. 그러고는 현령이 가르쳐 준 대로 했다. 초나라 사람들의 참외밭에 물과 거름을 듬뿍 주고 돌아온 것이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양나라 사람들은 등에 거름을 지고 부지런히 국경을 넘나들었다. 여러 날이 지난 뒤 초나라 사람들이 참외밭에 나와 보니 샛노란 과실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초나라 사람 몇이 밤에 몰래 참외밭을 지켜보기로 했다.
밤이 이슥해지자 양나라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참외밭에 나타났다. 그들은 거름과 물을 듬뿍 주고는 다시 국경을 넘어 돌아갔다. 이 광경을 본 초나라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당황했지만 곧 그들의 깊은 뜻을 짐작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 후 두 나라에는 평화와 웃음이 찾아왔다. - 유향, 『설원』
아리스테이데스와 페리클레스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 아리스테이데스는 올림픽 경기의 꽃인 마라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마라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플라톤이 “아테네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인물은 오직 한 사람, 아리스테이데스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지참금이 없어 두 딸을 시집보내지 못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청렴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아테네에는 공공에 해를 끼치는 위험인물을 뽑아 추방하는 도편추방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한자리에 모인 시민들은 도자기 조각에 각각 추방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었는데, 이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은 국외로 추방되어 10년 동안 아테네로 돌아올 수 없었다. 어느 날 아테네 시민들은 도편추방제를 시행하는 투표에 참가하고 있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이때 광장 한구석에 서서 시민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글을 모르는 한 시민이 그에게 다가왔다. “여기다가 아리스테이데스의 이름을 적어 주시겠습니까?” 깜짝 놀란 아리스테이데스가 그에게 물었다. “왜요? 그가 당신에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했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난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합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어이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를 추방하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그는 생각만 해도 짜증 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딜 가도 그 사람 얘기뿐이거든요. 정의의 수호자, 정의의 수호자! 이젠 그 소리가 듣기도 싫어요.” 아리스테이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가 내민 도자기 조각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를 그리스의 정치적ㆍ문화적 중심지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그는 정치가이자 장군으로서는 드물게도 개의치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일을 마친 페리클래스가 집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오자 아침에 그를 따라다니며 욕하던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또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페리클레스는 조금도 피하는 기색 없이 담담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페리클레스는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질 때쯤 집에 도착했다. 남자는 여전히 등 뒤에서 계속 이유를 알 수 없는 욕을 하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페리클레스는 문득 뒤돌아서서 하인에게 말했다. “길이 어두우니 횃불을 밝혀 저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주게.” - 플루타르크, 『플루타르크 영웅전』
텃밭과 베틀을 버리다
어느 날 중국 노나라의 재상 공의휴의 밥상에 집 앞 텃밭에서 정성스럽게 키운 채소 한 접시가 올랐다. 채소는 텃밭에서 갓 딴 것이라 아주 싱싱하고 맛있었다. 채소를 맛본 그가 하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집 앞의 텃밭을 모두 없애 버려라.” 하인들은 채소가 맛이 없어 그러는 줄 알고 시키는 대로 텃밭을 모두 없앴다.
하루는 공의휴가 외출했다 돌아오니 하녀가 베틀 앞에 앉아서 베를 짜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아주 훌륭한 솜씨였다, 당연히 하녀가 짠 베는 아주 좋은 등급의 것이었다. 베를 확인한 그가 하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 하녀를 집에서 내보내고, 베틀은 불살라 버려라.” 사람들은 공의휴의 행동을 이상히 여겼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한 사람이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대감의 텃밭에서 자란 채소는 맛있기로 소문이 났고, 하녀의 베 짜는 솜씨는 아주 훌륭했는데 무엇 때문에 텃밭을 없애고 하녀를 내보냈습니까?”
공의휴가 대답했다. “나는 이 나라의 재상이오. 먹고살 만큼의 녹봉을 나라에서 받고 있지요. 그런데 채소를 사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채소를 사지 않고, 옷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베를 짜서 옷을 해 입는다면 농사짓는 농부나 베를 짜는 사람은 어디에서 돈을 벌 수 있겠소.” - 사마천, 『사기』
어머니와 꽃다발
한 청년이 모처럼 2주간의 휴가를 얻었다. 그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가서 즐거운 파티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 청년은 자동차에 짐을 모두 실은 뒤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저 오늘부터 보름 동안 휴가예요. 친구들이랑 바다에 가서 놀기로 했어요.” 어머니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얘야, 집에는 언제 올 거니?” 청년은 어머니의 질문에 가볍게 대꾸했다. “휴가 끝나면 갈게요.” 그러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청년은 자동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신나게 달리며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까지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청년은 오늘이 어머니의 생신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얘야, 집에는 언제 올 거니?’ 청년은 그제야 어머니가 아까 왜 그렇게 물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작은 마을 앞을 지나다가 도로변 꽃집 앞에 차를 세웠다.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대신 어머니에게 꽃다발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꽃집 앞에 한 꼬마가 울면서 서 있었다. “얘야, 무슨 일이니?” 꼬마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오늘 우리 엄마 생일이거든요. 엄마가 좋아하는 장미꽃 다섯 송이를 선물하고 싶은데 10센트로는 살 수 없대요.” 꼬마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혼자 쓸쓸히 시골집을 지키고 있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청년은 꽃집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말했다. “저 꼬마가 원하는 만큼 장미꽃을 주세요. 돈은 제가 낼 테니까요.”
주인이 꼬마에게 장미 다섯 송이를 건네자 꼬마는 청년과 꽃집 주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꽃집 주인에게 장미꽃을 소포로 보내 달라 부탁하고 돌아서는 청년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는 어머니의 생일을 늦지 않게 기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동차가 마을 앞 공동묘지를 지날 때였다. 조금 전 꽃집에서 보았던 꼬마가 작은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청년은 차를 세우고 공동묘지로 다가갔다. 꼬마가 청년을 보고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계신 곳이에요. 엄마가 아저씨에게 무척 고마워할 거예요.”
꼬마의 말을 들은 청년은 가슴에 날카로운 가시가 박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청년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갑자기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아까 들렀던 꽃집으로 달려갔다. 꽃집 문을 벌컥 연 청년은 주인에게 물었다. “아까 제가 부탁한 꽃다발 벌써 보냈습니까?” 주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직 보내지 못했는데요.”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 꽃다발 그냥 주세요. 제가 직접 가지고 갈 겁니다.” -C. W. 맥콜, 『어머니를 위한 장미』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관중과 포숙은 어렸을 때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다. 관중은 집이 가난해서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할 때 포숙 몰래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포숙은 이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중의 몫을 더 챙겨 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나보다 더 가난하지 않은가?” 포숙은 관중이 장사에 번번이 실패해도 단 한 번도 깎아내리는 일 없이 용기를 주었다. “세상일이란 다 그런 것일세. 장사란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지 않은가?”
관중은 세 번이나 관직에 올랐지만 세 번 모두 주군의 눈 밖에 나서 쫓겨났다. 그때도 포숙은 친구를 위로하며 말했다. “자네가 덕이 없어서가 아닐세. 아직 적당한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야.” 관중이 전쟁터에 나가 세 번이나 도망쳤을 때에도 포숙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비겁해서 그런 것이 아닐세. 자네는 모셔야 할 노모가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관중을 비난할 때마다 포숙은 관중을 감쌌다.
제나라에는 양공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규와 소백이 있었다. 둘 다 서출이었는데 둘 중 한 사람이 제나라의 왕위를 잇게 되었다. 친구였던 포숙과 관중, 소홀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 맏아들 규보다는 차남 소백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홀이 먼
저 자신의 뜻을 밝혔다. “우리 셋 중 한 사람이라도 떠나면 뜻을 이룰 수 없네. 소백은 차남이라 왕위에 오르기 힘드니 차라리 우리 셋이 함께 규를 섬기면 제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 관중이 나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백성들은 규의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니 우리 중 한 사람은 소백을 섬기는 것이 좋을 듯하네. 결국 규와 소백 중 한 사람이 왕위에 오를 테니, 그때 우리가 힘을 합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포숙이 소백을 섬기고, 관중과 소홀이 함께 규를 섬기게 되었다.
얼마 후 제나라에 큰 내란이 일어나서 소백과 규는 각각 외가가 있는 거나라와 노나라로 도망쳤다. 제나라 신하들은 내란을 평정하고 노나라로 도망친 맏아들 규를 불러들이려 했다. 규는 제나라에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왕위를 이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급히 제나라로 향했고, 이 소식을 들은 소백 역시 서둘러 제나라로 향했다. 소백이 먼저 제나라의 국경에 이르렀다. 규를 모시던 관중은 소백이 먼저 당도했음을 알고 친구인 포숙을 설득했다. “걸음을 멈추게. 마땅히 맏아들인 규가 왕위를 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포숙은 양보하지 않았다. 화가 난 관중은 뒤로 물러나면서 소백을 향해 활을 쏘았다. 소백은 관중이 쏜 화살을 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관중은 소백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도망치면서 혼잣말을 되뇌었다.
“규는 참 복도 많구나! 임금이 될 팔자이기에 화살 한 대에 소백이 죽는구나.” 그러나 관중이 쏜 화실은 소백의 허리띠 이음새를 맞추었을 뿐이었다. 소백은 거짓으로 죽은 체하고 지름길을 통해 제나라로 향했다. 도성에 먼저 도착한 포숙은 신하들을 설득하여 소백을 왕위에 올려놓았다. 나중에 자신이 속은 것을 안 관중이 노나라 군사의 힘을 빌려 소백과 전쟁을 벌였지만 패하고 말았다.
마침내 소백이 제나라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곧 춘추 5패 중 한 사람인 환공이다. 환공이 공을 세운 포숙을 재상으로 임명하려 하자 포숙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천하의 패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십시오. 관중이 아니면 안 됩니다.” 환공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관중은 내 원수요. 내게 화살을 쏜 자가 아닌가?” 포숙이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관중은 자신이 섬기는 사람을 위해 폐하께 화살을 쏘았습니다. 만일 그를 얻으신다면 앞으로 그는 폐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쏠 것입니다.”
환공은 포숙을 재상에 앉히려 했으나 그는 끝내 거부했다. 환공은 할 수 없이 관중을 재상으로 삼기로 하고 노나라에 사람을 보내 관중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노나라는 규를 죽이고 관중과 소홀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출중한 재주를 지닌 관중이 제나라의 신하가 되면 장차 자신들이 위험해질 것을 염려해 그를 죽여서 제나라에 보내기로 했다. 이를 안 포숙은 제나라 환공이 관중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그가 돌아오는 대로 죽일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자 노나라는 안심하고 관중을 제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리하여 관중은 무사히 귀국하여 제나라의 국정을 맡게 되었고, 환공을 잘 보필해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다.
소홀은 관중이 제나라로 떠날 때 함께했다. 그런데 제나라 국경에 들어서자 소홀은 갈등에 휩싸였다. “자네가 제나라로 돌아가 좌상이 된다면 나는 우상이 될 걸세. 하지만 내가 모시던 주군이 죽은 마당에 다른 주군 밑에서 벼슬을 한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야. 살고 죽는 것에는 나뉨이 있네. 자네가 살아 있는 신하라면 나는 이미 죽은 신하일세.” 소홀은 제나라 국경에 이르러 스스로 목을 쳤다.
관중이 환공을 모시고 재상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후 병이 들었을 때, 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그대의 후임으로 포숙을 임명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지만 관중은 반대했다. 친구를 시기해서가 아니라 포숙의 사람 됨됨이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숙은 군자 중의 군자였기 때문에 간신들을 미워하고 백성을 제 몸처럼 사랑했다. 그런 친구가 재상이 되면 신하들과 사사건건 대립하느라 말년이 불행해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관중이 환공에게 한 말을 간신 역아에게 고자질했다. 역아는 즉시 포숙을 찾아가 일러바쳤다. “관중이 재상이 된 것은 모두 당신 덕분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포숙이 대답했다. “만일 내가 재상이 되었다면 이 나라의 간신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오.” 역아는 가슴이 뜨끔하여 물러났다. 훗날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 준 것은 내 친구 포숙이었다.” - 사마천, 『사기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