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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10시간

박돈규 지음 | 북오션



비행기에서 10시간

박돈규 지음

북오션 / 2017년 8월 / 200쪽 / 12,000원





기내식의 비밀 - 맛있는 기내식은 왜 존재하지 않을까



하필이면 생애 첫 기내식을 비즈니스석에서 받았다. 2001년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는 에어프랑스였다. 고도 3만 5,000피트(약 10.6킬로미터) 상공에서 메뉴판을 펼쳤다. 오르되브르(애피타이저)부터 와인, 메인 요리, 디지트 등을 고르면서 호강했다. 지상에서는 좀처럼 먹기 힘든 구성이었다. 일등석 요리는 어떻게 나오는지 살짝 궁금했지만 그 ‘구름 위의 만찬’을 음미하면 황홀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그 뒤로 출장이나 여행으로 유럽, 북미 등을 왕복하면서 장거리 비행기를 100번 가까이 탔다. 기내식의 절대 다수는 일반석에서 경험했다. 비좁은 트레이(쟁반) 하나에 모든 요리가 한꺼번에 담겨 나오는 일체식. 비즈니스석과는 클래스가 달랐다. 가끔 불행한 일도 닥쳤다. 내가 원하는 메뉴가 그만 앞줄에서 동나는 바람에 ‘주는 대로 먹는’ 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비행기가 이륙한 뒤 잠시 시간이 지나면 비행고도가 일정해지면서 수평 비행에 돌입한다. 안전벨트 착용 경고등이 꺼진다. 기내 부엌인 갤리는 분주하다. 눈이 핑핑 돌아갈 만한 속도로 식사와 음료를 준비한다. 드디어 밖으로 나온 승무원들이 카트를 밀면서 기내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금강산은 식후경, 장거리 비행도 매한가지다.

정규 기내식은 약 100년 전인 1919년에 등장했다고 한다. 그해 런던~파리를 운항한 핸들리 페이지 트랜스포트 항공이 샌드위치, 과일, 초콜릿 등을 종이상자에 담아 승객에게 나누어 준 게 시초였다. 당시 탑승 정원은 고작 4명. 두 시간 비행에 차와 여흥이 제공되었다. 1929년 하와이안 항공은 기내의 낮은 기압에 대비하도록 승객에게 껌을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1950년대 들어 기내에 오븐이 탑재되었다. 요즘 장거리 비행에서 우리가 먹는 따뜻한 식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전에는 차갑게 먹을 수 있는 요리만 서비스되었다. 덕분에 메뉴도 다양해졌다. 1958년 미국 항공기 팬암(1991년 파산하고 말았다)이 보잉 707로 뉴욕~파리 노선을 운항하면서 승객이 처음으로 메뉴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일등석, 비즈니스석, 일반석 등 좌석 등급에 따른 기내식 차별화가 이루어진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요즘 기내식의 단가는 얼마일까. 항공사들은 애석하게도 그것을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일등석, 비즈니스석, 일반석의 한 끼 가격은 어림잡아 6:3:1 수준이라고 한다. 에어차이나는 국제선 일반식 기내식 1개당 10달러를 투입한다고 예외적으로 공개한 적이 있다. 2017년 미국 출장길에서 대한항공 귀국편 출발이 세 시간 지연되자 식사를 해결하시라며 항공사 직원이 쿠폰을 건네주었다. 12달러(약 1만 3,600원)가 찍혀 있었다. 나는 물론 일반석 승객이었다. 일반석 한 끼의 단가를 가늠할 수 있다.

라면은 남녀노소, 빈부 차이가 없고 갑부라도 가끔 먹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음식이다. 하지만 기내에서는 평등하지 않다. 일부 항공사의 장거리 여객기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지만, 좌석 등급에 따라 격차가 존재한다. 일등석과 일반석에서 똑같이 주문해 먹고 있더라도 다 같은 라면이 아니다. 2013년 어느 여객기 비즈니스석에서 “라면이 설익었다. 왜 이렇게 짜냐.”며 승무원을 폭행한 이른바 ‘라면 상무’ 사건이 있었다(그는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에서는 라면을 끓여서 그릇에 담아 내놓는다. 북어와 콩나물을 넣고 끓인 라면에 표고버섯, 새우 등도 들어간다. 반찬으로 단무지를 내고 삼각김밥 등도 제공한다. 일반석은 작은 컵라면에 뜨거운 물만 부어줄 뿐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일등석처럼 “등심은 어느 정도로 구워드릴까요?” 같은 질문을 받지 않지만 일반석 기내식은 또 그것대로 매력이 있다. 비행기는 일상적인 공간이 아니다. 지상 10킬로미터 높이에서 시속 900킬로미터로 날아가면서 식사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평소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경험이다. 여느 식당에서 만났다면 보잘것없어 보였을 음식도 기내에서는 특별한 신비감이 더해지는 것이다.

비빔밥은 한국 승객에게 특별한 기내식으로 꼽힌다. 대한항공 비빔밥은 1997년 일반석 기내식에 데뷔했다. 국제기내식협회(ITCA)는 그해 머큐리상 대상 수상작으로 비빔밥을 호명했다. 여객기에 탑승한 비빔밥은 한국 승객이 선호하는 기내식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외국인에게는 ‘한식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2016년에만 300만 식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대한항공 김호석 셰프를 2017년 2월, 서울 김포공항 기내식 사업소에서 만났다. 그는 비빔밥 개발부터 모든 과정을 지켜봤고, 2006년 비빔국수로 또 한 번 머큐리상을 차지한 기내식 명장이다. “기내식 비빔밥도 조금씩 변해왔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초창기엔 청포묵과 고사리도 넣었어요. 고사리는 유럽에서 기피 음식이라고 해서 빠졌지요. 소고기를 먹지 않는 특정 종교 승객에겐 고명으로 닭고기를 얹습니다. 요즘 일반석 비빔밥엔 호박, 표고버섯, 취나물, 참나물, 도라지, 무나물, 시래기 등 나물 7종이 들어가요.”

군단장 요리병으로 복무했고 호텔 조리사를 거친 그는 1991년부터 메뉴 개발, 요리, 인력 양성 등 기내식의 모든 것을 경험했다. 비빔밥은 기내식에 일본 보온밥통을 실어 일등석에만 제공하다가 1997년 일반석에도 진출했다. 밥과 고추장, 용기 등 난관이 많았단다. “국내에서 햇반은 기내식 비빔밥 수요 덕에 개발된 거예요. 고추장은 작은 컵에 담아내다 튜브로 옮겨갔습니다. 또 밥과 나물을 비비려면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네모난 용기가 정석이던 시절에 둥근 용기를 개발했지요.”

국적 항공사가 어설픈 한식을 내놓을 수는 없다. 에어프랑스, 브리티시에어, 싱가포르항공 등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세계 49개 항공사에 기내식을 공급하는 대한항공 기내식 생산량은 하루 8만 식을 돌파했다. 따뜻한 식사 종류만 된장덮밥, 불고기 등 1,000여 가지다. 최고 인기 메뉴인 비빔밥은 하루 약 4,000식이 생산된다. 김 셰프는 “과거에 비빔밥은 한식 대표는커녕 푸대접을 받는 음식이었다.”며 “기내식으로 사랑받고 자연식이 뜨면서 덩달아 ‘신분’이 상승한 셈”이라고 했다.

한국인에게는 고추장과 나물에 대한 본능적 욕구가 있다. 미주 노선은 승객의 60퍼센트, 유럽 노선은 75퍼센트가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찾는다는 통계가 있다. 내가 경험했듯이 “귀국편에서 비빔밥이 동나 못 먹었다.”는 불평도 가끔 들린다. 탑승객 국적 비율 등 자료를 바탕으로 수요를 예측하지만 쉽지 않다고 한다.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존 매퀘이드는 『미각의 비밀』에서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통증을 실질적인 위험 없이 즐기고 그 고통이 끝났을 때 안도감을 느낀다.”며 “이른바 ‘고추 문화’란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는 문화”라고 썼다.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데서 오는 쾌감을 즐긴다는 것이다.

기내식은 공항 근처에 있는 케이터링 키친에서 미리 만들어 여객기에 싣는다. 대한항공 기내식센터에서 300억 원대 주방 설비에서 전문 셰프만 300명이 근무한다. 수백 명이 함께 먹기 때문에 안전성과 위생이 생명이다. 조리한 지 45분 이내에 담아 5도 이하의 급속 냉장으로 미생물 번식을 막고 맛을 잡는다. 건조하고 기압이 낮은 지상 10킬로미터 기내에서도 음식 고유의 맛과 향을 유지하는 데 신경 쓴다.

차가운 음식은 48시간, 뜨거운 음식은 72시간 안에 소비되어야 한다. 갤리에서 오븐으로 재가열할 땐 메뉴별로 온도와 시간이 제각각이다. 불꽃이 생길 수 있는 전자레인지는 위험해 쓰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순환시키는 대류식 오븐을 사용한다. 항공편이 지연되거나 결항할 경우 준비한 기내식은 어떻게 될까.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멀쩡한 음식을 폐기하기는 아깝지만 승객의 안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992년 아르헨티나 국적기에서 콜레라 병원균에 오염된 새우는 먹은 승객 1명이 사망하고 76명이 감염된 사고 이후 관련법이 더 엄격해졌다.

그런데 기내식 맛은 왜 그렇게 이상할까? 영국 BBC 방송이 2015년 이 의문을 심층 취재해 보도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혀에서 맛을 감지하는 세포인 미뢰의 민감도가 변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미각도 구름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는 비행기 창밖으로 날아가버리는 셈이다. 항공사들은 승객의 미각과 식욕을 정상 궤도로 되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기내식이 단조롭고 맛이 없다면 꼭 그들 잘못만은 아니다. 좀 과장해 말하면 우리가 출발 게이트에 정상적인 미각을 두고 왔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순항고도에 오르면 파스타부터 와인까지 모든 풍미가 달라진다. 풍미는 미각과 후각의 결합인데 기내에서는 감도가 뚝 떨어진다. 습도와 기압, 소음과 진동 등 이른바 ‘기내 경험’을 구성하는 모든 조건이 음식 맛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산 과자봉지는 비행기가 이륙하면 빵빵해진다.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보다 공기가 누르는 힘이 약해지니 과자봉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기내에서는 습도도 곤두박질친다. 고도 10킬로미터에서 습도는 12퍼센트 이하로 떨어진다. 사막보다 더 건조한 상태다. 2015년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의 연구에 따르면 낮은 기압과 낮은 습도가 복합되어 단맛과 짠맛에 대한 민감도를 30퍼센트쯤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감기에 걸렸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결과도 있다. 우리는 기내에서 단맛과 짠맛에 대한 감각과 이별할 뿐 나머지 신맛, 쓴맛, 매운맛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내식 맛은 미각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맛이라고 여기는 것의 80퍼센트는 사실 냄새이기 때문이다. 기내에서는 후각이 둔해져 음식 맛이 훨씬 더 싱겁게 느낀다고 한다. 따라서 적절한 양념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기내식 레시피는 소금과 향료를 첨가하는 방향으로 변형된다. 대체로 지상의 음식보다 간이 강하다. 항공사에 따라 다를 테지만 10킬로미터 상공에서 최적의 맛을 내기 위해 염도와 당도를 조금 높이는 셈이다. 기내식에는 강한 향도 곧잘 사용된다.

놀라지 마시라. 청각도 맛에 관여한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귀가 먹먹해진 상태로 식사를 할 경우 덜 짜고 덜 달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단, 85~90데시벨 수준인 기내 엔진 소음이 모든 맛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향신료와 커리 맛은 구름 위에서 한층 더 강렬해진다고 한다. 향이 세고 맛이 풍성한 와인이 기내에 주로 실리는 이유다.

다섯 번째 맛으로 불리는 우마미는 흥미롭게도 고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김, 버섯, 토마토, 시금치, 간장 등이 주는 감칠맛 말이다. 연구 결과 이 우마미는 시끄러운 소음에 의해 오히려 확장될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기내에서 달고 짭짜름한 토마토주스에 평소보다 더 끌리는 까닭이다. 세계 200개 항공사의 평균 음료 소비량을 보아도 토마토주스가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지상에서는 맛있어도 기내에서는 다를 수 있다. 환경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상보다 낮은 기압과 습도, 멈추지 않는 엔진 소음이 미각과 후각과 식욕을 훼방한다. 10킬로미터 상공에서는 어떤 음식도 맛있기가 쉽지 않다.



꿀잠의 조건 - 수면이 부족한 혹은 수면에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장거리 비행 활용법



어느 명절에 ‘막히는 귀경길, 지루함을 달래는 최고의 방법은?’이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길 위에서 따분해질 때 가장 큰 위로는 잠, 음악, 예능ㆍ드라마이다. 휴게소나 갓길에 멈추고 쉴 수는 없지만 장거리 비행도 고통의 종류로 보면 지루한 명절 고속도로 정체가 비슷한 것 같다. 지금 기내에서 가장 행복한 승객은 누구일까? 아마도 곤한 잠에 빠진 사람일 것이다. 술기운이나 수면제에 기대지 않고 마치 비행기와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그 방면에 탁월한 사람들이 있다. 옆 승객들의 시끄러운 수다나 윙윙거리는 엔진 소음조차 그들에겐 달콤한 자장가로 들리는 모양이다.

기내에서 꿀잠 자는 사람들도 목베개, 안대, 귀마개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중 최강자는 수면 보조기 따위는 거추장스럽다는 듯 좌석에 앉아 등을 기대자마자 곧장 잠에 곯아떨어진다. 그야말로 탐나는 적응력이다. 무던히 애써도 잠이 강림하지 않는 이들이 그 신묘한 능력을 당장이라도 훔치고 싶어진다.

중세에 사람들은 보통 앉아서 낮잠을 잤다. 그 흔적은 오늘 날에도 가끔 발견된다. 유능한 아파트 경비원이나 직장 상사는 한 눈을 뜨고 잔다. 지하철에서도 반쯤 졸면서 반쯤 깨어 있는 승객을 가끔 목격한다. 영화관이나 음악회에 갔을 때 나도 꾸벅꾸벅 졸다가 목이 뒤로 꺾어지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깰 때가 있다. 그런 잠은 품질이 나쁘다. 개운하기는커녕 수치심을 유발한다. 장거리 비행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잠이다.

기내 수면의 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잠자고 싶다면 복도석을 피하라고. 창가석이나 차라리 가운데 낀 좌석을 택하라고. 방해받을 가능성을 낮추거나 원천봉쇄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담요를 덮고 목에는 스카프를 감아 뇌에 수면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긍정적인 어떤 생각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잠에 빠진다고 말한다. 비행기가 게이트에서 활주로로 이동하고 맞바람을 뚫고 이륙하는 동안에 더 꿀잠을 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수면학 전문가들의 해석은 판이하다. 비행기를 비롯해 어디서나 잠을 잘 자는 것은 우쭐할 만한 재주가 아니라 심각할 수도 있는 수면 부족의 징후라고 지적한다. 정상적인 수면 습관을 지닌 사람이라면 절대 어디서나 아무 때나 그토록 쉽게 잠들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잠이 많이 부족하다. 한국인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48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시간 22분보다 1시간 30분쯤 불충분한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수면 혁명’을 펴낸 《허핑턴포스트》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턴이 말했듯이 잠은 더 이상 게으름의 동의어가 아니다. 우리는 수면 부족이 성공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집단 환상에 빠져 있을 뿐이다.

장거리 비행은 어쩌면 지상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비행기는 평소 수면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을 어떻게 꿈나라로 데려가는 것일까. 수면학 전문가들은 규칙적인 엔진 소음과 진동 탓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매주 월요일 뉴욕으로 출근 비행기를 타는 비즈니스맨들은 활주로에서 엔진을 예열하는 동안 잠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가 있다. 그렇다면 기내에서 쉽게 잠드는 사람을 보면 측은해할 일이다. 극심한 수면 결핍의 증상일 수 있으니까.

잠은 의식주보다 삶에 더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인생 3분의 1을 자면서 보내지만 잠은 실체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몸이 조작하는 온ㆍ오프 스위치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노동이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오늘날 잠은 산업이 되었다. 수면을 돕는 의약품이 해마다 미국에서만 300억 달러(약 34조 원) 이상 판매된다.

숙면을 취하지 않으면 진화의 가장 큰 자산인 뇌가 되레 약점으로 변한다. 걸프전에서 미군 사상자는 적의 공격 못지않게 수면 부족으로 발생했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무렵엔 카페인 100밀리그램이 든 껌이 전투 식량에 포함되었다. 잠의 이득을 모방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약이나 절차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수면 부족에서 회복할 방법은 나중에 잠을 더 많이 자는 것밖에 없다. 핵잠수함 컴퓨터는 아직도 수렵ㆍ채집 생활에 맞춰 설계된 마음을 가진 병사에게서 지시를 받는다. 수면 박탈은 옛날부터 전투의 일부였지만 오늘날엔 나라 하나를 박살 낼 정도로 위험하다.

도착지에서의 시차 적응까지 감안하면 잠은 기내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내식을 건너뛰고 수면을 택하는 게 나을 때도 있다. 그런데 잠의 조건은 모순적이다. 매우 흥미진진한 책 『잠의 사생활』을 쓴 데이비드 랜들은 “잠은 아주 좋은 것이지만 다른 좋은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잠을 얻으려면 잠을 가지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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