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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사색 -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서

강원상 지음 | 지금이책



공감사색 ?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서

강원상 지음

지금이책 / 2017년 3월 / 199쪽 / 13,000원





1부 관객과 죄수



노동자의 삶

스무 살의 크리스마스이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예고하듯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쉼 없이 떨어졌다. 숨 막히는 대치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온 천지가 하얗게 물들어 갔다. 살벌한 눈빛 교환 후 맞은편 무리가 먼저 도발을 감행했다. “사장 안에 있는 거 아니까 비키라고!” 이윽고 힘 꽤나 쓸 법한 아저씨가 슬금슬금 다가와 속닥였다. “야, 이번엔 좀 세게 나가야겠다. 우리도 춥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저씨는 우리의 팔짱을 파고들며 대열을 흐트러뜨리려 했다. “대열 사수해!” 우리는 즉시 간격을 좁히고 온몸의 근육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맞은편 아저씨들이 마치 연쇄추돌 난 차량처럼 일제히 몰려들어 서로를 욱여넣기 시작했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피땀이 떨어지며 눈 위에서 범벅이 된 순간, 문득 폴 라파르그 저서 『게으를 권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그대에게 자유를 주노라. 비참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받고 일해서 그대의 고용주를 백만장자로 만들어줄 자유, 그리고 빵 한 조각에 그대의 자유를 고용주에게 팔 자유를 주노라. 고용주는 그대를 열 시간이나 열두 시간 동안 작업장에 가두리라. 그러고는 그대가 기진맥진해 쓰러질 지경이 돼서야 그대를 풀어 주리라. 멀건 죽을 급히 삼키고는 곧바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정도의 힘만 남을 때까지 그대는 작업장에서 일해야 하리라. 그대에게는 결코 팔 수 없는 권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세금 낼 권리다.”

‘해고된 노동자와 그들을 막기 위해 채용된 노동자.’ 그 둘 사이에는 ‘자본’이라는 서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놓여 있었고, 그런 갈등을 경기를 관전하듯 여유로운 자본가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신과 같았고, 악마로도 보였으며, 아주 가끔 인간처럼 보였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에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안경이 부서지면서 눈 밑을 살짝 찢어놓았고 그 틈으로 피가 온 힘을 다해 나오려 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던 용역직. 나는 억울하게 내쫓기기 전까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막은 나쁜 놈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한 일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돈 몇 푼 벌기 위해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이들을 더욱 할퀴었다는 자책감과 악덕 자본가의 손에 놀아났다는 분노에 나는 곧 일을 그만두고 군에 입대 했다. 10년이 지났지만 그곳 정문에는 아직도 복직을 외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도 하얀 눈이 내리고 있고, 내 눈 밑은 아직 그날을 기억한다는 듯 욱신거렸다.

국가의 존재 이유

인간은 죽지 못해 산다고 한다. 어쩌면 국가도 비슷하지 않을까. 폭격에 부모와 형제를 잃은 팔레스타인 아이들. 옥수수 한 줌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북한의 아이들. 식수를 얻기 위해 양동이를 메고 10km를 걸어가는 소말리아 아이들. 하루 14시간 학원을 누비는 대한민국 아이들.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이 선택한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다만 나중에 원하는 나라를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대한민국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대한민국이 과연 좋은 나라라서 그럴까? 그렇다면 대체 ‘좋은 국가’란 어떤 국가일까?

국가의 의미에 대해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한 철학자는 토마스 홉스였다. 홉스에 따르면 개인은 자연에서 살아갈 수도 있지만 고독과 불안을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에 각자가 자연인이 되는 권리를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계약한 것이다. 또한 만인은 자신을 지키려는 욕망 때문에 경쟁을 하게 되고, 극심한 경쟁은 원하지 않더라도 결국 폭력을 야기하므로, 이런 폭력성을 제거하기 위해 공동의 권력을 세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회계약론이다. 쉽게 말해 개인은 혼자서는 불안하기 때문에 국가란 공동체에 자유와 권리를 양도하여 자신의 생명과 안정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다. 그렇다면 앞서의 물음, 즉 ‘좋은 국가란 어떤 국가인가’에 대해서도 답을 얻을 수 있다.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국가’가 좋은 국가인 것이다.

당신이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가장 큰 이유는 당신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명과 안전은 전쟁의 위협에 따른 그것보다 광범위한 뜻을 지닌다. 자살률이 1위인 나라.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이 1위인 나라.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1위인 나라. 노인 빈곤율이 1위인 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 예비 신혼부부의 결혼비용이 2억 7,000만 원인 나라. 부부의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 근무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

사실 우린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굳이 이런 통계 자료를 열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국민들이 바다 한가운데에 수장되는 것을 우리 두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는 참 이기적이다. 누군가는 그 참사를 자신의 장기 기억에 담아 잊지 않으려는 반면에, 누군가는 그 고통을 빨리 외면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라 믿는다. 내 가족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살다 보니 국가는 점점 본연의 역할에 게을러진다. 개인은 불행해도 불평만 늘어놓을 뿐 절대부지하고, 불위한다. 역사상 이보다 ‘최순실과 무리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어디 있었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라는 단어는 기원전 6~5세기경 ‘탐구하여 알아낸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Historia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탐구하여 알아내는 주체가 존재하며, 그가 곧 역사가다. 독일의 역사가 랑케는 “사실의 엄격한 제시는 역사 서술의 최고 법률이다.”라며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라며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한다고 주장했다.

랑케처럼 역사는 진화하지 않고 과거에 머물며 단지 변화할 뿐이라고 정의한다면 지금의 우리는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역사가들은 역사라는 단어의 의미대로 탐구하여 알아내기 위해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시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가는 언제나 현재에 있으며, 사실은 항상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대에는 에드워드 카의 주장이 설득력 있고 타당해 보인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혁명’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반란’이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사람을 두고 ‘영웅’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역적’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역사를 교훈 삼아 현재를 판단하고 발전된 미래를 위한 밑거름으로 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보된 해석들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해야 한고, 그 해석은 상대적이며, 모두 존중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오늘의 사건도 올바른 역사의 가르침으로 해석되고 인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없앤다는 건 멋진 일이야. 버려야 할 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많지만 명사도 수백 개는 되지. 없애는 건 동의어뿐이 아니야. 반대어도 있네. 도대체 단어란 게 단순히 다른 말의 반대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게다가 하나의 낱말은 그 자체가 반대어를 포함하고 있네. 예를 들어 ‘좋다’라는 말을 생각해보게. ‘좋다’라는 말이 있으면 구태여 ‘나쁘다’는 말이 필요하겠나? ‘안 좋다’로 충분하지.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정확한 반대어라고 할 수 있지. ‘좋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싶을 때 ‘훌륭하다’느니 ‘멋있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필요할까? ‘더 좋다’라는 말이면 충분하고 그걸 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더욱더 좋다’로 하면 되지. 물론 이런 형태의 단어를 이미 쓰고는 있지만 신어사전 최종판에는 good이란 말 하나만 남을 걸세. 결국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에 대한 모든 개념은 다만 여섯 개의 낱말로, 실제로는 단 하나의 말로 표현되는 거지. 멋있지 않나.”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말한 것처럼 매년 어휘를 줄여 결국 단 하나의 언어만 사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언어의 제약은 사고의 폭을 줄이고 제한시켜 인간은 결국 이진법을 입력시켜놓은 로봇과 같아질 것이다. 국가가 지정한 단 하나의 국사책으로만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마치 이 세상에 ‘Good’만 존재해야 하며, ‘Bad’와 ‘Excellent’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1984』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균형은 다양성으로만 충족되며 모든 것을 다 제거하고 하나만 남기는 정치적 행위는 독재일 따름이다.



2부 부르주아의 국가



국가라는 폭력기구

“당신은 암입니다.” 의사의 진단은 환자를 절망의 구덩이에 집어넣을 만큼 치명적이다. 환자는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그의 결정에 따른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원인과 해결방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이렇듯 맹신 관계가 만들어진다. 의심을 하기에는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즉, 정보의 비대칭성은 정보를 가진 자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역설적이게도 환자가 없다면 의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사는 마음만 먹으면 환자를 여러 번 방문하도록 유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 수 있다. 소비자가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판매자가 쉽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도 이럴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원을 살펴보자. 동물원은 동물들에게 음식과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보살펴주며,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동물원의 목적은 관람객을 통한 수익 확보와 존속이다. 이 사실을 동물들이 알게 된다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처럼 서로 연합해 인간과 전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국가는 동물원과 같다. 우리 안에 든 동물들이 잘 지내야 동물원에 이익이듯 국가도 국민들이 잘 지내야만 이익, 즉 세금의 수탈이 용이해진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온몸을 바쳐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정신의 기원』에서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단순 교환 관계임을 밝혔다. “…… 유형의 교환은 강탈하는 것이다. 교환하기보다는 강탈하는 편이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것을 교환이라고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강탈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다른 적으로부터 보호하거나 산업을 육성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원형이다. 국가는 더 많이 그리고 계속해서 수탈하기 위해 재분배해주며 토지나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고 관개시설 등 공공사업의 확충을 통해 농업생산력을 높이려고 한다. 그 결과 국가는 수탈의 기관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농민이 영주의 보호에 대한 답례로 연공을 지불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면적으로 국가는 초계급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표상된다. …… 그러므로 강탈과 재분배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교환’으로 간주될 수 있다.”

국가란 ‘국민에 대한 강탈과 재분배의 교환을 통해 영속이 가능한 권력’임을 일본의 사상가는 날카롭게 제시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권력의 주체가 국민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철저히 무시되고 주객이 전도되어 국가와 국민이 주종관계가 되었음을 비판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 분석에 따르면 국가가 복지정책을 펼치는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된다. 바로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서다. 국가가 행하는 안보 역시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지만 실상은 효율적인 국민 통제와 정당한 세수 확보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건강이 걱정되면 담배 판매 자체를 금지해야 하지만 국가는 담뱃세를 인상한다. 즉, 국민 건강과 담뱃세의 교환이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한 첨예한 논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환자의 이익을 실현해주는 것이듯 국가의 존재는 국민의 이익을 실현시킨다고 주장하자, 트라시마코스는 양치기가 양을 잘 키우는 것은 양들을 팔아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고 반론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관중 역시 이렇게 말했다. “군주가 백성을 아끼는 이유를 생각하면, 그들을 쓰기 위해서다.” 따라서 우리는 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실현해야 할 국가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라도 국민을 수탈하고 폭압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국가는 영속적인 수탈을 위해 우리에게 조금 나눠준 것뿐이다.

희망을 파는 사람들

개인이 사기를 치면 경찰서로 가지만 정치인이 사기를 치면 종종 면죄부를 받는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부반장 후보가 된 나는 학급 아이들에게 공약을 걸었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모두에게 햄버거를 돌리겠습니다!” 아직도 햄버거 때문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어쨌거나 높은 지지율로 부반장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반장이 되려는 욕심에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해버린 것이다. 부반장이 되었다는 자랑스러움 뒤에는 어머니의 홀쭉해진 지갑이 존재했으니…… 그때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0-5세 보육 및 교육 완전국가책임을 약속하여 맞벌이부부의 표를 얻었다. 또한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을 약속하여 몸이 아픈 가족들의 표를 얻었으며, 65세 이상 어르신들께 월 20만 원 지급을 약속하여 노년층의 표를 얻었다. 당선 후 그 수많은 공약들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면 이것은 대국민 사기일까, 정치인으로서의 당연함일까?

나폴레옹은 말했다. “지도자란 희망을 파는 상인이다.” 당선되면 반드시 이행하겠다던 정치인들의 헛된 공약에 국민들은 각자의 염원을 담아 표를 던졌다. 그러나 정작 돌아온 것은 물건을 사면 다시 만날 수 없던 잡상인 같은 무책임뿐이었다. 그들의 수많은 약속은 본인들의 목적지까지 반드시 밟고 지나가야만 했던 낙엽에 불과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 중에는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에 대한 상설특검제’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자신이 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진정성 있는 공약이었다면 피의자 신분이 되고 나서도 억울함만을 주장하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리 없다. 결국 그 공약은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대통령 당선을 목표로 깨끗한 이미지를 부각하고자 적은 한 줄이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지키지도 못할 수많은 희망들을 팔았던 정치인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과 닮았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현혹하여 차가운 죽음의 바다로 몰았던 반인반조의 괴물 말이다. 그리스어 세이렌은 영어로 사이렌이다. 위험을 부르는 소리가 위험을 알리는 소리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듣기만 좋은 감언이설이 아닌 위기 상황에서 경보음을 울려줄 진정한 정치인이 필요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자유, 행복, 사랑 등은 우리가 삶에 부여한 소중한 가치들이다. 정의는 그 소중함의 분배를 뜻하는 게 아닐까. 소중하다는 말은 한정됐다는 뜻이고 그 한정된 것을 어떻게 분배하는 게 옳은지를 결정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를 뜻하는 게 아닌가 한다. 물론 그 ‘옳다’라는 기준은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정의라는 가치를 시대적 관점에서 눈여겨봐야만 한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도 비슷한 문제가 나온다. 어벤져스 팀이 정의를 실현하는 동안 무고한 시민까지 희생된 점이 부각되자 정부는 UN의 허락하에 활동할 것을 지시하게 된다. 세계 각국은 ‘슈퍼히어로 등록제’에 찬성하고 UN 산하에서 활동하지 않을 히어로는 은퇴하라는 강제성을 피력한다. 이런 정부의 결정에 아이언맨은 “우리는 통제가 필요하다.”며 동의한 반면, 캡틴 아메리카는 “정부기구가 아닌 우리 스스로 책임질 문제다.”라며 반박한다. 모든 영웅의 목적은 사회의 정의 실현이다. 그 공통의 목적 아래 서로 다른 능력의 캐릭터들이 ‘악’이라는 공공의 적을 물리쳤고 시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영화 <시빌워>는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들 간의 첨예한 갈등을 다룬다. 영웅들 사이에 정부라는 새로운 권력이 관여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영웅도, 악도 아니다. 다만 그 권력은 영웅들을 서로 대립시킬 만큼 거대하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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