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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다른, 너무 같은 두 남자 이야기

최낙정 지음 | 함께북스



너무 다른, 너무 같은 두 남자 이야기

최낙정 지음

함께북스 / 2017년 3월 / 272쪽 / 15,000원





내가 만난 노무현



노무현과의 첫 만남

1999년 당시 서울 종로 지역구 국회의원 노무현이 내가 청장으로 재직하는 부산해양수산청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다음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결심하고 여론도 살펴볼 겸 부산 신항 개발 건으로 대기업인 S사와 D사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공사 발주가 지연되고 있는 사태를 해결할 방도를 찾기 위함 같았다. 그런데 알아보니 우리 청사에 있는 기자실에만 들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준비할 것이 있는지 확인했더니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평소 내 스타일대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공식적으로 부산해양수산청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실에서 용무만 보고 가겠다’는 그의 방문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내 방문이 열리더니 “노무현 의원님이 오셨습니다!” 하는 비서의 보고와 함께 노무현 의원이 불쑥 들어왔다.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 노무현은 당선이 보장되는 종로구를 포기하고 부산 강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된다.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는 결국 높은 지역장벽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낙선한 그가 해양수산부 장관이 될지 모른다는 보도를 접하고는 나는 내심 긴장했다. 솔직히 나는 그때 그의 부임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였다. 청문회로 유명해진 정치 스타 한 사람이 험지에 출마하여 낙마한 위로 차원으로 장관에 임명되어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가 부산에 오는 날짜가 드디어 잡혔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에 제일 먼저 내려와서 업무를 보고받고 상황을 점검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의외의 지시가 떨어졌다. 다른 기관장은 각자 하던 일을 하고 부산해양수산청장인 나만 공항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공항에서 청사로 오는 길은 무척이나 길었다. 그의 질문 공세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따로 업무보고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나는 하나하나 소신껏 답해주었다. 청사로 오는 차 안에서 어지간한 업무보고는 거의 다 한 것 같다. 그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건성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을 경우 계속 물었다. 너무 많이 묻는 게 미안해서인지 “이렇게 기초적인 사항도 모르는 사람이 장관이라니 우습지요?” 하며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일단 정리가 되었다 하면 무섭게 밀어붙였다. 관계기관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관계기관의 실무자가 반대한다.”고 말하면 직접 그 실무자를 만나러 가는 통에 어떤 때는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다른 부처의 실무자를 만나는 건 의전 문제도 있거니와 우리 실무 담당자를 무시하는 결과가 되기도 하니 제발 참아 달라.”고 하면 “알았다!”면서 바로 실무자에게 전화해서는 “절대 무시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 성질이 급해서 그런 것이니 오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출신 지역이나 대학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그냥 일 잘하면 누구나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늘 진지했고 실용을 추구했다. 핵심을 단번에 파악하는 능력과 나름대로의 철학과 소신이 뚜렷했다. 하지만 의견이 다른 경우 상대가 누구든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와 일하면서 힘든 면도 있었지만 즐거웠다. 장관의 신분으로 자신의 일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신명 나게 일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장관 앞이라고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과 싫은 것은 면전에서 바로 말하니 장관 앞이라 위축되었던 사람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렇게 쩔쩔매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거나 준비가 부족해서이니 더욱 철저히 준비하고 학습하라고 요구했다. 회의 중에도 분위기는 활발했지만 우리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어떤 질문이나 질책이 불시에 쏟아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매사에 완벽을 추구했다. 지금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라 하더라도 완벽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추구했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하여 뒤로 미루어둔 골치 아픈 정책들을 끄집어내어 정면 돌파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무자들은 그의 계획과 구상을 따라가기에 숨이 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공직에 대한 갈등으로 탈출을 꿈꾸던 나 는 일에 매달려 살았다. 나의 진정한 보스를 드디어 만난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



말이 통하는 국무회의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재직 중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대리 참석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국무회의에서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자기 부서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국정 현안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아낀다.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괜히 적을 만들 수도 있고, 가만히만 있으면 최소한 중간이라도 간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는 달랐다. 대통령의 질문이 느닷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궁금한 점이나 고민 사항을 대통령이 직접 안건으로 올려 즉석에서 자유토론이 벌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국정 전반에 걸쳐 토론의 장이 활성화된 것이다. 나는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이상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무위원으로서 다른 부처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좋은 생각이 있으면 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의 화법은 직설적이고 소탈하면서도 유머가 있었다.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때 나는 경직된 자세를 풀고 유머를 섞어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대통령을 왕이나 국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괜히 나서지 말고 조용히 침묵하면서 하명을 기다리라는 식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한마디가 불변의 진리가 되고 무조건 이에 따라야 한다면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대통령을 존경하되 국민들로부터 큰 머슴으로 선택받은 보통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게 아닐까? 노무현은 그런 면에서 아주 소탈하고 마음이 열린 대통령이었다.



아! 노무현



청천벽력 같은 소식

노무현은 2008년 2월,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인 봉하 마을로 내려갔다.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간 대통령의 인기는 대단했다. 농사를 직접 짓는 그 모습을 보고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통령은 이들에게 “진작에 이렇게 관심을 가졌다면 지지도가 꽤나 올라갔을 텐데…….” 하며 같이 박장대소하고는 했다. “이제 정권퇴진을 외치며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 정권을 국민의 손으로 뽑았으니 믿고 따라야 하며, 단지 건전한 비판의식은 잃어서는 안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이명박 정부로부터 갖은 고초를 당할 때 나는 멀리서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그가 잘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나이 노무현답게 역사와 국민을 믿고 지금의 고난을 의연하게 잘 대처하리라고 믿었다 그를 도울 길이 없으니 분하고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날 아침 나는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안면이 있는 젊은 사람이 내게 다가와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노 대통령이 바위에서 떨어져 위독하시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어리둥절했다. TV 화면을 지켜보면서도 믿어지질 않았다. 문재인 실장이 공식적으로 그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나는 그의 유서를 읽고 또 읽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또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그의 고통이 전신으로 전해온다. 그리고 평소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던 지사들을 유난히 좋아하고 그리워했던 그가 떠올랐다. 그렇다! 그는 지사의 길을 늘 동경했다. 안중근, 전봉길, 전태일 그리고 민주화를 외치다 현장에서 목숨을 버리거나 잃은 열사들의 삶을 존경했다. 아, 그는 몸을 던져 이 시대를 깨우려 했구나!

문재인과 나란히 상주석에 섰다. 수많은 사람이 같이 운다. 소식을 듣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어르신, 젊은이, 아이들 계층도 다양하다. 광화문에서 열린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현직 대통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헌화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며 화난 마음을 참고 있던 순간 옆에 있던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일어나 달려 나가며 “사죄하라!”고 고함을 외쳤다. 그는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 나갔다. 참으로 가슴 아픈 2009년이었다.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후배 노무현의 영결식장에서 어린아이처럼 통곡했다.



내가 만난 문재인



문재인, 나의 다리가 되어주다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장을 받은 지 15일 만에 거듭된 실언은 노 대통령께 걱정을 끼치고 장관직에서 내려왔다. 한바탕 꿈을 꾼 것도 같았다. 공직을 떠나는 날, 내 차를 직접 운전하여 청사를 나섰지만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언론의 돌팔매질을 연이어 당했기에 평소에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몸을 사리느라 그랬는지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전화를 준 사람이 문재인 수석이었다. 그는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며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이제까지 도와주어 고맙고 기대를 저버려 미안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나 자신에 대한 회한과 안타까움,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리고 인간 노무현과 문재인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문 수석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위로의 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면초가 속에서 막막하고 황망했던 나에겐 그의 위로가 큰 힘이 아닐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도와드릴 일은 없나요? 정치에 뜻이 있으시다면 나중에 제가 당과 가교 역할을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치? 난 정말 정치에 뜻이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집사람과 굳게 약속했다. 그래서 문재인 수석의 말을 나는 예의상 하는 말로 듣고 그냥 흘려버렸다. 그러나 문재인 스스로 ‘운명이다’고 선언했듯이 나에게도 정치라는 운명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정치인 문재인



바람이 다르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문재인이 이제 정치의 제 일선에 섰다. 정치와 자신은 맞지 않는다며 양산의 시골생활에 자족하던 그를 불러낸 건 바로 우리 국민이다. 국민이 그를 원했고 그는 따랐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출마 선언을 한 문재인은 2007년 총선에 참여했다. 그에 앞서 출마하여 낙선한 경험이 있는 내가 보기에도 뭔가 어정쩡했다. 미력이나마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출마한 사상구의 새누리당 후보는 손수조였다. 문재인을 골탕 먹이겠다는 의도로 한나라당은 거물급을 고려하다가 손수조로 결정을 선회했다 사상 터미널 부근에 문재인 후보의 선거 사무실이 꾸려졌다. ‘바람이 다르다’라는 구호 옆에 그의 대형사진 현수막이 내걸렸지만 부산에는 이상하리만큼 박근혜 바람이 생각보다 강했다.

바람에는 맞바람을 놓아야 한다. 문재인을 바람의 중심에 올려놓아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 분위기는 미지근했다. 박근혜는 실질적으로 대통령 후보 수준이 되어 선거를 이끌었지만 민주당은 문재인을 책임 있게 내세우지도 못하고 서로 견제하고 눈치를 보며 막연한 낙관론만 펼치고 있었다. 결국 문재인은 책임 있는 지위에서 선거를 이끌 수 없었다. 문재인이 처음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깨끗한 사람이 혼탁한 정치판에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정치판이 너무 더럽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도 너무 깨끗한 사람은 또 힘들지 않겠느냐고 우려하고 있으니 사람은 참 이중적이고 간사한 존재다. 깨끗한 정치,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제대로 대우받는 세상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깨끗하고 성실하며 정직한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해야 한다.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먼저 사회지도자부터 부정과 부패에 가혹하리만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금까지 어느 정부도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단 흙탕물에서라도 살아남아야 하기에 더러운 물이라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은 다른 것 같다. 다른 정치인들은 대부분 조금이라도 더 권력의 중앙부에 머무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그는 대통령 옆에 있으면서도 권력욕에 물들지 않았다. 도리어 하루빨리 자연인이 되고 싶어 그렇게 붙잡는 노 대통령을 뿌리치고 히말라야로 떠나지 않았던가. 그때의 수염 덥수룩한 모습의 사진을 보면 정치인이라기보다 수행자 같아 보인다. 그는 정말 수행자처럼 지냈다. 문재인은 정치인이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고 권력욕도 애초에 없는 사람이다. 그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노 대통령이 장관을 맡아달라고 사정해도 끝까지 거절했던 사람이다. 그는 너무 야박하다 싶을 정도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며 절차를 존중하고 뒤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거래나 밀실작업을 극도로 싫어한다. 원칙을 존중하는 면이라면 나는 그만한 사람을 이때까지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을 선택하는 일을 양복 고르는 일로 비유한다면 아무리 디자인이 멋지고 바느질이 날렵하게 잘되었다 하더라도 천이 좋지 않으면 선뜻 손이 가기 어렵다. 옷은 천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표현해 새누리당은 천도 디자인도 옛날과 똑같다. 그 상표를 붙인 옷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이제까지 불량품을 너무 많이 양산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국민들의 촛불에 의하여 끌어내려진 불량품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다. 시대는 조금씩 바뀌며 진화한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구시대의 막내라고 자처한 바 있는데 그 막내가 구시대 청산을 책임지고 이 세상을 훨훨 떠났다. 이제 새 시대의 새 아이가 태어나려 하고 있다. 그 아이를 잘 받아 안아 누구보다 잘 키우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 아닐까.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은 노무현과의 만남과 이별을 운명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에 나오는 ‘운명’과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이것도 나의 운명!”이라고 했다. 이제 노 대통령이 남긴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것이 그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11년 그는 『운명』이라는 책을 집필하며 성큼 국민 속으로 들어왔다. 시대가 그를 원했고 그는 운명에 따랐다. 노무현과 문재인, 두 사람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여 혼자 힘으로 가난을 극복했다 그리고 혼자 잘살 수도 있었지만 천성이 그렇게 살도록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법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것도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학생들을 우연히 돕게 된 것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노동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운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던 것도,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가 된 것도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한 것만이 아님은 확실하다. 아마 친구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문재인은 정치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정치하지 말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그 말은 도리어 정치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역설로 받아들여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죽음으로 친구 문재인에게 큰 숙제를 남겼다. 사실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꼭 그 숙제가 풀리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또한 대통령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숙제를 영원히 못 푸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고 나누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면 된다. 우리 모두 부족한 존재이지만 나보다 힘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그가 남긴 숙제를 푸는 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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