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너머 꿈
고도원 지음 | 나무생각
꿈 너머 꿈
고도원 지음
나무생각 / 2007년 4월 / 207쪽 / 10,000원
1. 당신의 꿈이 춤춘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네 꿈이 뭐니?” 내가 좋아하는 질문이다. 나는 어린이들을 만나면 꼭 한 번씩 이 질문을 던져본다. 아이들은 대부분 씩씩하게 대답을 한다. “축구선수요.” “선생님이요.” “멋있는 가수요.” 꿈을 심어주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은 그 사람의 꿈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꿈은 클수록 좋다. 왜? 꿈이니까. 황당해도 좋다. 대답하는 아이가 만약 황당한 꿈을 이야기하더라도 절대 그 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꿈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무조건 박수치고 칭찬해 주자.
“너, 정말 좋은 꿈을 가지고 있구나. 멋진걸.” “너는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대단해.” 바로 그 순간, 아이가 말한 꿈이 형상화된다. 꿈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너무 크고, 너무 황당했던 꿈도 그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좀더 탄탄하게 구체화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꿈을 품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꿈을 지지해 주는가 하는 것이다.
꿈이 무엇인지 물은 다음, 내가 이어서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아이가 “훌륭한 작가가 돼서 노벨 문학상을 타는 거요”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래? 아주 훌륭하구나. 그럼,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뭘 하고 있니?” 하고 다시 묻는다.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기본기를 갈고 닦아야 한다. 작가가 되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많이 읽는다든지, 글을 많이 쓴다든지 하는 꿈의 기본기가 필요하다. “매일 글을 노트 열 장씩 쓰고 있어요.” 아이가 만일 이렇게 대답했다면, 그 아이는 이미 절반의 꿈을 이룬 셈이다.
요즘 나는 중년의 고개를 넘거나 황혼에 접어든 이들이게도 종종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럴 때면 대부분 대답 대신 멋쩍은 웃음이 먼저 건너온다. “꿈은 무슨 꿈이요. 이 나이에…….” 그러나 나는 안다. 내 질문 앞에 얼굴을 붉히며 당황했던 그 이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또는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한 번쯤 내가 던진 질문을 되새겨 볼 것이라는 것을……. ‘내 꿈이 뭐였더라?’
꿈은 젊은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꿈도 사라진다고 믿는 것은 ‘꿈’과 ‘직업’을 혼돈하기 때문이다. 꿈은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후세에 남겨줄 유산이 될 수는 있다. 그러므로 나이 든 사람에게도 늘 꿈이 필요하다. 꿈보다 더 좋은 유산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내 꿈이 뭐지?’ 당장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그 대답을 준비해 보기 바란다. 꿈이 너무 작고 소박하다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꿈이 너무 거창하고 황당하다고 민망해할 필요도 없다. 꿈이 너무 많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꿈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 나이가 많다고 접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의 몸 한가운데에서 뛰고 있는 심장처럼, 당신의 가슴속에 언제나 팔딱거리며 숨 쉬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꿈 너머 꿈은 무엇입니까?
장래 희망으로 의사나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된 다음에 뭘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다 나오는 대답도 “돈을 많이 벌려고” “편하게 살려고”와 같은 자신의 안락과 평안만을 위한 답변이 고작이다. 꿈 너머 꿈을 꾸는 것은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나’에서 ‘이타적인 나’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백만장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백만장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이타적인 발걸음을 한 번 더 내디뎌야 한다. 의사가 되어 인류의 난치병을 없애는 데 일조하겠다는 포부도 좋겠다. 무엇이 됐든, 그것은 내 배 불리고 내 등 따뜻하게 하는 정도의 꿈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꿈 너머 꿈이다.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의사가 되겠다는 꿈만 가졌을 때는 대입에 실패했을 때 좌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되어 가난한 이들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꿈 너머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길이 보인다. 의사가 되지 않더라도 가난한 이들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길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무지개를 보는 사람이다. 지금은 비가 내리지만, 조금만 더 걸어가면 그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피어나는 것을 내다보며 묵묵히 빗길을 가는 사람이다. 당신의 꿈 너머 꿈은 무엇인가?
2. 꿈을 가진 사람들
아름다운 판결문
충남 연기군의 한 임대아파트에 칠십 대 노인이 한 분 살고 계셨다. 노인은 아내를 잃은 뒤 동네 아파트 공사장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힘겹게 지내왔다. 그 막노동 자리마저 ‘늙었다’는 이유로 밀려나게 되자 이제는 봉사단체가 베푸는 무료 급식에 끼니를 의지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노인에게 어느 날 퇴거 요청 통지서가 날아왔다. 법 절차를 잘 몰랐던 것이 문제였다. 중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이 임대아파트에 들어올 때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아내를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고 간호하느라 딸이 대신 계약을 해줬는데, 그 딸이 자기 이름으로 계약하고 아버지가 살도록 한 것이 문제였다. 실제 계약자인 딸이 무주택자가 아니므로 집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소송 끝에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에서 노인은 희망을 되찾았다. 판결문은 이렇게 노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계약은 딸 명의로 맺었지만, 이는 병든 아내의 수발을 위해 자리를 뜨지 못한 피고를 대신해 딸이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법 지식 부족으로 벌어진 실수로 판단된다. 피고는 이 주택 임차를 위해 본인의 돈으로 보증금을 내고, 실제로 이 주택에 살았다. 피고는 사회적 통념상 실질적인 임차인으로 충분히 생각될 수 있으니, 법적으로도 임차인으로 보는 것이 공익적 목적과 계획에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판결문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한다. 법의 해석과 집행도 냉철한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판결문을 접하게 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바이러스처럼 이 훈훈한 소식을 전해 나갔다. 뜻밖의 판결과 온기를 담고 있는 판결문이 인터넷을 통해 번져 나가고, 판결문을 작성한 판사에게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 판사는 기자의 질문에 “소외 계층에 대한 배려 없이 법 조항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믿는다.”고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원본을 구해 읽어본 후 나는 그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꿈 너머 꿈을 가지고 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판사가 되어, 억울한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 이것이 꿈 너머 꿈이 아니었을까? 그런 꿈 너머 꿈이 있었기에 그토록 아름답고 따뜻한 판결문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꿈이 있으면 행복해지고 꿈 너머 꿈이 있으면 위대해진다.
선장부터 구하라!
“물에 빠진 선장부터 구하라”
- 나는 괜찮으니 해상에 표류 중인 선장을 먼저 구조해 달라
침몰한 선박의 60대 기관장이 표류 중인 선장을 먼저 구조토록 한 뒤 자신은 차가운 바닷물에서 수시간 떠다니다 뒤늦게 구조됐으나 끝내 저체온증으로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 이 선박은 해상사고 연락이 올 경우 출동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으며 기관정 정씨와 선장 임씨 등 2명만 타고 있었다. … 때마침 인근을 지나던 이씨가 이들을 발견, 구조에 나섰다. 침몰 당시 펼쳐진 구명벌을 타고 있던 기관장 정씨는 이씨가 구조하려고 접근하자 “구명벌을 타고 있으니 나는 괜찮다. 물에 빠진 선장을 구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 신고를 받은 목포해경은 정씨를 구조해 목포로 이송했으나 정씨는 저체온증으로 끝내 숨졌다. 목포해경 관계자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 정씨의 행동에서 살신성인의 고귀한 정신이 느껴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나는 이 기사를 오래도록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또 다른 질문이 계속해서 번개처럼 스쳤다. ‘지금의 나의 삶은, 혹 누군가 나를 대신해 목숨을 던진 덕분이 아닐까? ……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금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가? ……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를 위해 아낌없이 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3. 꿈 너머 꿈으로 가는 길
장애물이 아니라 징검다리였네
꿈 너머 꿈으로 가는 길이 흔들릴 때가 있다. 수많은 장애물이 복병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때로 그 장애물은 너무 크고 무거워서 깊은 고통과 절망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가장 중요하다. 결코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먼 훗날 자기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 되면, 그때 길을 가로막았던 장애물이 사실은 꿈 너머 꿈으로 가는 길에 더없이 소중한 징검다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일찍부터 글쟁이의 길을 가고자 했다. 그 꿈은 금세 이루어지는 듯했다. 대학 재학시절 《연세춘추》 학생 기자가 되어 편집국장 자리에 까지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유신시대라는 시대적 상황 앞에서 날개는 금세 꺾였다. 강제징집으로 입대하여 만 3년 만에 제대를 하고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다. 어떤 곳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방구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수중에 있던 전 재산을 날렸다. 다시 정신을 차려 이번에는 웨딩드레스 장사를 하게 됐다. 장사는 잘됐다. 그러나 그 사이 아내는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고통과 시련의 그늘이 늘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다 무명의 잡지사에서 기자직을 제안해 왔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다시 전화를 하겠다던 잡지사의 전화는 두 번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 그 잡지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의 환청은 6개월 동안이나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뿌리깊은 나무》 기자가 되었다. 얼마나 신바람이 났던지, 첫 월급 십만 원을 받았을 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는데 돈까지 주네?’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뿌리깊은 나무》 잡지가 신군부의 지시로 강제 폐간되어 다시 백수가 되어야 했다. 내 인생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 앞에서 나는 무력하기만 했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뒤돌아봤을 때 나는 놀랐다. 내 인생의 길을 가로막는 끔찍한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나로 하여금 내가 꿈꾸는 길로 제대로 걸어올 수 있도록 도와준 징검다리였던 것이다. 만약 문방구를 하려고 했을 때 사기를 안 당했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지금까지 어느 고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열심히 운영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내가 유산을 하지 않아 웨딩드레스 장사를 계속했다면? 지금도 사울 아현동 고개에서 웨딩드레스 장사에 홈빡 빠져 나날이 번창해 있을지도 모른다. 《뿌리깊은 나무》가 폐간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 회사의 임원이 되어 있지 않을까? 모두 다 성공적이고 근사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좌절과 고통의 장애물이 없었더라면 분명 오늘의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탄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니체의 유명한 말이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고치고 싶다. “꿈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정말이지 꿈을 가진 사람은 그 어떤 장애물도 두렵지 않다. 장애물이 꿈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실현시키는 징검다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그 절망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대신, 자신의 마음과 대화를 해야 한다. ‘틀림없이 여기에 무슨 뜻이 있을 거야. 그 뜻이 뭘까?’ 그 뜻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길을 가면 된다.
‘비밀 산타’의 위대한 비밀
꿈 너머 꿈의 출발점은 삶의 방향을 자기중심에서 단 한 걸음, 꼭 한 걸음만큼이라도 남을 위한 이타적 방향으로 내딛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기성숙이며 성장의 발걸음이 된다. 얼마 전, 미국에서 공개된 ‘비밀 산타’의 존재가 전 세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수십 년간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산타가 나타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현금을 선물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가난한 이들에게 100달러, 200달러, 500달러짜리 지폐를 전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렇게 26년간 베일에 싸여 선행을 하던 산타의 존재가 어느 날 공개되었다. 그동안 자신을 꽁꽁 감춰왔던 산타는 58세의 장거리전화회사 사장인 래리 스튜어트였다.
그는 백만장자였지만 가난의 고통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1971년 겨울, 노숙자 신세였던 그는 이틀 동안 굶어 허기를 참을 수 없자 무작정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시켜먹었다. 그리고 지갑을 잃어버린 척했다. 그때였다. 식당 주인이 자리로 와서는 바닥에서 20달러를 주운 척하며 “이 사람아, 자네가 돈을 떨어뜨린 것 같네.”라며 곤경에서 구해준 것이다. 그는 그 돈으로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하나님께 맹세했다. ‘돈을 벌어 남을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되면 반드시 돕겠습니다.’ 그리고 1979년, 크리스마스 2주 전의 어느 날이었다. 또다시 실직 상태였던 그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초라한 차림의 여종업원을 보고 그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거스름돈 20달러를 팁으로 건넸다. 여종업원은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곧바로 은행에 가서 200달러를 잔돈으로 인출해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5달러와 10달러짜리 지폐를 나누어주며 ‘비밀 산타’의 첫 해를 보냈다. 이후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나누어줬다. 그러는 동안 그의 경제사정은 점점 좋아졌다. 그의 산타 활동은 전국으로 범위를 넓혔으며 선물도 100달러짜리로 커지게 되었다. 1999년에는 18년 전,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던 식당 주인을 수소문해 천 달러가 든 선물봉투로 보답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공개된 뒤에 많은 사람들이 편지와 이메일로 자신도 ‘비밀 산타를 해보겠다’는 뜻을 알려왔고 래리 스튜어트는 그 사실에 대해 크게 기뻐했다. 그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1월 12일. 그는 식도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크리스마스에도 ‘비밀 산타’의 역할을 수행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몇 명의 대리 산타를 통해 자신의 돈을 나누어주었던 것이다.
자신만을 위한 꿈을 이룬 사람은 성공한 인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은 될 수 없다. 큰 부자도 될 수 있고, 큰 성공도 할 수 있지만, 사람을 감동시키고 마음으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타적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린 그 순간, 거기에서부터 위대한 영향력이 나오게 된다. 래리 스튜어트의 아름다운 한 걸음처럼 말이다.
큰 꿈, 좋은 꿈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기다림’만큼 ‘멈춤’도 알아야 한다. 꿈을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힘들어서 길을 갈 수가 없다. 다른 길로 가기 일쑤다. 작은 장애를 만나도 쉽게 쓰러진다. 멀리 보며 적절하게 멈출 줄 아는 사람에게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현실이 마냥 어려울 때면 잠시 쉬면 된다. 그 시간은 꿈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 상태에서 또 다른 좋은 아이디어들이 생성되기도 한다. 잠시 멈춰 서 있지만, 심장의 박동까지 멈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멈춤’은 ‘멈춤’일 뿐, ‘후퇴’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