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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청민 지음 | 첫눈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청민 지음

첫눈 / 2016년 12월 / 280쪽 / 13,000원





토끼와 용왕님



이모는 누구에게나 반가운 사람이었다.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옛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놓곤 했다. 이모는 부모의 사랑을 이길 자식은 없다며 할머니의 희생을 치켜세웠고, 그러면 할머니는 “됐다, 고마 해라.” 언성을 높였다. 동그랗게 모여 앉은 친척들은 이모의 너스레에 깔깔 웃었다. 말을 얼마나 재밌게 하는지 다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모는 언제나, 딸이 없어서 그게 아쉽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이모에겐 아들만 둘 있었다. 그들은 소위 무뚝뚝한 경상도 보리 문디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첫째 아들, 나에게는 사촌오빠인 박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스럽게 고집이 셌다.

“요한아, 옆집 아처럼 엄마한테 사근사근하면 안 되겠나.”이모는 종종 오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오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엄마는 가 엄마만큼 우리 얘기 잘 들어주나.” 하며 반박했다. 최근에야 무뚝뚝한 남자들을 위해 츤데레라는 말이 나왔지만, 나에게 오빠는 그저 자기 엄마에게 무뚝뚝한 문디 자식이었다. 착하기는 한데 어딘가 묻은 무뚝뚝함은 씻어낼 수 없는 문디 자식. 그런 오빠에게도 순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오빠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스물, 고작 스무 살 때였다.

이모는 간암을 앓았다. 간암은 쉽게 재발했고 그때마다 고주파 열치료술을 받았다. 몸에 작은 바늘을 꽂아 종양을 태우는 힘겨운 치료였다. 다섯 번째 치료를 받던 날, 결국 이모는 주치의와 의논 후 간이식을 결정했다. 주치의가 제안한 방법은 이모의 간을 완전히 떼어내고 기증자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기증자의 건강이 중요했다. 기증자는 젊으면 젊을수록,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좋다고 했다. 농담 삼아 말하길 의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이 젊고 싱싱한 간이라나. 하여튼 농담 한 번 무서웠다.

이모네 젊고 싱싱한 간은 요한 오빠였다. 오빠에게 간이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모부의 모습이 꼭 별주부전의 거북이 같았다. 용왕님을 살리기 위해 토끼의 간을 가져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토끼가 아들이라니. 토끼와 거북이는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거실에서 만났고, 거북이는 어렵게 토끼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빠, 그건 당연한 거다.” 가녀린 토끼의 첫 대답이었다. 배를 갈라 자신의 간 절반 이상을 떼어줘야 하는 대수술을 앞에 두고 당연하다니. 토끼에겐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오히려 당황한 거북이가 더듬거리며 그 이유를 묻자 토끼는 말했다. “내가 엄마 아들이잖아. 당연한 거다.”

이식을 결정하고 동의서를 쓰는 토끼에게, 의사 선생님은 전신마취를 할 거라는 이야기와 혹시 모를 상황들을 설명해 주었다. 잔뜩 겁을 먹은 토끼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심마취와 관련된 영상이며 자료를 다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신마취의 부작용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토끼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의사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기증자가 위험하면 수술을 중단할 거라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눈으로 직접 부작용 영상을 확인한 토끼의 입장은 달랐다. 덮쳐오는 두려움이 토끼의 밤을 더 깜깜하게 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 밤의 온도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겠구나.’ 그날 밤 토끼의 두려움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작 스물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토끼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럼에도 토끼는 아무도 몰래 최고의 간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운동을 하고, 튀기거나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토끼에게 요구한 젊고 싱싱한 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았던 스물. 토끼는 한 번뿐인 청춘의 시간을 ‘용왕님께 바칠 싱싱한 간’을 만드는 데 들였다.

긴 수술이 끝나고 용왕님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러나 토끼는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원래 토끼는 간을 60%만 떼어 주기로 했었지만, 간이 생각보다 작아 70%나 떼어줘야 했고, 예정보다 많은 양을 떼어낸 게 토끼에게 무리를 주었다. 여덟 시간이 넘게 토끼는 침대에 누워 쌕쌕거리며 숨만 쉬었다. 토끼가 눈을 뜨지 못하는 내내 용왕님과 거북이는 수술 전보다 더 애를 태웠다. ‘혹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울 무렵 토끼가 눈을 떴다. 다행히 용왕님도 토끼도 모두 무사했다.

그런데 큰일을 겪고 나서도 오빠는 여전하다. 예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사근사근한 아들은 아니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무시무시한 농담의 수위였다. 간을 내주면 사주기로 했던 최신형 노트북을 왜 안 사주냐 느니, 내 간 다시 가져갈지도 모르니 문 잘 걸어 놓고 자라느니. 그런데 이상하다. 무뚝뚝한 말 속에 애정이 흐른다. 이모가 소파에 누워 있으면 엄마 간은 엄마꺼 아니고 내꺼니 잘 돌보라거나, 엄마는 덤으로 사는 인생임을 잊으면 안 된다거나. 그러고는 꼭 한 마디를 덧붙인다. “엄마, 엄마는 이제 내 딸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내한테 잘해라.” 츤데레도 이런 츤데레가 없다.

오빠는 아직도 수영장과 목욕탕을 못 간다. 몸에 적나라하게 새겨진 상처 때문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모는 말했다. 그때는 오빠 마음을 다 몰랐다고, 삶의 기로에 서 보니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고. 살아가면서 오빠 마음이 서서히 보인다 했다. 고작 스물의 아들내미가 어떤 결정을 했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고. 예전처럼 다시 생사의 기로에 선다 해도 아들 몸엔 절대 칼을 대지 못할 거라고.

수술 전날, 병원 침대에 오른 오빠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던 이모는 지금이라도 두려우면 꼭 수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모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오빠는 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어 놓았다. “엄마, 내 사실 지금 떨린다. 근데 내가 엄마한테 간 떼 주는 건 당연한 거다. 걱정되는 건 다른 게 아니고, 은강이. 엄마 닮은 내 동생 은강이. 가 나중에 안 좋아지면 간 떼 줄 사람 없는데, 나는 지금 그게 걱정이다.”

당연한 사랑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내가 당신으로부터 와서, 그저 당신이 나를 낳은 엄마라서. 그 이유만으로 사랑은 당연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언제나 나에게는 철없게만 보이던 요한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해졌다. 사랑의 임계점은 어디까지일까.



이별 숙취



이별은 어쩌면 술 마신 다음 날 찾아오는 숙취 같아.



얼큰히 취한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주량은 맥주 두 잔. 한 잔을 마시면 기분 좋게 취하고, 두 잔을 마시면 헤롱헤롱 취한다던가. 술을 잘 하지도 못하는 그녀가 숙취라는 단어를 말하다니. 그녀는 술이 써서 싫고 몸에 안 맞아 싫고 정신이 혼미해져 싫다는 말을 친구들 앞에서 종종 하곤 했다. 그녀가 술이니 숙취니 말할 때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야, 네가 숙취를 논할 껀덕지는 안 되지, 하며.

나의 오래된 친구인 그녀는, 같은 대학을 다니던 동갑내기 친구와 3년을 사귀었다. 주변 사람들은 쟤네는 꼭 결혼을 할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요즘 애들치곤 제법 오래된 연인이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나도 몇 번 스친 적이 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꽤 괜찮은 느낌을 가진 남자였다. 그녀가 우리와 함께 있을 때면 매시간 꼬박꼬박 그에게서 연락이 왔고, 언젠가는 그녀의 신발 끈을 묶어주려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때 그녀는 애정 섞인 눈동자로 그의 뒤통수를 살며시 쓰다듬었는데, 우연히 목격한 그녀의 눈빛이 꽤나 낯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우리 모임에서 그와의 이별을 전했다. “나, 그 남자 뻥 차버렸어.” 폭탄선언을 하며 그녀는 깔깔 웃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지금껏 그 남자에게서 받은 상처를 우리 앞에 풀어놓곤 했는데, 이야기를 듣는 우리조차도 화가 날 때가 많았으니까.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정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흉터가 깊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날 나는 그녀가 잔뜩 취해서 했던 말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아마도 그녀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야, 내가 산을 되게 좋아하잖아. 그래서 걔한테 같이 가자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딱 한 번을 안 가주더라. 앞으로는 산을 싫어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함께 가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내가 너무 소중해서 말이야.”

그녀는 세상 멀쩡하게 지냈다. 내가 곁에서 지켜봤던 몇 번의 맺음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마음 약하고 눈물 많은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우리 앞에서 떠들고 농담을 하며 지냈다. 그와 안녕을 고한 이후로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 반년이 지났고, 친구들과 아주 오랜만에 자취방에 모였다. 각자 사는 것이 바빠서 겨우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직접 만든 음식, 맥주 그리고 그녀를 위한 오렌지 주스를 상에 올리는데,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술을 좀 마셔줘야겠어.” 나는 그녀가 내민 잔에 맥주를 가득 따라 주었고, 그녀는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아무래도 그날 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녀의 꿈은 방송작가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교육원에서 수업을 들었고, 수업이 없는 날은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 매일 12시간씩 설거지를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밤마다 울면서 글을 썼다. 아마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글을 쓴 것 같았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으로 외로움이 다 해소되지 않으면, 그녀는 홀로 맥주 두 캔을 마셨다. 그러고 나면 그의 기억이 잊히기라도 할 것처럼. 그에게 닿고 싶은 밤.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새벽. 그에게만 들키고 싶은 수많은 문장. 상처를 받는 날이면 그녀는 그의 기억을 다시 꺼내었다. 이미 구겨져버린 그와의 기억을 새 것처럼 펴 그를 안고 싶었다. 그럴 때면 그 남자에게서 받았던 수많은 상처들은 모조리 흩어졌다. 그 남자가 잘해주었던 것만 기억이 났다. 길을 걷다 신발 끈을 묶어주던 모습, 추운 날이면 잡은 손을 주머니에 넣어 주던 모습, 먹기 좋게 자른 음식을 접시에 올려주던 모습. 잊힐 줄 알았던 그의 기억은, 맥주를 비워내는 만큼 더 선명해졌다.

이별은 어쩌면 술 마신 다음 날 찾아오는 숙취 같아. 그녀는 잔에 남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얼큰히 취해 침대에 누울 때마다, 만약 그에게 전화가 온다면 그가 어떤 말을 해도 괜찮았을 거라고, 하지만 한 번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고, 매일 밤 그녀는 텅 빈 맥주 캔을 옆에 두고 잠이 들었단다. 잃어버린 사랑을 매일 떠나보내며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단다.

사랑은 어쩌면, 숙취 가득한 하루를 무사히 떠나보내는 일일 것이라고.





되게 웃긴 녀석



남동생 하나가 있다. 이름은 찬이. 근데 얘기 되게 웃긴 녀석이다.



찬이가 네 살 땐가. 쭈쭈바를 쭉쭉 빨면서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분명히 사준 적이 없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당당하게 물고 오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찬이에게 쭈쭈바가 어디서 났는지 물었다. “찬아, 누가 사 줬어? 뒷집 예슬이네 엄마가 사 줬어?” 그러자 찬이는 눈을 크게 뜨고는, 어눌한 발음으로 신나게 답했다. “엄마 내가 아이스크림 꺼내서 친구들 다 나눠 줬어. 잘했지?” 그러고는 침을 질질 흘리며 너무나 맑게 웃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얘 좀 보게, 하는 표정으로 찬이를 바라보았다.

사건은 이랬다. 엄마는 집 앞 슈퍼에 가면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줬는데 그때마다 우리에게 원하는 걸 직접 꺼내도록 해주었다. 찬이는 그걸 기억했다가 동네 꼬마들을 데리고 슈퍼에 가서 손수 쭈쭈바 하나씩을 꺼내 나눠 줬던 것이다. 아이스크림 통보다도 찬이의 키가 작았으니 주인아주머니는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고. 물론 동네 꼬마들도 찬이가 나눠 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신나게 물고 다녔을 테고. 엄마는 당장 슈퍼로 달려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값을 치르셨다. 그게 벌써 이십 년이 다 된 일인데, 나는 쭈쭈바를 먹을 때마다 자연스레 찬이가 떠올랐다.

아, 텔레토비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내가 여덟 살이고 찬이가 다섯 살 때, 우리는 텔레토비를 좋아했다. 정확히는 찬이는 보라돌이를, 나는 뽀를 좋아했다. 텔레토비는 방송 끝에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중에 한 명이 다시 나와 ‘친구들 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루는 찬이와 내가 방송 끝에 누가 나올지 내기를 했다. 방송을 보는 내내 뽀가 나올 것이다, 아니다, 저번에 뽀가 나왔으니 보라돌이가 나올 거다 하면서 어눌한 말투로 쪼잔하게 투닥거리고 있었다. 은근한 신경전이 텔레토비를 보는 내내 찌릿찌릿하게 이어졌다. 방송 끝나기 5분 전, 우리의 신경전이 귀여웠는지 엄마도 옆에서 함께 결과를 기다렸다. 드디어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 인사가 남았다. 누가 나올지 잔뜩 긴장해 있는 통에 티비 앞에까지 긴장감이 돌았다. 그날 인사를 하러 나온 것은, 나의 빨간 뽀였다! 뽀가 나와서 손을 흔들며 ‘친구들 안녕!’ 하는데,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내가 신나서 거실을 뛰어 다니는 동안, 찬이는 시무룩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고 나를 노려보았다.

얄미운 찬이를 이겼다는 생각에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꼬맹이 찬이가 우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너무나 서럽게. ‘허, 참. 내가 뽀 나오란다고 빌어서 뽀가 나온 것도 아니고.’ 도저히 그칠 것 같지 않은 찬이를 보다가 엄마는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다음에는 꼭 보라돌이가 나오도록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하는 시늉을 했다. 왜 보라돌이가 마지막에 나오지 않느냐고, 다음에는 꼭 보라돌이가 나오게 해달라고. 엄마의 말을 듣고서야 찬이는 젖은 눈망울을 쓱 닦아내고 “엄마, 진짜야?” 하며 배시시 웃었다. 지켜보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때 나는 어엿한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까, 엄마가 전화로 시늉만 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번 방영 날 보라돌이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우리는 엄마의 전화가 진짜였다고 믿어버렸다. 텔레토비는 영국 방송인데 엄마가 한국말로 통화를 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고.

여섯 살 때 찬이를 잃어버린 이야기도 해볼까. 엄마와 나는 집에서 자는 찬이를 두고 나와 동네 아줌마들과 옥수수를 나눠 먹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니 고작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찬이가 휘리릭 사라져버렸다. 신발장에 걸어 놓았던 집 열쇠도 찬이와 함께 사라졌다. 여섯 살짜리 꼬맹이가 혼자 갈 데가 어디 있을까. 엄마는 찬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놀랐고, 엄마가 놀란 만큼 나도 덜컥 겁이 났다. 찬이를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신발이 짝짝이인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찬이를 찾아 뛰어 다녔다. 전화를 받은 아빠도 당황해서 집으로 바로 달려왔다. 우리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찬이를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찬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경찰서에 전화를 걸려는데, 예슬이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찬이를 데리고 있다고. 예슬이는 나의 동네 친구였다. 예슬이를 만날 때 가끔 찬이를 데리고 간 적은 있지만 어떻게 찬이가 예슬이네 있다는 걸까.

우리는 예슬이네서 여섯 살 찬이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는 해맑게 웃으며 매달리는 찬이를 끌어안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는 둥, 아파트 단지에 있는 엄마를 보지 못 했냐는 둥 끊임없이 물었다. 그러자 찬이는, 잠에서 깼는데 아무도 없어서 예슬이네로 갔단다. 예슬이와 내가 친하니까 거기 가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현관문도 단디 잠그고 열쇠도 꼭 품고 왔다고 말하는 찬이는, 우리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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