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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행자 클럽

서양수, 정준오 지음 | 미래의창



러시아 여행자 클럽

서양수, 정준오 지음

미래의창 / 2015년 5월 / 316쪽 / 13,900원





PART 1 러시아, 운명 같은 만남



여행의 재구성

“아니, 뭐라고? 그럼 모스크바에서 우리랑 며칠 못 있는다고?”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일까. 이미 다 예약해놓은 비행기 표며 기차, 크루즈, 숙소는 어쩌란 말인가. 택형과 내가 처음부터 러시아를 선택한 이유는 이노가 거기 살고 있으니까, 그가 보여주는 거 보고 먹여주는 거 먹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회사에 급한 일이 좀 생겨서, 모스크바에도 며칠 못 있을 것 같아. 미안해서 어쩌지. 그래도 오면 내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는 미안한 마음이 역력했다. 이미 선납금을 넣어놔서 취소가 안 되는 숙박 대금과 각종 교통수단의 예약 취소 수수료를 합치니 도합 50만 원은 족히 되었다. 이 돈을 그냥 잃을 수는 없다. 좀 찝찝하지만 이제부터는 서바이벌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했고, 하나의 안전장치를 더 심어놓고 싶어서 동행할 사람을 더 끌어모으기로 했다.

그때 생각난 사람들이 바로 2008년 모 월간지에서 주최한 ‘대학생 연해주 역사ㆍ문화 탐방단’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러시아 연해주로 떠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마침 같은 객실을 배정받은 우리 네 사람은 저마다의 꿈과 풋풋한 고민들을 나누며 밤을 지새우는 동안 금세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파릇파릇했던 우리도 이제 어느덧 삼십 줄에 접어들어, 거친 세상에 부딪히고 깎이면서 그때 품었던 꿈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지만 그때의 기분을 되살려 다시 한 번 러시아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했다. 택형과 나(준스키), 감성 넘치는 수스키와, 유쾌한 수다쟁이 설뱀이 모여 일사불란하게 우리의 두 번째 러시아 여행을 준비했다.

러시아, 감격의 재회

“현재 시각 저녁 8시 5분, 모스크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기온은 섭씨 25도, 습도는 20퍼센트, 날씨는 청명합니다.” 300명의 익명성과 함께 공유한 아홉 시간. 러시아에 출장을 다녀온 친구에 의하면 모스크바 공항은 불친절, 느린 일 처리, 수화물 분실의 삼박자를 두루 갖췄다고 한다. 게다가 최악의 상황은 총을 든 마피아와 유색인종만 골라서 이유 없이 폭행한다는 스킨헤드를 만나는 것이라고 겁을 줬다. 그러나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새로운 것을 볼 수 없다.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부딪히고 넘어지며 낯선 것을 경험하는 게 여행 아닌가. 이렇게 예쁜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참 더디 흐른다.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줄은 언제쯤 줄어들까? 점점 친구의 말이 하나씩 들어맞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다행히 출국장 밖에는 마피아도, 스킨헤드도 아닌 이노가 우리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어째 친구보다 라면을 더 반기는 이노와 찐득한 포옹을 마치고, 우리는 이노의 드림카를 타고 모스크바 시내를 달렸다.



PART 2 팜므파탈의 도시, 모스크바



붉은 광장은 왜 붉지 않을까?

오늘 찾아갈 곳은 러시아의 자랑, 붉은 광장(크라스나야 플로샤디)이다. 크렘린 궁전(모스콥스키 크레믈)과 성 바실리 대성당(흐람 바실리야 블라젠노고)이 있는 모스크바의 얼굴 마담. ‘무한도전’에도 소개돼 러시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알고 있을 정도의 중요 스팟이다. 처음 ‘붉은 광장’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과거 소련의 이미지가 연상되어 참 러시아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현대 러시아어의 ‘붉은(크라스나야)’이라는 말은, 고대 슬라브어로 ‘아름다운’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작명자의 의도를 생각해보면 붉은 광장이 아니라 아름다운 광장이 맞는 번역인 게다. 붉은 광장의 중앙, 크렘린 궁전 앞에는 레닌의 묘가 있다. 현재의 러시아를 있게 한 정신적 지주이자 역사적인 지도자였던 그를 그냥 보내기 싫어서일까. 러시아는 그를 ‘방부’라는 방식으로 기념하고 있었다. 방부 처리된 그의 시신은 막 잠이 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데, 어쩐지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레닌의 무덤을 개방하고 있지 않았다.

‘테트리스’ 게임의 배경 화면으로 유명한 성 바실리 대성당. 동글동글 양파 모양에 삐쭉 솟아오른 기둥을 오락실 모니터로 보며 당연히 이슬람 쪽 건물이겠지 생각했는데 사실은 러시아 건축물이었다. 성 바실리 대성당의 여덟 개의 지붕은 색깔과 문양이 각기 다르고,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등 화려한 색감을 사용했는데, 파격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균형 감각이 놀라웠다. 이 같은 건축 양식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독특하다고 한다. 450여 년의 세월을 보낸 이 건물은 사실 200여 년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던 러시아가 몽골과 싸워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해 지어졌다. 독특한 외관 덕분에 유명세를 탔고, 건축가 역시 이름을 날렸지만 당시 차르(제정 러시아 때 황제를 부르던 말)였던 이반 4세가 세상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건물은 오직 성 바실리 대성당 하나여야 한다며, 건축가가 더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눈을 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점심에 먹을 수 있는 것을 저녁까지 미루지 마라

“러시아 사람들은 뭘 먹고 살아?” 여행 출발 전 직장 동료들이 물었다. 사실 러시아 음식은 여러 민족의 영향을 두루 받았다. 이는 과거부터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며 나타난 자연스런 결과다. 다양한 민족 음식의 경연장이었던 셈이다. 결국 지금 맛볼 수 있는 것들은 최종 경합에서 살아남은 강하디강한 놈들이다. 대표 선수 샤슬릭만 봐도 알 수 있다. 양고기나 쇠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길쭉한 쇠꼬챙이에 꽂으면 준비는 끝. 은근한 불과 연기에 함께 익혀주면 된다. 고기 중간중간 피망이나 토마토 같은 채소가 들어가기도 하고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 취향에 따라 고기를 선택할 수도 있으니, 웬만해선 맛없기 힘든 조합이다. 잘 구워진 샤슬릭을 리뾰쉬카(납작하고 둥근 빵)에 샐러드와 사워크림(생크림을 발효시켜 새콤한 맛이 나는 크림)을 넣어 돌돌 말아 먹으면, 러시아산 훈제 화이타 느낌이랄까? 서울로 돌아와서도 두고두고 생각난 러시아의 맛이었다.

샤슬릭과 더불어 러시아를 대표하는 또 다른 음식은 바로 보르쉬라는 수프다. 양파와 다양한 야채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고기와 함께 끓인 것으로, 수프라기보다는 국에 가깝다. 재미있는 것은 이 보르쉬의 색깔이다. 보통 자주색을 띠기도 하고, 핫핑크 내지는 보라색을 띠기도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색깔이 나는 식용 액체는 처음 본 것 같다. 핫핑크색 국물이라니 어쩐지 좀 꺼려지기도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맵지 않은 김치찌개 맛이랄까? 느끼한 고기와 함께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채소가 많아서 그런지 속이 풀리는 느낌마저 든다. 재미있는 점은 러시아에선 이 야채수프에도 사워크림을 넣어 먹는다는 점이다. 난 보르쉬 자체는 맛있게 먹었지만 차마 거기에 사워크림까지 섞어 먹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훈제 연어와 러시아 전통 만두 ‘펠메니’를 와구와구 입에 넣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모르스’라는 과일 주스까지 곁들여지자 한층 흥이 올랐다.

러시아 전통식은 양식과 달리 코스 요리가 없다고 한다. 모든 음식을 한 번에 다 내와 골라 먹는 재미를 느끼는 게 일품이다. 얼핏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져 나오는 한정식과 닮은 것도 같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푸시킨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점심에 먹을 수 있는 것을 저녁까지 미루지 마라.” 역시 문인다운 기가 막힌 표현이지만, 이런 맛깔난 러시아 음식들이 없었다면 기막힌 표현도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스크바의 지하 궁전

러시아 지하철엔 볼 게 많다. 대리석 기둥과 샹들리에, 화려한 벽화와 조각품까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지하철역’, ‘지하 궁전’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이유다. 에스컬레이터 또한 유명한데, 빠른 속도는 기본이요, 그 깊이가 지하 약 50미터 아래까지 이어진다. 가장 깊은 역인 ‘파르크 포베디(승전공원) 역’은 무려 지하 85미터, 아파트로 따지면 30층 높이까지 내려간다. 사실 지하철이 이렇게까지 깊게 뚫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ㆍ소 양국이 대립하던 1930년대, 스탈린은 핵전쟁도 대비할 수 있는 지하철을 원했다. 모스크바 시내에 수소폭탄이 떨어지더라도 안전한 지하로 대피할 수 있기를, 그래서 선로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실제로 2차 대전 중, 소련과 독일의 전쟁(대조국 전쟁) 때 지하철역은 방공호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석조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플랫폼이 보인다. 여기저기에 설치된 조각품과 은은한 조명이 예사롭지 않다. 시간이 지나도 품격을 잃지 않는 듬직한 외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지하철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도 미ㆍ소 양국의 경쟁이 있었다. 핵전쟁도 대비할 수 있는 지하철을 주문한 스탈린은, 그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을 주문했다고 한다. 러시아 지하철은 운행한 지 8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왕성하게 손님들을 실어 나르며, 평일 낮에도 보통 1~2분 간격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닫히는 문에 굳이 몸을 던질 필요가 없다. 재미있는 건 안내 방송을 남자가 하느냐, 여자가 하느냐에 따라 열차 운행 방향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천재 코 박사의 스페이스 판타지

러시아 우주개발의 영웅인 천재 코롤료프 박사. 그가 러시아의 우주개발에 미친 혁혁한 공은 세계 우주개발 역사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수 있다. 과연 모스크바 우주 박물관에서도 그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과 우주비행사를 만들었음에도, 정부에 의해서 존재 자체가 비밀에 부쳐졌던 희대의 천재다. 우주정거장에서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 미국 나사(NASA)에서는 무중력 상태에서도 쓸 수 있는 최첨단 펜을 개발하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냥 연필을 쓰고 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엄청난 기술의 집약체인 우주선에도 러시아의 그런 정신(?)은 녹아들어가 있는데, 러시아산 우주선의 고장이 적은 이유가 바로 그런 ‘단순함’ 덕분이라는 말도 있다.

러시아가 품어왔던 우주를 향한 꿈들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인류의 우주개척사에는 러시아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1957년 스푸트니크 1호), 세계 최초의 달 탐사선(1959년 루나 1호), 세계 최초의 우주인(1961년 유리 가가린),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1971년 살류트 1호), 모두 러시아 차지. 우주개발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라는 말도 있는데, 러시아는 그 찬란한 우주개발의 역사만큼 가장 많이 실패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박물관에는 러시아가 품었던 우주를 향한 꿈들의 흔적이 즐비했다. 그 우주 시대는 냉전 시대가 열어놓은 것이다. 우주개발에는 추진체, 즉 미사일이 가장 중요한 기술인데, 우주선을 자유자재로 쏘아 올린다는 것은 그만한 미사일 개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이는 기술 싸움뿐 아니라 각국의 정치적인 동기로서도 유용하게 이용되었는데, 극단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이루어내는 것은 힘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급성장한 우주 기술들은 냉전이 남긴, 유일하게 쓸 만한 유산인지도 모른다.

냉전 시대가 종식된 후, 더 이상의 폭발적인 우주개발은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끝내 이룰 수 없는 도전이었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에 대한 명분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여전히 세계 각국이 우주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앞으로도 인류가 냉전 시대만큼 찬란했던 우주 역사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주 박물관에서 우주정거장 모듈도 몇 번이나 들어가 보고, 인공위성 관제센터에 한없이 앉아 있기도 하고, 박물관 안을 유영하듯 황홀하게 거닐다가 우주비행 기념관을 나섰다. 우주를 유영한 것 같은 여운에 잠겨 있는 동안, 여전히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유리 가가린 동상은 끊임없이 오가는 관람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스크바 강 유람기

저녁 무렵, 우리는 래디슨로열호텔(구 ‘우크라이나호텔’) 앞 선착장에 우릴 기다리던 천장 높은 하얀 2층 배에 올랐다. 이 ‘래디슨 크루즈’ 유람선은 두어 시간 동안 모스크바를 가로지르며 이 도시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듯하다고 하여 여름 모스크바 여행의 필수 코스로 불린다. 고리키 공원, 엠게우(모스크바국립대학교), 크렘린 궁전, 붉은 광장, 성 바실리 대성당, 구세주 성당 같은 랜드마크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스크비치들의 모습이란. 강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시원한 강바람 같은 풍경이었다. 우리가 크루즈에 올랐던 시간은 저녁 8시. 크루즈가 한 바퀴 돌아올 때는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져 기가 막힌 야경을 볼 수 있었다. 황혼녘 구세주 성당은 은은한 노을빛을 한 아름 담고 있었고, 건너편으로 표트르 대제의 커다란 동상이 물길의 속도로 지나갔다.

“표트르 대제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지 않았나? 모스크바에서 배신감 느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멋진 동상이 있네.” “표트르 대제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해. 지금 러시아 국경선을 이 사람이 그었대. 기인이라고들 하더라. 네덜란드에 인부로 숨어 들어가 배 만드는 법, 의학, 별걸 다 배웠다던데. 진짜 부지런한 황제였던 것 같아.” 제대로 된 함대를 만들고, 강대국으로 가는 발판을 놓은 위대한 황제. 심지어 그는 치의술까지 배워서 선원들의 치아를 뽑았다고도 전해진다. 여하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런 표트르 대제의 상상이 구현된 도시라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넘쳐흐르는 낭만. 부지런한 데다 멋진 비전을 가진 황제라니, 위풍당당하고 커다란 동상이 있을 만도 하다. 그는 단순히 도시를 건설해낸 게 아니라, 러시아 심장부에 저토록 크고 역동적인 동상처럼 끝없이 뻗어가는 러시아의 정신을 심어놓은 것이리라.

서커스장에서 대동단결

처음에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극장 앞에 가보니 공연 표는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암표를 구해 보느니, 러시아 발레 못지않게 유명하다는 모스크바 서커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우니베르시떼뜨 역’ 근처에 있는 러시아 국립 서커스 극장으로 향했다. 무려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극장이다. 가까스로 공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고 보니, 서커스장다운 특이한 외관에 3,400석 규모의 커다란 원형 공연장이 우리를 압도했다. 어마어마한 공연장을 가득 메운 이들은 여행자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온 러시아 가족들이 대다수였다.

볼쇼이나 마린스키의 제1공연단은 여름에는 해외로 순회공연을 가고 없기 때문에, 최고의 공연을 보려면 여름보다는 겨울에 보러 가는 편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우리가 본 여름 공연에는 허술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원형의 공연장을 열 맞추어 돌아야 할 백마들이 말을 듣지 않고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권투하는 캥거루, 묘기 부리는 원숭이, 뒹구는 곰 등 능청스러운 여러 동물들이 우리를 동심으로 이끈 덕분에 그런 실수마저도 유쾌하게 느껴졌다. 서커스 사이사이에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등장해 발레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덜어주기도 했다.

굿바이, 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레닌그라드 역(레닌그라드스키 보크잘)으로 향했다. 레닌그라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소련 시절 이름이다. 모스크바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이 있다는 게 특이하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서울시에 부산역이 있는 셈. 이는 러시아에서 기차역 이름을 정할 때 도착역을 기준으로 정하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역 이름을 지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행하는 기분을 내기에는 훨씬 좋은 방법 아닐까? 서울에 있는 춘천역, 용산에 있는 동해역을 상상해본다. 어쩐지 기차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편안하고 안락한 삽산(러시아 고속열차)에 몸을 깊이 묻고 눈을 감았다. 이제 네 시간 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모스크바 역에서 눈을 뜨겠지?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모스크바 역으로 가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그렇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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