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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집 나간 책

서민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 328쪽 / 14,000원





제1장 사회 | 무지에서 살아남기



닭의 나라 -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나는 KBS <개그콘서트>에서 ‘닭치고’를 제일 좋아한다. 처음에는 좀 유치하지 않나 싶었는데 갈수록 중독이 된다. 이런 유치한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현실과 닮은 점이 있어서다. 예컨대 취임 직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천명한 대통령은 공기업에 자기 사람을 심기에 바쁘다. 대한적십자사에 한 번도 회비를 내지 않은 분이 총재로 임명된 것은 하이라이트. 이런 걸 보면 ‘닭치고’의 모델이 혹시 대통령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선거만 했다 하면 정부와 여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으니, 그분들이 국민을 닭 취급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또한 정부가 추진한 담뱃세 인상은 구멍 난 세수를 메우려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지만, 정부는 “흡연으로 인한 국민 건강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며, 증세가 아니라고 했다. 국민을 닭으로 알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궤변이다. 다른 공약은 잘도 파기하면서 증세를 안 하겠다는 공약에만 신경을 쓰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아무리 닭이라 할지라도 모이를 줄이면 화를 낼까 봐 그런 게 아닐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닭들이 우글대는 이유가 우리가 닭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닐까? 『대한민국 치킨전』을 집어든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이야기한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대접한다는 말에서 보듯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닭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 닭을 맛보았던 경험은 정말이지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그런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중년들에게 닭이 심심할 때 끼니를 때우는 음식이 된 작금의 풍경은 좀 생경할 것 같다. 왜 갑자기 닭이 이렇게 보편화된 것일까?

닭의 크기가 작아지고 우리의 위장이 커진 덕에 혼자서도 얼마든지 닭을 시켜 먹게 된 것도 이유이지만, 닭의 공급이 넘쳐나게 된 게 더 큰 이유이리라. 치킨은 “1997년 이후 단 한 번도 외식 메뉴 1위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다.”(18쪽) 1997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우리나라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치킨집을 차렸다. “산이 저기에 있어서 올라갈 뿐이라는 어느 등산가의 말처럼, 치킨집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많이 먹는다고 보면 맞다. 먹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중독이 되었을 뿐.”(19쪽)

우리나라는 직장에서 한번 잘리고 나면 재취업의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복지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식솔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하니, 한국에서 자영업자의 비중이 30퍼센트를 넘을 수밖에. 그런데 왜 하필 치킨집일까?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어서다. “치킨 조리 실습에서 우리가 해본 것은 오로지 튀기고 소스 바르고 예쁘게 담는 일의 반복이었다.”(90쪽) 이게 가능한 이유는 대부분이 프랜차이즈로, 바삭한 튀김을 만들기 위한 염지 과정을 거친 닭을 본사에서 전적으로 공급받기 때문이다. 염지는 “(조리 교육)참가자가 접근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다.”(91쪽)

두 번째, 치킨 시장은 특정업체가 독점하지 못하는 완전경쟁 시장이다. 업계 1위인 BBQ조차 10퍼센트를 넘지 못할 정도인데, 이유인즉슨 닭을 주문할 때 소비자들이 고려하는 게 얼마나 빨리 배달되고, 서비스를 잘해주느냐이기 때문이다. “치킨집의 성공 여부는 맛이 아니라 …… 입점한 상권의 수준에 달렸다.”(82쪽) 사정이 이러니 목 좋은 곳을 잡아 치킨 사업에 뛰어들고픈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 번째, 치킨집은 대부분 배달로 먹고살며, 그렇기 때문에 매장이 그다지 클 필요가 없다. “착실한 배달 알바를 데리고 있느냐가 치킨집 영업의 관건”(132쪽)이기는 하지만, 창업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킨집을 차린다.

그렇다면 치킨집을 차린 사장님들은 과연 행복할까? 치킨집 사장치고 살이 찐 사람이 없다는 게 힌트가 될 법하다. “기름 냄새 때문에 도무지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기름 냄새에 질려 치킨집 주인들은 오히려 살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니겠구나 싶었다.”(90쪽) 돈이라도 많이 벌면 그래도 보상이 되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본사에서 공급하는 치킨 한 마리 원가가 5,300원이고, 한 마리를 튀기는 데 들어가는 식용유가 1,000원, 배달비가 2,000원에 탄산음료와 배달용 박스, 무 등을 합치면 1만 1,000원 정도 된다. 여기에 매장 운영비와 인건비를 합치면 종일 기름 냄새 맡아가면서 닭을 튀기는 보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창업 후 3년 내 폐업하는 치킨집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게 현실을 말해준다.

이걸 알면서도 치킨집에 뛰어드는 사람이 속출하는 건 다른 길이 없어서인데, 이런 사태를 계속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은 이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 2014년 9월 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장년층 고용안정 및 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했다. 여러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만, 이 대책이 작금의 현실을 바꾸어주리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기야, 닭들이 내놓는 정책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된 걸까? - 마크 바우어라인, 『가장 멍청한 세대』

오래전,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농촌에 사는 나이 든 분들을 모시고 퀴즈를 내는데, 배움이 없는 그분들이 하는 황당한 대답들이 시청자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훨씬 재미있는 답변이 나올 테니 말이다. 실제로 한 프로그램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고려를 세운 분은?” “궁예.”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은?” “이수만.” 한 학생은 “10ㆍ26사태가 언제 일어났느냐?”라는 내 질문에 “12월 6일”이라고 답했는데, 이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좋은 세상 만들기 시즌2>를 만든다면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않겠는가?

마크 바우어라인은 『가장 멍청한 세대』에서 텔레비전과 인터넷에만 매몰된 지금 세대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책에 의하면 미국에는 정말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퀴즈 쇼가 있다. <투나잇 쇼>의 제이 레노가 길거리로 나가 즉석 상식 퀴즈를 내는 ‘제이 워킹’인데, 이 코너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정규 프로그램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이들은 20대다.”(17쪽) “교황은 어디에 사나요?” “영국이요.” “영국 어디죠?” “음…… 파리.”(18쪽) 흥미를 느껴 ‘제이 워킹’ 몇 편을 더 찾아보았는데, 정말 재미있다. “태양계에는 몇 개의 행성이 있나요?”라는 말은 질문 자체를 이해 못하는 듯했고, “해와 달 중 어느 게 더 큰가요?”라는 질문에 한 여성은 “달”이라고 했다.

지금 젊은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공부를 많이 한 세대다. 대학에 가는 비율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이들이야말로 유사 이래 ‘가장 똑똑한 세대’여야 맞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을 향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생각이 없다, 업무 능력이 떨어져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 등등의 말이 숱하게 들리는데, 이건 물론 윗세대가 아랫세대를 보는 편견일 수 있다. 그래서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미국에는 학생의 학습 능력을 평가하는 NAEP(전국교육평가)가 있는데, 2001년 최악의 결과를 지켜본 한 사람은 역사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것이 없는 이 세대가 유권자가 될 시대에 우려를 표했다.(24쪽)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지표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행태를 분석하면 대충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이 선수가 저 선수보다 낳지 않나요?”라는 식으로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두 번째, 글을 조금 길게 쓰면 이런 댓글이 달린다. “글이 너무 길어서 패스.” 게다가 난독증도 상당하다. 세 번째로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다. 파업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지만, 2013년 말 철도 파업 주동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기사에 그들은 이런 댓글을 단다. “법은 죽었구나. 이 인간들 때문에 국민이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데. 이 판결은 후세에 반드시 국치로 기억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책을 읽지 않아서다. 책에 따르면 “젊은이는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더 나은 정치와 역사 지식을 지니고, 현 시사 문제와 정부 법안에 익숙해지고, 어휘력과 작문 실력이 향상된다.”(73쪽)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책을 멀리하는데, 더 무서운 사실은 자신이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서를 장려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책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라고 말한 학생이나 “우리 아빠는 만날 책에만 몰두해 있어요. 인터넷이 책을 대체해버렸다는 걸 아직 깨닫지 못한 거죠”(54쪽)라고 말한 학생을 보라.

저자는 여러 근거를 들면서 책 안 읽는 세대의 무식을 개탄한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사실은 따로 있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해가 2008년이라는 것. 스마트폰의 효시라 할 아이폰3G가 출시된 해다. 스마트폰은 책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조차 앗아가버린 무서운 기계다. 스마트폰 이전의 세대만 해도 충분히 무서운데, 스마트폰 출시 이후의 세대는 과연 어떨까? 이것만 이야기하자.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무시무시한 악플을 달았던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정식으로 출범한 때가 바로 2010년이다.

원칙주의자가 필요하다 - 서형, 『부러진 화살』

책이 재미있으려면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독자들이 모르는, 하지만 알고 나면 전율을 느낄 만한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가 재미있는 이유는 BBK와 청계재단 등에서 벌어진 일이 우리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 아닌가? 두 번째, 다 아는 사실에 대해 작가가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해주는 것.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는 우리가 성녀라고 아는 테레사 수녀를 비판해 충격을 주었다. 물론 두 가지가 명확히 구분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김어준이 말하는 BBK 사건은 검찰이 발표한 내용과 전혀 다른 해석일 테고, 히친스가 테레사 수녀를 비판한 근거로 삼은 일들도 독자들이 전혀 몰랐을 테니 말이다.

‘서형’이라는 필명의 작가가 쓴 『부러진 화살』에도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있다. 해직 교수 김명호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다는 보도가 나가자 대부분의 사람은 ‘그 교수, 참 이상한 사람이네’라고 생각했고, 그가 징역형을 받은 것에도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을 거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재판이 매우 편파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즉 사람들이 모르던 사실을 알려 재미를 부여하고, 그럼으로써 김 교수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전해준다.

대학교수는 정규직으로 인정받는 직종이지만, 정교수가 되어 정년 보장을 받기 전까지 교수들은 2~3년마다 재임용을 받아야 한다. 그 기간에 연구 실적을 얼마나 쌓았느냐가 재임용의 통과 기준이니 논문만 잘 쓰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이런 제도가 학교 측에 의해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예컨대 원로 교수들의 친일 행위를 지적한 서울대학교 미대 김민수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이유는 ‘연구 실적 미흡’이었다. 그의 업적은 기준을 상회하고 남았지만, 상까지 받은 우수한 논문을 학교 측이 함량 미달로 평가해 점수에서 빼버린 것. 김명호 교수는 더 심각했다. 대학 입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출제 오류를 지적해 학교 측의 미움을 산 그가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표면상 이유는 ‘교육자적 자질 부족’이었다. 연구 업적이 있는 걸 없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자질을 객관적으로 따지는 게 과연 가능할까?

물론 석궁을 들고 판사 집에 찾아간 건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정도는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김 교수의 행위가 사법부에 대한 테러라고 생각한 판사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결과 재판에서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된다. 법정에서는 검사와 변호사가 판사의 중재 아래 날 선 공방을 벌이며, 피고인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을 거라는 통념이 통하지 않는다. 그 대신 피고 김명호는 판사를 향해 “법대로 해달라”, “왜 법을 안 지키느냐”라고 윽박지른다. 판사를 향해 “재판장님! 이 사실에 대해 인식하고 계십니까”라고 한다든지 검사에게 “신동국 검사! 지금 이 자리에서 형사소송법 제237조에 의해 신태기 재판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합니다”라고 하는 피고인이 상상이나 가는가? 사법부가 판사를 향한 테러 사건에서는 감정에 치우친 재판을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김 교수가 이렇게 10년 넘게 투쟁할 수 있던 이유는 그가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입시 문제가 잘못되었다면 그 문제를 아예 빼고 채점하자는 그의 말이 맞다. 그게 우리가 배운 원칙이다. 하지만 학교 측은 “문제는 잘못되었지만 부분 점수를 인정해야 한다”라는 희한한 주장을 폈고, 그 의견이 결국 통과되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적당히 넘어가자”는 학교 권고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저항해 싸웠다.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원칙이 제대로 서야 하고, 원칙을 지키려는 원칙주의자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원칙주의자는 주위 사람에게 불편한 존재다. 결국 김 교수는 다른 교수들과 부딪힐 일을 없애기 위해 강의를 오후 7시 이후로 몰아야 했다. 재임용 결정 과정에서 그의 자질 문제에 대해 김 교수 편을 들어준 사람은 없었다. ‘원칙’보다는 ‘적당히’가 우선하는, 그래서 원칙주의자들이 돌을 맞는 사회를 나는 부러진 사회라고 부르련다. 우리 사회는 언제쯤 똑바로 펴질 수 있을까?



제2장 일상 | 편견에서 살아남기



거절을 잘할 수는 없을까? - 재키 마슨,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몇 년 전, 병원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선배가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 것은, 누가 만나자고 하는 이유는 대부분 부탁할 게 있어서라는 사실이다.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의대 대학원에 다니는데 리포트로 수업을 대체하는 과목이 있다고 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건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설마?’ 마침내 선배가 말했다. “내가 의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써? 그래서 네가 좀 써주었으면 해서.”

고교 동문들끼리 가끔 모일 때마다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그와 나는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설사 친하다고 해도 자료를 좀 찾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아예 써달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떨떠름한 얼굴로 알았다고 했다. 그가 덧붙였다. “마감이 다음 주 월요일이니까 나한테 금요일까지는 보내줘.” 리포트를 쓰는 동안 거절하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몇 번이나 머리를 쥐어뜯었는지 모른다. 놀라운 일은 그 선배가 그다음 학기에도 비슷한 일을 부탁했다는 것. 나이 50이 다 된, 평소 바쁘다고 가정을 내팽개치고 사는 사람이 남의 리포트를 써주고 앉아 있는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살면서 그 선배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문제는 내가 마음속으로는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도 거의 거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거절을 잘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다 집어든 책이 바로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였다. 심리학자이자 상담가인 저자는 우울증이나 불안감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읽는 내내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였으니까. 그들 역시 거절하지 못하는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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