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밭 별자리
김형식 지음 | 북랩
옥수수밭 별자리
김형식 지음
북랩 / 2015년 3월 / 227쪽 / 14,000원
제1장 지나간 추억
세상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공기 중에 먼지처럼 떠다닌다. 또 그 가능성 속에서 삶은 변하기도 하고 희박한 확률이지만 운명처럼 누군가를 만나기도 한다. 나의 젊은 날,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어느 낯선 곳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여인에 의해 삶은 변화했다.
내가 지금도 지난 과거를 돌이켜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은 지나간 추억이 언제나 아름답게 기억돼서가 아니다. 지나간 추억이란 해질녘 잠깐 동안 세상을 아름답게 환히 밝히다가 사라져가는 태양의 뒷모습처럼 쓸쓸함으로 기억되는 그리움이었다.
언젠가 내가 어릴 적에 나이 많으신 사촌 형님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네가 미래를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너에게도 미래의 모습보다 과거의 모습이 더욱 소중하게 기억될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또, 그 형님께서는 내게 이런 당부도 하셨다. 살아갈 날들을 결코 소홀히 보내지 않으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따뜻한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 가라고. 나는 그 당시 나이 많으신 사촌 형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세월이 흘러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이 내게도 행운처럼 또는 불행처럼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과거의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아 가는 나이가 되었다.
젊은 날의 기억들은 평생 동안 그림자처럼 내 뒤를 쫓아다닐 것이다. 십여 년이 지난 그때의 기억들도 마찬가지이다. 일찍이 하늘 속에서 만들어진 바람은 소망을 담기도 하고 꿈을 만들기도 한다. 바람이 불 때면 나는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생각한다. 쓸쓸한 하늘 위, 어둠 속엔 수많은 추억들이 방울방울 떠다닌다.
제2장 우연한 만남 (episode)
1998년 8월 중순, 내가 경기도 연천 북삼리에 위치한 작은 시골마을을 찾아간 것은 친구 아버지 소유의 별장을 보수하기 위해서였다.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별장의 모습은 화려한 대리석을 두른 외관과 넓은 정원, 바다가 보이는 곳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곳 별장은 말이 좋아 별장이지 그냥 경치 좋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예쁜 집을 지어놓은 정도였다. 원래 별장 관리는 인근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말복 아저씨가 관리해 오셨는데, 얼마 전부터 고질적으로 아파왔던 무릎 관절에 염증이 생겨 당분간 거동할 수 없어, 말복 아저씨를 대신하여 별장 수리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상변화가 심하여 특정 지역에 강수량이 집중되기도 하고, 또 어느 때에는 가뭄이 지속되기도 한다. 올해 경기도 북부에는 6월부터 8월 현재까지 맑은 날보다 비가 내린 날이 더 많았고, 태풍도 자주 한반도를 거쳐 갔다. 때문에 별장의 목책은 무너졌고 지반도 약해져 있다고 한다.
두철이의 말로는 말복 아저씨를 대신하여 며칠 동안 별장에 머물면서 전기 배전반 점검, 가스밸브 점검, 지붕에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살피고, 그동안 자주 내린 비로 인해 주저앉은 울타리가 있다면 보강목을 덧대어 세우고, 페인트칠을 새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마침 나도 여름 휴가철이었고, 회사에서 일주일 정도 휴가를 얻어 한적한 곳에서 쉬었다 왔으면 했는데, 몇일 전 두철이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별장 수리를 부탁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동에 대한 대가와 별장을 보수하는 데 드는 수리비도 모두 청구하라는 것이다. 나는 두철이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노동에 대가는 필요 없고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라.” 말하며 전화통화를 끝마쳤다.
오늘 나는 애마인 갤로퍼를 운전하여 전곡으로 향하고 있다. 북삼리로 가기 전에 군복무 시절 나와 친하게 지냈던 후배 병섭이의 집을 가기 위함이다. 그곳에 들러 하루를 보내고 별장이 있는 북삼리 마을로 향하기로 했다.
군 제대 후 6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기도 하고, 군대모임을 통해 일 년에 한두 번쯤 만나기도 한다. 병섭이의 직업은 포크레인 기사이다.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은 나이인데, 타향에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아파트를 장만할 정도로 근면하고 성실한 총각이었다.
올해 경기도 북부엔 특히 많은 비가 내려 침수피해와 도로유실이 많았다. 녀석의 말로는 최근 20년 중에서 올해 가장 많은 비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완전히 복구를 하는 데 3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며, 자신도 3년 동안의 일감이 확보된 상태라고 했다.
병섭이와 나는 늦은 새벽 시간까지 술을 마셨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인근 식당에서 함께 해장국을 한 그릇 먹은 후 바로 헤어졌다. 우리가 바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포크레인 기사인 병섭이의 도로복구 작업이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병섭이는 나와 더 이상 시간을 같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미안해했지만, 그는 유실된 도로복구가 시급하여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웠으나,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며 계획했던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바라보며 지나치는 이 도로에는 하늘과 구름 그리고 자비로운 기운의 보살핌이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이러한 감정에 충실히 몰입한다면 그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잔잔한 구름의 미소, 허공을 가르는 바람, 또는 낯선 거리의 신비로움, 이 모든 환경 속에서 나무가 자라고, 가옥이 보였고, 가끔씩 자동차가 스치듯 내 옆을 지나쳐갔다. 나는 도시에서 떠나 와 목적도 계획도 없이 어느 낯선 도로를 따라 북삼리의 작은 시골마을로 향하고 있다.
경기 북부 산악은 산봉우리가 능선을 따라 넓은 평원과 이어지고, 강은 평원을 따라 흐르는 모습이 특징이다. DMZ와 인접해 있는 북삼리 마을은 언제나 고요하고 평온한 곳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땐 두철이를 따라 이곳에 자주 놀러 왔었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부터 두철이에게 북삼리로 가는 설명을 들었지만, 직접 운전하여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지나치는 사람이 보일 때면 몇 번이나 운행을 멈추고 북삼리로 향하는 길을 물어 보았다. 마지막으로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께 길을 여쭈어 보았는데, 현재 진행하고 있는 도로를 쭉 따라가면 북삼교가 보일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북삼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진입하는 언덕길이 보이면, 그 길을 따라 가라고 일러주셨다. 어르신이 일러준 길을 따라 왔더니, 익숙한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운전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북삼교’
학창시절부터 추억이 있던 곳이다.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희미한 기억이 북삼교를 보게 되니 선명하게 나타났다. 다리를 건너면, 조그만 상회가 나오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 같다. 상회가 있었던 자리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군부대의 수송트럭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마을로 향하는 길 초입엔 나무들이 무성하여 산골짜기로 들어서는가 싶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풍경은 마치 높은 언덕 위에 커다란 운동장 수십 개를 얹어놓은 것처럼 전방 모든 사물들을 바라볼 수 있는 평평한 분지 형태의 특이한 지형이 나타난다.
언덕길을 따라 가면 중턱쯤에 두철이네 별장이 보일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차를 운행하면서 주위의 풍경을 둘려보며 위쪽으로 향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고요함 속에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한눈에 보이는 풍경과 뱀처럼 꼬불꼬불 휘어진 임진강 물줄기, 한참 전에 운행해 왔던 숲길도 보였다. 더 먼 곳을 바라보면 가옥과 밭도 보이고, 마을의 보안등이 보였고, 반듯한 도로가 마을로 향해 있는 것도 보였다. 내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은 결코 사람들이 정해놓은 가치로 평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북삼리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별장 관리를 하시는 말복 아저씨였다. 두철이네 별장 너머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을 입구가 보이는데, 아저씨께서는 서울에서 내가 온다는 연락을 받으셨는지 미리 마중을 나오셔서 따뜻이 맞이해주셨다. 한눈에 봐도 아저씨는 움직임이 많이 불편해 보였는데, 한참 만에 거동을 한다고 하셨다. 아저씨의 집은 몇 개의 가구가 모여 사는 집들 중 하나였다. 아저씨께서는 부인인 안성댁 아줌마와 단둘이 살고 계시는데, 슬하엔 자식이 모두 4명이 있다. 이 노부부는 내가 학창시절 두철이를 따라 이곳 북삼리 별장에 가끔 놀려왔을 때부터 나에게 온정을 베풀어주신 분들이다.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마음속에 새겨두면,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려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반가운 아저씨의 모습을 보게 되니, 변변한 선물 하나 사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병섭이와 헤어진 후, 운전하여 북삼리로 향하는 동안 정육점에 들러 아저씨께서 좋아하시는 삼겹살을 사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타고난 길치인 나는 엉뚱한 도로로 진입하기 일쑤였고,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는 것도 여의치가 않다 보니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구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북삼리에 도착한 것이다. 스스로 자책하며 어쩔 수 없이, 마을 도착 전에 허름한 가게에서 구입한 음료 세트와 화장지 세트를 인사 치레로 안성댁 아줌마께 드렸다. 아줌마는 “돈 아깝게 이런 걸 뭐 하러 사왔느냐!”며 역정을 내셨다. 세월이 흘렸어도 부부는 변한 것이 없었으며, 30년 넘게 이곳 북삼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오셨다.
안성댁 아줌마는 먼 거리를 운전해 왔으니 시장할 것이라면서 내게 식사부터 차려주셨다. 찬은 밭에서 따온 풋고추와 상추, 된장찌개와 김치가 전부였지만, 배가 많이 고픈 탓에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노부부는 내 옆에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며 그동안에 안부를 물어보셨다. 말복 아저씨께서는 자신의 몸이 불편하여 읍내를 나갈 수 없어, 영복이 니가 오랜만에 왔는데도 번번한 찬도 없다며 아쉬워하셨다. 내가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퍼, 밥에 비비면서 노부부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이곳에 왔고, 별장 수리할 자제를 사려 읍내에 나가는 날, 술과 고기를 사가지고 올 테니, 그때 오랜 회포를 풀자고 아저씨께 제안했다.
식사를 끝내자마자, 나는 작정하고 꼭 갈 곳이 있었다. 두 분께는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시라는 말씀을 드린 후, 집을 나왔다. 작은 배낭과 소형 텐트를 짊어지고, 넓은 들판을 따라 강물이 흐르는 북삼교로 향했다. 걸어서 북삼교로 향하는 동안 지루하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배낭과 텐트를 둘러매고, 이곳의 풍경을 머릿속에 새기며, 홀로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면서 고갯길을 넘어갔다.
내 오랜 기억 속에 북삼교 밑을 흐르는 임진강은 가장 넓은 곳의 강폭이 100여 미터에 이르고 물은 차가우며 수심은 깊지 않아 여름날 수영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성인남자 기준으로 허리 정도밖에 차지 않으며, 물이 전혀 오염되지 않은 청정수였기 때문에 우리 친구들은 같이 수영도 하고, 다슬기와 버들치 같은 물고기를 그물망으로 잡은 기억이 있던 곳이다. 수심이 얕은 곳곳에 물살이 빠른 여울(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이 만들어져 있고, 인적이 없는 드넓은 들판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하루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난 북삼교 아래 자갈밭을 따라 임진교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다가 개활지 사이로 얕은 물줄기가 흐르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밤 이곳에서 밤을 지새울 것이다. 이미 서울을 출발하기 전부터 이곳에서 밤을 홀로 지새울 계획이었다. 지난날의 기억은 꼭 세월이 흐른 뒤, 현재의 내 모습을 지난 과거의 장소로 옮겨 놓는다. 10여년 전, 친구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가까운 내 미래 모습을 상상하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추억의 장소에 다시 홀로 서있는 것이다.
흙이 많이 쌓여 있는 곳에는 때 이른 코스모스가 피어있기도 했고, 하늘은 어스름한 기운과 붉은 노을이 구름과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와 강가의 자갈밭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좀 있으면 어두워질 하늘의 모습을 살피면서 모닥불을 피울 준비를 하기 위해 주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았다. 야전 삽으로 구덩이를 깊게 파고, 구덩이 주위에는 평평한 돌로 우물을 쌓듯 동그랗게 원을 만들었다. 그래야 저녁 산들 바람에도 큰 불씨가 날리지 않는다. 모닥불을 피운 후, 텐트도 쳤다. 밤을 지새우다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 없다면 텐트 안에서 잘 것이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잔뜩 웅크리고 앉아 손등을 턱에 괸 채, 넓은 들판에서부터 곧 찾아올 어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태양은 꼭 자신의 존재를 여운으로 남긴다. 그 여운의 존재가 바로 황혼이다. 해 저무는 풍경은 언제나 쓸쓸하고 아름답다. 하루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곧 세상을 환하게 비추다가 아쉬움만 남긴 채 사라질 것이다.
***
사람의 마음이란 이리도 번잡스러운 걸까?
이렇게 도시를 떠나온 것은 정말 잘한 것 같다.
용기를 내어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아둔함과 부족함을 채울 수 있었으니….
고독은 늘 내면 한가운데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가니 정적은 혼탁한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이라고….밤하늘의 자비로운 정령들이시여!
당신들께서는 언제나 소리 없는 자유를 누리시고
가장 초라하고 미약한 시간의 여분을 제게 주십시오.
조화로운 자연의 관대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고
살아가는 동안 확신과 신뢰를 버리지 않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
나는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게 가장 안타까운 모습이 있다면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나의 현재 모습과 내 곁을 너무도 일찍 떠나버린 부모님의 모습이다. 나는 어릴 적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많이 슬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던 아버지의 친구께서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부모님은 밤하늘 속에 정령으로 다시 태어났을 거라고.’ 어린 나는 그 말이 거짓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부터 유난히 그리운 상념想念이 떠오르면 밤하늘을 바라보며 정령의 모습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지난 과거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기억은, 나이 많으신 사촌 형님의 말씀처럼 이젠 과거의 모습이 소중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이런 저런 많은 생각으로 방금 지핀 모닥불을 바라보며, 어둑한 저녁의 그림자가 들판을 검게 물들 무렵이었다.
그런데.
자갈길 한참 멀리서부터 누군가 현재 내가 위치한 이곳 방향으로 인기척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것 아닌가! 들판에 펼쳐진 붉은 빛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짙은 어둠은 그 빈 자리를 점점 채워가고 있었다. 이제 잠시 시간이 지난다면 내가 앉아 있는 이곳으로 걸어오는 사람도 나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거리의 간격은 더욱더 가까워질 것이다. 어둑한 그림자가 시야를 가렸기 때문에 잘 살필 수 없었지만 유심히 살펴보니 걸어오는 사람은 다행히도 한 명뿐이었다. 여러 명이라면 만일을 대비하여 야전 삽을 옆에 준비했을 것이다. 나 스스로 ‘다행이다.’ 안도하고 있는 순간 그런데 ‘이럴 수가!’ 걸어오는 사람은 놀랍게도 젊은 여자 한 명뿐 아닌가! 나는 다시 한 번 가슴이 철렁거렸다.
정말 이상하고, 믿기지 않는 일이다. 현재 내가 위치한 임진강 여울가에는 넓은 들판과 물이 스며드는 자갈밭이 펼쳐져 있을 뿐,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푸른 하늘의 모습도, 붉게 물든 태양의 그림자도 이제 곧 어둠 속에 완전히 파묻히게 된다. 또한 이곳 근방엔 사람이 살 수 있는 편의시설이나 가옥이 전혀 없다. 그런데 남자도 아닌 젊은 여자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인적 없는 강변의 자갈길을 일행도 없이, 더구나 차도 아닌 도보로 한참을 혼자 걸어올 이유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