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강흥수 지음 | 북향
조광조
강흥수 지음
북향 / 2014년 7월 / 340쪽 / 14,000원
사람만 바뀌었구나
연산의 폭정으로 팔도가 신음하고, 중종반정(1506년)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 같았으나 결론적으로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민초들은 여전히 고통이었고, 관리의 수탈은 더욱 심해졌다. 다만 조정의 요직과 그에 버금가는 자리들만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연산의 폭정 속에 아첨하며 부를 키워가던 권신들의 가산은 모두 적몰되었으나, 그것은 그대로 반정공신들의 손에 들어가버렸다.공신 천하, 지금의 조선은 말 그대로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며 일어선 공신들은 그 뜻은 뒤로한 채 치부(致富)에 여념이 없었고 그들에 맞설 인재도, 세력도 전무했다. 폭군 시대에 거듭된 사화로 인해 사림(士林, 성리학을 전공함으로써 그 진수를 터득하여 체질화한 학자들)은 그 씨가 마른 지 오래였고, 조선을 이끌 이념인 성리학은 이제 죽음의 학문으로 인식되어 버려진 지 오래였다.성리학의 암흑기는 반정이 끝난 직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채, 권력에 의한 권력의 쟁취를 위한 시대만이 십 년 가까이 이어져갔다. 이런 암흑기에 홀로 초야에 묻혀 성리학에 몰두한 지 십여 년, 더는 홀로 깨우칠 것이 없던 정암 조광조는 초시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입교했다. 그는 자신의 큰 뜻을 이루고 싶었으나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균관의 유생들과 힘을 모아 여러 번 조정에 개혁의 물꼬를 틀 상소를 올렸으나, 그 어떤 해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주상 전하께서 자신의 뜻을 알아줄 것이라고, 또한 유생들의 힘을 모으고 또 모아 하나의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다면 세상을 바꿀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조광조는 생각했다. 반정으로 세상이 바뀌던 날, 조광조는 스승 김굉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연산과 그 잔당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 가지 못했고, 알 수 없는 공허함만이 가슴 깊이 밀려들었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세상이 바뀌어야 했다.조선은 유학에 의한 유학의 나라였다. 수많은 권신의 무리들을 상대할 수 없다면 오직 한 명, 그 모두를 제압할 수 있는 존재인 왕, 그 왕을 깨우쳐야 한다. 깨우친 왕에 의한 왕도 정치의 실현, 그것이 조선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었으나 지금의 왕은 너무도 우유부단했다. 중종은 세자 시절 없이 공신에 의해 업혀온 왕이었고, 그렇기에 세자 시절 쌓아야 하는 치세의 수업 또한 있을 수 없었다. 그저 공신을 예우하고, 그들이 만들어준 용상 위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세상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조광조는 자신이 꿈꾸는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위에서부터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광조는 서른이 넘어서면서부터 자연스레 초토화돼버린 사림의 영수가 되어 있었다. 어리기에 한없이 영광스러울 수도 있으나, 어리기에 한없이 짐스럽고 조심스러웠으며 두려웠다. 자신 하나의 잘못이 자칫 사림 전체의 잘못이요, 판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조광조는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을 가꾸고 다듬고 수양했다.
내가 사림의 영수다
중종은 최근 들어 경연 횟수를 부쩍 늘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조판서 안당이나 우의정 정광필을 빼고는 경연에 드는 경연관들이 대부분 학문이 부족한 공신들이어서 학문을 구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어 하는 중종의 속내를 읽은 안당이 사림 인사 중에서 학식이 높은 자를 초청해 경연에 임해보는 게 어떠냐고 건의하자 중종이 흔쾌히 승낙했다.“특별히 점찍어놓은 인사가 있는가?”
“얼마 전에 전하께서 조지서 사지로 부임시킨 조광조이옵니다.”
“정암 말인가?”
“예, 전하.”
조지서는 저화(楮貨)를 만드는 데 필요한 종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그 품질과 크기 및 무게 등을 관리하는 곳으로 그곳의 책임자인 사지는 종6품의 하위직이었다.중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반정을 주도하는 핵심 세력이었던 세 공신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다. 무언가 자신의 포부대로 국정을 운영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진심으로 충언하고 조언해줄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그렇지! 조광조가 있었지.’
***
첫 관직인 조지서 사지로 부임한 조광조가 중종의 부름을 받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음 날 오후 늦게 정암은 궁으로 들어가 경연에 참석했다. “신은 오늘 예기(禮記) 왕제 편을 강할 것이옵니다. 전하.”
“시작하라, 정암.”
“예기의 왕제 편을 보면 ‘제후는 까닭 없이 소를 잡지 않으며, 대부는 까닭 없이 양을 잡지 않고, 선비는 까닭 없이 개, 돼지를 잡지 않으며, 서인(庶人)은 까닭 없이 진미를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그것이 무슨 뜻인가?”
중종이 모를 리 없지만 답을 들어보려 물었다.
“최근 도성의 개가 씨가 말라 도둑들이 쉽게 담을 넘는다 하옵니다.”
“해괴하구나. 무슨 연유인가?”
갑자기 공신인 김안로와 심정의 안색이 차갑게 변했다. 두 사람은 개고기 광신도였고, 그 도가 지나쳐 요직에 오르려면 뇌물이 아니라 개고기를 상납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지경이었다. “나라의 녹을 먹는 대신들 중에 탐식의 도가 지나쳐 문란한 지경에 이른 자들이 많아 자칫 우매한 백성들이 본받을까 두렵사옵니다.”자신들을 비꼬아 하는 말에 김안로와 심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조광조의 강연이 이어질수록 그 내용 하나하나가 공신들의 전횡을 꼬집는 것들이어서 경연청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정암은 비판과 배움을 교묘하게 섞어가며 강의를 이어갔다. 중종은 경연이라는 명목하에 공신들을 교묘히 비판한 조광조의 탁월한 지혜가 너무나도 신통했다.‘참으로 놀라운 자로구나. 공신들을 저리 꾸짖다니. 그 기개가 참으로 칭찬할 만하구나.’
중종은 어쩌면 조광조라면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은밀한 만남
“조광조를 들이라.”
늦은 밤이었다. 일과를 마친 중종은 후원으로 조광조를 은밀히 불러들였다. 그동안 조정의 모든 요직은 공신들이 차지해왔다. 중종은 이제 새로운 사림이 필요했다. 반정 후의 모든 정치적 책임과 공록에서 자유로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투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대를 가리켜 사림의 영수라 하던데, 과인은 그대가 부럽다. 사람을 따르게 만드는 그런 힘이 부럽다. 정치는 사람이 사람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지.”“옳은 바만을 행한다면 따르지 않을 사람이 없사옵니다. 사특한 무리라고 하여도 옳고 그름 앞에서는 왕도가 없사옵니다.”강직한 정암의 목소리를 듣자 우울했던 중종의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전하, 군신 간의 의리는 범부의 의리와는 다르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이미 공이 있는 자들에게는 충분히 은혜를 베푸셨으니, 이제 필요한 자들을 가려 뽑아 쓰시옵소서. 그것이 진정한 대의를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옵니다. 인사가 만사라 하였습니다.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자를 쓰시는 것에 어찌 망설임이 있겠습니까.”정암의 오묘한 말들이 중종의 귀에 봄바람처럼 시원하게 파고들었다.
시린 가슴
연산의 폭정이 심해지면서 어린 진성대군은 연산이 언제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공포 그 자체였다. 한 살 위인 부인 신씨가 없었더라면 참기 힘든 세월이었다. 마침내 반정으로 연산을 몰아내고 보위에 오르던 날, 두 사람은 이제야 불행이 끝났다며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궁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진정한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고 말았다. “전하, 전하, 소첩도 데리고 가시어요.”
열아홉의 신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지만 진성대군의 집으로 몰려온 반정군들은 신씨는 놔두고 진성대군만 궁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모두가 떠난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져 있던 신씨는 다음 날 날이 밝고서야 자신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반정군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부터 자신에게 들이닥칠 불길한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다.
***
폐비가 되어 홀로 지내고 있는 신씨에 대한 죄책감이 중종을 사로잡았다.
“전하, 찾으시었습니까?”
후원에서 상념에 빠져 있는 중종을 깨운 것은 조광조였다.
“얼마 전에 신비를 몰래 보고 왔네.”
“전하, 이제 교태전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줄 때가 되었사옵니다.”
정암의 말에 중종이 흠칫 놀랐다.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허면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옳겠는가?”
“신비마마의 일은 조정에서 논할 것이 아니라 넓게 구언을 구해보시옵소서. 허면 그동안 듣지 못했던 세상의 소리가 전하께 찾아올 것이옵니다.”중종은 정암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조정은 이미 공신들 천하였고, 삼사 또한 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씨의 일을 조정에서 처리한다면 결과는 너무도 뻔했다.중종이 신씨의 일을 다시 처리하고자 마음먹기가 무섭게 세상의 소리가 도성 안으로 날아들었다. 담양부사 박상, 순창군수 김정이 폐비 신씨를 복위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문을 임금에게 올렸다. 상소문의 내용은 도성 안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대노한 공신들은 호조판서 홍경주의 집으로 모여들어 대책을 논의했다.“이 일의 배후에는 전하와 조광조 그자가 있습니다.”
“일을 크게 벌일 것 없습니다. 신씨를 폐위할 때 분명 후에 그 일을 다시 거론하지 않기로 전하와 밀약한 바가 있습니다. 조정의 중론을 모아 폐비로 삼은 신씨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조정 중신들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허니 상소를 올린 두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읍시다.”“조광조 그자, 뭔가 일을 벌일 것 같아 불안했는데 기어이 배후에서 이런 일을 꾸미다니.” 신씨의 복위 상소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경빈이었다. 신수근을 제거한 것이 자신의 부친인 박원종이었고 신씨를 폐위시키는 데 가장 앞장선 것도 박원종이었다. “담양부사 박상, 순창군수 김정. 이 쥐새끼 같은 자들이 감히 내게 칼날을 겨눠!”
“마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이번 일은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박원종의 후광으로 정국공신에 임명된 심정은 경빈과 결탁해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
***
다음 날 날이 밝기 무섭게 대전에 모여든 대신들은 중종이 용상에 앉자마자 상소를 올린 박상과 김정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하, 죄인의 여식을 곤전으로 두는 것은 고금에도 없는 일이옵니다. 또한 우리가 반정을 한 것이 폐비 윤씨로 인해 광인으로 변한 연산의 폭정 때문인데, 신씨를 살려두고 어찌 후대에 다시 그런 일이 없다 하겠사옵니까! 지나온 일을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는 것은 군자의 도리임을…….”“당치도 않습니다. 지나온 과오를 바로잡자 하는데 어찌 잘못된 일을 군자의 도리라 말씀하십니까?”사간원 정언 조광조가 더는 참지 못하고 홍경주의 말을 자르며 앞으로 나섰다.
“무엄하다! 어찌 일개 낭관 따위가 조정 대신의 말을 가로막는 것이냐!”
공신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또한 실록에도 중종이 조정의 중론을 모아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중종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신씨 복위를 도모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곤경에 처한 셈이었다. 훈구세력들은 이번 상소를 일벌백계로 다스리자고 주장했고 사림과 유생들은 신씨를 복위하라는 주청을 올리고 있었다. 조정은 두 패로 갈려 치열한 공방전이 연일 이어졌다. 그러는 가운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암초
언제부턴가 도성 안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소문의 내용은 신씨를 가엾게 여긴 백성 하나가 곳간에 쌀을 몰래 갖다놓으려 늦은 밤 월담을 하였는데 텅 비어 있을 줄 알았던 곳간에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검소한 척했지만 최근 자신의 복위 문제가 재론되자 왕비가 되면 좋게 봐주겠다며 재물을 거둬들이고 관직까지 팔았다는 것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조광조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러나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 마침내 중종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중종도 기가 막혔으나 상소가 올라온 이상 계속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즉각 신씨의 집을 수색하여 사건의 진위를 밝히라.”
중종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헌부의 감찰들이 신씨의 집으로 달려갔다. 신씨의 누추한 곳간에는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공신들이 꾸민 음모였다.중종은 여러 날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어명을 뒤로하고 대비가 중종을 찾았다. 누구보다도 중종의 참담함을 아는 대비였다. “주상, 그만 신비의 일을 덮으세요. 모진 세월이었습니다. 주상도, 이 어미도 그리고 신비에게도. 그렇게 세월 속에 묻어두세요. 생각해보세요. 신비가 비록 심성이 곱다고는 하나, 훗날 저들에게 칼을 들이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미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달려온 세월입니다. 그 세월 속에 신비가 사라진 것이에요. 인정해야 합니다, 주상.”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대비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
공신들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신씨를 도성 천리 밖으로 귀양 보낼 것을 주청했다. 그러나 정암은 홀로 죽기를 각오하고 아뢰기를 멈추지 않았다.“전하! 어찌 신하 된 자가 국모를 내칠 수 있단 말입니까. 지난날의 일을 바로잡으시고 현재의 모함을 진실로써 밝혀내야 할 것이옵니다.”중종은 어떤 결단도 내릴 수 없었다. 신씨가 억울하다는 사림의 상소와 박상과 김정을 유배 보내야 한다는 상소가 연일 중종 앞으로 날아들었다. 조광조도 다시 한 번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렸다. “전하, 구언은 예로부터 나라의 중대사를 정할 때 널리 만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시행한 제도입니다. 헌데 구언에 따라 상소를 올린 신하를 유배를 보내라 하니 이는 양사의 간관들이 그 직을 바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입니다. 대간은 죽음을 각오하고 직언하는 것이 생명이온데, 직언하는 자들을 죽이자 하니 어찌 그들을 대간이라 할 수 있으며 어찌 그런 자들과 함께 종사를 논할 수 있겠사옵니까. 소신 바라옵건대 양사의 모든 대간들을 파직하기를 간절히 청하옵니다. 전하!”양사의 모든 대간들을 파직해야 한다는 조광조의 상소는 크나큰 파문을 몰고 왔고 공신과 사림 양측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그러자 홍문관 직제학 김안로가 양시론을 제시하고 나섰다. 상소를 올린 박상과 김정도 옳고, 그들을 비난한 공신들의 주장도 옳다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으나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 주장이었다. 중종은 결국 정치적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안로의 양시론을 채택해 더 이상 이 일을 거론치 말라는 말로 사태를 매듭지었다.조광조는 허탈했다. 더러운 조정에 더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사직하기를 여러 번 청했지만 중종은 윤허하지 않았다. 정암은 조정에 출사한 이래 처음으로 현실 정치의 높은 벽에 부딪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다.
개혁의 칼
정암 조광조가 출사한 지도 이제 여러 해가 지났다. 대과에 급제한 이래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던 정암은 마침내 사헌부 수장인 종2품 대사헌에 올랐다. 세상에서는 그가 곧 공신들을 요절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이제 양사는 물론 삼사의 언로도 모두 조광조의 측근들이 장악했다.마침내 공신들을 내쫓을 자리에 오른 정암, 그는 이제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칠 때라 여겨 조정의 정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조정 곳곳에 뿌리내린 공신들의 세력은 정암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막강했다. 중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자신을 도와 개혁을 주도할 인물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임금만 바로 선다면 모든 것은 다 바뀔 것이라고 정암은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길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