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그림으로 보는 세상

이영훈 지음 | 마음지기
그림으로 보는 세상

이영훈 지음

마음지기 / 2014년 12월 / 280쪽 / 15,000원





PART 1_ 뒤돌아보면 보이는 세상



고단한 삶이 힘겨운 이들에게 _ 천적이 있어 행복한 당신

먼 바다로 나가 참치를 잡는다는 것은 포획 그 자체보다도 장거리를 돌아오는 동안 싱싱함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더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해 잡자마자 급속 냉동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잘 살아 있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아마 가장 좋은 보존일 것이다. 게다가 싱싱한 상태라면 더욱. 그래서 참치잡이 원양어선은 살아 있는 참치를 보관하는 어창에 천적 물고기 한 마리도 함께 넣는다고 한다. 이미 포획된 참치는 더 이상의 저항이 필요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조차 끊임없이 천적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하는 것이다.

때론 삶도 이와 같이 야속한 경우가 많다. 더는 저항할 기운도 없을 만큼 힘이 빠지고 피할 곳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조차 해결의 실마리는커녕 또 다른 적과 부딪쳐야 할 때가 있다. 이미 놓인 상황만으로도 벅차서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데도 새롭게 등장한 막강한 놈과 또 맞닥뜨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원망이나 걱정할 틈도 없이 그저 피해 다니거나 아니면 무조건 싸워야 한다. 힘들다고 불평하거나 앞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조차 사치스러운 것이기에. 지쳐 쓰러져 결국 천적의 먹이가 되어 버린 참치도 더러 있겠지만 그래도 필사적으로 도망친 덕분에 원래의 상태보다 더 팔팔해지는 참치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이란 열심히 달린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유익한 훈련이 될 수도 있다. 국민 드라마였던 <선덕여왕>에서 평생 자신을 괴롭히던 미실의 죽음을 보고 선덕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쫓아다닌 이 막강 천적 때문에 강해질 수 있었고 왕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노라는 고백이었다.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 게다가 쫓아오는 적……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천적임을 미리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제법 유쾌하게 이들과 맞닥뜨릴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에게 충고하려는 이들에게 _ 충고

30년도 더 되는 오랜 세월 동안 좋아해 온 가수가 있다. 꾸준하게 좋아할 만큼 활발히 활동 중이고 크게 히트한 곡도 많아 그의 노래는 후배 가수들에 의해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말도 재미있게 잘해서 10년 넘게 청소년 대상 라디오 심야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밤의 문화부 장관’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을 영원히 진행할 것만 같았던 그가 인기 높았던 프로그램을 그만두게 된 이유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청소년들이 보내온 사연을 읽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 주었는데 점점 그들에게 충고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억울한 사연은 공감해 주고, 힘들 때 같은 편이 되어 주면 충분한 위로가 되는데, 사람들은 자꾸 충고하고 싶어 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길을 제시해 주려 한다. 옳고 그름은 그들도 이미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드니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 달라는 뜻으로 하소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충고를 해준다는 이유로 이미 아픈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하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초콜릿을 씌워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충고에는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안다’라는 우월감이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려는 교만함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니 자신이 하는 충고(혹은 잔소리)가 위로인 줄 알고 자꾸 말이 많아진다. 많이 들어 주는 ‘따뜻한 사람’이 아닌, 좋은 말만 하는 ‘멋진 사람’이 되려 하는 것이다. 조금만 인정받아도 그저 드러내고 싶어 하는 자신을, 높이 올라섰을 때에도 과연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까?

20년 후보다 두 달 후가 더 중요하다는 이들에게 _ 북극성 같은 미래

대학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던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즈음, 당시 방송국에서 진행하던 고등학교 탐방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주제에 따라 프로그램의 재미가 크게 좌우되곤 했다. 우리 학교 참가자들은 ‘20년 후(After 20 years)’로 주제를 정했는데 당시 영어 교과서에 실렸던 오 헨리의 단편소설의 제목에서 착안한 것이기도 했지만, ‘미래’라는 주제가 청소년들로부터 가장 다양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듯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그 주제를 마주하고 내가 했던 고민은 ‘20년 후 내 모습, 20년 후 세상의 모습’이 아닌 ‘두 달 후 방송에서 내가 얼마나 재미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20년 후의 내 모습’은 마치 맞닥뜨릴 것 같지 않은 ‘추상 세계’였으니까.

몇 년 전 한 대학 연구소에서 지금부터 약 30년 후인 ‘2040년 한국의 삶과 질’에 관한 보고서를 내놓은 것을 유심히 들은 기억이 있다. ‘평균 수명의 증가’, ‘국민 소득 증가’, ‘우주여행 보편화’ 등 장밋빛 전망도 있었고 ‘실업률 증가’, ‘1인당 환경부담금 현재보다 배 이상 증가’ 등 불길한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설혹 온통 장밋빛 전망이라 할지라도 과연 많은 사람이 그것을 바라보며 현재의 어려움을 기쁘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대부분 우리는 ‘30년 후 우주여행’보다는 ‘석 달 후 하와이 여행’이 더 간절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지나간 안 좋은 일은 모두 잊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덕담을 나누곤 한다. 사람에 따라 이런 인사가 큰 힘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세월이 갈수록 무덤덤해진다. 오히려 ‘새해라고 대단한 게 있겠어?’ 하며 심술만 커져 가는 느낌이다. 혹시 ‘밝은 미래’라는 것은 마치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도달할 수도, 손에 잡을 수도 없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달려가도 계속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그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렇지만 그 잡을 수 없는 ‘북극성 같은 미래’라는 목표가 없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몰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갈 필요성도, 의지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 위치 역시 투덜투덜 힘겨워하면서도 ‘북극성 같은 미래’의 빛을 따라 계속 가고 있는 것일 게다. 지금은 올 것 같지도 않은 미래이고 막상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 듯한 미래이지만, 그 ‘추상 미래’가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걷는 걸음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일 것이고 그 방향이 우리의 ‘20년 후’를 만들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 그 프로그램에 임하면서 ‘두 달 후’보다 ‘20년 후’를 더욱 고민했다면 혹시 지금의 내 모습도 많이 달라졌으려나?



PART 2_ 고개를 들면 보이는 세상



삶의 늪에 빠져 발버둥 치는 이들에게 _ 늪

오래전 TV에서 방영했던 <타잔>이라는 드라마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으로 화려하게 제작되어 요즘 아이들에게까지도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타잔은 위급할 때 “아~ 아아~ 아아아아~~” 하며 거대한 코끼리들을 불러 모아 정글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을 물리치기도 하고, 긴 나무덩굴을 이용해 길도 없는 정글 구석구석을 날아다니곤 했다. 그런데 <타잔>에서 총을 가진 악당들보다 악어, 사자,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늪’이었다. 늪에 한 번 빠지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빠져나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깊이 빠져 버리는 것이 이 늪이라는 것을 나는 자연 시간이 아니라 <타잔>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후 늪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됐다. 악어, 사자, 호랑이는 내가 있는 힘을 다해 싸우면 이길 수도 있는 대상이지만, 늪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이때 주로 구원자 역할로 등장하는 것이 ‘치타’라고 부르는 침팬지였는데, 그 작고 힘없는 침팬지가 던져 주는 나무덩굴 하나로 타잔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 삶도 가끔 악어, 사자, 호랑이처럼 무서운 문제 앞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더러는 이 무시무시하고 자신보다 훨씬 힘이 센 문제 앞에서 마치 영화처럼 내가 가진 몇 개의 무기들(지식, 돈, 총기 같은 것들)로 몇 번쯤 이겨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 있는데, 바로 이 늪에 빠진 경우다. ‘악어, 사자, 호랑이와 싸웠던 경험으로 한번 대항해 보자!’ 하는 각오로는 안 되는 대상이 바로 이 늪이고, 살아서 펄펄 움직일수록 불리해지는 곳이 늪이다.

내가 가진 것이 의미 없어지는 곳이며, 내 힘으로 악어, 사자, 호랑이를 물리쳤던 경험이 오히려 내가 ‘나의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데 시간을 더 지체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내 생각과 내 힘과 내 의지를 다 내려놓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라는 고백이 나오는 곳이며, 나는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외쳐야만 하는 곳이 바로 이 ‘늪’이다. 그런데 영화와 같이 늪에 빠지는 순간 자신이 늪에 빠진 것을 알면 좋으련만 늪에 빠진 줄도 모르고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계속 발버둥 치다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 ‘타잔의 늪’과 ‘현실의 늪’의 차이인 것 같다.

갈등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_ 갈등 해결의 열쇠

딸과 나는 친한 모녀지간이지만 가끔은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지는 때도 있다. 경험상 내 의견이 옳은 듯한데 딸 역시 매우 타당성 있게 자신의 의견을 확신에 차서 설명하면 둘 다 양보가 어려워진다. 딸의 말을 듣다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종종 내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네 생각도 옳고 내 생각도 옳다”까지는 인정할 수 있어도 ‘내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오면 화를 내거나 그 자리를 떠 버려서 수습이 어려운 상태로까지 변하기도 한다. 참 졸렬한 모습이라 뒤통수가 뜨거우면서도 당장 쿨하게 인정하고 “네 뜻대로 하자”라고 말하기는 참 어렵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아버지한테 느끼는 답답함을 지금 딸이 느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해진다. 때론 상황을 잘 이해하시면서도 불리한 것은 외면해 버리거나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꾸시라고 해도 “알겠다”고 대답만 할 뿐 여전히 바꾸지 못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화내며 상황을 모면하려는 나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끝까지 내가 옳다고 또박또박 주장했던 모습이 심히 부끄러워지고 만다.

과연 내 의견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만이 내게 좋은 결론일까? 그렇다면 한쪽의 의견이 옳다고 결론이 날지라도 상대방은 “네 의견이 옳지만 너를 따르기는 싫어”라고 말하고 돌아설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전투에선 이기고 전쟁에선 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은 그 의견에 동의한다기보다 의견을 낸 사람을 신뢰한다는 뜻이 더 강할 수도 있다. 갈등은 의견 차이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호감이 훨씬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녀지간의 갈등은 당시에는 수습이 안 될 것 같아도 항상 몇 시간도 못 가 서로 후회하고 사과 분위기로 훈훈해진다. 부녀지간의 답답함 역시 결론도 없고 바뀌는 것도 없지만 그저 매일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처럼 말이다. 갈등의 극복은 정확한 판단이나 풍부한 경험보다는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인정하고 믿어 주는가에서 시작해야 윈윈(win-win)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잘못 섞인 색 때문에 새로 그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_ 혼합색의 매력

‘색에는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이 있으며 나머지 모든 색은 이 삼원색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 어린 시절 배운 이 이론은 성인이 되어서도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원색은 섞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에 매우 맑고 화려하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이 세 가지 원색만 있으면 무한대의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색을 섞다 보면 신비하고 오묘한 색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구정물같이 탁한 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처음 의도한 색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면 버리고 새로 만들어야 하지만, 버리고 싶은 색일지라도 그림 그릴 때 매우 요긴한 경우가 있다. 주제를 잘 살리면서도 자신은 드러나지 않는 최상의 배경색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화려하기만 한 색들 가운데서 좋은 중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색은 모든 색이 다 섞여 있어 어떤 색과도 어색한 부딪침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 영유아기를 거치고,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마치 원색이 이것저것 섞여 색이 변화되어 가듯 좋든 나쁘든 변화되기 마련이다. 처음 원색의 느낌이 많이 오염되지 않은 채 맑음을 잘 유지하는 사람도 있겠고, 필요에 맞게 섞여 일찌감치 적소에 활용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너무 탁해져 어디에도 쓸 수 없게 된 색처럼 지난 세월이 ‘버리고 싶은 헛된 시간’으로 기억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혼합된 색에서 부적당했던 색만 빼낼 수 없는 것처럼 ‘내 지난 세월 중에서 이것만 없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부분만 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어린이처럼 “선생님! 그림 망쳤어요! 도화지 새것으로 다시 주세요!” 하고 외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PART 3_ 천천히 걷다 보면 보이는 세상



출발선상에 서 있는 이들에게 _ 반전

요즘 엘리베이터는 참 똑똑하다. 여러 대 중 어느 것이 가장 빨리 도착할 것인지 굳이 사람이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의 단추만 누르면 모든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그중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층수가 바뀌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빨리 올 것 같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옮겨 서곤 하는데 예상이 어긋나는 경우도 꽤 많다. 이쪽에서 기다리다 저쪽으로 옮겨 갔는데 오히려 처음 서 있었던 곳의 엘리베이터가 먼저 오기도 한다. 운 좋게 전혀 기다리지 않고 탔다고 해서 반드시 빨리 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많아 층층이 서는 경우가 생기면 오히려 기다렸다가 타는 경우보다 못할 때도 있다.

물론 이런 반전이나 역전이 늘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처음에는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그저 지루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고, 시작부터 쑥쑥 잘 풀려 많은 이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달리기하듯 빨리 나갈 수도 있다. 먼저 출발했다고 해서 먼저 도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위에서 종종 봤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기다림 앞에서는 불평하거나 더 나은 듯 보이는 쪽으로 수시로 이동하기도 한다. 반대로 거침없이 조금만 잘나가도 금방 우쭐해지는 마음을 감추기 힘들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거나 안 좋은 일 앞에서는 금세 낙심되고, 좋은 일 앞에서는 영원히 잘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매일매일 마주치면서 매번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 주는 이 엘리베이터는 나에게 당장 좋다고 계속 좋은 것이 아니고, 당장 나쁘다고 끝까지 나쁜 것만도 아니라고 매일매일 확인시켜 준다.

명품 인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_ 정성으로 빚은 명작

“그림은 정성이다.” 이 말은 내가 그림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많이 들려주는 말이다. 대충 그리고, 대충 색칠하고 마는 정성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들려준 말이 아니라 백지를 앞에 두고 아무런 표현도 하지 못해 망설이는 용기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반복해 들려주는 말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되, 되도록 풍성하게 표현하고 정성껏 색을 입혀 나가다 보면 그 그림은 당연히 멋진 그림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해 주곤 한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