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김용전 지음 | 샘터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김용전 지음
샘터 / 2014년 9월 / 448쪽 / 15,000원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전체와 부분
내가 꿈꾸는 직장은 어디에 있을까?: 바야흐로 이직의 전성시대다. 1980년 이후 출생자 중 경력 2년 미만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2011년, 대한상공회의소), ‘현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본다’는 답은 2.1%에 불과하고, ‘나중에 이직을 할 수 있다’가 55.9%, ‘지금 이직을 추진 중이다’가 23.8%, ‘이직을 위해 공부 중이다’가 18.2%로 나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직장인 상담 코너를 맡은 내게 들어오는 고민 역시 이직에 대한 것이 가장 많다.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여기지만, 그러면서도 요즘 다소 걱정이 되는 것은 재직 기간이 아예 1년도 채 안 된 새내기 직장인들이 이직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온다는 사실이다. 물론 1년이 아니라 한 달이라 해도 ‘여기는 정말 아니구나!’ 하는 확실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문제는 1년이 채 안 되어서 이직을 한 분들 가운데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취지의 상담을 해오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떠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후회된다, 그런 이야기인데 이는 전체를 파악하기 전에 부분만 보고 섣불리 결정을 내린 결과다. 너무 가볍게 움직이다 보면 자칫 이곳저곳을 한없이 기웃대는 파랑새 증후군에 빠질 수도 있는데 과연 1년 미만의 짧은 기간 동안에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을 전부 알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외교부에 들어온 지 10개월 된 여성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외교부가 상당히 낭만적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외교부는 제가 꿈꾸던 그런 직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낭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해외 근무를 할 수 있는 무역 회사로 이직을 고려 중인데요. 어렵게 들어온 공무원 자리라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분이 생각하는 낭만이라는 것이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그것이 과연 1년도 안 되어서 쉬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인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상당한 실력을 가졌고 판단이 빠르며 성격이 단호하여 직장을 옮길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일단 마음을 비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마음을 비운다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어떤 직장에 들어가면서 ‘이곳은 이럴 것이다, 저곳은 저럴 것이다’를 미리 단정 짓지 말라는 뜻이다. 당장 해외로 나가서 세계무대에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해보는 것이 꿈인 것 같은데, 그 꿈은 좋으나 장소와 시기가 문제다. 즉, 내가 바란다고 해서 조직이 당장 그 소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두 번째 뜻은 어떤 하나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낭만’이라는 요소에 집착하다 보니 외교부에서 그 외에 다른 좋은 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직장이라는 곳에는 기쁜 일이 있는가 하면 슬픈 일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명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도 있다. 어떤 조직이든 복합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덧붙여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직장 생활에서 내가 아무리 빨리 맛보기를 원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것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야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고된 수고 뒤에 맞이하는 휴식이 달콤하고, 진하게 흘린 땀 뒤에 마시는 청량음료가 시원하기 그지없듯이, 나의 일터 안으로 좀 더 진지하게 깊이 파고들어 가보면 거기에 내가 꿈꾸던 어떤 희열이 있지 않을까? 진정 그 일에서 무언가 찾는 게 있다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섣불리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말자. 알고 포기하는 것과 모르고 포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간혹 정거장에서 내가 탄 차가 출발 예고도 없이 갑자기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실은 맞은편 철로에 서 있던 차가 움직이는 것인데 순간적으로 이쪽 차가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럴 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눈을 돌려 반대편 창밖을 보면 된다. 인생살이도 그렇다. 눈을 돌릴 줄 모르고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내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데서 불행은 비롯된다. 오늘 이 길이 아니라고 포기할 때 ‘과연 내가 이 길을 얼마나 가보았는가’를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 잘못 든 길을 무작정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제대로 잡은 길을 잘못된 길이라고 오해해서 돌아서는 건 치명적인 실수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아무리 99도를 오래 유지해도 끓지 않는다. 99도에서 100도까지의 차이는 불과 1도다. 오늘 내가 돌아서는 이 길이 99도까지 올라가고도 1을 더하지 못해서 포기하는 길은 아닌가?
멀리 가야 하는가, 높이 올라가야 하는가?
생계와 가치
취업 안 되는데 분식집이라도 해볼까?: 청년 니트족이 백만을 넘어가는 그야말로 취업난의 시대다. 학업을 마친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적성이나 소질 등을 찾아서 재취업을 하려는 이들 역시 마음같이 되지 않으며, 중년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도 이런저런 직장이나 일들을 알아보지만 역시 쉽지 않다. 그럴 때 사람들이 눈을 돌리는 것이 자영업이다. 내가 주인이 되어서 뱃속 편하게 내 방식대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하면 월급쟁이 이상의 수입도 올릴 수 있다. 간혹 취업 대신 자영업을 선택하고자 하는 기로에 선 이들이 가부를 물어온다. ‘취업 안 되는데 포장마차라도 할까 합니다.’라든지, ‘해직되었는데 나이가 있어서 재취업이 어렵습니다. 조그만 가게나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자영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까짓것 열심히 하면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등의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필자의 답은 ‘네,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하세요!’였다. 그렇게 찬물을 끼얹은 이유는 내가 보기에, 이분의 각오는 ‘과감’이 아니라 ‘무모’였기 때문이며, 무모하다고 보는 이유는 바로 ‘라도나 인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도나 인생’이란 어떤 일을 할 때 ‘~라도’ 또는 ‘~나’로 생각하고 시작하는 인생을 말한다. 이거 하다 안 되면 ‘저거라도’ 하자거나,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그거나’ 해볼까 하는 식인데 이렇게 어떤 일을 한 가지에 목숨 거는 식이 아니라 대충 ‘one of them’으로 선택해서는 성공할 확률이 아주 낮다. 왜 그럴까? 반드시 이걸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도 그걸 못하기 때문에 ‘이거나 아니면 저거라도’ 차선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에서는 무서운 집중력과 불타는 정열이 나올 수가 없다.
이분에게 자영업을 만류한 이유도 바로 “조그만 라면집이라도 해볼까”라는 말 때문이다. 라면집이라도? 우리나라에서 평균 한 해에 음식점이 12만 4299개가 문을 열지만 동시에 12만 4773개가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알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왜 직업을 먹고사는 일로만 생각할까? 직업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직(職)의 측면인데 이는 그야말로 ‘생계유지를 위해서 재화를 획득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업(業)의 측면인데 ‘보람을 느끼고 자아 성취를 위해서 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직장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항은 ‘직’만 보고 일하면 오히려 먹고살기가 어려워지고, 승진도 잘 안 되고, 후배가 팀장으로 먼저 온다는 사실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업으로 승부하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 어떤 기여를 하며 그래서 거기에 어떤 보람이 있고 마침내는 내가 어떤 성취를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매진하면 돈도 잘 벌리고 승진도 술술 되고 선배를 추월해서 팀장으로 올라설 수 있다.
이분이 라면집을 하고자 한다면 ‘라면집이라도’가 아니고 ‘다른 거 할 일도 많지만 꼭 라면집을 하고 싶다. 왜? 내가 정말 잘 끓이는 라면을 손님들에게 맛보이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든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굿! 과감하게 도전해보십시오.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지금 막 어떤 일을 해보려고 생각 중인가? 그렇다면 먼저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해보라. 그러고 나서 ‘돈 벌기 위해서’라는 항목을 빼고 다섯 가지 정도만 확실하게 정리해보라. 그게 딱 부러지게 나온다면 당신은 분명 성공할 것이다.
섞일 것인가, 구별될 것인가?
비굴과 처신
후배를 상사로 모시며 행복할 수 있을까?: 대통령은 나이순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의 승진도 나이순이나 경력순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능력과 실적을 바탕으로 해서 평가받고 그 평가 결과에 따라 승진 차례가 매겨진다. 그런데도 나보다 어린 사람, 특히 나보다 입사가 늦은 후배가 먼저 승진하면 선배의 심기는 대번에 불편해진다. 게다가 그렇게 승진한 후배가 바로 내 상사로 부임한다면 어떨까? 이제까지 ‘야, 야!’ 하며 등 두드리고 격려하던 후배가 하루아침에 상사가 되었으니 어떻게 갑자기 존댓말을 할 것이며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할 것인가? 그렇다고 계속 마주치지 않거나 계속 말을 안 섞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썰렁한 상황이 될 것을 알면서도 왜 위에서는 하필 후배를 선배의 상사로 발령을 내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경력 6년 차인 증권사 대리입니다. 이번 3월 정기 인사에서 입사 1년 후배가 먼저 승진해서 팀장으로 왔습니다. 먼저 승진한 것까지는 좋은데, 하필 팀장으로 오니까 말도 그렇고 서로 어색해서 너무 힘듭니다. 나가라는 의도 같아서 회사를 옮길까 생각 중인데, 패배자로 떠나는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분의 이야기는 한 가지는 맞고 한 가지는 틀린데, 패배자로 떠나는 것 같다는 말은 맞고 나가라는 의도인 것 같다는 말은 틀렸다. 조직의 인사에서 분명한 것은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나가라고 후배 밑으로 발령을 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사의 원칙은 잘한 사람에게는 보상하고 못한 사람에게는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배 밑으로 둔 건 자극을 강하게 주기 위한 발령일 수도 있다. 또 조기 승진한 팀장한테는 선배를 밑에 두어서 조직 통솔의 어려움을 피부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꼭 나쁜 의도가 아니라, 자극을 주기 위해서 서로의 불편한 관계를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분이 이직을 거론했는데, 현재보다 훨씬 좋은 자리가 있다면 당연히 이직해도 된다. 그러나 후배한테 추월당한 사람을 높은 직급과 연봉을 주면서 데려가겠다는 곳이 과연 있을지가 의문이다. 결국 도피성으로 이직을 해볼까 하고 혼자 생각하는 건데, 문제는 어디로 가도 후배한테 밀려서 옮겼다는 걸 남들이 결국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그게 자신의 커리어가 되는 건데 그런 커리어 관리는 권장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 여기서는 더 이상 확실하게 비전이 없는데 다른 갈 곳이 분명히 있었다면 이렇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상황이 딱히 그렇지는 않으니까 갈등하고 있는 건데 후배 밑에 있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실점을 만회하려면 전보다 일을 더 다부지게 해야 하는데 그게 두려운 것이다. 그래도 필자 같으면 밀려서 이직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는 쪽으로 나가겠다. 직장에서 승진에 한두 번 밀리는 것은 병가지상사다.
그리고 모든 직장인들이 잘 알아야 하는 게 조직의 높은 분들은 복합적으로 생각하는 데 상당히 능하다는 것이다. 후배 밑으로 둔 의도에는 나갈 테면 나가라는 뜻도 있지만, 한번 견디면서 만회해보라는 뜻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한 가지로 단순하게만 해석하면 안 되고 본인 선택에 따라서 위기일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위기 뒤에 기회 있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섣불리 이직 운운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후배 밑에서 일하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첫째는 그런 특수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이를 지켜보는 상사들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즉, 과연 저 친구가 어떻게 견디며 어떻게 자기 자리를 찾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초미의 관심사로 지켜보는 상사가 있다면 나를 돋보이게 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필자가 항상 이야기하는 전설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순서대로 승진해서 올라가는 것이 기분은 좋지만 극적인 효과는 적다. 한번 처절하게 후배에게 추월당한 뒤에 다시 자기 자리를 찾고 나중에는 앞서서 승진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전설이 되는 것이다. 이런 드라마는 돈을 주고 만들려고 해도 못 만든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밖으로 나가야 하나?
현실과 이상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가?: 우리가 어떤 일을 계속하다 보면 문득 ‘과연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목표 달성에 대한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사람이 싫어지거나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진다고 느낄 때 ‘과연 내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더구나 그 일이 본인이 평소에 하고 싶어 하던 일이라면 모르는데 그렇지 않고 그냥저냥 특별한 의미 없이 생계를 위해서 매일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하는 일이라면 회의(懷疑)는 더욱 깊어진다. 그럴 때 그 회의의 끝에는 대부분 ‘이럴 게 아니라 못 먹고 못 살아도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어떨까’라는 주체성의 자각 증상이 불같이 밀려오게 된다. 어찌 보면 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계의 문제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꿈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상반되는 문제는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더 큰 성공을 가져오고 더 행복하게 잘 살 수도 있다. 다만 그 일에 전문가로 인정받을 때까지의 그 시간이 힘든 것이다. 왜 나는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없는 것인가?
직장 경력 7년 차인 중견기업의 과장입니다. 얼마 전 한 유명한 강사 분의 ‘희망 특강’을 듣고 왔습니다. 그분이 과감하게 현실을 박차고 나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보라고 하는데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사실은 연극배우가 꿈이었는데, 한번 도전해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직하고 그 길로 올인하려고 하니까, 주변의 반대도 심하고
저 자신도 대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고 있는 터라 역시 망설여집니다. 용기가 부족한 것 같아서 부끄러운데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분에게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는 자신의 꿈을 찾아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기 이전에 과연 내가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얼마나 진실하고 강한 것인지를 먼저 파악하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직장인들은 꽤 많이 있다, 물론 이런 분들 가운데는 과감하게 자기 길을 찾아서 변신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 저 길로 가고 싶다’ 하고 몸살을 앓으면서도 막상 결행은 하지 못하고 지금의 일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쉽사리 결행하지 못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의 만류를 이유로 든다. ‘한 사람이 참고 열심히 일하면 조용히 잘 먹고 잘 살 일을 왜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켜서 여러 사람 힘들게 하려고 하느냐?’고 반대하는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가족의 만류도 만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의 열정 부족인 경우가 많다.
열정이라는 말을 ‘숙명’이라는 말로 바꿔놓고 생각하면 더 이해가 쉬운데, 좀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운명적인 느낌이 있는 일인가 아닌가?’ 이걸 말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배우의 꿈을 다시 꾸게 해준 그 ‘희망 특강’의 강사일지라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데 주변에서 극구 만류해서 망설여집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으면 곧바로 ‘당신의 꿈을 찾아가시오’라고는 말 못 할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무책임한 조언이기 때문이다. 좋게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정말로 그 길이 당신이 원하는 길이라면 과감히 찾아가시오’, 이렇게 단서를 달아서 긍정적으로 답할 것이다. 즉 모든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장 하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희망 특강’의 강사도 아무한테나 무조건 가고 싶은 길로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원하는 길이라면 당장 그리로 가라’고 하는 것이다. 고로 연극에 대한 자신의 이 열망을 재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