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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방데기

최길순 지음 | 모시는사람들
웃방데기

채길순 지음

모시는사람들 / 2014년 4월 / 304쪽 / 11,000원





한양성 대도 大盜

조선 왕조의 수도 한양성. 겉으로는 평화롭기 그지없었지만 왕조의 몰락 조짐이 나라 안팎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조선팔도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나라 밖 사정도 어지럽기만 했다. 1860년, 청의 수도 베이징이 영국ㆍ독일ㆍ프랑스군에 의해 함락됨으로써 철문처럼 굳게 닫혀 있던 동양의 문호가 열리고, 이어서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어 하루아침에 세계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대원군 정권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민씨 정권은 애초부터 부패하고 무능했다. 민씨 정권은 민중의 내부 개혁 요구에 지레 겁을 먹고 탄압을 가중시켜 가고 있었다.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한양성 안에 괴이한 소문이 떠다녔다. 어떤 신통한 사람이 제아무리 감쪽같이 숨겨 놓은 보물 궤짝이라도 단숨에 구멍을 내고 보패를 훔친다는 것이다. 야릇한 것은 재물을 잃은 이들이 모두 부정과 부패를 일삼은 고관대작이라 도둑을 맞았다 해도 대놓고 말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서 속병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병을 고치는 일은 오직 도둑놈, ‘서생원(鼠生員)’을 잡아들이는 길뿐이었다. 그런데 서생원이라는 이 도둑은 훔친 재물을 병들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의로운 사람이란다. 그래서 백성들은 제발 도둑이 잡히지 않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안의 치안을 책임 맡은 포도청 포도대장 신정희는 아침마다 조회에 불려 들어가 고관대작들에게 도둑놈 하나 잡아들이지 못한다고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신정희가 내내 속을 끓이다가 일본 영사관에 부탁을 했다. 그런데 일본 순검들이 나서자 신통하게도 단 사흘 만에 도둑 서생원을 잡아냈다. 이렇게 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양성 서생원 소동’이 끝나 버렸다. 서생원을 잡고 보니 덩치는 산같이 크고, 이마가 훤하게 잘생긴 헌헌장부였다.



두 종 새끼

갑이네 식구들은 전라도 남원 고을 김감사댁 종이었다. 어느 봄날, 갑이가 마당의 살구나무 가지에서 소리 없이 지는 연분홍 꽃잎을 쓸고 있을 때 갓을 쓴 한 양반이 대문간으로 들어섰다. “어서 옵시오, 나으리.”

갑이의 아버지 봉남이 허리를 접어 인사하자 말에서 내린 양반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며칠 후 사랑채 마당에는 양반 손님 곁에 갑이의 부모인 봉남이와 남원댁이 봇짐을 챙겨 이고 지고 서 있었다. 마루에 앉아 있던 김감사가 갑이를 향해 말했다. “너도 싸게 길 나설 차비를 해라.”

양반 손님은 전라도 태인에 사는 김개남인데 집주인 김감사와는 먼 친척지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김개남이 타고 온 말과 은자를 몽땅 내주고 봉남이네 식구를 면천시켜 준 것이다. 갑이네 식구들과 함께 이백 리 길을 걸어 태인 동곡리 집에 도착하자 김개남은 봉남이네 식구들을 한꺼번에 동학에 입도시켜 주었고, 자신의 도강 김씨 성까지 붙여 주었다. 봉남이네 식구는 빈부귀천은 하늘이 내려 주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가, 주인과 종이 한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자유로운 몸이 된 김봉남은 가솔을 거느리고 충청도 청주성 밖에서 좀 떨어진 율봉역 어름에 자리 잡아 대장장이질을 하며 살았다. 거기서 한동안 살다가 한 해 전에 한양성 남대문 밖 목멱산 자락 풀무고개로 옮겨 살게 되었다. 대장간 옆으로 낡은 노적가리 같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 풀무재에 어느 날 바우덕이가 찾아왔다. 바우덕이는 원래 안동 고을 권초시댁 종이었다. 어느 날 바우덕이는 권초시가 경상감사 이용직 대감에게 벼슬자리를 부탁하러 대구 감영으로 가는 행보에 따라나섰다가 그날로 이감사댁 종이 되었다. 바우덕이는 대구 감영 밖에 사는 옥할배를 만났다. 옥할배는 젊은 날 옥지기 시절에 동학 창도주 최제우 선생이 감영 옥에서 옥살이를 할 때 인연으로 동학교도가 되었다.옥할배는 최제우가 비록 대역 죄인으로 옥에 갇혀 있지만 어찌나 얼굴이 화사하고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는지 예사 사람과 달랐다고 했다. 최제우의 해같이 밝은 얼굴빛과 인자한 표정이 단박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서 옥할배는 저도 모르게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단정하게 앉았던 최제우가 옥지기와 같이 무릎을 꿇었다.“선생께서는 양반이신데 상것에게 와 이라시능교?”

“이제 곧 모든 사람이 위아래가 없는 개벽된 세상이 올 낍니더.”

“개벽 세상이라꼬예? 그라모 우리 같은 상것들은 우째야 되니껴?”

“13자 동학 주문으로 내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마음을 닦으시이소.”

“13자 주문, 그기 우찌 되니껴?”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한울님을 높이고 한울님의 큰 덕에 합하며 한평생 한울님을 길이 모시며 모든 것에 한울님의 도를 알고 지혜를 받는 것)요!”동학 주문이 옥지기의 귀에 천둥처럼 들려와 마음에 새겨졌다.

1864년 3월 10일 최제우는 대구 관덕정에서 좌도난정(도를 그릇되게 하고 바름을 어지럽게 하는 일)률로 참형에 처해졌다. 최제우와 함께 심문을 받았던 13제자들도 유배 또는 엄형이 내려졌다. “갑이 헹님요, 시방은 동학이 들불맹키로 사방으로 퍼져서 동학에 들지 않은 사람은 사람 축에도 몬 든다 안 캅니꺼.” 바우덕이가 건넌방에 있는 남원댁이 들을까 봐 귀엣말을 했다.

“헹님, 그런데 소문에 헹님 아버님 신상이 심상치 않을 거랍니다.”

건넌방에서 귀를 세워 듣고 있던 남원댁이 가마때기를 열어젖히고는 낯빛이 허옇게 질려서 물었다.“뭣이여? 야들 애비가 어찌 된다는 것이여? 안 그래도 도성 안에 들어가 소문을 들어 보니 서생원이라고 불리는 야들 아부지가 무사치 못할 거라고 하덩만.” “어디예. 오래 가두기는 해도 우째 되기사 하겠능교. 하이고! 저 이만 일나 봐야겠심더.”

바우덕이가 뒤따라 나온 갑이에게 바짝 다가가 귀엣말을 했다.

“우예 되었든, 헹님은 언제가 될랑가 몰라도 여기를 빠져나갈 요량을 해야 할 낌니더.”





어수선한 나라

“임진(1892), 계사(1893)에 난리가 나서 갑오(1894)에 조선이 망한다더라.”

조선팔도에 화적떼가 창궐하여 조정으로 올라오는 공물이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연일 사방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진고개 일대에는 왜놈들이 설치고, 거리마다 아라사, 미국, 불랑국, 법랑국 등 코쟁이가 설쳐 대자 ‘왜놈 양놈 물러가라’는 방문이 도성 안 여기저기에 나붙었다. “진령군, 어서 오게나. 그간 별일 없었나?”

민비는 요즘 무당 진령군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굿판을 벌여 댔다. 그러면 진령군은 누구인가. 민비는 임오군란 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충주 시골로 피난을 갔다. 민비가 시골에서 쓸쓸한 날을 보내고 있을 때 하루는 이웃에 사는 무당이 찾아와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어젯밤 꿈에 제 상제께서 찾아와 말씀하시기를 ‘너의 이웃에 귀한 사람이 잠시 유람을 나와 계시니 옥체를 보존하시도록 하라. 그분은 모월 모일에 구중궁궐에 드실 분이니 그저 낙심하시지 않게 잘 모시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던 민비로서야 천둥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과연 무당이 말한 그날이 되자 군사를 앞세운 가마꾼들이 그녀를 모시러 왔고 궁으로 환궁한 민비는 그 무당을 불러올려 진령군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민비를 등에 업은 진령군의 세도가 커질 대로 커지자 출세하려는 신하들이 재물을 싸들고 와 계집의 치마폭을 향해 엎드려 아부하였다.“진령군, 어찌하면 장차 이 나라의 사직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겠는가?”

“일만 백성의 목을 끊어야 나라가 조용해질 수 있습니다.”

상감과 민비가 화들짝 놀랐다. 상감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일만 백성의 목을 끊다니! 대체 무슨 말인가?”

“소녀는 잘 모르옵고, 온전히 상제님의 말씀이옵니다.”

“암! 끊어야 한다면 끊어야지! 나라가 평안하자면 일만이 아니라, 십만은 죽이지 못할까?”

민비가 작은 입술을 앙다물어 옹골차게 말하였고, 상감은 멍히 넋을 잃고 눈만 씀벅이고 앉아 있었다. 그때 포도대장 신정희가 들어와 한양성 큰 도둑 서생원을 거제도로 귀양 보내도록 했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눈을 감고 있던 진령군이 눈을 번쩍 뜨더니 민비에게 귀엣말처럼 조용히 말했다. 민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번거롭게 상감의 입을 통할 것 없이 직접 신정희에게 하명했다.“그 도둑놈을 ‘서일만(徐一萬)’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목을 치고, 종로 거리에 매달아라!”

“말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중전마마, 그런데 실은 서일만이라는 자가 동학쟁이랍니다. 지금 조선팔도에 동학의 무리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서일만의 목을 걸어 놓으면 행여 도성 안에서 동학교도들의 준동이 있을까 두렵습니다.”“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단 말이냐? 사대문을 단단히 지키고 처자식까지 잡아 목을 쳐라! 도둑놈을 닮은 놈들을 잡아다 목을 치다 보면 그 안에 그 아들놈도 끼어 있을 것 아니야? 그리고 백성들이 동요할 테니 동학도가 사대문 안에 있다는 소문을 절대로 내지 마라. 이 잡듯이 잡아서 쥐도 새도 모르게 톡톡 터트려 죽이도록 해라.”민비에게 백성은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민비는 이제 살기 띤 눈으로 상감을 향해 말했다. “상감, 그리고 이참에 장안 도둑 사건과 관련된 관리들도 함께 처단해야 구색이 맞을 것입니다.”그러자 진령군이 미리 생각이라도 해 두었던 것처럼 매끄럽게 말했다.

“전에 경상감사를 지낸 이용직과 관서 관찰사를 지낸 영의정 민영준의 목을 치면 어떻겠습니까?”이용직은 민비가 싫어하는 시집 식구 중 하나이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민비 편인 민영준을 끼워 넣은 것이다.“뭐라고요? 민영준과 육촌 형님의 목을 친단 말이오?”

“나라의 기강을 세우자면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본보기가 있어야 하옵니다. 일가친척이라고 봐줘서는 전하의 권위가 흔들리옵니다.”이리하여 도둑 서생원은 서일만이라는 이름을 달고 종로 거리에 머리가 내걸렸다.

그러면 이용직, 민영준 두 대감의 목을 치자는 말은 어찌 마무리되었던가. 목을 친다는 소문을 흘려 놓으니 민영준은 혼비백산하여 금송아지 아홉 마리를 상감에게 바쳐서 슬그머니 없었던 일이 되었다. 다만 민비에게 미운 털이 박힌 이용직은 경상도 지레 고을로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민비는 포도대장 신정희를 다시 불러들여서 엄명을 내렸다.

“도성 안의 동학도를 몽땅 잡아들이도록 해라.”

저물녘에 한 사내가 풀무재 갑이네 집으로 찾아와 동대문 최창한 접주의 말을 전했다. 해거름에 김봉남이 서일만이라는 이름으로 처형되었으며 머리가 운종가에 사흘 동안 내걸리며, 벌써 강나루에는 동학교도들을 잡아들이려는 포졸과 군사들이 새까맣게 깔렸으니 경계가 허술한 북악산 쪽으로 붙어 양주 백석으로 넘어가는 개머리고개 오동나무 주막집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갑이와 남원댁은 파루 치기가 무섭게 양주 쪽으로 길을 나섰다.

갑이가 남원댁과 개머리고개 아래 주막거리에 들어선 것은 궂은 봄날 저녁이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양주 고을 접주 최형식을 만났고 얼마 후 도착한 김봉남의 시신을 받아 개머리고개 중턱에 장사를 치른 뒤 서둘러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갑이, 계집종 나비를 얻다

갑이는 어머니 남원댁과 함께 한양에서 5백 리 떨어진 충청도 영동 땅 수석리에 숨어들어 대장간을 차려 먹고살게 되었다. 때는 늦은 봄날, 갑이가 30리 떨어진 황간 장에 나가 연장을 팔아 양식을 사기 위해 길을 나서려 할 때 남원댁이 구시렁구시렁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어디 가서 계집이나 하나 주워 오랑께. 너도 이제 나이가 찼응께 계집을 얻어 새끼도 낳아야제.”“알았시유. 눈 뜨고 잘 찾아보지유 뭐.”

그날따라 이상하게 지고 간 연장을 펼쳐 놓자마자 반나절도 안 돼 다 팔렸다. 장에서 보리쌀 한 말을 팔아서 지게뿔에 매달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갑이가 한 바위 앞에 이르렀을 때 바위 위에 한 계집이 앉아 있었다. 여우가 아니라 사람이 분명했다. 갑이가 크게 헛기침을 하고 그 앞을 지나가자 무슨 사연인지 계집이 갑이 뒤를 따라왔다. 작은 보퉁이를 안고 따라오느라 쌔근쌔근 숨을 몰아쉬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갑이는 딱한 마음이 들어 계집을 불끈 들어 지게 위에 올려놓았다. 갑이가 집에 들어선 것은 해가 설핏 저물 무렵이었다. 남원댁이 갑이의 지게 위에 계집이 달랑 얹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입이 쫙 벌어졌다.이름을 물으니 가위에 짓눌려 더듬거린 끝에 겨우 ‘아랑이’라고 대답했다.

아랑이는 경상도 김산 봉계 마을 조승지댁 계집종이었다. 조승지댁에서 아랑이네는 오빠 만득이와 어미, 아비, 할매까지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조승지댁 마님이 아비를 불렀다.“우리도 올 같은 흉년에 양식 축낼 형편이 못 돼야. 그래서 만득이만 이 집에 남고 어미 아비는 안동 5촌 당숙 집으로 가고, 아랑이는 오늘 아침에 장사꾼한테 팔아 넝갔응께 그리 알거라.”종 장사꾼 텁석부리는 우선 아랑이의 처녀를 빼앗았다. 그리고 선산 고을 어느 양반집에 잠깐 팔아 청상 새색시를 대신하여 삼년상을 치러 주게 한 뒤 중간에 수작을 부려 아랑이를 다시 빼돌렸다. 아랑이를 되찾은 텁석부리는 아랑이와 함께 산길을 걷다가 화적떼에 잡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몸만 간신히 추슬러 도망쳤다. 화적떼 산채에 끌려간 아랑이는 샌님처럼 생긴 두목의 배려로 화적 소굴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영동의 영국사로 흘러들어 가 바리데기 신세가 되어 절간 부엌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아랑이가 샘가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큰스님이 보고 불러 말했다.“어차피 자네는 절에서 살 팔자가 아니니 대처로 나가게나. 본디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한 색깔이었지. 어느 날 갑자기 힘이 센 자들이 나와서 천하고 귀한 색깔로 칠해 놓았을 뿐일세.”아랑이는 그날로 보따리를 싸서 절을 떠났다. 그리고 길을 헤매던 중에 갑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참말로 곱다. 아랑이는 종년의 이름인께 치워 뿔고. 뻔디기에서 빠져나와 나비가 되듯이, 종년이 새 사람으로 바뀌었응께 ‘나비’라고 하자.”이렇게 계집종 아랑이는 ‘나비’가 되었다.

개다리소반에 찬물 한 그릇 올려놓고 뚝딱 혼례라고 치렀다. 남원댁이 신랑 각시의 절을 받았다.



바우덕이

소낙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밤이었다. 갑이가 막 풀무질을 시작하려는데, 비를 흠씬 맞은 이대감댁 종 바우덕이가 불쑥 나타났다. 품에는 막 탯줄이나 끊었을 법한 핏덩이를 안고서였다. 바우덕이의 눈에는 번개같이 푸른 불이 들어 있었다.“헹님요!”

“아니, 니가 이 밤중에 여기는 어짠 일이여? 너, 귀양 간 이대감을 따라 경상도 지레인지 하는 데 가 산다구 하지 않었냐?”“헹님요, 할 말이 많고 깁니다. 이대감이 경상도 땅에서 하도 망나니짓을 해싸가 얼마 전에 요 아래 영동 밀골 땅으로 들어왔다 아입니꺼. 헹님! 나 칼 좀 한 개 맹글아 주이소.”“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아겉이 칼은…… 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나 보자.”

바우덕이는 제가 꼬불쳐 두었던 도야지 한 마리 값으로 양반집 계집종 검분이를 데려다 짝을 맞춰 살았다. 때가 되어 검분이가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대감이 밤마다 검분이를 데려다 지랄하니 바우덕이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바우덕이는 이대감의 책사인 법수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법수가 비쭉이 웃음을 흘리더니 바우덕이의 귀때기를 잡아채어 바짝 끌어당겨서 말했다.“너 관에다 동학쟁이를 꼬아 박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 잘몬했심더.”

바우덕이는 할 수 없이 하루하루 석탄백탄 속을 태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검분이가 마을 저수지에 빠져 죽은 채 떠올랐다. “헹님요, 내가 이러고도 참고 살아야 되능교?”

바우덕이가 황소 같은 울음을 냈다. 마침내 갑이는 칼을 만들어 바우덕이에게 건네주었다.

“퍼뜩 댕겨 오겠심더. 얼라나 좀 잘 맡아 주이소. 아 델구 강원도 산골짝으로 들어가 살랍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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