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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똑똑

박승숙 지음 | 인물과사상사
마음 똑똑

박승숙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4년 9월 / 312쪽 / 14,000원





Chapter 1 똑똑,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다



인정받아야 산다 - 왜 그들은 인정에 집착할까

미술 치료를 받으려고 내 치료실을 찾아오는 성인 중에는 “그래, 잘하고 있어!”, “너 능력 있어”, “넌 특별해”, “너밖에 없어”라는 말을 들어야 비로소 사는 데 보람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자신이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사람인 것 같아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늘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예민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인정을 어디서든 얻어낸 뒤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불안에 싸인 채 불만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정을 한두 번 받았다고 해서 걱정에서 놓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받아낸 인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인정해주는 만큼 기대하는 것이 있을 텐데 실망시키지는 않을지 생각하고 준비하다 보면 다시 긴장될 것이다.

그들에게 ‘인정’이란 한 번 잘 먹으면 포만감에 긴장이 풀리지만, 곧바로 다시 살기 위해 때맞추어 먹어야 하는 세끼 음식과도 같다. 인정을 구하느라고 가정과 직장에서 고달픈 사람에게 말해보라. “당신이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매달 필요가 무엇이냐?” “당신은 이미 당신으로서 온전한데 다른 사람의 의견이 왜 중요하냐?” 하지만 아무리 설득하고 타일러보아야 소용이 없다. 머리로는 그들도 당신의 말이 옳은 줄 다 알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인정과 애정은 동일하지 않다: 나중에서야 나는 그들이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바라는 건 인정(人情)인데 자신들이 인정(認定)을 원한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실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그렇듯 그들도 비판 없이 따뜻하게 수용되기를 원하며,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과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사람들에게서 구하고 있었다. 그들이 정작 원하는 것은 자기를 주목하고 받아달라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자기를 좋아해달라는 것인데, 왜 그들은 자신의 사회적 의미나 소용거리로 그 점을 확인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어폐가 있지만 편리를 위해 이제부터 그런 사람들을 인정주의자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인정주의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갖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자기를 느낄 뿐, 숨 쉬고 움직이는 자기 그대로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만약 누가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라고 물으면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갖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한다. 그렇게 된 데에는 흔히 이유가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그들의 기준에 부합하려고 애쓰며 자랐다든지, 똑똑한 머리나 뛰어난 재능 덕에 항상 칭찬을 들어 그것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든지 하는 것이 그들이 전달하는 슬픈 스토리다.

자신을 인정해줄 권위: 인정받으려면 자신을 인정해줄 권위 있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인정주의자들은 세상을 대부분 수직 구조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은 지위가 높거나 힘 있는 사람에게 느끼는 불편함이 남보다 심한 편이다. 자신이 그 사람의 위치나 실력을 인정할 경우에는 알아서 순종하거나 충성을 바치기도 한다. 공적인 지위나 힘이 없어도 자신이 동경하는 면을 갖고 있거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자신이 우러러볼 만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알아서 권위를 실어주기도 한다. 즉 그의 말 하나하나에 커다란 영향을 받으며 쉽게 상처받고, 쉽게 힘을 얻는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인정주의자들은 윗사람의 힘을 너무 크게 느낀다. 그래서 실제로는 그렇게 듣지 않아도 될 그들의 말을 곧장 명령이나 비판으로 듣는다. “이렇게 해보라”라는 조언이 있을 때도 ‘요구’라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그 말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비평을 들을 때도 상대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껴 더 크게 분노하거나 좌절감에 빠져버린다. 가끔은 아예 “나도 너를 인정할 수 없어”라는 공격으로 되갚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침묵 속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다시금 자신을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나를 인정하게 만들겠어!’라는 정신이 발동하는 것이다. 인정을 못 받을 때마다 개선 의욕을 느끼는 것이 인정주의자들이 특성이다. 그들에게는 오기가 곧 힘이기 때문에 가끔은 자신을 활발히 가동시키기 위해 실제보다 상황을 더 공격적이거나 위협적으로 받아들여 오기를 발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의지에 자극받아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인정과 애정을 착각하는 데다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 관계를 결정해버리기 때문에 인정주의자는 세상과의 친밀함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정작 바라는 것은 자신이 사람들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존재감은 자신이 가치 있음을 증명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감은 사람들과 긴밀하게 어울려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중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함께한다는 느낌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정주의자들은 남이나 자신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내리고 수용적인 마음으로 어울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관계는 상호작용적인 것이고 쌍방에 책임이 있는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수용되려면 먼저 자신이 이해받고 공감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지니면: 인정주의자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건 내게서 ‘인정할 수 있는 모습이다 / 인정할 수 없는 모습이다’라고 마음속으로 구분 지어놓은 기준선을 깨는 것이다. ‘이거다 / 저거다’의 경계선이 원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인생에서 만들어져온 것임을 이해하면, 쓸데없는 자기 싸움의 갈등과 괴로움을 멈출 수 있다. 인정을 추구하는 태도와 수용하는 태도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보완하고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관계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조화롭게 필요한 태도를 적용하는 것이 건강하고 바람직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어차피 모두가 애초에 선택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운 선택도, 보완도 가능하다.

비우고 채우기 - 진정한 성장은 계단식 도약이다

우리는 보통, 사람을 ‘저 사람은 큰 그릇이다’처럼 그릇에 비유하는데, 그릇이 크다는 것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릇이 크다거나 작다고 하는 것은 타고날 때부터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인격이 정해져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궁금했던 것은 애초의 그릇 크기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릇이 커진다’는 말이었다. 타고난 크기를 무시하고 그릇이 마음먹은 대로 늘었다 줄었다 할 수는 없다. 도자기나 쇠로 된 그릇을 상상해보자. 만들어진 불변의 크기가 있다. 우리 모두는 그만한 크기가 될 잠재력을 갖고 태어나 그만큼 담을 수 있게 성장한다. 그렇다면 그릇이 커진다는 말은 자신의 최대 용량이 확인되는 날까지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성장한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그 말은 애초에 결정된 용량보다 크게 바뀌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일까? 생각이 자유롭게 이리저리 흘러가던 중 문득 해답이 떠올랐다. 그릇은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원래 용량보다 많이 담게 된다면 그릇이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고정된 크기의 그릇에 많이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방법뿐이다. 결국, 그릇이 커진다는 말은 용량이 꽉 찼을 때 담고 있던 것들을 비우고 새롭게 다시 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릇이 커진다’는 말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해 ‘비우고 채우기’라는 화두를 건졌다.

무엇을 비우는가 - 거짓된 자아상: 치료실에서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은 인간의 성장은 계단식 진행 과정으로 껍데기를 탈피하는 순간 몸이 커지는 매미나 뱀의 성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오늘 알고 익숙한 것에 하나를 첨부하는 식으로 양이 늘고 넓어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10단위에서 말하는 성장은 100단위로 도약하는 것이고, 100단위에서의 성장은 1,000단위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는 수준이나 차원을 달리하는 성장이며, 계단식 도약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릇을 비운다는 것은 그러한 도약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비우라는 말인가?

우리는 자라면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조건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란 그 같은 자기 개념이요, 이미지다. 그런데 자아의 정체성은 지나온 삶에 근거해서 만들어지지만,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고스란히 반영하지는 않는다. 자아는 마음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끊임없는 생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함으로써 창조된 자아는 실재와 멀어진 가짜 개념이 되곤 한다.

그리고 자아가 강한 사람들은 일관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하면서 흔들리는 현재를 주관적으로 거르고 왜곡하려고 한다. 자아는 과거의 눈을 통해서 현재를 보기 때문에 지금 벌어지는 그대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또한 미래에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계속적인 생존을 보장받으려 하기 때문에 미래의 목적을 위해 현재를 하나의 수단으로 축소하기 일쑤다. 경계가 없으면 아군도 적군도 없고 이쪽과 저쪽의 갈등도 없는 법인데, 자아는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 경계를 실제라 믿으며 고민하고 갈등하고 적을 만든다. 그러면서 자기와 진정한 자기, 자기와 동료, 자기와 자연 사이를 인위적으로 떼어놓고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을 굳힌다.

폐쇄적인 세계에 있으면 자연히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아는 자신이 방어막을 치고 그 안에 틀어박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세상 모든 말과 이미지를 곡해하면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 고정된 판단을 내린다. 거짓된 자의식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늘 무언가가 필요하고, 가짜 자기와 실제 삶에서 간격을 느낄 때마다 끊임없이 문제라는 것을 찾아낸다. 그러나 문제가 생겨도 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벗어난다는 것은 자아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릇이 커지기 위해 비워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자아라는 불완전한 틀이 의식적으로 채워 넣고 있는 잘못된 내용물이다. 물론 채우지도 않았는데 비워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탈피하는 일은 자연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먼저 자기가 되라고 말하고 자아를 강화하는 교육을 시킨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는 삶이 다시 자기를 비워내라고 요구한다. 변화에는 다 때가 있는 것이다. 때가 되어 삶에서 자아라는 허구적인 상을 흔드는 도전을 받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무엇을 비우는가 - 붙잡아두었던 과거: 현재의 삶이 자아의 단단한 벽에 균열을 내면서 근본적으로 허구적인 상을 흔들어 깨뜨리려고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과거에서 손을 놓는 것이다. 과거는 자아에 계속해서 정체성을 부여하는 미끼 같은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리고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과거에 매달린다. 모르는 것은 통제할 수 없어 위험하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것을 되풀이하려고 한다. 과거로 파고들어 거기에서 지금을 말해주는 인과관계를 찾아 지금의 자신에 확고한 토대를 갖추려는 것이다.

과거를 깊이 파고드는 것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끝이 있다 해도 옆으로 또 다시 새로운 구덩이를 팔 수 있게 허락하는 미로 같은 기억의 장난이다. 과거는 해석되는 것이다. 몇 번이고 재해석될 수 있다. 어떻게 해석하든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어떤 특정한 조건과 사건과 상황 속에서 자기가 ‘만들어져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이유 있게 ‘만들어져왔다’는 사실 자체로 자신의 전 존재를 해방할 수 있다. 지금의 모습에 이유가 있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과거 때문에 지금의 자기가 이해된다고 하면 할수록 지금의 자기는 존재의 가능성 전부에서 특별한 조건 속에 경험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유가 있으니 지금의 자기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갖고 있으면서 괴로워하는 이미지, 자기에 대한 인상, 자기에 대한 믿음과 개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뒤 깨보자. 오늘까지 거기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 더 이상 편협하게 조건화된 모습을 부여잡고 자신이라고 우길 이유가 없다. 오늘의 나는 과거 이상이다. 과거가 오늘의 나를 설명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의 나에게 이유를 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는 오늘의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녹아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지나간 것을 다시 끄집어내 매달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버려둘 수 있다. 깨달음이 여기까지 오면 모든 게 용서되고, 현재에 충실하게 된다.

무엇을 채우는가 - 창조적인 깨달음: 과거에 묶여 있었던 마음의 구속들이 풀리고 실재에서 멀어진 허구의 자아가 힘을 잃으면 삶은 변화무쌍하게 돌아간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경험에 열려 많은 것을 흡수하고 채우게 되어 있다. 자아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사슬에서 벗어나면, 창조적인 깨달음이 마음 위로 솟아나기도 한다. 비워내면 채워지게 되어 있다. 채우는 데는 목적도 없고, 기대하는 내용이나 방향도 없다. 어려운 것은 비워내는 일일 뿐이다.



Chapter 2 똑똑, 세상의 마음을 두드리다



자라지 않은 어른들을 위해 - 21세기 피터 팬과 신데렐라를 위한 충고

우리나라는 1973년부터 성년의 날을 정해놓고 기념해왔는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날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현재는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에 각 기관 단위별로 성년의 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지만, 당사자인 개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성인식은 당사자에게 어른들의 보호를 받는 시기가 끝났음을 알리고, 성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이 무엇인지 들려주며, 진정 성인이 될 준비를 했는지 스스로 확인하거나 각오하는 기회여야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 문화권에서는 성인의 문턱에 당도한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맹수를 사냥하거나, 부모에게서 떨어져 긴 시간을 보냄으로써 어른이 될 힘과 용기와 독립심이 있음을 증명하게 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의식의 구체적인 내용과 형식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래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아직 우리 시대에 맞는 성인식을 제대로 마련해놓지 못한 형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애초에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사회에서 정해놓은 일정한 나이에 도달했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자신이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사회의 보호를 받는 시절이 끝났음을 스스로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모든 행동과 결정에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지니면,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갖게 된다. 한마디로 자신이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자유에는 그 뒤의 모든 책임을 혼자서 진다는 조건이 뒤따른다. 길을 잃어 엉뚱한 데 도착해도, 실수해서 이상한 일을 겪어도, 사고가 나서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자신이 다쳐도 자기 몫인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다!”라고 떠들 줄만 알지, 그 말의 진정한 무게는 잘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나 의무를 제대로 숙지해서 권리를 행사하고, 그다음 뒤따르는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그래서 성인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어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자꾸 늘어나는 추세다.

자라기를 거부하는 어른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의 답을 찾아다니면서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기만 하지 자신의 한계와 책임에 따른 선택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조금만 힘들면 일터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연애를 하다가 관계가 깊어지면 더 나은 누군가가 나타날 것 같은 생각에 답답해한다. 불만을 토로하며 비판하는 것은 잘해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남들이 바뀌기만을 바란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골라 가질 수 있는 ‘네버랜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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