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세상수업
이훈범 지음 | 올림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
이훈범 지음
올림 / 2014년 9월 / 344쪽 / 15,000원
Chapter 1 사람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
성공한 사람들은 두 갈래 길을 걷는다
옛날 중국 송나라에 송씨 형제가 살았습니다. 형 송교와 동생 송기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과거에 급제해 세상에 이름을 날렸지요. 그런데 이후 두 사람의 태도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송교는 재상이 되고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청렴하게 살았습니다. 반면 한림학사였던 송기는 허구한 날 기생을 옆에 끼고 음주가무로 세월 가는 줄 몰랐습니다. 형은 동생이 걱정되었지요. 어느 정월 대보름날 형은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게 했습니다. “옛날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우리 둘이서 부추전을 부쳐 먹던 일이 생각나지 않는가?” 올챙이 시절을 잊지 말고 초심을 간직하라는 당부였지요. 하지만 학사 동생은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부디 재상께 전해 주시게. 그때 부추전을 부쳐 먹은 게 무엇 때문인지 모르시냐고.” 가난해서 부추전밖에 먹을 수 없었던 과거를 잊고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얘기였지요.
같은 핏줄, 같은 처지, 같은 시기에 벼슬을 해도 사람 마음가짐에 따라 이토록 큰 차이가 나는 겁니다. 세상을 잘살게 하기 위해 벼슬을 하는 사람과, 자기가 잘살기 위해 벼슬을 하는 사람의 행동이 같을 순 없겠죠. 오랜 세월이 흐르고 무대를 이 땅으로 옮겨도 달라지지 않는 이치입니다. 정녕 세상에는 재상 형 같은 공직자들이 더 많을 터입니다. 하지만 물을 흐리는 데는 미꾸라지 몇 마리면 충분하지요. 학사 동생처럼 사복(私腹)을 채우기 위해 공복(公僕) 되기를 자처한 사이비 공인들 말입니다.
금융감독원, 감사원처럼 부정과 비리를 감시해야 할 기관에 생선 냄새를 맡은 고양이들이 현관을 지킵니다. 다수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할 정부 부처에는 이익 단체라는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강아지가 있습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와 지방의회에도 어물전을 망신시키겠다고 작심한 꼴뚜기들이 고개를 듭니다. 이들은 노는 물이 달라도 하는 짓은 한 가지입니다. 국민이 국민을 위해 쓰라고 맡겨 놓은 권력을 제 것인 양, 저 잘난 듯, 저만 위해 사용한다는 거지요.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가진 권력을 다해 공리민복이 아닌 사리사욕을 만족시킨다는 겁니다.
송 학사 같은 부류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특혜와 특권이 없다면 뭐하러 고생해서 벼슬하고 출세하느냐는 말이지요. 국민이 안중에 있을 리 없지요. 뵈는 게 없으니 거리낄 것도 없습니다. 특권 의식이 100퍼센트 부패와 비리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주목할 것은 송 학사 부류들이 특정한 시기나 시대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어디서나 늘 존재합니다. 과거에 그랬듯, 현재는 물론이며 미래에도 존재할 거란 말입니다.
중국 작가 임어당이 근대 중국의 고민을 담은 소설 『북경호일(北京好日)』에서 한 말이 그겁니다. “관리가 모두 탐욕스러우면 탐욕이란 말을 쓸 필요가 없다. 관리가 모두 오탁(汚濁)하면 오탁이란 말을 쓸 필요가 없다. 어떤 훌륭한 정치 밑에서도 청렴한 관리도 있고 부패한 관리도 있다.” 이 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송 학사 부류가 언제 어디서건 존재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 누구나 송 학사 부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까닭입니다. 송 학사 역시 부추전을 먹을 때는 형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권력의 단맛이 부추전 맛을 잊게 만든 거지요.
권력의 칼자루는 날카롭습니다. 함부로 휘두르다가는 내 손도 다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칼이 길면 길수록, 즉 권력이 크면 클수록 내가 입을 수 있는 상처도 커집니다. 특히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쓰는 권력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 칼끝이 나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고한 김준엽 전 고려대총장의 좌우명인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도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겁니다. 역사를 두려워한다면 권력의 칼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겠지요. 역사란 백성의 눈입니다. 감은 듯 보이지만 속까지 꿰뚫어보는 눈입니다. 절대 그 눈을 속일 수 있다고 믿지 마세요. 착각의 대가는 너무도 큽니다. 때로는 목숨과 맞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고도 이름에 묻은 얼룩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Chapter 2 사회에는 룰이 있다
나와 너,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
늑대가 어린 양을 만나자마자 화를 냅니다. “너, 작년에 내 욕하고 다녔지?” 양이 대답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그때 전 태어나지도 않았던 걸요.” 그러자 늑대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네 형이었나 보지.” “전 형이 없는데요.” “그러면 네 가족 중 누구였을 거야. 게다가 너희 편들, 양치기와 개들은 늘 나를 노리고 있었지. 너한테 복수를 해야겠다.” 늑대는 어린 양을 한입에 삼켜 버렸습니다.
잘 알려진 라퐁텐의 우화입니다. 증오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 주는 예로 이만한 게 없을 듯합니다. 한 번 생긴 증오는 자연 치유되는 법이 없습니다. 무한한 창의성을 발휘해 끊임없이 증폭되게 마련이지요. 전염성도 강합니다. 어떤 한 사람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 가족, 친구, 그와 닮은 사람으로까지 퍼져 나갑니다. 필연적으로 내 편 네 편이 갈라지게 되지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코미디언의 ‘블랙리스트’ 발언으로 온 사회가 둘로 나뉘어 서로 물어뜯는 일이 있었습니다. 누구누구를 지목해 방송 출연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방송사의 문건이 있다고 해서 벌어진 일이었지요. 물론 방송사는 극구 부인하며 해당 코미디언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코미디언이나 방송사나 똑같이 어리석습니다. 그 코미디언은 자신이 얼마나 치우치고 기운 발언들을 했는지 모르나 봅니다. 그저 작가가 써 준 대로 읽었을 뿐이라지만 그렇다고 패 가름에 일조한 책임이 없다고 어찌 믿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방송사도 그렇습니다. 고위 간부가 특정 인물에 고개를 저었다면 조직 생리상 그게 블랙리스트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요? 그런데도 실체가 없다며 덜컥 고소부터 하는 게 궁극적 책임을 함께 져야 할 방송사로서 옳은 자세일까요?
제 잘못 제쳐 두고 남 잘못 다투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서로 증오 위에 앉아 있는 까닭입니다. 증오는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늘 독선과 편견, 오만, 아집과 동행하지요.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이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한때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거짓 선동이 온 나라를 휘저을 수 있었던 것도 사람들이 공포에서 출발한 증오의 포로가 되었던 탓이 아니던가요.
코미디언과 방송사(나아가 권력) 중 누가 더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누가 더 그르다고 생각하든 증오부터 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예수는 “사람을 얼마나 용서해야 합니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50번째 잘못부터는 미워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요. 죽을 때까지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라는 얘깁니다. 공자도 “평생을 두고 행할 덕목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십시오”라는 자공의 질문에 “그것은 곧 용서(其恕乎)”라고 말해 주지요. 물론 용서란 게 쉽지는 않습니다. 예수나 공자 같은 성인들이나 평생 용서하며 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용서는 못 해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겁니다.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미워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겁니다.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모자란 게 인생입니다. 증오할 시간이 없지요. 게다가 증오는 나머지 시간마저 갉아먹을 해충인걸요. 석가가 훨씬 멋있게 표현했습니다.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증오란 누군가에게 던질 요량으로 달궈진 석탄덩이를 집어 드는 것과 같아 막상 화상을 입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실업 문제는 경제 탓이 아니다
문명의 갑옷이 이리 약할지 몰랐습니다. 칼이나 화살, 총탄까지 막아 낼 것처럼 보이더니 날아온 조약돌 하나에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생존 본능만 있는 미개지도 아니고 한 걸음만 마을을 벗어나도 강도가 들끓던 중세 시대도 아닌, 오늘날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대낮에 약탈과 방화, 폭력이 춤을 추었습니다.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에 좌절한 젊은이들의 정당한 항의가 범죄로 치닫고 만 것이지요. 공연히 신난 불량배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멀쩡한 청소년들조차 거리낌 없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댑니다. 젊은 세대의 절망이 그만큼 더 커지고 깊어진 겁니다.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가슴이 덜컹덜컹 내려앉는 건 그것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아서입니다. 유럽의 젊은이들을 이렇게까지 분노하게 한 청년 실업 문제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서 본 젊은이의 절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밖에 되지 않을지언정 나의 가치를 찾으러 나왔어요.” 열아홉 살 이 청년은 일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청년처럼 폭도가 되지는 않았지만 마찬가지의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젊은이들이 이 땅에도 얼마나 많을까요.
젊은 세대의 표류는 경제 실패의 탓이 아닙니다. 정치가 실패한 때문이지요. 흔히 못 가진 자들을 연민하고 분배를 우선시하는 좌파는 빈곤을 고착시키고 결국 나누어 줄 것도 없게 만드는 정책에 매달립니다. 시장을 맹신하고 성장을 지상 과제로 삼는 우파는 시장이 붕괴될 때까지 몰아붙이다 끝내 성장의 결실을 거품으로 날려 버리고 맙니다. 경제가 좌우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말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정치가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오락가락하는 것입니다. 인기만을 좇는 포퓰리즘에 배가 산으로 갑니다.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이 복지 정책 경쟁과 극한 정쟁을 벌이다 국가 신인도가 하락한 것이 2011년 지구촌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운 금융 위기의 원인 아닙니까. 그리스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들의 파산 위기 역시 무분별한 퍼주기 경쟁으로 인한 재정 파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네 정치판이 미국, 유럽과 다르지 않은 길을 걷고 있기에 영국 폭동이 더욱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무상 급식 얘기가 나오자 반대쪽에서 무상 보육으로 받아치고,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목소리 크기를 겨룹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불역(不易)’과 ‘유행(流行)’이란 말을 했습니다. 불역이란 변하지 않는 원칙을 말합니다. 유행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원칙을 지키며 혁신을 통해 자기 발전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카소네 총리의 이 말은 그가 92세 되던 2010년에 쓴 『보수의 유언』이라는 책에서 보수 정치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최초의 근대적 보수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정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꼭 보수 세력에게만 들어맞는 건 아닐 겁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속성을 가진 진보 세력 역시 꼭 지켜야 할 가치는 있으니까요.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꼭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면 좌파가 할 일은 이상만 좇는 눈을 현실의 눈높이로 끌어내리는 일일 겁니다. 분배와 복지라는 이상을 좇다 나라 곳간이 비면 제일 먼저 고통을 받을 사람들은 그들이 연민하는 서민들일 테니까요. 우파의 경우는 더욱 명백합니다. 인기를 좇아 좌파의 길로 방향을 틀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탐욕과 부패를 씻어 내는 게 우선입니다. 위장 전입 정도는 하자가 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국민들을 설득할 명분을 만들 수 없으니까요.
나카소네 총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칸트에 탐닉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실천이성비판』(인간 행위의 기준을 논한 칸트의 저서)의 마지막 구절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고 하지요. “생각하면 할수록 언제나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커다란 감격과 감탄, 숭경의 느낌으로 가슴을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 머리 위의 별이 빛나는 창공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Chapter 3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
히틀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권력이란 잘 맞는 날의 골프와 같습니다. 독재 권력은 실력 이상으로 잘 맞는 날의 골프고요. 좁은 페어웨이도 운동장만 하게 보입니다. 마음껏 골프채를 휘둘러도 공이 똑바로 멀리 날아갑니다. 자신감은 치솟고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실력 이상으로 잘 친다는 말이 있지요. 열 번 쳐서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샷이 자신의 실력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겁니다. 벙커에 빠지거나 공을 잃어버려도 운이 없어서라고 믿게 됩니다. 다음 홀에서 뭔가 보여 줘야겠다며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패배를 자초하고 말지요. 골프야 그저 게임에 져서 속상하거나 내기를 했다면 돈 조금 잃어 속 쓰린 걸로 끝납니다. 하지만 권력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권력자 자신이 파멸에 이르는 거야 뭐랄 것 없겠지만 그로 인해 고생을 해야 하는 백성들은 뭐란 말입니까.
리비아의 절대 권력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벼랑 끝에 몰려서도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다할 때까지” 결사항전을 다짐했지요. 과연 누구를 위한 결사항전인가요? 내전의 핏물에 질식해 가고 있는 국민들은 어떻게 하고요? 결국 반군에 붙잡혀 목숨을 구걸하다 비참한 말로를 맞고 말았지만 리비아 국민들을 위해선 만시지탄(晩時之歎)일 뿐이지요.
70년 전 리비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벌어졌지요. 2차 대전 중인 1942년 10월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은 패배의 순간이 다가옴을 직감합니다. 아프리카에 부임하자마자 단숨에 650킬로미터를 진격해 리비아의 영국군을 이집트로 몰아내고, 적의 3분의 1에 불과한 수의 전차로 전략 요충지인 이집트의 엘알라메인을 점령한 그였지만 절대적 열세인 병력과 병참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당시 독일군 전차는 22대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마저도 취사장의 에틸알코올을 연료로 간신히 움직이고 있었지요.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히틀러는 “엘알라메인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롬멜은 결국 명령을 어기고 리비아로 퇴각했습니다. 그러고는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아프리카에서 철수하자”고 히틀러에게 건의합니다. 히틀러는 롬멜을 겁쟁이라고 비난하며 길길이 날뛰었지요. 결국 두 달 뒤 독일과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군단은 튀니지에서 연합군에 항복하고 맙니다. 여기서 히틀러가 사태를 냉정하게 돌아봤다면 그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독재 기관차는 스스로 서는 법이 없습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지 열하루가 지난 1944년 6월 17일 독일군 수뇌부가 회동합니다. 승부는 갈렸으며 여기서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지요. 롬멜은 이를 히틀러에게 전달할 역할을 떠맡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분노만 돋우었을 뿐이지요. 히틀러는 롬멜에게 반역 누명을 씌워 자살을 강요합니다.
독재자의 착각은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이렇다지요. “아, 내가 너무 인정 많았던 게 후회돼.”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질환자와 불치병자를 없애라는 명령으로 7만 명의 독일인을 살해한 사람이 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많았던 인정은 과연 누굴 위해 베풀어졌던 걸까요? 그가 항복을 거부하고 버티는 동안 독일 국민은 폭격기로 뒤덮인 검은 하늘 아래서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는데 말이지요.
1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는 “독재 권력은 사람을 꼬챙이에 꿰는 형벌과 같다. 시작은 쉽게 되지만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했습니다. 권력자가 국민을 생각한다면 독재로 흐를 까닭이 없고 스스로 파멸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 모범을 놀랍게도 경제 권력들이 보여 줍니다. 자신 같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하라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그렇고, 이에 호응해 스스로 세금을 더 내겠다고 선언한 프랑스의 부호들이 그렇습니다. 스스로 추구하는 시스템이 붕괴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자기 분열적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일 수도, 그 해법일 수도 있습니다. 리더십은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곧 자기희생에서 비롯됩니다. 그 기분 좋은 자기희생을 예수는 박애라 부르고, 석가는 자비라 일컬으며, 공자는 인(仁)이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