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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이 없는 이야기

장경철, 민혜숙 지음 | 더드림
다함이 없는 이야기

장경철, 민혜숙 지음

더드림 / 2014년 9월 / 248쪽 / 11,000원





길에서 누리는 행복



묵상 하나 - 행복의 순간들

청년 수련회의 특강을 부탁받은 적이 있었다. 강의를 마친 후에 한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그 청년은 내게 언제 행복하냐는 물음을 던졌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예수를 믿고 행복한 것은 빼고 말해 달라고 했다. 내 마음속에서 그것을 왜 빼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나는 답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언제 행복한가? 행복한 순간이 많이 증가한 것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때 염세주의에 빠졌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밤이 싫었다.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 시절과 현재를 비교해 보자면, 요즘에는 눈을 감기만 하면 잠을 잘 자게 된 것이 행복하다.

예전에는 식사 시간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식사 시간에 행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예전에 식사 시간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반복되는 식단에서 찾은 적도 있었다. 매번 먹던 음식만 먹어서 식사 시간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식사 기도에 대한 농담이 생각난다. 한 사람이 식사 기도를 거르더라는 것이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 메뉴는 벌써 수도 없이 기도를 했던 메뉴이거든요.”

물론 새로운 음식을 접하는 행복도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선초밥을 먹었던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생선초밥을 입에 넣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매운 맛이 견디기 쉽지 않았지만, 가격으로 봐서 싼 음식 같지 않았기에 열심히 먹었다. 그 이후에 더 비싼 음식도 먹었지만, 첫 번째 먹었던 음식을 제외하고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광은 첫 번째가 가져가는 모양이다.

이제는 식사 시간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가에 따라서 그때의 식탁이 기억된다. 예전에 석 달 동안 멘토가 된 분과 거의 매일 함께 식사했던 기억이 새롭다. 비록 그 시절의 만남은 사라졌으나 그때 주고받았던 언어는 아직도 내 삶에 남아 있다. 언어가 인간 정신의 양식이 됨을 그때 체험했다.

매일 자주 찾아오는 식사 시간에 가까운 분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이 행복하다 .이 모든 것이 은혜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은혜를 받고 난 이후에 내 삶에 자주 찾아오는 것들을 환대하게 된 것이 감사하다. 은혜는 일상적 삶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도록 도와주었다. 인생의 돌파구는 새로운 것을 찾아서 가짓수를 늘림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삶의 해결책은 내게 찾아오는 만남의 횟수를 사랑함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행복하다.

시 하나 - 초대

좋은 집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 봅니다

나는 좋은 집이 되고 싶습니다

남쪽으로 마음 창을 내어

환한 빛 가득 머금고

앞 뒤 문 활짝 열어

시원한 바람 품고

사랑의 군불 지펴

따스한 온기 퍼지고

정갈한 생각과 언어들이 쌓여

기품이 드리우고

앞뜰의 키 작은 채송화 같은

소박한 설렘이 있는 곳

나의 집으로

소중한 당신을 초대합니다

언제나

어느 때이든지





함께하는 삶의 능력



묵상 둘 - 시간의 시험을 통과하자

학생들은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시험은 시간의 시험이다. 그런데 이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서 명문대학에 들어갔다고 하여 좋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될는지는 두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가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역시 겪어 보아야 아는 일이다. 어떤 사업가는 돈을 많이 벌었다고 흐뭇해하지만, 그것도 역시 지나가 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떤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제 결과가 곧 바뀔 것이라고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오히려 허황된 기대로 인하여 더 처참한 실패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습관이 바뀌기 전에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모임에 강의를 부탁받았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옆 사람에게 인사를 권유하였다. 그날 내가 추천했던 인사말은 “당신의 인격이 어떠하든지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였다. 함께 갔던 아내도 청중 사이에 앉아서 주변 사람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런데 아내의 앞자리에 앉았던 분은 색다르게 인사말을 건넸다고 한다. “죄송합니다만,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웃으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그분은 솔직한 분인 모양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나는 그분이 솔직한 분이어서 마음에 없는 말을 못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분이 아마도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잘 모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분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지나친 부담감을 갖고 계셨던 모양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때, 상대방이 잘 받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여 사랑의 수고를 중단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내가 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을 공경한다고 하자. 시어머님께서 “우리 며느리도 힘들 텐데, 이렇게 잘해 주니 참 고맙다”고 말씀해 주신다면 더욱 감사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여, “당신이 그렇게 나오시는데, 제가 계속하겠습니까?” 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면, 나의 미래도 어둡게 되지 않을까?

시 둘 - 인생

문득

주름진 얼굴과

거칠어진 손에 시선이 머뭅니다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아

아쉬운 마음을 넘어섭니다

내 얼굴의 주름만큼 눈이 열렸고,

내 손의 상처만큼 마음이 열렸으리라



거울로 보이는 나의 겉모습은

점점 옛것이 되어가지만

마음으로 보는 나의 속모습은

날로 새롭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진흙 같은 인생이지만

그 언젠가는 나의 뼛속까지

투명한 하늘 빛깔로

물들 날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의 눈에 두드러지는 사람이 될까?



묵상 셋 -감사는 우리를 두드러지게 한다

교정을 거닐다 보면 학생들이 인사를 한다. 어떤 학생들은 간단히 목례로 인사하며, 다른 학생들은 큰 소리로 인사한다. 제일 인상적인 학생은 찾아와서 말을 건네는 학생이다. “선생님, 저번에 직업 선택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의 말을 들을 때 내가 보이는 반응이 있다. 인사만 받을 때 나타나지 않던 반응이 나로부터 일어난다. 그 학생을 향해서 흘러나가는 말이 있다. “그런데 학생은 어느 학과인가? 이름은 어떻게 되는가?”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학생의 이름을 묻게 되는 것이다. 감사가 감사하는 사람의 얼굴을 두드러지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감사가 우리의 모습을 어찌나 두드러지게 하는지? 나는 이 사실을 식당에서 경험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식당에 가서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식당의 아주머니가 물 한 잔을 주더라도 고맙다는 인사의 말을 건네게 된다. 그러면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은 환대를 받게 되면 내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환대를 받은 사람은 불가역적인 변화를 체험하기에,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식당에 가서 감사를 자주 표현해 보라. 비록 아주머니가 당장 반응을 보이지 않을지라도, 조금 후에 그 영향력이 나타나게 된다.

아주머니는 다른 테이블에 다녀오는데, 저쪽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주머니 안에 갑자기 우리 테이블을 향한 그리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제 아주머니는 더 이상 같은 사람으로 머물 수 없다. 아주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우리 테이블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 된다.

아주머니는 우리 테이블에 찾아와서 묻는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신가요?” 그때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해 보라. “반찬이 참 맛이 있네요.” 아주머니는 주방에 가서 새로운 반찬을 많이 가져다준다. 우리에게는 그 능력이 없지만, 아주머니에게는 주방에 있는 음식을 더 갖고 올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눈에 두드러지는 사람이 될까? 작은 것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다. 내가 받은 은혜와 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신 선물을 그릇으로 삼아 주셔서 더 많은 은혜와 복을 부어 주실 것이다.

시 셋 - 새벽

새벽은

참 신비롭습니다



아무도

낮이나 저녁을

하루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두움을 지우고

차근차근 밀려오는

새벽빛은 거룩한 감동입니다



그러기에

다시 살고픈 사람들은

새벽을 시작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새벽을 사랑함은

용기를 구하는 용기요

은혜를 바라보는 겸손입니다





화가의 흔적



묵상 넷 -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얼마 전에 ‘빼빼로데이’라고 하여 막내 아이가 학교에서 길쭉한 초콜릿을 한 아름 들고 왔다. 그 초콜릿을 보면서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어느 해 2월 13일이었다. 첫째와 둘째 아이가 초콜릿을 사오겠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다음 날이 ‘발렌타인데이’이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허락하면서 단서 조항을 붙였다. 너무 비싼 초콜릿을 사오지 말라는 것과 완제품으로 된 초콜릿을 사오지 말고, 스스로 선물을 만들어 주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사온 초콜릿과 스티로폼 알갱이를 하얀 선물박스 안에 넣기 위하여, 재료들을 방바닥에 늘어놓고 선물을 준비했다. 늦은 밤이 되었기에 이제 그만하고 자라고 하였다. 나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아이들은 나를 내보낸 후에 방문에 글을 써서 붙여 두었다. ‘남자 절대 출입금지!’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둘째 아이가 나에게도 초콜릿 상자를 주었다. 카드도 함께 주었는데, 카드에는 하나의 문장이 쓰여 있었다. “아빠, 여태까지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워’ 자를 ‘위’ 자로 잘못 썼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못 읽었다. “아빠, 여태까지 키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둘째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물끄러미 선물 상자를 보았다. 그런데 선물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스티로폼 알갱이가 너무나 다르게 보이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어젯밤에는 스티로폼 알갱이들이 모두 쓰레기처럼 보였었다. ‘아이들이 저 쓰레기를 언제 치울까?’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는 선물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스티로폼 알갱이들이 둘째 아이의 사랑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찾아가서 물으셨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때 모세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은 낡은 지팡이였다. 그 지팡이는 모세의 비참한 처지를 보여 주는 신세 한탄용 지팡이였다. ‘한때는 내가 왕궁에 있었는데, 이제 이렇게 나의 삶은 버림받은 처지가 되었구나.’ 모세는 자신의 지팡이를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세가 자신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렸을 때, 그 지팡이는 홍해를 가르는 기적의 지팡이가 되었다. 우리의 작은 삶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큰일을 행하는 기적의 도구가 되리라고 믿는다.

시 넷 - 자유

내게 많이 있음은

다른 이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내게 혹여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족을 메꾸기 위함입니다

흐르는 삶은 맑고

나누는 삶은 풍성합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옮기는 것이 비결이다



묵상 다섯 - 사람을 낚는 어부

서울여대에 몸담게 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 학생들에게 설교를 하고 강의를 했을 때, 학생들이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래서 휴식 시간에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는가?”를 물어보았다.

학생들의 대답이 걸작이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없고, 그저 일찍 끝내달라는 것이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교회 나가라, 예수 믿어라, 성경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과 같은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면 자신들은 아예 귀를 막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 아닌가? 그때 결심한 것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먼저 하면 안 되겠구나. 다른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그 이야기로 끝내야 하겠구나.’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늘 고민이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로 시작을 해야 하는가?

지난 주간에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부탁받았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10여 년 전에 유치원에 갔던 경험이 회상되었다. 당시에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유치원에서는 아이의 생일에 부모가 참석하여 자녀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하는 순서가 있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앞으로 화해(和解)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저 눈을 말똥말똥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화해’라는 단어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갑자기 난감해졌다. ‘이거 청중 파악을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다행히 나는 아이가 평소에 자주 보던 만화영화 ‘아기천사 두두’가 생각이 났다. 두두는 훈이 집에 살면서 훈이가 친구들과 다툴 때, 중간에서 화해시켜 주는 일을 자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혹시 ‘아기천사 두두’를 아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 말은 우리 아이가 나중에 두두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더니, 아이들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중에게 맞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무의미한 삶을 살아서 괴로운 것 같구나. 네가 나를 따른다면 내가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돕고 싶구나.” 예수님의 언어에는 듣는 자를 향한 관심과 배려가 녹아 있었던 것이다 나의 단어들도 예수님의 언어들처럼 듣는 자들을 향한 사랑이 담긴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 다섯 - 코스모스

내 마음에

오래 전부터

심기어져 있던 아름다움이

너의

자줏빛 벨벳과 만났을 때

너는 비로소 태어나고

나는 그만큼 자유해진다

가녀린 목이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려도

결코

꺾이지 않는 너를 닮아

나도 파란 가을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산다





물러서는 것도 능력



묵상 여섯 - 건강한 성찰이 필요하다

간혹 열심을 다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할 때가 있다. 차분한 성찰이 따라 주지 않을 때, 맹목적인 열심(熱心)은 우리를 낭패로 인도한다. 학생이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했으나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어떤 일이든지 우리가 열심을 낼 때, 우리는 자주 환각 상태에 접어든다. 이는 보고서의 작성에도 적용된다.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학생은 보고서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제출한다. 자신이 쓴 글은 명문(名文)이기 때문에 고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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