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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사도세자

이재운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4년 10월 / 336쪽 / 13,000원





사도세자_ 나는 아버지의 비밀을 알고 있다



휘령전

“어서 산(?)이를 데려와라!”

혜빈 홍씨가 급히 소리를 질렀다.

산은 올해 열한 살이고, 조선국 세손이다.

세손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휘령전에 들어서서야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

그동안 산도 궁중에 파다하게 떠도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어른들이 쉬쉬하면서 하는 말들이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뭔가 복잡하고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았다. 어머니 혜빈 홍씨는 그것이 중상이고 모략이라고 아들에게 가르쳤다. 그 끈질긴 중상과 모략이 끝내 할아버지 영조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다. 왕인 그로서도 더 이상 선택할 길이 따로 없었다.며칠간 영조는 너무나 괴로웠다. 노론 벽파에 속하는 대신들이 고해바치는 세자의 비행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세자에게 나라를 맡겼다가는 국가의 명운이 무너질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 이것이 골자다.

휘령전은 영조의 첫 왕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사당이다.

세자는 앞마당에 무릎을 꿇었다. 숨을 헐떡거렸다. 세자는 누가 보아도 병색이 완연했다.

갑자기 격노한 영조가 세자를 향해 소리쳤다.

“관을 벗어라. 신발도 벗어라. 그러고는 땅에 머리를 조아려라.”

오전 10시. 한창 여름이라 벌써 땡볕이다.

이산도 관을 벗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아버지가 그러고 있는데 아들이 서 있을 수가 없다.

“할바마마, 잘못했습니다.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세손 이산은 울면서 엉금엉금 기어 아버지 세자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어서 할바마마에게 살려달라고 용서를 비세요.”

영조가 별군을 가리키며 냅다 소리 질렀다.

“어서 세손을 안아 밖으로 나가라.”

별군이 달려들어 세손을 번쩍 안아들고 휘령전 밖으로 나갔다.

“흉악한 놈.”

영조는 씩씩거리며 휘령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가 세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큰소리로 물었다.“어젯밤 월담하려다가 낙상하였느냐? 네가 감히 애비를 죽이려고 허리에 칼까지 차고 다닌단 말이냐?”“……”

비록 합문 밖에 있기는 하나 문무백관이 모두 이 광경을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노론 벽파에 속한 신하들이다. 방금 전까지 세자의 비행을 시시콜콜 고해바치며 죽여야만 한다고 핏대를 올린 이 나라의 실질적인 주인들이다. 비록 국왕이라도 이들이 가리키는 곳만 봐야 하고, 이들이 하는 말만 들어야 한다. 그들은 거침없이 말한다. 천한 무수리의 자식을 왕으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노론이고, 그를 지키는 것은 벽파라고.세자는 영조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기운 것을 일으켜 세울 힘이 그의 아버지 영조에게는 없다. 임금과 세자의 싸움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싸움이다. 영조가 그의 아들인 세자에게 묻고 따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노론 벽파 신하들이 쫑긋 세우고 있는 그 귀를 향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다음에는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떻게 자신을 죽일지 아무도 모른다.나약한 왕권으로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아슬아슬하게 지켜온 영조의 머릿속으로 조선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그동안 얼마나 많은 왕이 신하들에 의해 쫓겨나고 죽임을 당하였던가? 이 순간, 세자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저들은 분명코 영조 자신의 왕권마저 짓밟을 것이다. 노론의 패악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의 사악함을 두 눈으로 보았다. 수많은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사라졌다.

영조는 다시 물었다.

“세자는…… 대답을 하라!”

영조의 목소리는 이미 피 끓는 절규로 바뀌었다.

“……”

세자는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스물여덟 살인데도 더워서 힘든데 그의 아버지 영조는 예순아홉 살이나 된다. 그런데도 아침부터 이러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아니라고 한들 노론 벽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 영조마저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기 위해 그가 죽어야 한다. 영조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 더 기회를 주어 세자를 용서할 것인가, 아니면 친국할 것인가.’합문 밖에 떼를 지어 모여 있을 노론 벽파 신하들을 생각했다. 잔인한 사람들이다. 지금 당장 목을 베라는 듯 사뭇 날카로운 눈빛들일 것이다.‘아! 선왕들 중 누구도 제 자식을 친히 죽인 분은 안 계셨다. 내가 어쩌다 세자를 죽여야만 하는 왕이 되었을꼬.’결론은 의외로 쉬운 곳에서 났다. 영조의 눈에 합문 밖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세손 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내 세손이 있지.’

세손 이산은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열한 살이다. 게다가 워낙 영특하다. 영조가 몇 년만 더 살아주면 산은 스무 살이 된다.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스무 살, 그러면 왕위를 너끈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세자는 적이 너무 많다. 그놈들을 다 죽이면 모르되 그러지 못하면 세자가 죽는다.

영조는 그의 형 경종이 신하들에 의해 죽는 걸 똑똑히 보았다. 경종은 세자 시절부터 살해 위협을 받으며 겨우 왕이 되었지만 불과 5년 만에 독살되었다. 게장과 감을 갖다준 것은 영조 자신이었지만, 의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내관이나 궁녀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는 영조 자신도 모른다.그럴 바에야 세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안전하게 세손에게 왕위를 전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 종묘사직은 우리 세손이 이어가면 된다. 내 아들 세자야, 네가 종묘사직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다오.’영조는 마침내 세자에게 칼 한 자루를 던졌다.

“자결하라.”

그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합문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노론 벽파 신료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휘령전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다.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모두 긴장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자도 있으리라. 세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은 왜 이렇게 더운가. 속에 입은 베옷을 타고 땀이 줄줄 흐른다. 입술은 바짝 타오른다. 영조는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할바마마, 제발 어명을 거두어주소서. 아바마마를 살려주옵소서.”

영조는 멈칫했다.

세자도 고개를 들어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합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어서 살려달라고 하세요!”

영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된다. 이미 내 권한을 넘어섰다. 세자야, 아비의 힘은 그것밖에 안 되느니라. 내가 아무리 너를 살려두고 왕위를 넘겨준다 한들 저 사악한 신하들이 너를 살려두지 않으리라. 어차피 죽는다. 내가 이만큼이나 목숨을 보전한 것은 저놈들 비위를 적절하게 맞춰왔기 때문이다.’보다 못한 신하들이 합문 밖에서 세자를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주상 전하, 세자를 살려주소서!”

“주상 전하, 신들이 잘못 모신 죄를 벌해주십시오.”

그들의 목소리는 가늘다. 무겁게 내리누르는 노론의 눈빛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다. 번번이 묵살당한 똑같은 주장이라 힘이 없다. 목소리에 힘이 없으니 금방 꺼진다. 시파들이 한 마디 하면 벽파가 나서서 처벌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했다.어쨌든 결론은 이미 난 것이다.

‘왕권을 찾아야 한다.’



오후 8시, 막 해가 져서 그나마 시원하다. 영조는 환관이 가져온 죽을 조금 떠먹었다. 그러고는 변소를 다녀오더니 환관을 불렀다.“뒤주를…… 대령하라.”

한참 있다가 어디선가 뒤주가 들어와 휘령전 뜰에 놓였다. 가져온 사람을 보니 세자의 장인이자 좌의정인 홍봉한이다. 그는 세자를 측은하게 돌아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돌아선다. 사위를 살려달라는 말 한 마디 안 하고 그는 합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조가 마당으로 내려서서 뒤주를 살펴보더니 세자를 향해 소리쳤다. “세자는 뒤주로 들어가라.”

“아버지! 살려주십시오.”

세자의 간절한 목소리는 담장을 넘어간다. 혜빈 홍씨도 울고 세손 이산도 운다. 영조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바보 같은 놈, 넌 스스로 명을 재촉했다. 애비라고 무슨 대단한 힘이 있는 줄 알았느냐? 이 애비가 왕이 되고, 왕위에 앉아 있는 것이 가만히 있어서 그리 된 줄 아느냐? 등신 같은 놈. 시강원에서 대체 뭘 배웠길래 세상을 그리도 모르느냐?”“아버지, 저는 세상의 이치를 알기도 전에, 왕도를 배우기도 전에 아버지의 비밀부터 먼저 알았습니다.”“그러게 그년들이 악귀들 아니더냐!”

저승전 상궁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저승전(儲承殿)

영조는 태어난 지 100일 된 세자를 생모인 숙원 최씨한테서 빼내왔다. 무수리의 자식이라는 말이 돌까 봐 처음부터 세자로 당당히 기르고 싶었다. 그렇게 하여 원래 동궁으로 쓰던 저승전으로 세자를 보냈다. 저승전(儲承殿). 세자를 받드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필 세자를 기른 사람들이 경종의 비인 선의왕후를 모셨던 한 상궁, 이 상궁 두 사람이었다. 선의왕후는 살아생전 만나는 사람마다 노론을 등에 업은 시동생이 남편을 독살시키고 왕위를 훔쳤다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세자는 총명했다. 넉 달 만에 기고, 여섯 달 만에 아버지의 부름에 “예, 아바마마!”라고 대답하여 영조며 대신들이 저승전이 떠나갈 듯 한바탕 웃으면서 기뻐했다. 기록에 따르면 세자는 일곱 달 만에 동서남북을 분간하고, 두 살에 한자 60자 정도를 척척 써냈다고 한다. 영조는 조회 중 대신들에게 세자가 쓴 글씨를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어이 사단이 났다.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선의왕후에게 물든 두 상궁은 세자를 기르며 세자에게 영조에 대한 갖은 험담을 주입시켰다. 네 애비는 살인마다, 네 애비는 왕도 아니고 노론 대신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다, 노론의 지시에 따라 네 애비가 선왕을 죽였다. 세자는 전쟁놀이를 아주 좋아하여 칼을 쳐들고 궁녀들과 어울려 창경궁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한 상궁, 이 상궁이 무예를 익혀 군사를 잘 써야 노론 세력을 이기고 왕실을 살릴 수 있다고 가르쳤던 것이다.영조는 세자가 칼싸움 놀이를 즐긴다는 걸 알고 몰래 저승전을 살폈다. 하라는 4서3경 공부는 안 하고 궁녀들과 뛰어다니며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는 게 아닌가.“이 노론 놈아, 내 칼을 받아라!”

마침내 사태를 파악한 영조는 세자의 거처를 창경궁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서 두 상궁의 목을 베어버렸다. 영조는 뒤늦게 세자 교육을 다시 시키기 시작했다. 시강원을 설치하고 사서삼경을 마구 집어넣었다.하지만 세자는 변하지 않았다.



***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소리 질러 지칠 법도 하건만 영조의 목청은 휘령전을 뒤흔들었다.

“이제 그만 뒤주로 들어가라!”

추상같은 어명을 느낀 세자는 휘청거리며 일단 뒤주 속으로 들어갔다.

궁중에서 쓰는 큰 뒤주라 그리 좁지는 않다.

“뒤주를 닫아라!”

영조의 나이 예순아홉, 세자의 나이 스물여덟, 손자 산의 나이 열하나다.

이날 밤, 이산은 어머니 몰래 휘령전 앞 뒤주 곁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오냐, 우리 산이구나.”

“할바마마에게 왜 살려달라고 하지 않아요?”

“산아, 잘 들어라. 원래 할아버지가 죽어야 하지만, 할아버지는 왕이시니 죽을 수 없고 대신 나라도 죽어야 한다. 할아버지가 큰 죄를 지으신 게 있다.”“아버지, 목이 마르지요? 내가 물 가져왔으니까 여기에 입을 대고 마셔요.”

이산은 뒤주 한쪽을 톡톡 두드리고 나서 호리병에 담아온 물을 흘려 넣었다.

구름 사이로 나온 달빛이 나뭇잎 사이로 비쳐든다.

“할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었어요?”

“애비를 죽이라고 소리 지르는 신하들 보았지? 노론 벽파라는 악귀들이다. 그들이 선왕이신 경종 전하를 독살하고 그 자리에 할아버지를 앉힌 것이란다.”“감히 신하들이 왕을 독살해요?”

“그러니까 무서운 놈들이지. 네 할바마마는 저들이 쥐고 흔드는 꼭두각시다. 난 꼭두각시가 되기 싫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들이 막았다. 조금이라도 백성을 생각해 무슨 일을 하면 저들이 트집을 잡아 나를 헐뜯고 비난했다.”“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해요?”

“세상에는 역적도 충신도 없다. 힘이 생기면 충신이 되고, 힘이 빠지면 역적이 되는 것이다. 왕이라도 죄인을 마음대로 죽이지 못한다. 신하들이 죄인이라고 해야 죄인이 되고, 아니라면 무죄방면해야 한다. 난 그런 흉악한 무리에게 끌려다니는 할바마마가 싫었다. 진짜 왕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할바마마는 왕 시늉만 하라고 나를 혼내셨다. 지금도 할바마마는 나를 죽이고 싶어 죽이는 것이 아니다. 할바마마가 살기 위해, 그리고 너를 살리기 위해 나를 죽이시는 것이다.”“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저는 어떻게 해요?”

“할바마마가 우리 산이를 믿기 때문에 나를 죽이시는 거다. 내가 죽으면 너는 세손이니까 이다음에 왕이 된다. 네가 나를 대신해 이 나라의 왕이 된단 말이다.”“왕이 되면 신하들이 죽인다면서요?”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라. 조정 대신들, 하나같이 왕을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저승사자들이다. 그놈들은 백성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오로지 당과 가문의 부귀만 원하고, 왕명보다도 당론만 따른다. 왕이 시켜도 일을 하지 않는다. 백성이 굶어 죽어도 모른 척한다. 그러니 그런 악독한 대신들은 혹시라도 죽일 기회가 생기면 확실히, 꼭 죽여야 한다. 살려두면 나중에 화근이 되어 왕의 목숨을 노린다.”“전 무서워서 왕 안 하고 싶어요.”

“나는 세자를 하고 싶어서 한 줄 아느냐? 할바마마의 아들이 나뿐이니 태어나자마자 세자가 된 것이다. 너 또한 내 아들이니 어쩔 수 없이 세손이 되었고, 그냥 왕이 되는 거다. 그러니 저 무섭고 흉악한 노론 대신들과 싸우는 건 너 혼자다. 그때는 할바마마도 안 계시고 나도 없다. 너 혼자 그 많은 악귀들과 싸워 왕실을 지켜야 한다.”“그냥 모른 척 바보처럼 지내시지 왜 백성을 생각하셨어요? 대신들 말 잘 들어가며 편히 사시지 않구요?”“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단다. 내 아버지이신 주상 전하의 비밀이며, 저 인조대왕이 그 아드님 소현세자를 죽인 이후 벌어진 추악한 왕실 역사를 너무 많이 알았단 말이다. 내가 그 얘기를 해줄 테니 네가 왕이 되거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정순왕후

세자가 열다섯 살이 되자 영조는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세자가 대리청정을 하게 되자 노론들은 죽을 맛이었다. 장차 세자가 진짜 왕위에 오를 경우 노론은 목숨이 붙어 있을 가능성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세자를 몰아세우고 왕과 세자 사이를 이간하기 시작했다.1757년 영조의 첫 왕비인 정성왕후 서씨가 사망하고 상례가 끝나자마자, 영조의 나이가 무려 66세임에도 불구하고 노론은 영조에게 왕비 간택을 주청했다. 사실 이 나이에 영조가 왕자를 생산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노론은 대비전이라도 장악하여 세자가 왕이 되더라도 힘껏 찍어 누르자는 전략이었다. 영조는 스스로 다 늙은 나이라 다시 왕비를 간택할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노론은 왕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영조는 하는 수 없이 후보로 올라온 여인들 중에서 가장 힘이 없는 김한구의 딸을 간택했다. 그렇지 않으면 외척 세력을 키울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저하고, 그렇게 조심하여 간택한 이 일이 나중에 영조를 파멸케 하고 세자를 파멸케 하고 이어서 조선을 망하게 하는 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기묘년(영조 35년, 1759) 영조의 나이는 예순여섯 살, 정순왕후는 막 열다섯 살이 되어 무려 쉰한 살이나 차이가 난다. 왕후보다는 대비를 노린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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