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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이순신

이재운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4년 8월 / 336쪽 / 13,000원





전라좌수사가 되다



“정읍현감 이순신은 주상 전하의 어명을 받드시오.”

선전관이 크게 말하자 이순신은 땅에 엎드렸다.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명하노라”

땅에 엎드려 있던 이순신은 귀를 의심했다. 몇 단계를 뛰어넘는 승진이다. 이순신은 일어나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1591년 2월 13일. 이순신의 나이 마흔일곱.

이순신은 전라좌수사가 되어 수영에 도착했다. 이순신이 부임하자 군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무기고를 돌아본 이순신은 포구로 발길을 돌렸다. 바다에서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선이 가장 중요하다. “내일부터는 전선을 짓는 작업을 할 것이다.”

또한 이순신은 군관 나대용에게 거북선 모형도를 내놓으며 거북선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좌수영 본영에서 가까운 바닷가 모래밭에는 망치 소리와 톱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라좌수영은 거북선뿐만 아니라 조선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도 더 만들고, 그 밖에 연락선이나 보급선 등으로 쓸 배들도 만들었다. 좌수영 포구에는 점점 더 배가 많아졌다. 전선과 화포, 화약, 각종 무기들이 넉넉하게 들어차자 수군들의 사기도 높아졌다.



전쟁의 시작



1592년 4월 13일 오전 아홉 시경.

군마와 무기를 실은 칠백 척의 일본군 전선이 대마도를 출발하였다.

일본군이 부산포에 밀어닥친 날이다. 다음 날 14일에는 일본군의 선발대인 소서행장이 이끄는 1만 8천여 명의 일본군이 부산성을 공격, 마침내 함락했다.

1592년 4월 15일, 전라좌수영 여수 본영.

조선군의 패전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이순신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이순신은 당장이라도 수군을 이끌고 부산 앞바다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조정의 명령 없이 함부로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다. 왕명이 떨어져야 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일본군의 육상 진입을 막기 위해 신립 장군을 급파했지만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의 기세에 눌려 충주 탄금대로 대파당하고 말았다.

4월 18일에는 동래성이 무너지고 이어서 양산과 김해가 차례로 일본군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곧이어 적들은 한양까지 단숨에 밀고 올라갈 태세였다. 조선 강토는 곧 일본군의 세상이 될 판국이었다. 그야말로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잔불과 같았다.4월 27일, 마침내 선전관이 조정의 출전 명령을 가지고 왔다. 다음 날 정오, 장선에 오른 이순신은 장수들에게 출전 준비를 명했다. 한참 출정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닷새 전 한양 소식을 알기 위해 보낸 부하가 들어왔다. “이미 왜적이 한양에 들어왔고 임금님은 궁궐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순간 하늘이 캄캄했다.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다니!



1592년 5월 4일, 전라좌수영과 우수영 연합 함대가 드디어 일본군을 치러 나섰다. 출동을 알리는 대포 소리가 맑은 하늘을 가르며 천지를 진동시켰다. 좌수사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자 전선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란이 일어난 지 20일이 지나서야 좌수영 소속 수군이 전선으로 출동하는 것이다.

“왜선이 나타났다.”

1592년 5월 7일, 처음으로 일본군과 마주치는 수군들은 잔뜩 흥분했다. 이순신은 침착하고 묵직하게 각 전선의 장수들에게 지시했다. 그는 이번 싸움이 조선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판단했다. 일본군이 침입한 이래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조선군, 그러므로 반드시 이겨야 했다.“진격하라. 진격하라.”

이순신은 공격 명령을 알리는 북을 두드리게 했다.

이순신은 포위 전략을 장수들에게 전달하고는 북을 두드리고 깃발을 흔들면서 전군을 몰아갔다. 순식간에 일본군 함대가 고립되었다. 무수한 총통이 발사되고, 불화살이 빗발쳤다. 불붙은 적선들은 우왕좌왕하면서 피하기 급급했다. 다급한 적들은 배를 버리고 해안으로 기어올랐다. 그들이 남긴 적선들은 그대로 대파시켜 수장시켰다. 적선 26척을 무찔렀다. 첫 싸움치고는 대단한 승리다.

1592년 5월 29일.

전라좌수영 진해루에는 장수들이 가득 모였다. 이틀 전 이순신은 경상우수사 원균으로부터 적선이 사천과 곤양을 침범하고 있다는 공문을 받았다.이순신은 적선을 치러 다시 출정했다. 이번에는 거북선이 앞장서기로 했다. 모두 스물세 척의 전선이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다. 경상우수영 수군과 합류한 연합 함대가 더 나아가니 사천 쪽 바다에 적선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이순신은 적선을 바다 한가운데로 유인했다.

“이만하면 됐다. 이제 뱃머리를 돌려 적선을 쳐라.”

깃발이 올라가자 조선 함대는 일제히 방향을 바꾸어 적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도 화살을 쏘지 말라. 총통도 발사하지 말라. 대형을 유지하고 앞서 나가지 말라. 이번에는 거북선이 출정한다.”조선 수군이 일절 대응하지 않자 적선들은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순신이 명령을 내렸다. 깃발이 올라갔다.

“거북선을 출동시켜라.”

마침내 후미에 대기하고 있던 거북선이 거대한 몸체를 드러냈다. 거북선이 조선 수군 맨 앞으로 치고나오자 일본군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로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전선이었다. 거북선에서 수많은 총통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가까이 와 있던 적선들은 그대로 깨지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육중한 거북선이 쿵쿵 받아버리면 일본 전선은 뱃전이 찢어지곤 했다. 해질 무렵 적선은 한 척도 남김없이 모두 깨져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다.

1592년 6월 2일 이순신은 당포에서도 거북선을 앞세워 적선을 21척을 격파시켰고, 7월 8일 한산도에서는 학익진을 전개하여 왜선들을 모두 침몰시켰다. 그리고 9월 1일 부산포에서는 400척이 넘는 적선을 맞아 싸워 100척 이상을 격파시키고 대승을 거두었다.



삼도수군통제사



1593년 8월. 어느덧 전란의 와중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전쟁이 터지고 두 번째 맞는 가을이다. “수사님, 어명이 왔습니다.”

이순신은 선전관 앞에 엎드려 어명을 기다렸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하는 주상 전하의 어명이오.”

이순신은 북쪽을 향해 절을 했다.

국왕인 선조는 한산도에 수군 통제영을 두게 하고, 이순신에게 통제사라는 벼슬을 내렸다. 특히 임금의 글에는 통제사의 명령을 듣지 않는 사람은 높고 낮음을 가리지 말고 군법으로 엄하게 다스리라고 쓰여 있었다. 드디어 이순신은 조선의 모든 수군을 지휘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597년 1월.

명나라와 일본의 강화교섭으로 물러갔던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략했다.

이순신이 일본군을 무찌르지 못하여 마음을 태우고 있을 때 조선옷을 입은 일본군 첩자 요시라가 경상병사 김응서를 찾아왔다. 요시라는 종종 김응서에게 일본군의 비밀 정보를 가르쳐주곤 했다.“그러니까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이 사이가 나쁘단 말이지?”

김응서는 요시라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 하지만 요시라는 순천왜성에 숨어 있는 소서행장이 보낸 첩자였다. “가등청정이 군사를 이끌고 정월 7일에 다시 부산에 올 것입니다. 이때 조선 수군이 가등청정을 공격하십시오. 그러면 조선 수군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전쟁은 끝날 것입니다.”김응서는 귀가 솔깃했다. 공을 세우고 싶어서 마음이 급한 김응서는 곧바로 도원수 권율에게 편지를 썼다. 김응서의 편지는 요시라에게 들은 이야기에 살을 덧붙여 그럴듯했다. 김응서의 편지를 받은 권율은 한양으로 장계를 올렸다. 권율의 보고를 받은 선조는 일본군을 치라는 교지를 적어 황진을 보내 이순신에게 전하라 명했다.

이순신은 독전 교서를 앞에 놓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주상 전하의 명령은 지엄하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첫째로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이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군사상의 비밀을 그토록 가벼이 말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의 흉계가 분명합니다. 둘째로 적의 흉계를 깨닫지 못하고 그 꾀에 빠진다면 적과 싸워서 백 번 패할 뿐 한 번도 이길 수 없습니다.”이순신의 의견을 들은 황진도 옳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일단 출전을 미루고 탐군을 부산 등지로 보냈다.

하지만 이순신이 모르는 사이 요시라는 더 큰 함정을 파고 있었다. 요시라는 다시 김응서를 찾아가 가등청정이 대마도에 머물 때 이순신에게 엄청난 금은보화를 뇌물로 보냈다고 말했다. 김응서는 요시라에게 들은 그대로 권율에게 글을 띄웠다. 권율은 이를 지체 없이 한양으로 보냈고 이 비밀 정보는 화약고에 던진 불덩이가 되었다. 마침 이순신을 벼르던 대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대역 죄인 이순신을 하루빨리 죽여야 한다.”

서인들은 눈만 뜨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기도 하고 직접 아뢰기도 했다. 이어서 온갖 유언비어가 궐내에 퍼졌다. 임진년에 도망 다니던 관리들로서는 승승장구하는 이순신이 눈엣가시였다. 마침내 임금은 이순신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리고 말았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관복을 벗고 두 손이 묶인 채 통제영 밖으로 나오자 백성들이 다투어 몰려와 앞을 가로막는다. “네 이놈들! 이런 천벌을 받을 놈들!”

“기껏 망해가던 나라를 구해놓으니 의주까지 꼬리가 빠져라 도망친 쥐새끼들이 무슨 낯으로 통제사 나으리를 잡아가느냐?”백성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1592년 임진년 이후 쉬지 않고 일본 전선을 깨부수고 적괴들을 수장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던 그였건만 이제는 죄인이 되어버렸다.



조선을 구한 게 나의 죄이런가



1597년 3월 4일, 한양에 도착한 이순신은 곧바로 옥에 갇혔고 며칠이 지나자 고문이 시작되었다. 이순신을 고문한 사람은 서인인 윤근수였다. 동인을 짓누르는 당쟁의 선두에 있던 윤근수는 원균은 높이고 이순신은 깎아내려야 했다.“천하에 고얀 놈 같으니. 왕명을 거역하고도 할 말이 남아 있느냐? 형틀을 준비해라.”

윤근수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 형틀과 숯불이 벌겋게 달아오른 화로가 준비되었다.

아무리 무예로 단련된 몸이라고 하지만 이순신도 벌써 쉰세 살이다. 7일이나 계속된 가혹한 형벌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시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가 이순신의 등에 닿자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이순신은 기절했다.조정에서는 이순신을 죽이기로 뜻을 모으고 있었다.

“이순신은 어명을 거역한 역적이옵니다. 살려 두어서는 나라가 위태롭사옵니다.”

선조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모두가 다 이순신을 죽이라는 말뿐이었다.

이때 판중추부사 정탁이 목숨 걸고 상소를 올렸다. 임금은 정탁의 글이 지극히 정성스럽다는 것을 느끼고 크게 감동하여 이순신을 풀어주어 백의종군하게 하였다.

그해 4월 초하루.

이순신은 감옥에서 나왔다. 며칠 후 이순신은 새로 군사가 될 젊은이들 틈에 끼어 걸었다. 군사들은 모두 경상도 초계 군영에 배치되는 신병들이다. 한양에서 초계까지는 먼 거리다. 군대는 수원을 지나 4월 5일에 이순신의 고향인 아산에 도착했다. 그때 하인이 어머니가 이순신을 만나러 초계로 가시던 중 객지에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했다. 이순신은 피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마친 뒤 도원수 권율의 군사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어머니를 잃고도 시묘조차 못 하고 떠나야만 하는 늙은 수군 신세였다.



텃밭 가꾸는 삼도수군통제사



경상도 합천 초계땅 도원수 권율의 중군영.

“도원수께서 드십니다.”

이순신은 일어나 도원수를 맞이했다. 권율은 올해 예순하나다. 쉰셋인 이순신보다 무려 여덟 살이 많다. “이공 앞에서 말하기 부끄러운데 통제사 원균 때문에 걱정이오.”

권율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원균은 왜적과 싸울 마음이 전혀 없는 모양이오. 육군이 먼저 안골포를 쳐야 수군이 움직이겠다고 하는구려. 지금 수군을 한산도에 숨겨놓고 통 나오지 않고 있소. 그리고 장수들과 한마디 의논도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니 장수들의 불만이 대단하오.”권율과 이순신이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군관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다시 10만 대군의 왜적이 부산포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통제사 원균을 부산으로 보내 적을 무찌르게 하라는 조정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지금 당장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에게 부산을 향해 출동하라고 명령을 전해라.”



권율이 사천을 향해 떠난 뒤 이순신은 텃밭으로 나갔다. 이순신은 이제 도원수 부중의 텃밭을 가꾸는 잡군일 뿐이다. 적을 무찌를 만한 전략이 있지만 쓸 수가 없다.

다음 날 아침. 마지못해 부산을 출발한 원균의 조선 함대는 일본의 유인책에 속아 절영도에서 처절하게 패배했고 이어서 칠천도로 공격해온 일본 수군에 의해 조선 수군은 궤멸되고 말았다. 수군이 싸우는 동안 원균은 부하들과 따로 배를 타고 도망쳤다. 그러나 원균의 배는 곧 일본군에게 발견되었다. 다급해진 원균은 배가 육지에 닿자마자 산으로 내달렸다. 산봉우리까지 기어 올라간 원균은 곧 다리에 힘이 빠져서 더 걸을 수가 없게 되었고 마침내 일본군들이 원균을 향해 발사한 조총 소리가 산을 울렸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군사를 거느리고 칠천도를 빠져나왔다. 배설은 통제영이 있는 한산도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통제영에 도착한 배설은 조선 수군이 칠천도에서 참혹하게 패배하고 적들이 지금 한산도 본영으로 오고 있다는 군관의 보고를 받았다. 배설은 곧 일본군이 당도할 것에 대비하여 곡식 창고와 무기고에 불을 지르게 했고 곡식 십만 석과 각종 신무기가 삽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다음부터 삼 년 동안 쌓아올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어허, 세상에 이럴 수가.”

권율은 가슴을 두드리며 한탄했다.

“다시 한 번 말해보아라.”

“수군이 칠천도에서 왜군에게 크게 패했다고 하옵니다. 원균 통제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장수가 죽고 경상우수사 배설은 통제영의 무기고와 곡식 창고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이순신은 하늘이 노랬다. 그 무기와 식량이 어떻게 마련된 것들인데. 좌수영 시절부터 수군들이 밤잠을 자지 못하고 밤낮으로 머리를 짜서 만들어 놓은 무기들이다.

칠천도 패전 이틀 뒤 이순신은 권율의 허락을 받고 전라도 부근의 바다를 둘러보기 위해서 도원수진을 떠났다. 이순신이 노량포구에 이르자 살아남은 수군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칠천도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순신은 배설에게 단 몇 척의 배라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선 열두 척에 걸린 조선의 운명



진주 땅 권율의 도원수 부중.

“이순신은 어명을 받들라.”

선전관이 교서를 다 읽자 이순신은 북쪽을 향해서 절을 올렸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을 거느리는 통제사가 되었다.통제사 이순신은 보성에 도착하자마자 군사를 훈련시키고 전선을 마련하는 일부터 서둘렀다. 이순신이 전투 계획을 짜고 있는데 밖에서 군사가 외쳤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장흥 회령포에 있고 거기에 판옥선 열두 척도 있다고 합니다.”

이순신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판옥선이 열두 척 남아 있다니.”

이순신이 급히 말을 타고 회령포에 이르니 정말 판옥선 열두 척이 포구에 매여 있었다.



“통제사 님, 한양에서 선전관이 내려왔습니다. 어명이 있는가 봅니다.”

선전관이 이순신에게 어명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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