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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권영찬 지음 | 순정아이북스
당신이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권영찬 지음

순정아이북스 / 2014년 5월 / 332쪽 / 13,000원





풍랑 인생 3.5막 권총찬의 실화소설, 그때 그 사건 - 30대 중반에 3번의 죽을 고비를 겪다

3종 고난세트 하나. 총찬, 명예를 잃다

꺼림칙한 무죄 선고를 통해 배운 “진실의 기준은, 세상의 잣대였다!”: 재판부는 피를 말리는 결심 공판을 2주 뒤로 연기했다. 사건의 정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그들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 모양인가 보다 하며 총찬은 생각했다. 막상 법정에서 서자 검사가 피의자인 총찬을 죄인처럼 계속 추궁했다. 한두 번 당하는 일도 아니었지만, 참다못한 총찬은 진실을 주장하기 위해 말대꾸를 했다. 어쩐 일인지 오늘따라 판사는 오히려 총찬의 편을 들어주는 듯 억울한 것이 있으면 하나도 빼먹지 말고 이야기해서 바로잡으라며 총찬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총찬의 막혔던 말문을 열어줬다. 총찬은 이번이 진실을 토로할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그동안 1차 법정에 설 때마다 판사부가 막아서 하지 못했던 한을 다 쏟아냈다.

첫 고소를 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계속되는 상대 여성 Y의 거짓 증언으로 보아 Y는 진실성이 떨어지며 ‘유죄로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총찬은 꿈에도 그리던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로 짜고 재판정에서 위증한 사실이 발각된 Y측 증인들은 벌금형을 받았다. 재판정 문을 나서자마자, 총찬은 감격하여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떳떳하다면 항상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신,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도 오늘의 승리를 이끄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총찬은 법정이라는 게임(?)에서 이기고도 허탈했다. 총찬은 당시의 사건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받기는 했지만, 무죄라고 다 같은 무죄가 아니었다. 변 사또에게 마지못해 술을 따라야 하는 억지 춘향 격으로, 혹은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나서 미처 뒤를 다 닦지 못하고 나온 사람처럼 무죄를 받고도 어딘지 개운치 않은, ‘꺼림칙한 무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판기록지는 성폭행 혐의에 대한 여전한 흔적으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 글씨’ 같았다. 요리조리 따져보니 조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서 아쉽고 억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총찬은 굉장히 고집쟁이에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분명하지 않은 것이나 진실하지 못한 상황에 대하여 도저히 참지 못했다. 그것은 총찬의 인생철학이었다.

무죄 판결을 받은 지 열흘이 지나고 총찬은 Y를 상대로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Y는 학력, 나이, 생활환경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거짓을 일삼았고 사건과 관련해서도 병원검진 결과 등 1심과 2심의 법정 증언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Y의 거짓 증언은 총찬의 인격에도 직접적으로 손해를 끼쳐서 위증죄로 고소할 수밖에 없었다.

총찬은 이제 가족과 영심을 빼고는 아무도 믿기가 어려웠다. 법정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총찬은 세상의 진리란 옳고 그름의 명확한 기준이 있기 보다는, 판단하는 사람들의 잣대에 따라 같은 사실을 놓고도 얼마든지 진실이 되거나 거짓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 당사자인 총찬의 진실이나 주장 따위 보다는 다수가 인정한 시선이 진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세상이었다. 공정할 것이라고 믿었던 법은 그처럼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더욱 기막힌 것은 법이 총찬의 무죄를 입증해 주어도 세상은 여전히 총찬을 별로 믿어주지 않았고 냉담했다. 한 번 낙인이 찍힌 이상 사람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이슈화된 사실만 기억했다. 왜 세상은 진실을 보려 하지 않고, 그들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그를 판단하려 드는 것일까? 무죄 판결을 받고도 총찬은 패배감 속에 자신이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잔상을 지우려고 해도, 방송이나 영화에서 범인 수송차 장면만 보아도 등골이 오싹하고 서늘했다. 그런 총찬을 영심은 대형 마트, 음식점 등으로 데리고 나가 보란 듯이 손을 꼭 붙잡고 다니며 용기를 주었다.

구속과 함께 총찬은 명예와 가진 돈 모두를 날렸다. 억울한 일로 1심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진실공방을 위해 무려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지나고 나니 모두 꿈만 같았다. 재판을 통해 총찬은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세상에는 바라는 대로 안 되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인생무상을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천상천하 유아독존 독불장군 권총찬은 그 사건을 계기로 굉장히 겸손해졌다. 아픔을 치료하고 회복하기까지 엄청나게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꽤 오랫동안 총찬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러다가 총찬의 사건에 연루되거나 직접 관여했던 사람들이 이런 저런 형태로 징계 처분을 당하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속이 시원할 줄만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그들 또한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산다고 해서 총찬에게 이로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총찬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인정하고, 이제 그만 그들을 향한 미움을 놓아주기로 결단했다. 주변에 어려운 상황을 겪는 이웃이 있다면, 상대를 그저 판단하려고만 하지 말고 일단 자초지종부터 들어주자. 한 번쯤은 그 사람의 심장 뛰는 고백에 귀를 기울여주자. 그 다음에 상대의 ‘상황’을 판단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인생 가운데서 다양한 계절을 맛보며 살아간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겪게 마련이다. 만일 지금 인생에서 겨울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겨울이라는 계절이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염려하지 말자. 겨울이 길다고 느낄수록 인생의 봄은 훨씬 따뜻하게 느껴질 테니까. 또한 우리는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무수히 많은, 다양한 날을 경험하며 산다. 맑은 날이 있으면 비가 오는 날도 있고, 햇빛이 쨍쨍 비치는 날도 있고 벼락이 치는 날도 있고 풍랑이 부는 날도 있다. 살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도 당신의 인생을 짓밟을 수 없다.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에 매이면 공공연하게 마음에 병이 되어 암 등 각종 질병에만 걸릴 뿐이다. 현재에 충실하고 감사하자. 자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 아닌가. 첫 번째 인생의 위기를 통해 총찬은 세상을 향해 관대한 마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3종 고난세트 둘. 총찬, 돈(전 재산)을 잃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30억: 무죄를 선고받고 막상 사회에 나왔지만, 방송 일은 좀처럼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대표로서 운영하던 프랜차이즈 사업은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도처리가 되고, 덜렁 본사 한 군데만 남았다. 공인으로서 이미 명예를 잃고 나니 방송인으로서나 사업가로서도 설 자리가 없었다. 인맥을 다시 한 번 넓혀 어떻게든지 사업에 뛰어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에 대학의 동문 모임에 종종 나갔고, 그 모임들 중에 사업가들이 모이는 한 소모임에서 외대 최고경영자과정 출신의 사람 몇을 만났다. 그중에서 기업 인수합병을 진행하는 W 선배와 특별히 가깝게 사귀게 되어 다양한 상황과 정보 등을 교류했다. 무얼 해도 손해 보는 실적을 낸 적이 없을 만큼 구치소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던 주식 투자가, 아무래도 이 시기의 총찬에게 가장 적합한 돈벌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총찬은 그때부터 주식투자에 열을 올렸다. 2006년 어느 날, 바로 그 능력자인 W 선배가 총찬에게 기업 인수합병에 돈을 투자해보라고 권유했다. 총찬은 거래소에 등록된 W의 회사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다양하게 검토했고, 또 그 선배를 믿었다. 무리하지 말고 여유가 되는 만큼만 투자하라는 그의 말에 더욱 믿음이 갔다. 더군다나, 거래소에 등록된 회사를 인수합병 하는 것이어서 총찬이 원하면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가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처음에는 1억 원만 투자하려다가 투자가치가 높고 수익이 날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자, 워낙에 통이 큰 총찬은 가진 현금 전체인 3억 원에 보태어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8억 원을 더 투자하고 말았다. 총 11억 원 이라는 거액을 모두 걸다니, 아무리 확실하다고 해도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럼에도 투자한 이유는 순전히 재판을 하느라고 손해 본 돈과 모든 것을 보상받고 싶은 억울한 심리 때문이었다.

투자와 재테크의 귀재로서 평소에도 주식 투자로 가깝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돈을 벌어준 전적이 많았던 믿을 만한 투자처인 총찬이 현금 10억 원을 동원하는 모습을 보자, 지인들은 자신들도 한몫 챙기고 싶다는 뜻으로 너도 나도 투자를 부탁해왔다. 지금은 프리랜서가 된 후배인 K 본부 출신의 한 아나운서도 1억 원 가량을 투자해 달라고 했다. 총찬에게 투자를 부탁한 지인들은 모두 과거에 총찬이 해준 주식투자 덕분에 3개월 만에 15% 이상 수익을 내며 재미를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좋은 정보가 있으면 나누기를 좋아하는 총찬에게 이번에도 역시 그들이 믿고 맡기니 그들의 부탁을 안 들어 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지인들의 돈 2억여 원까지 모두 13억 원가량을 W가 참여한 기업 인수합병 회사에 투자했다. 자기도 이 판에 끼고 싶다며 뛰어든 마지막 투자 주자는 알고 지내던 K 회장이었다. 제대로 된 ‘건’에 자신은 초청을 안 해 섭섭하다는 말까지 건네며 무려 17억 원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투자 금액은 모두 30억 원으로 판이 커졌다. 실패로 끝나더라도 정보만 정확하면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다는 것이 주식시장의 장점인 만큼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도 생각했던 시점에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 아니, 뜻밖에도 오히려 20% 이상 빠져 있었다. 30억 원으로 시작한 돈이 언제 얼마나 자취를 감출지 몰라 총찬은 그저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총찬 자신도 문제지만, 지인들이 끼어 더 문제였다. 주식 현황과 투자비 회수 때문에 다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총찬에게 전화를 하는 통에 도저히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K 회장은 원금을 주고 주식을 양수하겠다는 W 선배의 말에 꿈쩍하지 않고, 도리어 총찬에게 큰소리를 쳤다. “총찬아, 너는 이제 빠져라. 돈을 잃든 벌든 내가 알아서 할게. 나중에 잘 되면 용돈이나 두둑하게 챙겨줄게.”

손실이 크게 발생한 마당에 그 말을 그대로 믿어도 좋은 것일까? 자신이 투자한 돈 11억 원과 지인들의 돈 2억원 까지 합쳐 모두 13억 원이었다. 잠도 못 잘 정도로 초조해하던 총찬은 다행히 K 회장이 본인 투자금은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책임지겠다)고 말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총찬을 짓누르던 커다란 산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돌아가는 정황으로 볼 때 인수합병만 잘되면 주가는 당연히 조만간 지금의 몇 배가 될 거라는 W의 말에 더욱 안심했다. 그런데, 아뿔싸! 인수합병한 회사의 대표인 W 선배가 배임횡령에 휘말리고, 퇴출이 결정되었다. 그러자 거래가 정지되었고, 거래정지 후에 정리 매매가 들어가면서 30억 원의 지폐는 쓸모없는 휴지와 다름없이 되어버렸다! K의 17억 원은 물론이고, 총찬의 11억 원도, 지인들의 돈 2억 원도 전부. 법정 사건이 터진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에는 또 빚더미에 앉는 사건이란 말인가! 가족과 아내 모두에게 미안해서 얼굴을 둘 곳이 없었다.

지인들은 빚을 갚으라며 총찬을 재촉했고, 총찬은 같은 답을 몇 번이고 하느라 지쳐버렸다. 그러나 그러한 유순한(?) 대화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주 친한 지인 한 명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술만 취하면 전화로 쌍욕을 하고 본색을 드러내며 소위 사채업자들처럼 변해갔다. 총찬은 모욕감과 함께 배신감마저 느꼈다. 각자 죄명은 달랐지만, 구치소에 들어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술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총찬을 믿고 빚을 갚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고 했던 지인들에게도 그놈의 술이 웬수인 모양이었다. 술 술 술, 아무래도 술이 들어가면 일이 술술술 하고 풀리기보다는 이름 같지 않게 술 때문에 망하는 일이 ‘전부’인 것 같다. 술을 포함해서 삶에서 무엇이든 중독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그 전에 시작도 안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듯이 지나치면 아니 간 것(시작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총찬은 그 순간,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면 해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중독의 함정이다.

3종 고난세트. 총찬, 건강을 잃다.

끝나지 않은 악몽, 추락의 도미노: 시련은 법정 공방전과 전 재산을 날린, 두 번의 큰 고난으로 끝나지 않았다. 1년도 안 되어 불행이 그를 또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나쁜 일에는 항상 예감이 있고 전조 증상이 있다. 2007년 12월, 전라북도 부안에서였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배우 이준기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밧줄을 탔던 바로 그 밧줄 세트장이었다. 양쪽에 쇠기둥이 박혀 있었지만, 사다리를 대고 세트장으로 올라가려는데 이상하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동물들이 큰 지진이나 해일 등의 자연재해를 앞두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큰일을 겪어본 사람은 동물적인 촉이 그만큼 더 발달하게 되고, 위험인자가 오게 되면 그런 사람(큰일에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에게는 몸이 바로 사인을 보내는 일이 많다. 총찬 또한 그랬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덩치 큰 김 PD가 시범 삼아 올라갔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웬만하면 이대로 그냥 진행에서 촬영을 빨리 끝내자는 분위기였다. 얼마 전에 강호동도 찍었는데 아무 이상 없었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니만큼 서둘러 집에 가서 아이들과 같이 식사도 해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다소 걱정스러웠지만, 프로 방송인으로서 이쯤이면 촬영을 그냥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총찬이 사다리를 밟고 세트로 올라가서 첫 멘트를 하려는 순간, 그가 서 있던 2m 30cm 높이의 세트장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왼쪽 한 발로 서 있던 상태에서 발뒤꿈치부터 땅에 닿으며 그대로 뚝 떨어지는 바람에 그다지 높지 않은 높이에도 그는 추락으로 중상을 당했다. 70kg이 넘는 온몸의 무게가 한쪽 발뒤꿈치에 모두 실렸으니 발목이 남아날 리 없었다. 한 순간에 변을 당하면서 전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촬영 현장은 난리가 났다. 세트가 무너질 것 같다며 평소와 다르게 몸을 사린 출연자를 그것도 두 번이나 종용하며 강행을 시켰으니 큰일이었다.

앰뷸런스가 시내에서 올 때까지 40분을 기다렸다. 휴일이다 보니 큰 병원은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앰뷸런스에 실려 부안의 어느 작은 병원으로 갔다. 엑스레이와 CT 촬영 결과, 3번과 4번 척추가 부러졌다. 그리고 왼쪽 발뒤꿈치가 가루처럼 으스러지는 복합분쇄골절로 뼈가 일곱 조각이 나 있는 상태였다. 의사는 말했다. “이런 상태면 부안에서는 못 고쳐요. 어서 서울로 올라가세요.”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심각한 장애가 오고 평생 고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세 시간이면 갈 거리를 크리스마스이브여서 그런지 앰뷸런스를 타고 갓길로 가는데도 무려 일곱 시간인가 걸렸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누구보다 아내에게 또 미안했다. 멀쩡히 나가서는 하루 사이에 크게 부상을 당해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엄청 놀랄 아내가 걱정됐다.

이틀 후 한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무려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한 시간이면 끝나는 정강이나 팔뚝 수술과 다르게, 뒤꿈치와 발바닥은 미세 근육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어서 수술이 까다로운 데다 수술 과정에서 함부로 헤집었다가는 나중에 장애인이 되기에 조심스러웠다. 다리 수술은 했지만, 허리는 수술로 해결할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허리는 어긋나게 부러지지 않는 이상 수술 대신 두꺼운 플라스틱 갑옷을 몸에 맞추어 입고 몸이 교정되도록 한다고 했다. 종일 갑옷을 입고 있자니, 꼼짝을 못해 죽을 맛이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병원에서 6개월을 입원해야 했다.

수술 직후, 2005년 사건이 다시 악몽처럼 떠오르고 사업이 망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건강까지 빼앗나 싶어 너무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병원에 꼼짝 없이 한 달 이상을 누워 있었다. 방송활동을 다시 시작한 지도, 결혼을 한 지도 채 1년이 되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다. 남들은 평생에 한 번도 겪기 어려운 일인데…. 다행히 발목관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경과가 좋아서 수술은 한 차례로 끝났다. 물리치료를 받으며 한동안은 절뚝거리며 걸었다. 병원에 3주 동안 누워있는 내내 병간호를 해준 어머니와 아내가 침대에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해서 너무 미안하고 감사했다. 이미 큰 사건을 겪다보니 원망보다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교만한 자신이 다시 낮아질 기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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