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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 고마워!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지음 | 북스토리
너를 만나 고마워!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엮음

북스토리 / 2013년 12월 / 240쪽 / 13,000원





제1장 당신을 만나 행복합니다



나의 스승, 태백이

작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아들 녀석이 갑자기 “아빠! 우리도 안내견 강아지를 키워볼까?” 하기에, “우리가 무슨 안내견을 키워?” 하고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아내가 거들었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가 있는데, 강아지를 1년 동안 위탁해서 키워주면 된대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평소 개를 좋아하던 나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개집 앞에 놓인 밥그릇에 먹던 밥 부어주며 믹스견 몇 마리 키워본 경험밖에 없는 나로서는 “열심히 돌봤는데 안내견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앞서 선뜻 승낙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안내견 강아지를 키우자는 아내와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 달을 버티다 결국 승낙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괜한 고집이었다.

퍼피워킹(개가 생후 7주가 되었을 때 자원봉사자의 가정에 위탁되어 1년간 가족과 함께 지내는 과정)을 신청하기로 결정한 뒤, 뭐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책도 뒤져보고 비디오도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봤다. 벌써부터 마음만큼은 훌륭한 퍼피워커가 된 것 같았다.

올해 2월, 마침내 예비 안내견을 만나러 가는 날이 되었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기본 교육을 받고 예비 안내견들이 새로운 가족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7남매 중 막내가 우리의 품에 안겼다. 이름은 태백이, 노란색 털을 가진 주름이 많은 사내 녀석이었다.

태백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우리 가족은 전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들 영준이는 외둥이라 외로움을 타곤 했는데 좋은 동생이 생겼다고 행복해했고, 나와 아내도 늦둥이를 키우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더불어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도 하게 되었다.

태백이가 처음으로 비탈진 곳을 오르던 날이었다. 그날은 안내견학교 교육이 있던 날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비탈진 길을 오르려는데, 녀석이 낑낑대며 걸음을 멈췄다. 아마도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교육할 때 선생님께 여쭤보았더니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다그치기보다는 격려하고 칭찬하라고 하셨다. 자칫하면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으니 그러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낮은 높이의 계단에서 배웠던 것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어김없이 멈춰 서버린 태백이에게 아내와 영준이는 “괜찮아. 태백이는 할 수 있어! 해보자”라며 응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태백이는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낑낑댔다. 그 좋아하는 사료도 외면했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흘렀을까, 도무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녀석이 조심스레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 용기를 낸 녀석은 단번에 긴 계단을 오르고야 말았다. 우리가 보기엔 별거 아닌 계단이었지만,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준 덕분에 태백이는 큰 산과도 같은 계단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작은 일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 극복하도록 믿고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기!’

태백이를 키우다 보니 안내견이 개가 아니라 꼭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고, 항상 우리 가족들을 살뜰히 챙긴다. 한 번은 산책을 나갔는데, 아내와 뒷모습이 닮은 여자가 앞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이 빠른 나와 태백이는 그 여자를 앞질러 갔는데, 웬일인지 태백이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챙기는 것이었다. 태백이는 그 여자를 아내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태백이는 가까이서 그 여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산책을 계속했다.

우리는 태백이와 마트, 시장, 관공서, 개인 음식점, 숙박 장소 등 다양한 곳을 방문했다. 또한 대중교통으로 지하철을 이용하기도 했다. 태백이를 기특하게 생각하고 배려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안내견과 어디를 함께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님을 깨달았다. 어디든 방문하려면 영업 장소에 미리 전화해서 태백이와 함께 가도 괜찮을지 확인해보고 동의를 구해야만 했다. 아직까지도 전화를 하면 승낙을 받는 경우보다 거절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위생상의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다른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반대로 기꺼이 이해해주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너무나 고맙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태백이를 데리고 다니며 아내는 상점 앞에서 여러 차례 문전박대를 당했다. 공공장소에 대형견을 데리고 다니는 무식한 사람이란 오해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안내견과 애완견은 다르다고 설명해주기도 하고, 건물 안을 걷다가 제지하는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안내견이 애완견과 다르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입장을 거절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아내가 언제부턴가 생각을 바꾸어먹기 시작했다. 여전히 거절당하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불쾌하지만 몰라서, 경험이 없어서, 당황스러워서 그렇다면 그런 반응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기다려주자는 것이었다. 또한 웃는 모습으로 대해야 안내견에 대한 인식도 좋아진다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능한 한 흥분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려 애썼다.

아내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도 했다. “지나가다 만나기도 흔치 않은 안내견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함께하는 기회를 주지 않겠어. 우리도 거절하는 거야.” 반대로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해주시는 분들께는 더 잘 설명하고, 감사의 표현을 하기로 했다고. 아마도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추스르기 위한 아내만의 비책일지 모른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안내견이 고생을 한다며 불쌍하게 여기기도 한다. 심지어 동물병원 직원들 중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치 동물 학대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적성에 맞는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끼듯, 안내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사람을 잘 따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품종이다. 안내견에게 의존하고 안내견을 인정해주는 시각장애인과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안내견의 결합은 서로의 만족을 극대화하는 최상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얼마 전 뉴스를 보니,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버려지는 유기견이 많다고 하는데, 이에 비해 안내견 및 후보견들은 버려지고 학대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도리어 좋은 주인을 만나서 평생 보살핌을 받게 되니, 안내견은 일반적인 반려견 이상으로 행복할 것이다.



제2장 당신을 응원합니다



가장 행복한 개, 안내견

“개가 참 대단하네.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을 하다니…….” 안내견을 지켜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한국에 소개된 지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안내견의 역할이 널리 알려지고 덩달아 인식도 점점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들을 ‘대견하지만 좀 불쌍한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고된 훈련을 통해 본능을 억제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평생 희생만 하다가 스트레스로 병들어 죽는 개로 말이다.

하지만 안내견의 건강을 돌보는 수의사로 지난 10년 동안 그들을 지켜본 결과, 안내견은 분명히 행복한 개임에 틀림없었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은 사람은 물론 동물에게도 가장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안내견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내견은 일생에 걸쳐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받는다. 먼저 유전자에 이상이 없어야 문제없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번식 단계부터 건강하고 좋은 자견이 태어날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다.

부모가 될 개들은 정기적으로 유전질환 검사와 종합건강검진 그리고 다양한 기질 평가를 받는 등 엄격하게 선발되고 번식하게 된다. 한마디로 안내견은 태생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애완견들은 번식장에서 태어나 가정으로 분양되는데, 열악한 환경과 스트레스로 전염병에 걸리거나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때문에 상당수의 개들이 자견 시기에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내견은 위생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평생 정기적인 예방접종과 기생충 예방 등 기본 건강프로그램에 따라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받기 때문에 일찍 생명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안내견이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안내견학교는 동물병원을 마련해 견사에 상주하는 훈련견뿐만 아니라 외부에 위탁한 훈련견과 은퇴견 그리고 활동 중인 안내견 모두 언제든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 안내견이 외부에 있을 경우, 일반 동물병원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거기다 수의과 대학병원과 전문 교수진을 자문단으로 위촉해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느 가정의 반려견보다 더 많은 의료혜택을 받고 있는 안내견은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체계적인 건강관리를 받기 때문에 실제로 동일 품종의 가정견보다 수명이 더 길다. 국내에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어 비교할 수 없으나, 일본의 한 통계를 보면 가정견의 경우 평균 수명이 11.9년이었고, 안내견으로 은퇴한 경우 12.9년으로 조사된 적이 있다. 또 영국의 켄넬클럽에서 조사한 연구 자료에도 가정에서 키우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품종의 평균 수명은 12.3년 정도로 나와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안내견학교의 은퇴견 평균 수명은 이미 13년을 넘었고, 현재 40여 마리의 은퇴견이 평균 12년 이상 생존해 있어, 그 기대 수명은 더욱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안내견이 스트레스로 일찍 죽는다는 편견은 바뀌어야 한다.

일반 가정의 반려견과 달리 안내견은 태어나서부터 각 나이별로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훈련, 즉 교육을 아주 전문적으로 받게 된다. 생후부터 이유기까지, 그리고 이유기 후부터 성장기를 거쳐 성견기에 이르기까지 각각 알맞은 교육을 통해 인간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낯선 환경이나 상황에 대한 불안감, 두려움, 욕구불만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정을 유지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흔히 안내견이 본능을 억제하고 욕구를 참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안내견을 교육할 때 억지로 강압적으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성향의 개를 선발해서 좋아하는 영역을 긍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적성과 특기를 살리는 엘리트 교육인 셈이다.

사실 개의 본능이랑 짖고 물고 뛰어다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개의 본능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무리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이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 행동으로 먹이, 잠자리 등 안정적인 삶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면 안내견은 본능을 억제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반대로 가장 본능에 충실한 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안내견이 훈련을 통해 억지로 절제하고 인내하는 가여운 동물이라는 편견을 이제는 바꾸었으면 한다.

개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항상 누군가와 유대를 가져야 하고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일반 가정견 중 상당수가 혼자 집을 지키거나 사람과의 잘못된 유대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반면, 안내견은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동행하는 사람이 있는 데다, 친밀한 품성과 외모로 누구에게나 호감과 사랑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개들은 갈 수 없는 공공장소에도 출입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기에 항상 보호자와 함께 다닐 수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하루도 혼자 남겨져 있지 않는, 외롭지 않은 개가 바로 안내견인 것이다.

인간에게 행복의 조건은 다양하지만 동물인 개는 그에 비해 단순하고 명확하다. 건강하게 잘 먹고 편하게 생활하면서 끝까지 외롭지 않게 인간에게 사랑받는 것이 그들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난 10년 동안 수의사로 안내견을 돌보면서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견공들을 직ㆍ간접적으로 봐왔지만, 안내견만큼 좋은 환경에서 많은 혜택과 관심을 받는 개들은 보지 못했다. 안내견이 행복해야 그들의 파트너인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을 양성하고 돌보는 사람들도 행복하다. 나는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가 바로 안내견이라 말하고 싶다.



제3장 또 다른 세상을 봅니다



절망에서 나를 구한 안내견, 장미와 엄지

1988년 5월, 나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큰아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 충격으로 시력을 잃고 말았다. 희미하게 조금 보이던 눈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수술을 했는데, 오히려 실명이 되고 말았다. 본래 조용한 편이었던 나는 그날 이후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날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살아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며 절망 속에 살았다. 그렇게 12년간을 집 안에서만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삼성’,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란 말이 귀에 들렸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란 말을 그때 처음 들었지만,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이 두 단어를 붙들고 수십 통의 전화를 돌려댔다. 당시 대부분의 기관들이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알지 못했는데, 겨우 삼성화재안내견학교로 연락이 닿게 됐다. 통화를 하고 보름 후에 안내견학교의 직원 두 분과 안내견 ‘강토’가 내가 사는 부산 집으로 왔다. 인터뷰를 하러 온 것이다. 강토와 함께 보행을 하자 훨훨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짝사랑을 하는 것처럼 안내견에게 빠져버렸다.

하지만 한참 동안 연락이 없었고, 이제나저제나 연락을 기다리던 나도 지쳐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2003년 10월 초쯤에 “선생님, 다시 한 번 찾아봬도 될까요?” 하며 드디어 연락이 왔다. 안내견과 함께 다시 보행을 해본 다음, 보름쯤 후 나는 기다리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 축하합니다. 안내견이 배정됐습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오셔서 합숙 훈련을 해야 하는데, 오실 수 있겠어요?” “당연히 가야지요!”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합숙 훈련을 마치고 내가 사는 부산의 집으로 내려와서 약 2주 동안 안내견 훈련사와 함께 현지 적응 훈련을 했다. 모든 훈련을 마치고 담당 훈련사가 나와 함께 지낼 안내견 ‘장미’를 남겨두고 안내견학교로 돌아갔다. 막상 장미랑 단둘이 남게 되자 나는 걱정이 앞서며 막막했다. 다음 날부터 새벽 예배를 가기 위해 장미와 함께 집을 나섰는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처음 며칠간 장미가 교회에 못 미쳐서 데려다주기도 하고, 교회를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그리고 모르는 골목으로 들어가서 두리번거리며 주춤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마다 장미에게 시간을 줬다. “장미야, 잘 찾아봐. 너만 믿는다. 오던 길로 돌아가보자”라고 말하자, 다시 돌아와 길을 제대로 찾은 장미가 의기양양해지는 걸 느꼈다. ‘아, 이 아이들도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가졌구나.’ 나는 안내견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깊어져갔다.

얼마 후 장미와 나는 완전히 적응했다. 그동안 외출하지 못한 세월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매일 장미랑 외출을 했다.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부산의 곳곳을 매일 다녔다. 부산에 탄생한 첫 안내견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관공서, 시장, 식당 어디든 자유롭게 하루에 몇 시간씩 걷거나 버스, 지하철을 타고 외출을 했다. 버스에서 승차 거절을 당하면, 차에 올라선 후 기사 옆에 서서 당당히 말했다. “이 개는 개가 아니고 내 눈입니다. 사람이 못하는 일을 이 개가 합니다. 비행기도 탈 수 있고 기차를 타면 이 안내견을 위한 좌석이 하나 나옵니다. 이 개가 무슨 피해라도 줍니까?” 그러고는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어 기사들에게 안내견에 대한 교육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안내견학교에서 배운 대로 지하철을 탔을 때 몰려드는 구경꾼들에게 설명을 하고, 만지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만지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며 다녔다. 교회에서도 함부로 음식을 주지 못하도록 부탁하고, 바닥에는 음식을 흘리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내성적이던 내가 이렇게 용감해질 수 있다니! 말수가 적었던 내가 이렇게 말이 많아질 수 있다니! 장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내 입을 멈춰지지가 않았다. 장미를 자랑하고 싶어서……. 장미를 언제나 깨끗이 목욕시키고 털 손질을 해주었고, 나는 어깨를 펴고 걸었다. 장미랑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산책길의 공기는 정말 달콤했다. 나를 닮아 조용한 성격인 아들들이 “우리 엄마가 말이 많아졌어……” 하고 웃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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