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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제국 2

우영수 지음 | 판테온하우스
태양의 제국 2

우영수 지음

판테온하우스 / 2011년 9월 / 456쪽 / 12,800원





반란, 그리고 깨어진 꿈



마침내 대륙 친정(親征)을 단행할 날이 다가왔다. 열도백제(일본)의 천황을 지내던 시절부터 그토록 고대해왔던 날이었다. 의자대왕의 오랜 숙원은 중국의 해안 지역과 반도 그리고 열도백제를 아우르는 백제연합해상제국의 옛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보령은 이미 환갑을 향하고 있었다. 당의 성장과 발전을 보더라도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의자대왕은 부소산에 올라 원정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군사들을 살피고 있었다. “출정 준비는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륙 공략의 총책임을 맡은 복신이 상황을 보고했다.

“고생이 많다 들었습니다. 공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머리를 조아리며 복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총 10만 군사를 동원할 것입니다. 기병과 보병을 합해서 구성한 3만의 중앙군은 대왕께서 직접 지휘하실 것입니다. 좌군 3만은 제가 지휘할 것입니다. 그리고 좌평 충상의 휘하에 또 다른 3만이 우군으로 편성되어 배치될 것입니다. 나머지 1만은 경기병들로 상황에 따라 기동타격대처럼 필요시 공격과 수비를 지원할 별동대이옵니다.”대왕이 미소를 지으며 복신을 향해 물었다.

“그들을 지휘할 장수는 누구입니까?”

“윤충 장군으로 하여금 1만의 경기병을 지휘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대왕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보는 평안한 표정이었다.

“먼저 1만의 경기병들을 대륙으로 보내 지금 대륙으로 건너가 있는 윤충 장군 휘하의 기병들과 함께 기동 훈련과 현지 적응 훈련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이틀 후, 마침내 대왕의 군대가 대륙정벌을 위해 백강을 빠져나갔다.

전투선 뱃머리에 선 대왕의 감회는 실로 남달랐다.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만 있다면 화려했던 옛 백제연합해상제국의 영광이 재현될 것이었다. 대륙의 동해안을 기점으로 길게 내려간 남쪽바다와 반도 사이에 있는 황해, 그리고 동남쪽의 열도백제에 이르는 광활한 해상을 호령할 해상제국이었다. 해상제국의 복원은 대륙의 부흥과 함께 백제해상제국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다. 바닷길을 통해 사람들이 왕래하고 물자가 흘러들어 유통된다면 제국은 다시금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육지를 오른편에 두고 물길을 힘차게 가르며 군선들이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듯 나갔다. 그 시각 한편에서는 의자대왕이 총애하는 은고왕비의 아버지 백가의 집으로 사람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었다.“그래, 우리 쪽 군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소?”

“현재 사비 남쪽 나성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도성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사비도성 안의 궁성을 지키고 있는 군사는 대략 1천 정도입니다. 그들은 대왕의 친위대인 위사대를 중심으로 한 정예병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은고왕비의 오라버니인 백고도가 대왕의 친정 기간 동안 사비도성의 수비를 맡고 있는 태자 부여융의 군사배치에 대해 간략하고 빠르게 설명해나갔다.“일단 우리 정예 군사들로 궁성을 포위해서 태자를 묶을 수만 있다면 의직 장군이 이끄는 나성의 군사 5천은 현재 사비로 들어오고 있는 우리 쪽 군사들을 이용해서 충분히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성 밖의 1만이 넘는 군사들은 상황 전개에 따라 우리들에게 협조할 수도 있습니다. 또 만약 대왕이 회군을 한다 해도 지금 백강 포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좌평 충상의 3만 군대가 그들을 막아줄 것입니다. 태자의 1천 궁성수비대는 은밀히 불러들인 정예 사병들을 이용해 제압하고, 나성의 군사들은 주위에 잠복하고 있는 사병들로 제압할 것입니다.”백가가 잔을 돌려 술을 한 잔씩 따랐다. 술잔을 잡은 눈빛들이 비장함을 품고 있었다.

“자! 이제 돌아갈 길이 없소! 오직 길이 있다면 태자를 제압하고 무모하게 대륙 공략에 나선 대왕의 마음을 돌려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길뿐이오.”***

소란함이 태자를 깨운 것은 막 잠이 든 후였다. 궁성 남쪽 도성 안 여기저기서 벌겋게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태자마마! 정변이옵니다!”

위사대 군사가 급하게 정변을 보고했다.

“누구냐? 반역의 무리들이?”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남문 방어선을 뚫고 정체불명의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있습니다.”황망함 속에서 태자가 긴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외곽을 방어하고 있는 의직 장군에게 지금 곧장 군사들을 수습해서 궁성으로 들어오라 일러라. 위사대는 나를 따라 남문으로 향한다.”남문에 당도하자 반란군과 궁성수비군 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투가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불행하게도 궁성수비군이 밀리는 형국이었다. 태자를 따라온 위사대가 싸움에 가세하자 비로소 힘의 균형을 찾아갔다. 태자가 이끄는 위사병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예상외로 잘 버티는구나!”

백고도는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군사 수에서 압도적이었고 자신감도 있었지만 왕실수비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반란군의 수가 늘어나면서 태자 진영이 불리해졌다. 이윽고 태자를 포함한 1백여 명의 위사군이 반란군의 포위망에 휩싸였다. 포위당한 태자군은 점점 중앙으로 몰렸다. 쓰러지는 위사병들의 갑옷비늘이 부서져 허공으로 튀었고 벗겨진 투구가 핏물바닥에 나뒹굴었다.“잠시 전투를 중지하라!”

반란군 뒤쪽에서 지휘자인 듯한 자가 목소리를 높여 잠시 전투를 중단시켰다. 곧 침묵이 전투장을 덮었다. 거친 숨소리만이 어둠 속에서 귀를 때렸다.“태자 부여융은 들으시오! 이미 궁성은 우리 수중에 떨어졌소! 무의미한 전투를 당장 중단하시오. 투항하면 목숨은 보전할 것이니 항복하시오!”은고왕비의 또 다른 오라비인 백가한이었다.

“태자께서는 칼을 놓으시지요.”

그때 의외로 낮은 또 다른 목소리가 태자에게 투항을 권유했다.

“아니, 넌, 넌…….”

태자가 말을 잇지 못하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넌, 넌 태가 아니냐? 네가 어찌 그곳에?”

불빛 앞으로 나선 것은 태자의 동생 부여태였다. 태자는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자신과 함께 칼을 들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야 할 동생이 반란군 편에 서서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고 서 있었다.“칼을 놓고 항복을 하십시오, 형님. 형님의 목숨은 제가 보장할 것입니다.”

“이놈 태야! 어찌 네가 대왕의 부재를 틈타 반역을 획책하느냐?”

태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으나 태는 여전히 담담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다시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결전을 독려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태자의 눈에 낯설지 않은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또 다른 동생이자 은고왕비의 소생인 왕자 효였다.“이게 무엇이냐? 너희들은 내 혈육이 아니더냐?”

태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칼을 잡은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태자는 힘없이 칼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위사병들의 칼들도 하나둘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왕자 부여융을 태자궁에 유폐한다!”

***

“폐하! 변란이옵니다, 변란!”

막 잠에서 깬 대왕의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상좌평 성충이 대왕에게 고했다.

“변란? 어디에서 변란이…….”

“오늘 새벽 왕자 효가 사비도성을 장악하고 태자마마를 감금했다고 합니다.”

“왕자 효가?”

눈을 부릅뜬 대왕의 입술이 파르라니 떨리고 있었다.

“효가 그럴 리 없소! 도대체 어떤 놈들의 소행이란 말이오?”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온통 핏발이 올라 폭발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백씨가와 사씨가, 목씨가, 연씨가 등 남부 귀족들이 왕자 효를 앞세우고 군사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륙공략군 우군 수장 충상도 이들과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무엇이라! 충상의 군대까지도?”

충상까지 가세했다면 나라의 반 이상이 가담한 거국적인 변란인 셈이었다. 대왕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반전



복신과 성충 등 대륙강경파는 대왕에게 군사를 돌려 사비도성으로 공격해 들어갈 것을 주청했다. 변란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반역이었다. 끊임없는 설득과 주청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대왕이 내린 결정은 사뭇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왕자 효를 새로운 태자로 인정하며, 변란으로 인한 그 어떤 추가적인 혼란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모두가 의아해했다. 한편 단 한 사람, 오랜 세월 동안 대왕을 그림자처럼 지켜왔던 위사대장 사비만은 그런 대왕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왕이 원했던 것은 대륙의 고토를 회복한 강력한 제국이었지 형제들끼리 싸우고 피를 흘리는 아비규환의 지옥이 아니었다. 군사를 되돌려 사비도성으로 들어가 반란군을 숙청하면 왕권을 다시 세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흩어지고 적이 되어버린 백제인들을 이끌고 대륙을 공략할 수는 없었다. 예기치 않았던 변란으로 인해 대륙공략이란 평생의 목표가 물거품이 되어버리자 대왕은 급격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비도성으로 돌아온 대왕은 칩거에 들어갔다. 모두의 눈과 귀가 대왕의 처소로 향했으나 그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내지 않았다. 대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침묵으로 마지막 정치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태자 교체에 성공한 남부 세력들 역시 더 이상 준동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정치적 공세를 펼치기에는 절대적인 힘이 부족했다. 그들이 바랐던 것은 대륙공략을 포기하고 대왕의 통치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대륙에서 대왕의 진군 명령만을 기다리던 윤충은 느닷없는 회군 명령에 안타까워하며 사비로 돌아왔다. 대륙으로 향하던 제국의 꿈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성충의 집에서는 회군한 윤충을 위한 조촐한 연회가 열렸다. 성충은 동생인 윤충을 애써 위로했지만 분위기는 침울했다. 남부 세력들의 농간으로 인해 대왕을 접견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괘씸한 놈들입니다. 대왕께 귀국인사도 못하게 저리 방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비에 들어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분을 참지 못하고 술병을 목에 쏟아부으며 윤충이 씩씩거렸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시작한 술이 한밤중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일단의 군사들이 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난입해 성충과 윤충을 비롯한 사람들을 몰아붙였다.“누구냐? 누가 감히 상좌평의 집을 이리도 무엄하게 침탈하느냐?”

소리를 지르며 윤충이 칼을 뽑아들었을 때는 이미 방 안에 들이닥친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대왕의 명령이다! 칼을 버리고 투항하라!”

“무슨 죄목이냐? 대륙에 나가 있다 이제야 들어왔는데,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이냐?”

곧 포박이 윤충과 성충을 굴비 엮듯 묶었다. 씩씩거리는 윤충과 달리 성충의 표정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오랫동안 힘들게 지속되던 팽팽한 정치적 균형이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윤충의 죄목은 명료했다. 반란을 선동하고 군대를 분열시켜 국가적 위해를 가했다는 것이었다. 피가 튀는 국문장에서 윤충의 목소리가 담을 넘고 있었다. 매서운 몽둥이의 찜질이 그의 입을 막으려 강도를 더했지만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그의 입을 막을 순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대왕을 뵙게 해 달라!”

절규가 작렬할 때마다 매질의 속도가 빨라졌다.

“말하라! 나머지 군사들은 어디로 빼돌렸고, 무엇을 획책하느냐?”

윤충을 심문하는 백가의 목소리도 덩달아 하늘을 찔렀다. 잠시 후 칼을 차고 옥중에 앉아 있는 성충의 옆으로 피범벅이 된 동생 윤충이 내동댕이쳐졌다. 함께 끌려와 국문을 당하는 측근들의 비명소리가 밤이 깊을수록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그 소리마저 잦아들자 침묵이 덮쳐왔다.“장군! 장군!”

‘장군!’을 외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때, 성충의 눈에 사지가 축 늘어진 동생 윤충의 시신이 들어왔다. 대륙을 달리던 한 부여인의 혼이 사비도성을 떠나 대륙의 벌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성충은 모든 음식을 거절하며 동생을 따라 떠날 준비를 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반도와 열도, 그리고 대륙에 흩어져 있는 옛 부여국의 후예인 부여인들이 고토를 회복하여 대륙을 달리기를 염원했다. 성충과 윤충의 혼은 그러한 염원을 안고 대륙의 부여벌판으로 날아가고 있었다.성충과 윤충의 죽음을 전해 들은 대왕은 그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아! 사비여



660년 5월

마침내 당이 움직였다. 13만 대군을 이끈 소정방이 총관, 김춘추의 둘째 아들 김인문이 부대 총관이 되어 바다를 건너오고 있었다. 당군의 움직임을 접한 사비도성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칩거하던 대왕도 몸을 일으켜 신하들과 오랜만에 머리를 맞댔다.“당군이 바다를 건너오고 있다 합니다. 소정방을 주장으로 한 도합 13만 대군입니다.”

“목적지가 어디라더냐?”

대왕이 다급히 반문했다.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목소리였다. 당군의 칼날이 고구려를 향할 것인지 백제를 향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세작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신라의 영토인 서해 덕물도가 일차 목적지가 될 듯합니다.”

“경계를 강화하라. 전쟁이 임박한 것이 분명하니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할 것이야.”

상좌평 사택천복이 머뭇거리며 대왕에게 고했다.

“송구하오나, 대왕! 지금 당장 동원할 군사가 마땅치 않습니다.”

쭈뼛거리며 대답하는 그를 노려보며 대왕이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요? 동원할 군사가 없다니. 평상시에도 상비군사가 6만을 넘는데, 그 군사들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이오?”얼굴에 실망과 노기가 역력했다. 대왕은 몇 년 전 대륙으로 향하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상비군인 중앙군과 지방군까지 합친 군사 수는 10만을 넘었고, 동원 가능한 모든 군사를 합치면 그 수가 무려 20만이 넘었다.“송구하오나 지난번 대륙공략 때 동원한 군사들의 일부가 대륙에 잔류했고, 또 일부는 귀국 후 동원이 해제된 상태입니다. 병력 동원에 대한 지방 호족과 귀족들의 여론 역시 좋지 않습니다.”“전국에 명을 내려 군사동원에 한 치의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



660년 6월 23일

신라의 김유신은 5만의 군사를 이끌고 탄현으로 향했다. 그가 이끄는 신라군이 탄현으로 남하하자 백제 조정은 비로소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나당 연합군의 공격 목표가 백제임이 명백해진 것이다. 당군의 군선들이 덕물도를 떠나 남하하기 시작해 백강의 하구인 기벌포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도 이어졌다. 13만의 당군과 5만의 신라군이 바다와 육지를 통해 사비로 달려오고 있었다.18만의 당과 신라 연합군은 그야말로 대군이었다. 백제 역시 상비군과 예비군을 합하면 대략 20만 명 이상을 동원할 수 있었지만, 그건 모든 것이 사전에 계획되고 준비되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한참을 말없이 침묵하고 있던 대왕이 대신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이제 저들의 목표가 분명해진 이상 우리도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 의견들을 말해보시오.”“당군을 먼저 제압해야 합니다. 뱃길이 멀어 피곤할 테니 먼저 예기를 꺾으면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당군은 수전에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육지로 상륙하기 전에 바다에 묶어 놓고 공격해야 합니다. 반면, 신라군은 당군을 믿고 의지하니 당군이 꺾이면 쉽게 대응이 가능할 것입니다.”의직 장군이 나서서 아뢰었다. 듣고 있던 달솔 상영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옵니다. 당군은 비록 멀리서 오긴 했으나 그 수가 지금의 저희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공격보다는 수비를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반면, 신라군은 저희 백제를 두려워하니, 신라군을 먼저 쳐서 그 기세를 꺾은 후 군사를 모아 당군과 결전하는 것이 상책이옵니다.”이도 옳고 저도 옳은 듯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도 틀리고 이도 틀린 듯했다. 용감하고 결단성 있는 대왕조차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18만의 나당 연합군을 물리치기에는 군사의 수가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각지에서 실제적으로 병력동원을 담당해야 할 귀족들은 ‘나는 모르쇠’ 하며 돌아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열도백제의 힘을 빌리자니, 거리가 너무너무 멀고 시간이 다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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