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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남자를 말하다

이은경 지음 | 책이있는풍경
시계, 남자를 말하다



이은경 지음

책이있는풍경 / 2014년 3월 / 296쪽 / 22,000원





그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스와치, 스위스 시계의 대명사가 되다



도산 위기에 나타난 구세주, 하이에크: 명품 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그룹은 50여 개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LVMH그룹이다. 그러나 시계 업계에서만은 스와치그룹이 최강자다. 스와치그룹은 그 자체가 스위스 시계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위스 시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계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계 그룹이다. 스와치그룹의 탄생은 1970년대 시작된 ‘쿼츠파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70년대 후반, 기계식 시계보다 더 정확하고 가격도 저렴한 쿼츠 무브먼트(쿼츠는 전자식, 무브먼트는 시계를 작동시키는 기계장치를 통틀어 지칭하는 용어)를 장착한 일본산 시계의 등장으로 스위스 시계 산업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오메가와 티쏘를 소유한 SSIH그룹, 스위스 정부와 은행이 설립한 AGUAG(스위스시계산업연합)은 도산 위기를 맞았다. 1979년 스위스 시계 산업을 살리기 위해 스위스 은행 단체는 하이에크 엔지니어링의 최고경영자이자 기업 컨설턴트였던 사업가 니콜라스 G. 하이에크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이에크는 SSIH와 AGUAG를 합병함과 동시에 한 가지를 주문했다. 쿼츠 무브먼트의 저렴한 가격과 누구나 차고 싶어 하는 디자인을 합친 저가의 플라스틱 시계를 제조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주문했다. “살아남으려면 시장에 귀를 기울여라. 좋은 시계를 만드는 것과 돈을 잘 버는 것은 다르다. 잘 팔릴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라. 그리고 잘 팔아라.” 수년의 연구 끝에 1983년에 출시된 스와치 시계의 가격은 40달러였다(당시 일본산 쿼츠 시계가 75달러 정도였다). 시계라기보다는 패션 액세서리에 가까웠던 스와치 시계는 히트를 쳤고, 이로써 오메가와 티쏘 등 100년 전통의 스위스 시계 브랜드는 도산 위기를 모면했다. ‘스와치’라는 브랜드명은 두 번째 시계라는 뜻의 영어 ‘세컨드 워치’를 줄여 만들었지만 훗날 스위스 시계를 뜻하는 ‘SWISS WATCH’의 줄임말처럼 쓰였다. 1998년, 하이에크는 회사 이름도 지금의 스와치그룹으로 바꾸었다.



리치몬트, 광산업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스와치그룹과 견줄 만한 기업은 리치몬트그룹이다. 스와치그룹은 최고급부터 중가, 저가까지 다양한 시계를 만드는 반면, 리치몬트는 보메 메르시에가 수백만 원대 시계를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브랜드가 수천만 원대의 최고급 시계들이다. 스와치그룹에 하이에크가 있다면 리치몬트그룹에는 앤톤 루퍼트와 요한 루퍼트 부자가 있다. 앤톤 루퍼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담배 상점을 인수한 후 램브란트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1950년대에는 담배 사업을 세계적으로 확대시켰고, 1970년대에는 담배 사업에 이어 광산에도 진출했다. 광산업을 하면서 모은 원석과 보석의 부가가치를 깨달은 그는 두 사업으로 모은 자금을 몽블랑의 필기구 사업부를 소유한 까르띠에에 투자해, 까르띠에의 지분을 상당량 확보했다.



1985년 은행가였던 요한 루퍼트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다. 1988년 램브란트그룹의 자산 분리 과정에서 설립한 리치몬트그룹은 본사를 스위스로 옮겼고, 요한 루퍼트는 본격적으로 럭셔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까르띠에와 몽블랑, 알프레드 던힐 등을 기반으로 1996년 방돔 럭셔리 그룹 소유의 바쉐론 콘스탄틴을 그룹에 편입시켰다. 1998년에는 방돔그룹 자체를 100퍼센트 리치몬트그룹에서 인수했고, 이후 2000년에는 예거 르쿨트르와 IWC, 랑에운트 죄네를 차례로 인수했다. 최고급 보석과 시계 브랜드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가던 리치몬트그룹은 2008년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인 로저 드뷔를 그룹에 합류시켰고, 랄프 로렌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2009년 국제고급시계박람회 SIHH에서 랄프 로렌 시계를 선보이며 최고급 시계 그룹으로 거듭났다.



시계 업계의 1위를 넘보는 LVMH: 전 세계 명품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는 LVMH그룹이지만 시계에서만은 스와치그룹과 리치몬트그룹에 밀리고 있다. 그러나 LVMH그룹이 시계 산업에 힘을 쏟으면서 스위스 시계의 양강 구도는 깨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LVMH그룹은 1987년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루이비통을 인수하면서 탄생했다. 이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패션, 시계 및 주얼리, 향수, 주류 브랜드까지 인수하면서 공룡 그룹으로 성장했다. LVMH그룹은 2001년 제니스와 쇼메를 영입했고, 루이비통 시계를 론칭했다. 2012년에는 이탈리아 주얼리 브랜드인 불가리를 인수 합병했다. LVMH그룹은 불가리를 인수함으로써 시계 사업 확장에 큰 힘을 얻었고, 2013년 세계 시계 주얼리 박람회인 바젤월드의 1층 1관(홀 1)에 루이비통과 불가리를 입성시켰다. 바젤월드에서 홀 1에 브랜드 부스를 꾸민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계 브랜드의 위상을 보여준다. 그동안 스와치그룹에 밀려 좋은 자리를 배정받지 못했던 LVMH그룹 내 브랜드들은 바젤월드 전시관 리뉴얼 작업 후 가장 크고 좋은 자리를 배정받았다. 이로써 시계 시장의 판도는 스와치, 리치몬트의 양강 구도에서 LVMH가 합세해 치열한 삼파전을 예고하고 있다.



남자만의 이야기, 그들만의 품격





‘시계에도 등급이 있을까?’



롤렉스, 태그호이어, 오메가를 비롯해 많이 알려진 브랜드부터 생소한 것까지 세상에는 수백 개 이상의 시계 브랜드가 존재한다. 시계를 좋아하는 이들 중에는 시계를 자동차에 빗대어, 최고급 시계를 ‘롤스로이스 급’, 그다음을 ‘벤츠 급’이라고 부르곤 한다. 실제로 시계 브랜드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에서 ‘롤스로이스 급’ 시계라는 표현을 종종 읽을 수 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를 오트 쿠튀르, 레디 투 웨어, SPA 브랜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듯이 시계 브랜드도 크게 다섯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최고급 시계 브랜드를 일컫는 오트 오롤로지, 고급 시계 브랜드를 지칭하는 프레스티지, 주얼리와 시계를 함께 소개하는 브랜드인 워치&주얼리, 전문 시계 브랜드지만 가격적인 메리트가 좋고 대중적인 커머셜 ? 패션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유행에 민감한 패션 워치가 그것이다. 이 분류는 포괄적인 의미일 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오트 오롤로지, 그 이상은 없다: 오트 오롤로지는 장인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시계로 대표적인 브랜드는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브레게, 랑에 운트 죄네, 파르미지아니 등이다. 이들 브랜드는 장인이 시계의 세밀한 부분까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완성하기 때문에 연간 생산량도 매우 적다.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종착역’이라고 불릴 정도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고급 시계의 대명사 중 하나가 파텍필립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모나코 왕실의 앨버트 왕자, 로마 교황, 달라이 라마 등 전 세계 유력 왕족과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다.



프레스티지, 특별하지만 합리적인: 프레스티지 브랜드는 일반적으로 ‘비싼 시계’, ‘좋은 시계’라 불리는 고급 시계 브랜드 대부분이 포함된다.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오데마 피게, 제니스, 오메가, 롤렉스 등이 이에 속하며, 정통 스위스 메이드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 때문에 손목에 차는 순간 자부심이 생긴다. 프레스티지 브랜드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수백만 원대부터 수억 원 이상의 최고급 시계를 동시에 선보이는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이 브랜드의 가장 큰 장점은 시계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생산량을 늘려 합리적인 가격대의 시계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프레스티지 브랜드 중 빠트리지 말아야 할 브랜드가 롤렉스다. 롤렉스는 스위스 시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로, 시계 업계의 루이비통이라 할 정도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롤렉스는 스와치나 리치몬트 같은 거대 시계 그룹에 속해 있지 않지만, 단일 브랜드로는 오랫동안 전 세계 시계 판매율 1위를 유지해온 브랜드다. 100퍼센트 자체 생산한 무브먼트에 롤렉스만의 특허기술을 더해, 롤렉스의 브랜드 철학인 ‘단단하고 정확한 시계’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워치&주얼리, 고급은 함께 어울린다: 주얼리 브랜드로 시작한 시계 브랜드를 워치&주얼리로 분류한다. 대표적으로 까르띠에, 불가리, 해리 윈스턴, 쇼메, 부쉐론 등이다. 까르띠에, 쇼메, 부쉐론, 반 클리프 & 아펠은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지만 시계만큼은 스위스 메이드를 고집한다. 특히 까르띠에는 스위스 라쇼드퐁의 매뉴팩쳐와 제네바 공방에서 시계를 제작한다. 자사 무브먼트도 보유하고 있으며, 최고급 시계만 받을 수 있는 까다로운 제네바 인증을 획득한 제품도 매년 선보일 정도로 까르띠에의 고급 시계에 대한 애정과 행보는 매우 적극적이다.



내 시계는 ‘커머셜’인가 ‘패션’인가: 커머셜 브랜드는 말 그대로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시계 브랜드를 일컬으며 라도, 론진, 오리스, 벨앤로스, 티쏘 등이 이에 속한다. 대부분 스위스 내에 시계를 제작하는 공장이 있으며, 론진과 티쏘 등 18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브랜드도 있다. 커머셜 브랜드와 패션 시계 브랜드를 분류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자체 시계 제작 공장이 있는가 여부다. 커머셜 브랜드 대부분은 자체 공장을 두고 한 브랜드 제품만 제작하지만, 패션 시계는 하나의 공장에서 여러 브랜드 시계를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패션 시계는 브랜드와 디자인은 달라도 그것을 제작한 공장은 같을 수 있다.



내 시계는 정말 ‘스위스 메이드’일까





스위스의 자존심 ‘스위스 메이드’



스위스에서 만든 것? 스위스가 만든 것?: 수십만 원짜리부터 수천만 원짜리까지 스위스에서 만든 거의 모든 시계에는 ‘스위스 메이드’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스위스를 부르는 이름은 스위스(Suisse)부터 스위철랜드(Switzerland)까지 다양하게 불리는데 왜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일까? 일반적으로 원산지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메이드 인 스위스’가 아닌 ‘스위스 메이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위스 메이드라는 말은 공식적으로 19세기 말부터 사용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made in’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데, 가장 큰 차이는 스위스 메이드라는 용어는 스위스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에 적용하는 것이 아닌 시계에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메이드에 관한 법률은 1971년 12월 23일 처음 법제화되었다. 이 법령에는 ‘스위스 시계는 무브먼트가 스위스에서 만든 것이고, 시계를 스위스에서 조립했고, 스위스 시계 제작자에게 최종적으로 검수를 받아야 스위스 메이드로 인정한다’라는 항목과 함께 ‘스위스 무브먼트’에 관한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스위스 무브먼트의 조건은 ‘무브먼트 부품들은 스위스에서 조립한 것이어야 하고, 스위스에 있는 스위스 시계 제작자가 최종적으로 검수해야 하고, 부품 가격의 50퍼센트 이상이 스위스에서 제조된 것이어야 한다. 단, 조립 비용은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스위스산 시계들 중에는 중국과 일본, 인도, 태국 등에서 무브먼트나 케이스, 시계줄 등 각종 부품을 수입해 만들고도 스위스 메이드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스위스 메이드’를 묻는 이유



겉은 ‘스위스 메이드’지만 속은 중국산?: 2013년 6월 21일, 스위스 국회가 ‘스위스 메이드’ 라벨을 시계에 붙이는 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자는 법안을 제정하는 데 합의했다. 스위스 의회는 스위스 내 생산 업체가 아닌 업체들이 스위스산 부품 비중이 낮은 질 낮은 시계에 ‘스위스 메이드’ 라벨을 붙여 전체 스위스산 시계의 인식이 나빠졌다는 데 의견을 함께하며 ‘스위스 메이드’ 라벨의 부착 조건을 강화한 것이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와 스위스 의회가 ‘스위스 메이드’에 대한 법령을 강화한 데는 독일 시계의 급부상도 한몫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독일은 스위스에 견줄 만한 기술력으로 기계식 시계를 만들던 나라였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랑에 운트 죄네나 글라슈테 오리지널처럼 최고급 독일 시계는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급성장했다. 스위스 시계 업계로서는 ‘스위스 메이드’의 가치를 높이고 지키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스와치그룹이나 리치몬트그룹을 비롯해 시계 브랜드들은 이 법령이 통과되기까지 과정을 지켜보았고, 엄격해진 스위스 메이드 규정에 따르기 위해 스위스 내 생산시설을 갖출 준비를 마쳤다. 시계 제작을 위한 투자가 늘어나면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고, 이는 스위스 메이드에 관한 신뢰가 높아지는 효과로 돌아오고 있다.



60퍼센트의 ‘스위스 메이드’는 계속될까: 그러나 스위스 메이드라고 해서 시계의 품질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메이드를 구성하는 60퍼센트의 기준은 여전히 부품의 개수가 아닌 가격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고물가 국가인 스위스에서 생산한 주요 부품 몇 개만 사용해도 부품 가격의 60퍼센트는 금방 넘는다. 그리고 가격 60퍼센트 기준은 무브먼트에 해당하는 것으로, 케이스나 다이얼, 시곗줄 등은 기준조차 없다. 스위스 시계의 기술력과 품질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무브먼트 주요부품 단 몇 개만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다른 나라에서 무브먼트를 조립한, 그리고 다시 스위스에서 완성한 시계를 두고 과연 스위스 메이드라고 해야 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시계와 살고, 시계에 잠들다





시계와 함께한 ‘마지막 황제’의 꿈



경매에 나온 ‘마지막 황제’의 애장품: 2010년 3월 3일, K옥션에서 공개한 경매 예정 리스트를 확인한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사용하던 회중시계가 출품되었기 때문이다. 출품번호 205번의 회중시계는 경매장이 아닌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순종의 무덤인 유릉 속에 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어떻게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의 애장품이 경매에 나온 걸까?



경매에 출품된 순종의 회중시계는 2003년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손자 이혜원 씨가 공개한 《어장의사진첩》 속 시계 사진과 같은 것이었다. 《어장의사진첩》은 순종의 장례식을 찍은 101장의 기록사진을 모아 놓은 일종의 사진 앨범이다. 그중 부장품 목록을 찍어 놓은 사진 속에 패옥과 함께 시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체를 안치할 때 관에 함께 넣어 매장하는 물건인 부장품 속에 시계가 포함되었다는 것은 순종이 생전에 시계를 많이 아꼈다는 증거다.



실제로 순종의 시계 사랑은 유명했다. 《어장의사진첩》을 공개한 이혜원 씨도 순종의 시계 사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순종의 시계 사랑은 유명했지요. 거처하던 창덕궁에 시계방을 차렸을 정도였으니까요. 회중시계도 스위스에서 여러 개를 주문해 이화문을 새긴 다음 자신이 직접 가진 것도 있고, 누군가에게 하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계로 망국의 한을 달래다: 순종은 시계들마다 다른 알람소리가 한꺼번에 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만일 이때 괘종시계 하나라도 앞서거나 늦게 울리는 날이면 시계 수리공에게 호통을 칠 정도였다. 또한 덕수궁에 있는 고종에게 매일 전화로 문안을 드릴 때면 덕수궁 시계의 시각을 물어 창덕궁 시계와 맞추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한 서양문물은 저마다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중국에 파견된 사신과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시계, 만년필, 자전거, 피아노를 비롯해 다양한 물건을 조선에 들여왔다. 왕실은 이런 서양문물을 가장 먼저 접했고,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는 수많은 신기한 것들 중 시계의 매력에 빠진 것이다 .경매에 출품된 순종의 시계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이 1910년에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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