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제국의 딸
정창근 지음 | 뿌리출판사
슬픈 제국의 딸
정창근 지음
뿌리출판사 / 2013년 10월 / 301쪽 / 13,000원
전장(戰場)
바세인(Bassein) 항구는 이라와디(Irrawaddy)의 동남부에 위치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서중부(西中部)를 지키고 있다. 아라카(Arakah) 산맥의 끝자락, 원시림이 펼쳐져 있는 평원의 남단부에는 일본군이 만든 간이 비행장이 40도의 열풍을 잉태한 채 몸부림치고 있었다.1943년 4월의 어느 날 밤. 이 항구에 도착한 일본군 수송선의 일부가 외항에 닻을 내리고 야음을 틈타 하역한 것은 살아 있는 인간, 그것도 묘령의 여인들. 거의 50~60명을 헤아리는 낭자군이었다. 조선의 진해요항(鎭海要港·그 시기는 요항이었음)을 떠나온 지 일주일 동안의 항해를 마친 수송선단은 대낮에는 꼼짝 않고 있다가 밤이 되면서 하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닌 듯 그들을 바라보는 원주민들 시각은 그저 무덤덤할 뿐이었다. 그 인원이 지금 간이 비행장의 너른 풀밭에 가설된 카키색 대형 텐트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비행장 쪽에서 들려오는 굉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과연 이들은 누구일까.
죽은 듯 조용한 텐트 속에서 사람들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은 그다음 날 정오 무렵. 닫힌 포장을 들추고 하나둘씩 찌푸린 얼굴로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까칠한 얼굴의 조선 여인들. 적게는 15~16세부터 많게는 서른 두엇까지의 여인들. 행색은 한결같이 남루했다. 모두 뚜릿거리는 것이 해우소(변소)를 찾는 눈치였다. 죽은 듯 십여 시간 가까이 잠들어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카키색 군복 반소매 반바지 차림의 군 장교와 하사관 한 사람이 천막자락을 들추기 시작하면서 인원 점검이 시작됐다. 여인 한 명이 종이를 들고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라와디 지구 주둔 일본군 사령부 중대장인 아라끼 겐조(荒木建造) 중위와 하사관 한 명, 같은 배에 실려 온 여인 대표 가을이가 그 인원점검을 맡고 있었다.
인원점검이 쉽지 않았다. 볼일이 있어 드나드는 인원이 끊이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고 질서가 없자 하사관이 들고 온 목검(木劍)으로 여인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여러분, 잠시 인원점검이 있으니 출입을 중지하시고 천막 안으로 모이시오.”
같이 온 여인이 하사관을 대신해서 여인들을 다뤘다. 눈을 부라린 하사관의 목검에 겁을 먹은 여인들이 텐트 속으로 몸을 피한다. 여인과 하사관이 숫자를 세며 안을 두리번거린다. 인원점검이 끝났다.“한 사람이 모자랍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하사관이 중위에게 이마를 찌푸린다.
“뭐, 한 사람이? 찾아야지 그냥 둘 수 없다. 원주민들 손에 들어가면 못 찾는다. 당장 병력을 풀어 이 근처를 뒤져라. 그리고 당신도 사람을 시켜 갈 만한 데를 찾아보시오. 여자가 갈 만한 데를 당신은 알 게 아니오?”따르는 여인에게 내리는 지시였다. 계속되는 비행기 폭음과 바람 때문에 소리가 잘 안 들리고 천막자락이 자주 펄럭인다. 먼지가 날아 들어오고 천막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수색작전이 시작되고 볼이 부은 근무중대 병사들이 모두 사방으로 흩어진다.
“배설과 목욕 때문에 계곡에 있을 수 있다. 주로 저쪽 산기슭까지 계곡을 뒤져라. 발견되는 즉시 끌고 와라. 손찌검은 하지 말고.”아라끼 중위의 주의가 첨부됐다.
근무중대 병력까지 가세한 수색작전이 시작된 지 두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보고가 없자 다소 불쾌한 표정이 된 아라끼가 본부건물인 바락촌을 나서며 낮게 중얼거렸다.‘불쌍한 계집 같으니라고.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고 어디로 숨어버렸을 거야. 이런 살벌한 데에 왔으니 공포증이 앞설 테지. 죽지나 말았으면 좋겠는데.’보초 앞을 지날 때 그는 버릇처럼 찍하고 침을 내리꽂고 입가를 맨손으로 훔치며 풀밭으로 내려갔다.
비행장에서 몹시 거친 바람이 불어오며 사령부 목조건물에 모래를 흩뿌리고 이어서 비행기가 활주(滑走)한다. 잠시 폭풍을 피했다. 다시 텐트로 향한 그의 뒤에는 언제부턴가 같은 계급의 장교 하나가 뒤따르고 있었다. “응, 구레냐? 언제 왔어, 너도 수색작전 도우러 왔나?”
“그으래. 어쩌다 그리 됐어. 귀찮게 말이야. 너야 당연하지만 우리 부대까지 번거롭게.”
구레라 불린 장교도 같은 계급을 달고 허리에 권총만 차고 있어 간편한 복장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공포증 환자가 또 하나 생긴 것 같다. 이놈의 전쟁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우선 저 폭음만 들어도 정신병자가 되고도 남을 일인데…….”
일본에는 그 시기 독립된 공군이 없고, 육군과 해군에 부속된 공군으로 나뉘어 있었다. 지금 이 사령부 앞의 간이 비행장도 비르마 지구 육군 사령부 소속 항공대였다. 그 육군 항공대 소속 수십 대의 전투기가 연일 공중전 훈련에 여념이 없어 일으키는 모래바람이었다.그 시기 일본은 군용기를 아라와시(荒鷲)라 부르며 그 용맹성을 자랑했다. 적군 폭격기 B29를 능가하는 폭격기가 없고 그것을 요격하는 전투기만 양산해 제로센(零戰)이란 신예기(新銳機)가 있었다. 모두 공랭식(空冷式)이라 동체(胴體)보다 엔진이 커서 모양새는 좋지 않았으나 성능은 적기를 능가했다. 아무튼 그 시기 그게 일본의 자랑거리였다. 그 비행기가 또 한 차례 폭풍을 일으키고는 공중에서 기예를 펼치고 있었다. 손차양을 하고 공중을 올려다보던 또 한 사람의 장교 구레 다이슈도 고개를 떨구고 아라끼를 건너다본다.골짜기를 더듬는 일본 병사들 입에서 차마 못 들어 줄 욕지거리가 튀어나오고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더러운 조선년들 때문에 낮잠도 못 자고 이게 무슨 꼴이야, 칙쇼.”
모두 99식 장총에 착검(着劍)을 한 살벌한 모습이었다. 벌써 그들은 사령부 건물이 있는 비행장이 내려다보이는 중틀에 올라가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다. “어이, 아라끼. 네 생각은 어떠냐? 분명 실종자가 있을 것 같애? 갑작스런 환경변화와 공포 때문에 놀라서 죽거나 자결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으음? 거 근사한 말이다. 실은 지난번에도 이와 유사한 실종사건이 있었는데 결국 자살 미수로 끝나고 그 장본인은 아직도 살아 있는 예가 있긴 있지.”“우리 조선말에 간경(肝經)이 뒤집혀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어쩌면 자살의 직접 동기가 아닌가 모르겠다. 아라끼, 일본에는 그런 말이 없지?”“거 처음 듣는 말인데 감은 잡은 것 같다. 어쨌든 정신 상태에 고도의 변화가 온다는 뜻 아냐, 구레. 어때, 내 말이…….”
구레가 아라끼의 묻는 말에 대답을 회피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구레 다이슈, 그는 조선인 오태주였다. 조선인으로서 일본군 장교가 되어 전장에 뛰어든 지 벌써 햇수로 2년. 처음 전장에 나와서 자기 자신도 겪었던 그 격심했던 정신적 질환 때문에 한때 중심을 잃고 허둥대다 다른 일본군 장교의 야지와 핀잔을 먹고서야 이를 사리물고 눈을 휩뜨며 그들과 기합(氣合)을 맞췄던 일이 생각났다. 전장은 확실히 무서운 곳이었다. 그때 멀리 이라와디산록 산허리쯤에서 콩 볶는 듯한 총성이 울렸다.“야, 구레, 실종자를 찾은 모양이다. 가보자.”
아라끼의 독촉이 아니더라도 혹시나 수색대원이 실종자를 함부로 다루지나 않을까 걱정되던 터라 구레 중위는 먼저 몸을 내밀었다. 현장까지 허겁지겁 달려갔지만 족히 20분은 걸린 듯했고, 산자락에 들어서면서는 제법 숨까지 헐떡이고 있었다. 연약한 여자 몸으로 여기 이 깊은 골짜기까지 왔단 말인가? 어떤 동정심보다도 호기심이 앞서 왔다.
현장에는 벌써 수색대원 전원이 집결하여 목을 길게 빼고 실종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구의 시체? 그것은 분명 묘령의 여인? 목에 끈이 묶여 있고 그 끝이 나무뿌리에 홀매쳐져 있는 자살 시체였다. 하반신은 계곡의 물에 잠겨 있고 고통스런 흔적이 얼굴 가득했다. 입은 옷이래야 겨우 조선 여인이 즐겨 입는 겉치마뿐인 것이 이 여자도 어딘가에 배설물을 속옷과 함께 처리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흰 속살이었다. 사후 몇 시간이 지난 듯 사후경직이 시작된 시체는 다루기가 힘겨웠다.“봐라, 틀림없다. 간경이 뒤집힌 자살이야. 일종의 발작이지. 어이, 칙쇼. 재수 없게 저걸 여기까지 데려오는 데 든 경비가 아깝잖아. 원가 계산을 안 해봐도 저건 제국의 손실이야. 에이, 참.”곁에서 중얼거리는 아라끼의 말에 이마를 찌푸린 구레 중위가 그런 아라끼의 옆얼굴을 곁눈질한다. 몹시 마땅찮은 표정.“저걸 손실로 보기 전에 연민으로 볼 수 있는 도량이 없단 말인가. 저건 물질이 아닌 인간인데 말이야.”치솟는 어떤 분기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독백이 흘러나왔다.
“야, 구레. 너 아까 내 말에 좀 불쾌한 것 같은데 내 뜻은 그게 아니고 이 지루한 전쟁에 대한 내 저주가 그런 말로 나왔다. 고깝게 생각 마라. 여인도 알고 보면 네 동포 아니냐. 나는 애초부터 호전파도 아니고 알고 보면 나도 저 여인과 같은 일종의 소모품이지. 암튼 이 전쟁에 녹아나는 것이 일본뿐이 아니란 것이 내 생각이다.”그날 오후 여인 시체 한 구가 간단히 땅에 묻히고 나서 텐트촌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열풍을 차단할 수 없어 천막 사방의 자락들을 걷어 올려 묶었기 때문에 천막 안이 훤히 보이고 여인들의 흐트러진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
일제는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조선 골골에서 여자들을 강제 모집하기 시작했다. 일단 기혼자는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풍문이 돌자 서둘러 혼사를 치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짝을 못 찾아 애를 먹던 노총각들 입귀가 찢어지고 급조 부부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이 15~16세에서 서른 줄까지 혼자 사는 여자면 배우고 안 배우고 자격을 따지지 않았다.일본 군수공장, 병원, 군복세탁이나 정신대(데이신다이, 挺身隊)가 그것이었다. 남보다 먼저 제국에 충성한다는 정신대는 이렇게 해서 조선반도 삼천리 방방곡곡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그야말로 부녀자 사냥이었지 자의(自意)가 없었다. 그것을 피하려고 별 희한한 방법이 창안되었고, 끌려 나온 여성들은 대부분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비참한 일이었다. 통곡소리가 골골에 울려 퍼지고 일제를 저주하는 원성이 하늘에 닿았다.그 규모는 대략 20만을 헤아리고 일본의 전선(戰線) 최전방까지 그들의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만주의 최북단, 중국의 북지, 남방의 밀림 속, 사이판, 아쓰섬의 동굴 속까지 그들의 한에 사무치는 통곡소리가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였다.
끌려온 여자들은 첫째, 먹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안남미(安南米)라고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생산되는 삼모작의 쌀은 조선 쌀에 비해 진기가 없어 먹어도 허기가 나는데 더구나 거기다 보리를 섞은 밥을, 그것도 하루 두 끼밖에 안 주니 한참 먹을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형벌이나 다름없는 고역이었다. 그녀들 관리는 군속 비슷한 군인도 아닌 애매모호한 단체가 하는데, 조선에서부터 현지까지 인솔해 온 사람들이고, 일일이 그녀들의 생활을 간섭하고 작업도 지시한다. 조선에서 식민지 행정조직의 힘으로 강제 모집한 그녀들을 인계받아 진해요항에서 수송선에 태우는 일부터 시작해 바세인 항에 도착하고 정착할 때까지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이들은 정신대원들의 급료나 기타 후생에도 관여하는데 그들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군부에서 나오는 금액을 착복하거나 횡령하여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 허다해 그녀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충남 장항 출신의 가을이는 진해요항까지 인솔 책임자가 돼 대원들을 돌봤다. 가을이는 말하자면 그들을 대신하여 그녀들에게 향도 역할을 하는 유일한 대표자격이었다. 강제 모집당한 그녀들 중에서 최고학력자고 또 영어를 한다는 조건이 그녀를 그런 지위에 오르게 한 것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통솔력을 인정한 관리단체는 현지에 도착해서도 그 직무를 수행케 했다. 가을이는 수용소 측의 정식 승인을 받은 열외(列外) 정신대였다.전쟁물자가 턱없이 부족한 일본군은 모든 것을 재생해서 충당했기 때문에 특히 병원에서 소모되는 거의 모든 소모품을 정신대원들의 손으로 재생시켜 사용했다. 하루에 야전병원에서 죽어가는 시체에서 벗겨낸 붕대, 거즈, 기타 소모품이 정신대원의 손에 의해 세탁되어 재생되었고 다시 환자의 환부에 감기는 게 항용 있는 일이었다. 그 일을 맡은 정신대는 온종일 피고름 세탁이 일이고 허리를 펴 잠시라도 한숨 돌릴 시간도 없이 작업에 내몰렸다. 그뿐 아니라 그녀들에게 제공된 의식주는 너무 열악해 거기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입원환자가 발생하고 영양부족으로 쓰러지는 숫자가 늘어나고 개중에는 사망자도 생겨 관리기관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가을이는 그 중간에서 대원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고 감독기관의 중간착취를 은폐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렇게 그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일개조가 야전병원 빨래장으로 가면 일개조는 탄약 창고로 향했다. 반제품(半製品)으로 수송돼 온 그것을 완제품(完製品)으로 만드는 데는 섬세한 여자 손이 필요했고 그들은 그 작업을 해내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가축이나 먹음직한 끼니를 들고 트럭에 실려 작업장에 갔다가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오후 작업에 들어갔다가 일몰이 돼서야 숙소로 돌아오는 일과가 계속되기 때문에 꽃다운 나이의 처녀들의 몸치장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고 복리후생이란 말은 꿈에서나 얻어 들을 수 있는 그런 살벌한 생활에서 도망자가 생기고 부상자가 생겨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 중간에서 향도 역을 하는 가을이만 죽을 지경이었다.
히로시마(廣島)
현청 소재지 히로시마, 인구 90만의 이 대도시의 하늘은 그날도 청명했다. 일본 제3의 도시는 그렇게 그날의 날씨에 모두 행운을 구가하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한여름 날씨의 8월 6일은 이제 오전을 거의 마감하고 있었다.오전 11시쯤 예고 없는 보라색 섬광이 사람들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잘 구분이 안 된 섬광은 우선 사람들의 청각을 멀게 하는 이명을 가져왔다. 순간적으로 사람들은 놀라 그 자리에서 하나 둘 셋 넷 하고 시계의 초속을 세기 시작했다. 몸은 벌써 집 밖의 방공호로 달려들면서.일곱, 여덟, 꽝 하는 폭음이 그때에야 울리면서 지상의 모든 먼지를 공중으로 말아 올렸다. 눈앞이 안 보일 만치 뽀얀 안개, 이 지상에 이렇게 많은 먼지가 쌓여 있었을까 싶은 황사 같은 먼지가 눈앞을 가렸다.“엄청 큰 폭탄이구나. 여기서 3km는 실히 되겠는데 어쩌나?”
방공호에서 폭탄의 폭심(爆心)과의 거리를 재던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그렇게 폭탄의 투하지점을 계산해 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음속 331.5m에 초수를 곱하면 폭탄의 작렬 지점이 나온다는 것을 누구의 가르침 없이 터득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3km라는 해답은 음속 331.5m 곱하기 8초니까 2,652m, 약 3km라는 정답이 나오는 게 아닌가. 3km 밖에서 터진 폭탄 때문에 고막이 터질 일은 없겠지만 이명과 함께 양 볼이 조금 뺨을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폭탄은 무서웠다. 학교 학생들은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입을 벌린 채 서둘러 책상 밑이나 방공호에 뛰어들어야 했다. 국민들은 철저히 공습에 순치되어 있었다.
8월 6일의 히로시마 그 주변 도시 시민들도 이 보라색(날씨가 좋아 식별이 어려웠지만) 섬광을 보고 우선 몸을 피해 땅속으로 숨었다. 그러나 1분, 2분, 3분이 지나도 아무런 기척이 없자 하나둘씩 방공호 밖에 머리를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행기를 찾았다. 공습경보도 없는 느닷없는 섬광의 작렬이었으니까.“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하늘만 파란데 참 이상하다.”
그 소리에 힘을 얻어 사람들이 땅속에서 기어 나와 모두 시선을 하늘에 주었다. 중구난방이었다. “뭐야, 사람 놀라게. 아무것도 없잖아. 괜히 서둘렀네. 젠장.”
“아니, 가만. 그게 아니야. 공습은 분명 있었구만. 저게 뭐야. 저거 폭발물 터진 게 아냐? 굉장한데 그래.”한 사내가 가리키는 남쪽 하늘로 사람들이 시선을 모았다.
“폭탄이 엄청 큰 게로군. 어디가 터진 거야.”
뭉게구름이라고 해야 할까? 핏빛과 보라색이 섞인 먹구름이 솟아난 뭉게구름같이 피어올랐다. 금방 그 근처에 불이라도 붙은 것 같은 맹렬한 기세로 솟아오르는 것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장관이었다. 히로시마의 하늘이 그 구름으로 덮여 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