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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정도전

이재운 지음

책이있는마을 / 376쪽 / 19,500원





아들아, 자시(子時)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우리 부자간에 공부 좀 하자.

오늘은 내 아버지이자 네 할아버지이신 정도전께서 목숨 걸고 이루신 혁명 전 얘기를 해 보련다. 혁명, 특히 역성혁명이란 참으로 무서운 말이지. 무너지는 쪽은 피바람 몰아치는 가운데 시퍼런 칼끝에 목을 갖다 대야 하는 날벼락이지만, 새로 서는 쪽은 무지개 뜬 궁궐 옥좌에 앉는 것이니 어찌 무섭고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니겠느냐.너도 알다시피 내 아버지 정도전은 스스로 해동장량이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뜻이냐 하면, 아버지는 장량(한나라 고조 유방의 책사) 못지않은 지모(智謀)가 있는데 다만 칼 잡을 사람이 없어 수소문 끝에 이성계라는 장수를 찾았다는 얘기지. 장량이 고르고 고른 끝에 떠돌이 건달 유방을 발탁하여 앞장세운 것처럼. 그러니 장량은 진시황이 만든 진(秦)나라를 훔쳐다가 한(漢)나라로 이름만 고쳐 유방에게 주었지만 내 아버지 정도전은 달랐다. 아버지는 고려를 완전히 없애고, 하얀 백지 위에 조선이라는 전혀 다른 나라를 만들어 이성계 전하에게 주셨단다. 유방의 한나라는 모든 제도가 진나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건 황제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뿐이었지. 그런데 아버지가 만든 조선은 고려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몽골 피가 흐르는 왕실을 깨끗이 없애고, 그 더러운 피가 흐르는 왕씨 일족까지 모조리 처단했다. 불교를 없애고 유교를 세웠으며, 개경을 버리고 한양을 건설했다. 주춧돌에서 대들보까지 모두 새것으로 바꾸셨다. 더더욱 다른 것은 장수들이 나라를 차지했던 고려와 달리 학문이 깊고 덕이 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경영한다는 점이다. 국왕은 위(位)를 누리는 자리이고 국사는 선비들이 처결하는 것이다. 장량하고 아버지 정도전은 나라를 보는 시각이 좀 달랐거든. 장량은 그저 중원의 땅주인으로 유방을 점지해준 것이지만, 아버지 정도전은 고려 8도를 위지경지(緯之經之)하고 물명과 물목을 정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나라를 설계하고 건설하여 이성계 전하께 드린 것이다. 그래서 장량은 그저 나라 하나를 훔쳐다 이름만 바꿔 준 것에 불과하지만 아버지 정도전은 철학자의 나라, 재상의 나라, 백성을 위하는 민본(民本)의 나라 조선을, 주춧돌부터 대들보에 기왓장까지 직접 다듬고 놓아 자리를 잡아 주신 것이다. 이걸 모르면 너는 정도전의 손자라고 할 수 없다.

늘 네게 말하지만 네 할아버지이신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하고 건설하신 분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정도전은 타고난 반골이라, 싸움 잘하는 여진계몽골인인 아가바토르 이성계 등에 올라타 고려를 멸망시키는 역성혁명으로 새 왕국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 아버지 정도전은 반골이 아니라 정골이셨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스스로 겸양하여 게으른 적이 없었다. 다만 다른 유자(儒者)들이 기껏 더 높은 조정 벼슬자리나 노릴 때 내 아버지 정도전은 고려 왕국 대신 공자 맹자 주자가 그토록 부르짖었건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의 나라’, 사서삼경의 주옥같은 말씀이 바람 불듯 물 흐르듯 하는 ‘군자의 나라’를 실제로 만들어 볼 꿈을 꾸신 것이다. 고려 최고 학자라는 이색도 정몽주도 조준도 권근도 이숭인도 미처 그런 상상을 하지 못했는데 네 할아버지 정도전만은 고려 왕국을 뒤엎어 판판하게 다진 다음 거기에 전혀 다른, 일찍이 공자 맹자 주자도 구경해 보지 못한 새 왕국을 만들려고 꿈꾸셨단다.***

내 아버지 정도전 이야기를 하자면 이성계, 이방원 말고도 세 분을 잊을 수 없다. 아버지의 스승 이색, 아버지의 친한 형 정몽주, 정몽주의 문하생 권근 그리고 거기에 더해 명나라 황제 주원장이다. 주원장이야 앞으로 이야기할 게 많으니 그때 하더라도, 내가 존경하던 이색과 정몽주 두 분은 여기서 말해야겠다.이색 선생은 여러 번 뵌 적이 있다. 원래 우리 할아버지(정운경)의 친구 중에 이곡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이의 아들이 이색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열네 살이나 많은 이색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른 것은 당연지사다. 그때 아버지는 남은, 조준 등과 함께 그의 제자로서 성리학 연구에 진력했다. 남은은 아버지하고 띠동갑이신데, 두 분은 매사를 같이 하셨다. 주원장과 한판 각오로 군사 훈련을 할 때도 남은이 앞장섰고, 아버지가 가시던 날에도 같이 가셨다. 조준은 아버지보다 네 살 낮은 분인데, 조선 건국 때까지는 동지로서 계속 같이 가다가 나중에 아버지와 남은이 방석을 밀 때 그는 방원에게 붙어 버렸다. 아버지의 절친 형 정몽주의 제자인 권근이야 말할 것도 없다. 권근은 정몽주가 죽은 뒤 이방원에게 딱 붙어 사사건건 의견을 달리했으니 딱히 원망할 일도 없지만, 시치미 떼고 날 위로하는 척 이 먼 데까지 잘 지내는지 묻는 서찰을 보내올 때는 소름이 돋는다. 난 정말 이런 인간이 싫다. 뚜렷한 적이건만 아닌 척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안부를 묻는 이 더러운 간신은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사실 아버지 정도전과 이색 선생, 정몽주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떠나 매사 의기투합한 동지 사이셨다. 이색은 스승이고, 그 문하에서 정몽주와 아버지 정도전은 열심히 공부하는 동창이셨다. 그러면서 세 분은 저 몽골 피가 흐르는 조정을 뒤엎고 새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부르짖곤 하셨다.다만 이색과 정몽주가 고려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해 조정을 개혁하겠다고 부르짖을 때 아버지 정도전은 엉뚱한 생각을 하셨단다. 아버지가 남긴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그 계기는 바로 정몽주가 만들어 주었더구나.아버지 정도전은 스물다섯 살에 부친상을 당하고, 이어 몇 달 뒤에 모친상까지 당하셨다. 그 슬픔으로 3년 시묘살이를 하셨지. 당시 선비들은 100일 정도 시묘하고 탈상하는 게 관습이었는데, 아버지는 유독 3년을 꼬박 지켰어. 모르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철저한 성리학자라 주자가례를 따른다고 그러셨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어.

아버지 정도전이 시묘살이를 한다는 소문을 들은 정몽주 선생이 무료함을 달래라며 <맹자(孟子)> 한 권을 보내주셨다. 이 책 한 권이 네 할아버지 정도전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시묘살이 하는 동안 아버지는 <맹자>를 펼쳐놓고 열심히 읽었지. 그런데 그만 양나라 혜왕(梁惠王)편을 읽으시다가 기름을 들이부은 듯 온몸에 불이 붙은 거야. 몽골의 내정간섭으로 망친 고려, 그런 세상을 한탄하던 한 젊은이가 눈을 번쩍 뜬 거지.

인(仁)을 해치는 자는 그저 도적에 불과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는 한낱 강도일 뿐입니다. 그런즉 도적과 강도는 쓸모없는 범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일개 범부가 된 걸(桀)과 주(紂)를 쳐 죽였다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그것을 가리켜 임금을 시해한 것이라고 하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하나라의 걸왕과 상나라의 주왕은 유명한 폭군이다. 그런 폭군을 죽이는 것은 임금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심을 잃은 도적이나 강도 따위를 죽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맹자의 이 서늘한 말씀, 그것은 아버지에게 속삭이는 하늘님의 천둥소리였다. 걸왕, 주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 저 흔하디흔한 죄인 한 놈을 응징한 것에 불과하다는 맹자의 이 말씀을 접한 아버지는 심장이 쿵쾅거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단다. 묘막을 걷어붙이고 나가 하늘을 향해 마구 소리를 지르셨지. “내가 고려 도적, 고려 강도를 다 쳐 죽이고 이 나라를 다시 세우리라!”



아버지 정도전은 이때부터 몽골 피와 중의 신돈 피가 흐르는 고려왕을 끌어내릴 결심을 하셨다. 다만 새 나라를 세우리란 결심은 미처 서지 않았다. 아버지는 3년 내내 남모르게 웅지를 품고 기르셨다. 불같은 열정으로 꿈을 기르신 것이다.그러던 중 아버지는 상국인 원나라가 시키는 대로 하지 말자고 반대하다가 기어이 유배를 가셨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고려의 반항아라고들 했지. 아버지는 맹자를 읽은 뒤로는 유배를 밥 먹듯이 다니셨단다. 가슴속에 남모르는 꿈이 자라고 있으니 유배가 두렵지 않으셨던 것이다. 하고 싶은 말씀 마음껏 하셨으니 유배를 피할 길이 없었다. 아버지는 일면 그런 역경을 즐기셨는지도 모른다. 그때 아버지는 피가 용암처럼 끓는 서른네 살, 네가 올해 서른세 살이니 너만 하실 때로구나. 을묘년(1375년) 5월, 아버지는 터벅터벅 배소지인 나주로 내려가셨다. 아버지는 나주 유배 26개월 동안 마침내 아버지가 꿈꾸는 나라를 설계하셨단다. 그해 12월, 아버지는 ‘내가 묻고 하느님이 답하다’라는 <심문천답(心問天答)> 두 편을 지으셨단다. 이 책에서 아버지는 통쾌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

▲ 하느님에게 묻습니다

- 신은 하느님의 명을 받아 사람의 영(靈)이 되었습니다.

- 사람은 한 번은 죽습니다!

- 천명(天命)을 배반하며 거역하고도 장수하고 영달하는 자는 하늘이 무엇을 사랑하시기에 그렇게 후하게 대하는 것이며, 천명을 순종하고도 요절하거나 빈천하게 사는 자는 하늘이 무엇을 미워하여 그리 박하게 하신 것입니까? - 선하여도 혹 화(禍)를 받고 악(惡)하여도 혹 복(福)을 얻는 일이 많습니다. 선을 복주고 악을 벌주는 하늘의 이치가 분명하지 못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에게 그 연유를 따져 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실로 사람을 주재하시면서 어찌 시(始)와 종(終)이 어긋나며, 주고 빼앗는 것이 그리 편벽됩니까? 생각해 보니 의심이 나서 묻습니다.

▲ 하느님이 답하시다

- 하늘은 덮는 것을 맡고 땅은 싣는 것을 맡았으며, 하늘은 낳는 것을 주로 하고 땅은 성장시키는 것을 주로 하였으니 천지도 진실로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비록 하늘인들 어찌할 수 있으랴! 하늘이 따로 마음을 두어 하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니 너는 마땅히 그 이치의 바른 것을 굳게 지켜 기다려야 하리니 의심치 말고 몸을 닦으며 기다려라.-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정하면 또 능히 사람을 이긴다. 하늘과 사람이 비록 서로 이길 수 있으나 사람이 하늘을 이기는 것은 잠시의 일이요, 항상(恒常)한 일은 아니며, 하늘이 사람을 이기는 것은 오래될수록 더욱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란한 자는 반드시 그 나중을 보존하지 못하고 착한 자는 반드시 후일에 경사가 있는 것이다.

아들아, 어떠하냐? 가슴속이 후련하잖느냐?

아버지께서는 하느님과 문답을 하면서 의식(衣食)이 풍족해야 염치를 알고, 창고가 가득 차야 예의가 일어난다는 이치를 깨우치셨다. 더불어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걸 아셨다.내 아버지 정도전은 유배 중에도 흉중에 품은 큰 꿈을 꺼내 이리 다듬고 저리 깎으면서 키워 나간 것이다. 심문천답으로 꿈을 또렷이 새긴 아버지는 마침내 지방 아전으로 일하던 유방을 찾아낸 장량처럼 고려의 유방을 찾아 곳곳을 유랑하셨다. 사실 해동장량을 자처하신 아버지는 아마 그때부터 장량이 구사한 계책들을 깊이 연구하신 듯하다. 장량은 아버지처럼 뛰어난 학자셨다. 이분의 조상들은 대대로 전국 7웅 중 하나이던 한(韓)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당시 장량의 집에는 일하는 사람이 300명이나 되었단다. 우리 가문처럼 명문가란 얘기지. 그런 그가 조국 한나라가 멸망한 뒤 재산을 털어 창해역사를 찾아내고, 그에게 박랑사에 숨어 기다리다가 순유 중인 진시황을 쳐 죽이라고 시켰던 것이다. 창해역사가 진시황을 뒤따르던 엉뚱한 수레를 때려 부수는 바람에 거사는 실패하고, 이 거사를 사주한 장량은 변성명하여 깊이 은거했다. 이 무렵 유방은 허풍이나 치고 다니는 건달에 불과했지.그런 중에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나면서 건달 유방은 졸지에 수천 명을 이끄는 말장이 되었다. 이 무렵 진시황을 피해 다니던 장량과 우연히 만났지. 장량은 이때부터 사람 좋은 유방을 갈고 다듬기로 결심했어. 꾀 많은 장량은 고비 고비마다 죽을 위기에서 유방을 살려내고, 패지에서 승리를 거두도록 현란한 계책을 냈다. 역발산기개세를 자랑하던 항우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서도 그는 깜짝 놀랄 묘수를 내어 유방을 지켜냈고, 마침내 은인자중 때를 기다리다가 단 일격으로 그 무서운 항우를 잡아버렸다.

아버지는 장량과 당신의 처지를 수없이 비교하셨다. 그러면서 아버지 정도전은 조선의 창해역사를 찾아다녔다. 또 조선의 유방을 수소문했다. 그때 뜻밖에도 정몽주가 답을 가져왔다.“삼봉, 자네가 찾는 게 조선의 유방이라면 내가 그런 사람을 하나 알고 있지.”

“형님, 그게 누굽니까? 심문천답 이래 7년을 눈 빠지게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3년 전 황산대첩(1380년에 왜구를 물리친 전투)을 기억하는가?”

“여진 장수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이긴 전쟁 아닙니까? 형님이 종사관으로 출전하셨잖아요?”

“사실 나는 20년 전 서른 살 젊은 장수 이성계가 기마군을 이끌고 북쪽 변경의 여진족을 토벌할 때(1364년 이성계는 여진족이 웅거하는 삼선, 삼개 부락을 쳐서 이겼다.) 그의 부대에 종군한 적이 있지. 나보다 두 살밖에 더 먹지 않았지만 인품이 너무 좋아 대번에 매력을 느꼈지. 아, 이 사람 영웅호걸이구나, 대번에 알아봤지. 몇 년 전 왜구 토벌 때도 그의 용맹과 기상이 어찌나 늠름한지 참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 그런데 그 뒤 황산대첩을 치르고 나서 이성계 장군이 회군 길에 전주에 들렀는데, 웬일인지 전주 이씨 종친들을 불러 모아 소 잡고 돼지 잡아 큰 잔치를 열더라고. 가만히 술잔을 기울이며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는데 아, 글쎄 고려를 엎을 수도 있다는 속내를 은근히 비친 거야. 정중부나 최충헌이 또 나오는구나 싶어 깜짝 놀랐지만 뭐, 입을 다물었지.”“그래요? 난 그이가 여진족 장수라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형님. 참말로 그이가 유방 같은 호걸입니까? 기껏 거사를 치르고 난 뒤 우릴 배신하지는 않을까요?”“에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하여튼 자네가 찾는 사람이 고려의 유방이라면 그이는 틀림없는 이성계 장군이야.”***

아버지 정도전은 정몽주와 둘도 없는 평생지기셨다. 드디어 아버지는 날개를 펴고 함흥막사로 이성계 장군을 찾아가셨다.사실 이 당시 아버지의 신분은 유배 뒤 바람처럼 떠도는 나그네에 불과했다. 다만 가슴에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담고 있는 나그네였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정몽주밖에 없었다. 이성계 장군도 야인으로 사는 아버지 정도전을 만나고 싶어 만난 게 아니라 자신의 종사관으로 복무했던 정몽주 체면을 봐서 만나준 것이지. 어쨌든 정몽주의 명자를 들고 간 아버지를 이성계 장군은 기꺼이 환대하셨다. 아버지는 심지가 깊고 바위처럼 묵직한 이성계 장군을 만나자마자 “아, 내가 찾던 그 유방이로구나.” 하고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이성계 장군은 참말이지 유방 못지않게 인품이 좋아 휘하 장수들이 그를 아비처럼, 형처럼 따르고 있었다. 유방이 히죽히죽 사람만 좋았던 것에 비해 이성계는 눈매가 날카로운 백전백승의 걸출한 장수였다. 게다가 은근히 역모를 꿈꾸던 이성계도 조정 안팎을 잘 아는 아버지와 정몽주 같은 신진세력이 필요했던 거야. 아버지와 이성계 장군은 만나자마자 곧바로 의기투합했지.그렇게 하여 두 분은 비밀리에 군사를 기르면서 송골매처럼 때를 보았지. 그 뒤로도 아버지는 함흥을 몇 번이나 더 찾아갔다. 그러다 위화도 회군을 벌여 개경을 들이친 거고.아, 명나라를 치러 갔던 이성계 장군이 군대를 휘몰아 개경으로 밀어닥치는데, 개는 짖지 닭은 날아다니지 저잣거리는 온통 난리였다. 거사를 성공시킨 뒤 아버지는 으뜸에 서셨다. 왕을 갈아치우고, 또 갈아치우면서 이성계 장군과 아버지는 고려 정사를 마음대로 처결하셨다.이 무렵 아버지와 정몽주는 그야말로 동지 중의 동지로서 몽골장수 이성계를 끌어들여 150여 년간 시궁창처럼 흘러오던 고려왕실의 원나라 핏줄을 과감히 잘라 버린 분들이시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분은 모든 면에서 의기투합했다. 겨우 아홉 살짜리 창왕마저 혈통이 의심스럽다며 곰 같은 순진한 왕족 왕요(王瑤)를 데려다 임금(공양왕)으로 삼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사단이 나기 시작했다. 금이 가기 시작한 거지.

1년 전에 두 분의 마음은 아무리 따져도 터럭만큼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고, 한마음이었다. 솔직히 말해 선악을 가리지 않고 한편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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