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1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아버지의 길
이재익 지음
황소북스 / 2011년 10월 / 344쪽 / 12,800원
피리 부는 사나이
1938년 9월. 조선 신의주. 남자는 아들과 함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누워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길수. 아들 건우의 목에 팔베개를 해주고 있던 길수는 나무 피리를 꺼내 <고향의 봄>을 불었다. 이제 곧 생일을 앞둔 아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길수는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오직 우리 둘뿐이구나. 미안해.”
같은 시간 만주 라오닝 부근에서는 일본군들에게 ‘붉은 여우’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월화가 동지들을 이끌고 이동 중인 일본군을 기습하기 위해 산속에 매복하고 있었다. 동북인민항일연군에 소속되어 남자 동지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그동안 월화는 전사로 다시 태어났다. 조선혁명군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항일투사 양세봉 사령관이 1934년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뒤 뿔뿔이 흩어졌던 잔류 병력들이 동북인민항일연군으로 흡수되었던 것이다.아시아대륙을 뒤흔든 전쟁의 발단은 작은 해프닝에서 비롯되었다. 1937년 7월 7일 베이징 교외 루거우차오 다리를 사이에 놓고 훈련 중이던 중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우발적인 충돌이 일어났다. 일본은 8월 8일 베이징으로 군대를 파견했고 폭격기로 난징을 무차별 폭격하였다. 그렇게 막을 올린 중일전쟁은 군국주의에 취해 있던 일본인들의 광기를 단숨에 응집시켰고 결국 난징 대학살로 이어졌다. 일본 본토에서는 국민총동원령을 내리고 중일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불렀다. 본토의 징집 분위기는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으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처음에는 설득과 속임수로 시작한 징집 방식이 점차 강제 징용으로 바뀌었다. 물론 일제의 프로파간다에 앞장서서 동참한 조선인도 있었다. 스기타 대위도 그중 한 명이었다. 평택 지역 유지의 서자였던 그는 동경으로 유학을 갔다가 군국주의에 전염되어 일본의 충실한 개가 되었다. 조선인이면서도 조선인을 경멸했던 그에게 전쟁은 진정한 일본인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황국 군인으로서 그의 첫 번째 임무는 조선인 징용이었다. 그러나 1938년 4월 일본 본토에서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 송출대상이 노무자에서 군인으로 바뀌었고 그는 징병열차를 감독하게 되었다. 징병열차는 경성에서 신의주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길수는 종일 대장간에서 일했다. 그러나 길수는 다른 일꾼들과는 달랐다. 다른 일꾼들은 틈만 나면 쪽잠을 자거나 노름을 하는 데 반해 길수는 신문이나 잡지를 어렵사리 구해서 읽었다. 대장간 주인 장씨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글을 읽느냐’고 묻자 길수는 ‘아들 녀석한테 바깥소식을 전해주려고요’라고 대답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길수는 수수께끼 같은 남자였다. 길수가 마을로 들어온 것은 3년 전이었다. 아내도 없이, 어린 아들과 함께. 길수는 허드렛일을 하며 아들을 키웠다. 아들 건우는 착하고 의젓했다.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아빠를 위해 밥도 짓고 옥수수도 찔 줄 알았다.징병열차가 역을 거칠 때마다 돈을 받고 징병자들을 빼돌려주는 장사를 해왔던 스기타는 징병인원이 당초 목표보다 부족하자 신의주에 도착했을 때 일본도를 빼서 면장의 턱에 갖다 대며 소리쳤다.“지금은 전시요. 지금 만주로 보내야 할 병사가 여럿 더 필요하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마을에서 충당해야 하니 협조하시오.” 스기타는 곧바로 주재소에서 준비한 트럭에 면장과 함께 올라탔다. 트럭이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달릴 때 스기타가 턱짓으로 누군가를 가리키며 물었다.“저자는 누군가?”
“대장간에서 일하는 김길수라는 사람입니다. 성품이 착하고 곧은 사람인데….”
길수 앞에 트럭이 멈춰 섰다. 스기타는 오늘이 아들 생일이라며 반항하는 길수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순사들이 길수를 트럭에 태우려고 일으켜 세웠을 때 길수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면장을 발견하고 힘겹게 입을 열어 ‘아빠는 꼭 돌아온다’고 건우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트럭은 길수를 태우고 떠났다.
기차를 타는 사람들
콩나물시루 같은 기차 화물칸 안에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타고 있었다. 길수가 탄 기차는 이제 조선 땅을 벗어난 것 같았다. 길수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나무 피리를 꺼냈다. 아들의 생일선물로 주려고 했던 피리를 움켜쥐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건우야, 아빠는 반드시 돌아갈 거야.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길수는 가슴을 치고 손톱으로 손바닥을 후벼 팠다. 애달픈 심정과 같은 크기로 마음의 반대편에서 아내에 대한 불같은 증오가 타올랐다. 그에게 전부였던 사람이었다. 누이였고 친구였고 연인이었고 아내였다. 그러나 그녀는 떠났다. 아내가 떠나고 난 뒤 길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구걸까지 하며 온갖 일을 다 했다. 아내를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사랑했던 만큼 미움도 컸다. ‘모든 것이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결국 나와 건우마저 갈라놓은 거야. 당신은 악마야. 내 앞에 있다면 죽여버릴 거야.’월화는 관동군 지원병력을 태운 열차에 주로 조선인 징집병들이 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열차를 공격해 조선인 징집병을 독립군 병력으로 흡수하기로 결정한 뒤 철로에 폭약을 설치하고 주변에 매복했다. 역도 없는 곳에서 기차가 멈춰 섰다. 스기타가 소리쳤다. “적들이 철로에 폭약을 매설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여기서부터 사령부가 있는 신징까지는 80킬로미터다. 지금부터 도보로 간다.”기차는 오지 않았다. 바위산에 매복해 있던 월화는 작전이 실패했음을 감지하고 철수를 지시했다. 그때 멀리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음률이었다. 피리 소리가 그리움을 일깨웠다. 생각이 난다. 그녀가 사랑했던 한 남자가. 그리고 그와 함께 탄생시킨 사랑스러운 아이가.
노몬한의 가을
길수를 비롯한 조선인 징집병은 마침내 관동군 사령부에 도착했다. 스기타는 자신이 데리고 온 조선인들 300명으로 부대를 편성하여 23사단에 배속되었다. 매일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스기타는 특별 선물이라며 부대원들에게 조선 처녀들로 구성된 위안부들이 있는 위안소를 이용하도록 지시했다. 자신의 목표인 일본인 부대 지휘관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조선인 부대원들을 일본인 병사와 똑같이 만들어야 하고 그 목표를 위해서도 부대원들의 위안소 출입은 꼭 필요한 절차였다. 어느 날 길수는 징병기차 옆에 앉아 있던 박정대와 함께 보초를 서게 되었다. 정대는 자신의 슬픈 사랑과 군대에 지원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정대는 수원에 있는 정미소의 일꾼이었다. 그는 폭우가 내리던 날 우연히 급류에 휩쓸려 위험에 처해 있던 명선을 구해주게 된다. 양조장을 운영하던 윤 대감의 딸 명선은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동경 유학을 허락해주는 조건으로 총독부에 근무하는 요시다 대위와 정혼을 한 사이였다. 소학교 교사이자 신여성이었던 명선은 순박한 정대에 이끌려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을 공공연하게 표현했다.
노몬한의 겨울
대륙의 겨울은 가혹했다. 12월로 넘어가면서 기지 전체가 얼어붙었다. 추위 때문에 훈련이 줄어들어 내무반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대원들 간의 갈등도 많아졌고, 부대원 사이에서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작용했다. 월화 또한 혹한기를 나기 위해 기지에서 내려와 중국인 마을에서 방을 얻어 지내고 있었다. 겨우 몸 하나를 눕히면 그만인 작은 방에서 월화는 품에 간직한 작은 사진을 꺼냈다. 남편과 아이가 생각날 때마다 보는 사진이었다. 손바닥 반 크기의 사진은 8년 전 찍은 결혼사진이었다. 신랑신부가 낡은 군복을 입고 무기고 앞에서 혼례를 올리는 사진이었다. 그 혼례가 있기까지는 조선혁명군의 전설적인 사령관 양세봉의 역할이 컸다. 길수와 월화는 모두 고아로 어릴 때부터 남의 집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처지였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서로를 챙겨주며 의지했고, 소년 소녀에서 남자와 여자로 자라는 과정도 함께했다. 길수가 스물한 살, 월화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두 사람은 친일파 주인의 잔악함에 몸서리를 치며 일하던 농장을 뛰쳐나와 무작정 독립군 단체인 정의부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양세봉 대장을 만났다. 처음에 양 대장은 스무 살 처녀가 남자도 하기 힘든 독립운동을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월화는 누구보다도 씩씩하게 임무를 수행해냈다. 월화는 양 대장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면서 고아의 설움을 떨칠 수 있었고 뒤늦게 얻은 아버지이기에 기필코 효를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힘든 무장투쟁 속에서도 길수와 월화는 사랑을 키워나갔고 월화가 임신을 하게 되자 길수는 월화에게 청혼했다. 양 대장은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대원들을 불러 모아 무기고 앞에서 기념촬영으로 혼례를 대신하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양 대장은 두 사람에게 이제 조선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유는 우리 조국의 번영을 위해서네. 우리의 투쟁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의 미래야. 월화는 우리의 미래를 품고 있어.”그렇게 길수와 월화는 만주를 떠나 평양 외곽의 토막촌에 자리를 잡았다. 길수는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해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월화는 마침내 건강한 사내 아기를 낳았다. 길수는 굳세게 크라는 마음을 담아 건우(健旴)라고 이름 지었다. 어쩌면 아이의 험난한 운명을 예견한 이름이었을까?길수와 월화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신출귀몰한 활약으로 일본 관동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건우가 다섯 살 되던 해 양세봉을 보좌했던 옛 동지가 길수와 월화의 거처를 찾아왔다. 그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며 양 대장이 일본 스파이의 계략에 걸려 죽임을 당했고 일본군은 양 대장의 목을 베어 시가지에 내걸었다는 비보를 전했다. 그리고 며칠 후 월화는 길수에게 양 대장의 복수를 위해 만주로 가겠다고 말했다.“우리 둘 중 한 명은 가야 하는데 당신은 가지 않을 테니까 내가 가겠어요.”
“왜 가야만 하지?”
“당신도 알잖아요. 둘 중 하나는 떠나야 한다는 걸.”
“아니 몰라. 나는 우리 건우보다 더 중요한 명분을 생각할 수 없어.”
“당신 마음 이해해요. 저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요. 저를 욕해도 좋아요. 하지만 우리 사랑만큼은 해치지 말아요.”“개 같은 년. 가버려. 난 이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그렇게 조선 땅을 떠나온 지 벌써 몇 년째였다. ‘건우는 이제 아홉 살 소년이 되었겠지. 엄마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며칠 후 월화는 심복인 불곰을 만났다. 불곰 옆에는 거지꼴의 사내가 서 있었다. 23사단에서 탈영한 조선인 임판석은 월화의 부대에 투항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판석은 훈련 나온 일본군을 기습해 일본군 대위와 하사관들 몇 명만 해치우면 중대 하나를 통째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월화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노몬한의 봄
3월이 되었다. 그러나 살갗에 와 닿는 공기의 온도는 여전히 찼다. 조선인 병사들에 대해 스기타는 더욱 잔악해졌다. 얼마 전 연병장에서 스기타에게 구타를 당할 때 길수는 그의 눈에서 광기에 찬 살기를 확인했다. 마침내 길수는 탈영하기로 결심했다. 탈영의 성공 확률은 십 분의 일도 안 되었지만 여기서 살아남을 확률보다는 높았다. 구타로 멍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마자 길수는 체력 단련을 시작했다.어느 날 밤 길수는 오랜만에 정대와 함께 보초를 서게 되었다. 정대는 명선 아씨와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마저 들려주었다. 정대와 명선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다. 둘은 종종 산으로 강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기분을 아늑하게 만드는 들꽃 향기 속에서 뒹굴고 속삭이고 노래했다. 어쩌면 인생에 단 한 번뿐일 반짝이는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명선 아씨와 정미소 정대가 눈이 맞았다는 소문은 금방 읍내에 퍼졌다. 어느 날 명선의 정혼남 요시다 대위가 명선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로 찾아왔다. 명선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버님이 약조하신 혼사 이야기는 없었던 걸로 하겠습니다. 동경 유학도 안 갈 거예요.”
“그런 중요한 일을 명선 씨 마음대로 결정한단 말이오?”
“그럼 누가 결정하나요. 저의 결혼과 유학에 관한 일을요?”
갑자기 요시다의 손이 명선의 머리채를 확 낚아챘다.
“주제를 모르고 까부는 조센징 년. 니 처지를 깨닫게 해주마.”
며칠 후 윤 대감은 독립운동 군자금을 제공했다는 죄목으로 순사들에 의해 끌려갔고 곧이어 사복 청년들이 기름통을 들고 와 양조장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양조장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을 발견한 정대는 양조장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거센 불길에 타오르고 있는 양조장 안쪽의 집으로 뛰어든 정대는 안방에서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명선을 발견했다. 정대는 명선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말했으나 명선은 요시다가 밤에 찾아와 부모님의 안위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로 했다며 자신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조장은 이제 잿더미로 변했고 죽음의 협박을 받은 식솔들은 모두 떠났다. 그날 밤 폐허가 된 안방에 홀로 앉아 있는 명선을 향해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요시다였다.명선은 요시다의 바짓단을 잡고 부모님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요시다는 “이제 부모님의 운명은 너의 효심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명선의 저고리 옷고름을 풀었다. 요시다가 허리띠를 풀고 명선을 범하려고 할 때 명선은 발로 그를 걷어찼다. 화가 난 요시다가 명선에게 달려드는 순간 뭔가 그의 등에 꽂혔다. 잘 갈린 낫이었다. 정대는 미친 사람처럼 낫을 휘둘렀고 마침내 요시다의 목을 베어버렸다. 정대는 요시다의 시체를 리어카에 싣고 명선과 함께 양조장을 나와 강으로 가서 시체에 돌을 묶어 강에 빠뜨렸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은 집에 다시 불을 지르고 난 뒤 마을 뒷산으로 피신했다. 이제 날이 밝으면 어떤 일이 닥칠지 몰랐다. 두 사람은 계곡의 물에 몸을 담그고 서로의 몸에 물을 끼얹어 주었다. 명선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정대는 명선의 마음을 진정시킨 뒤 자신은 조선 땅을 떠나 있다가 이삼 년 후에 돌아오겠다고 말했다.“제가 떠나야 명선 씨가 무사할 수 있어요. 수사관들이 물으면 저와는 헤어졌다고 말하세요. 반드시 트럭을 몰고 명선 씨를 태우러 오겠습니다.”“그때는 신랑각시가 되어 살아요. 저를 잊으면 안 되어요.” 명선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정대의 슬픈 사연을 듣고 난 길수 역시 그동안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을 정대에게 털어놓았다.
노몬한의 여름
날씨가 부쩍 더워졌다. 구보를 마치고 온 부대원들이 쉬고 있는데 내무반장 격인 짜즈(째즈보이)가 다급하게 들어오며 소리쳤다. “전투가 벌어졌다. 소련놈들과의 전쟁이다. 다들 군장을 꾸리고 대기하라는 명령이다.” 23사단 기지로 온 지 6개월 만이었다. 노몬한 전투라고 일컬어지는 처절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노몬한’이란 한자식 표현으로 노(소련), 몬(몽골) 간의 국경선 일대의 벌판을 지칭한다. 5월 12일 노몬한 지역에서 외몽골군과 관동군이 충돌했고 외몽골군과 상호원조조약을 맺은 소련군이 개입해 결국 관동군과 소련군의 전투로 이어졌다. 전쟁 소식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짜보였다. 그는 돈을 벌어 경성에서 레코드 취입을 하기 위해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그런데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짜보의 불안을 달래주는 유일한 존재는 위안부 하루꼬였다. 그녀는 벙어리였다. 하얀 피부에 새까만 머릿결을 가진 하루꼬는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매일 거친 군인들의 정액을 받아내는 생활에 몸이 많이 상했지만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은 아직 고갈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일본군들은 하루꼬가 벙어리임을 알고 담뱃불로 몸을 지지며 괴롭히곤 했다. 짜보는 이상하게 그녀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껴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곤 했다. 비상 대기 명령이 떨어진 6월 어느 날 짜보는 어쩌면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루꼬를 찾아가 전장으로 나가야만 하는 자신의 불안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참 동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하루꼬가 파리한 입술로 말했다. “죽지 말고 살아 돌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