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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혼

진광근 지음 | 책이있는마을
상혼

진광근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3년 9월 / 396쪽 / 13,800원





죽동궁 시절

싸늘한 시선이 사내의 얼굴에 떨어졌다. 어차피 한번 걸어야 할 승부였다. 그 정도 밑천이 아니면 시전을 휘어잡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고, 휘어잡을 수 없으면 끼어들어 봐야 비실비실 남의 돈이나 벌어 주게 된다는 걸 이미 간파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3만 원이었다.“자네, 3만 원이라고 했나?”

냉기가 툭툭 떨어졌다.

“예, 대감마님!”

“3만 원이면 얼마 전 덕수궁을 중건하는 데에 들인 돈이다. 그게 얼마나 큰돈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냐?”“알지만, 그런 허튼 일에는 넣지 않을 것입니다.”

이놈 보게? 민 대감은 잠시 병택을 바라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우홍(遇鴻) 민영익이 누구던가? 명성황후의 배경을 업고 한성판윤,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인물이 아니던가. 조선홍삼전매권이라는 막강한 이권을 쥐고 이룬 재력은 조선을 사고도 남을 만큼이라고도 했다. 그런 민영익을 앞에 두고 3만 원을 빌려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사내의 머리에 지난 7년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양주에서 경성까지는 걸어서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리다. 어머니와 동네 친지들의 배웅을 받고 22년 동안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떠나 경성으로 떠나는 병택의 걸음걸이는 나는 듯이 가벼웠다. 병택은 외숙부 최상기의 부름으로 죽동궁 민영익 대감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병택이 할 일은 민 대감의 행차를 호위하는 호종 일이었다. 호종은 경호를 맡는 힘깨나 쓰는 별장을 말한다. 아무런 기반이 없던 병택을 민영익의 호종으로 들인 것으로 보아 최상기에 대한 민대감의 신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묘년(1879년) 동짓달, 반상(班常)의 구별이 희미해진 세상이었다. 민대감의 호위무사로 일하면서도 병택은 짬이 나면 한시도 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을 때는 시선을 허공에 던진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기도 했다. 며칠 전 민 대감이 손님들 앞에서 보여 준 총의 위력을 얼결에 훔쳐보고는 그만 기가 질렸다. 힘으로는 안 되는 세상이다. 권력은 출신이 미천해서 안 되고 공부를 해도 역시 밑받침이 없으면 소용없다. 그렇다면 뜻을 펼치는 데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돈이 있어야겠다.

처음 고향을 떠나 올 때, 억지 결혼까지 하면서 경성을 원했던 것은 사내로 태어나서 시골구석에 처박혀 흙이나 일구다가 죽기 싫어서였다. 그런데 막상 올라와서 보니 돈도 없고 신분도 없으니 헤어날 길이 없다. 돈을 버는 일만이 세상을 사내답게 인간답게 살아 보는 길이다. 그리고 경성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버는 일에는 장사가 최고라는 걸 깨달았다. 호종하는 일에 신이 날 리가 없다. 희망이 없으니 할 것이라고는 책을 읽는 일뿐이었다. 행수에게 부탁하거나 몸종들에게 부탁해서 버려지는 책이라도 얻어다가 읽고 또 읽었다. 딱히 무엇에 쓰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무식해서 기회를 잡지 못하기는 싫어서 책에 매달렸다.

병택이 민대감의 호위무사로 밥을 축낸 지 4년 4개월 춘삼월 삼짇날, 그동안 병택을 면밀히 지켜봐 왔던 민대감은 병택을 불러 재정보좌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대감은 병택을 외거로 내보내 독립시키기로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죽동궁의 재무 일을 보기에는 아까운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 처리에 있어서는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았고 일을 대하는 태도 역시 열정적이었다. 광산왕으로 이름을 떨친 이용익 또한 민대감의 후광을 업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기 때문에 민대감을 후원하는 세력 중의 하나가 되었다. 병택 역시 언젠가는 이용익과 같이 쓸 재목임을 민대감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늦은 점심을 먹은 민대감은 누마루로 병택을 불러올렸다. 예전 이용익의 뒷배로 보아 준 금액이 3천 원이었다. 작은 금액이 아니다. 그런데 병택이 요구한 금액은 도가 지나쳤다. 이렇듯 당당한 아랫것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방자하지 않은가? 슬며시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미운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한성판윤에 이조, 병조판서까지 조정의 중책을 맡아 보지 않은 게 없고, 조선홍삼전매권을 가지고 있어서 부와 권세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민영익보다 더 배포가 큰 놈이 앞에 앉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담보는 무엇이냐?”

“소인의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어허……, 고얀지고! 3만 원이 큰돈임에는 틀림이 없다만 그렇다고 생때같은 목숨을 걸어? 너 같은 나부랭이 목숨이 나에게 무슨 소용 있어 담보로 잡겠느냐!” 노골적인 무시였다. 3만 원을 담보할 수 있는 담보물이 있다면 민대감에게 돈을 빌릴 필요는 없다. 담보물이 없으니 바칠 것이 목숨밖에 더 있겠는가? 병택은 눈을 들어 민대감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소인은 조선 최고의 상인이 되고 싶습니다.”

민대감은 짐짓 노기 어린 표정으로 큰기침을 내뱉으며 북한산을 바라보았다. 병택을 처음 보았을 때 민대감은 병택의 눈에 서린 원초적 열정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이제 민대감은 그 열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노기를 띤 척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 그것이었구나! 네놈 눈에 숨겨진 알 수 없던 열정이 바로 그것이었구나!’



죽동궁을 나온 병택은 임시거처로 수은동에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단출한 초가 하나를 사들였다. 그리고 죽동궁에서 함께 일했던 오상은, 장춘재, 백은수 세 사람을 불러다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독백처럼 내뱉었다.“나는 조선 최고의 상인이 될 것이야,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높은 곳까지 올라가 볼 것이야.”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조선 최고의 상인’이라는 말이 세 사내의 머릿속에서 한참을 맴돌았다.“내, 민대감 댁에서부터 자네들을 눈여겨봐 두었네. 조선의 상권을 틀어쥐고 싶네! 나를 도와주게들…….”병택의 말이 끝났을 무렵 세 명의 사내들은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병택의 배포와 진정성에 신뢰와 동경을 넘어 존경심마저 생겨났기 때문이다.

병택이 공물조달업으로 빠른 시일 내에 상업의 기반을 마련한 데에는 민대감의 도움이 거의 절대적이었다. 민대감의 후원은 결국 민대감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나 병택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단시일 내에 괄목할 성장을 이룩했던 것이다. 당시 민대감은 김옥균 등 개화파와 대립하는 양상이었는데, 개화파 청년정치가 중 일부가 민영익 제거 음모를 꾸민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러한 부분은 공조직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기에 비밀스런 사조직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점이기도 했다. 병택은 그러한 민대감의 의도와 심중을 정확히 읽었고, 민영익이라는 거목을 배경으로 단시일에 큰돈을 번 것은 사실이었으나 당시 병택이 이룬 재력을 후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황당한 조선 놈

“뭐?”

스가사와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스가사와라는 눈앞에 진땀을 흘리고 서 있는 키 작은 상인을 노려보았다. 이름이 마쓰오(松尾)라고 했던가. 본영의 구보다 사령관이 천거하기에 믿고 데려다 부렸더니.“지금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가? 반도 땅에 소가죽이 없다니? 반도 놈들은 소고기 대신 소가죽을 먹기라도 한다는 말인가?”스가사와라는 언제나 조선을 반도라고 불렀다. 아직 완전히 삼켜 버리지는 못했지만, 조선을 일개 국가로 불러 주고 싶지는 않았다. “소 내장을 처먹는 놈들이니 가죽까지 먹을 수도…….”

마쓰오는 움츠러드는 어깨를 간신히 고정시키고 양 주먹을 옆구리에 붙인 채 진땀을 흘렸다.

쾅! 스가사와라의 주먹이 탁자를 내려쳤다. 이자가 날 놀리나. 아무리 돈이 중한 세상이라지만, 일개 상인이 황국의 장군 앞에서 헛소리를 하다니.“반도인들은 집집마다 소로 농사를 짓는데, 그럼 소라는 소는 죄다 잡아서 가죽을 벗겨 먹었나?”“그, 그게 아니라…….”

마쓰오는 거의 죽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갑자기……, 소가죽들이 몽땅 사라져 버렸는데……, 그게 어느 상인 놈 하나가 사 갔다고 합니다.”스가사와라의 눈썹이 꿈틀했다.

“사? 얼마나?”



마쓰오는 더듬더듬 지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요 며칠간 일어났던 일이다. 아무리 되씹어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악몽을 꾸기라도 한 듯한 며칠이었다. 처음 소가죽을 모으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까짓 일이야 어려울 것이 없으니 자기에게 일이 떨어졌다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옳거니. 내가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지 보여 주자. 그렇게 해서 조선 땅에서 제일 일 잘하는 상인으로 도장을 콱 찍어 놓아야겠다. 신이 나서 나섰으나,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시장 안을 뒤지고 다니고 먼저 나와 있던 일진회를 통해 봐도 도무지 소가죽을 구할 수가 없었다. 구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새로 도살하는 곳에 가도 이미 조센징 한 놈이 몽땅 예약을 해 놓아서 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도대체 조선 놈이 소가죽을 몽땅 사다가 무엇에 쓰려고 한다는 말인가. 소가죽은 마구와 장화와 요대에 사용할 것인데 조선이 무슨 대군이라도 조직할 작정인가. 어디에도 그런 정보는 없었다. 며칠을 허송한 후에야 그 조선 놈을 찾아냈다. 찾아내고 보니 그 조선 놈은 일개 상인에 불과했다. 일개 상인이지만 눈빛이 보통이 아니고 태도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



1894년 8월에 시작된 청일전쟁은 일본이 황해에서 청국 북양함대 5척을 격침시킴으로써 일본에 유리한 형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났고, 동학군은 재차 봉기하여 일본인 상인을 살해하고 일군과 소규모의 접전을 벌이는 등 조선팔도가 전쟁과 소요로 들끓고 있었다. 광풍이 휘몰아치는 격동의 시기에는 돈 역시 벼락같이 휘몰아치는 법이다. 전쟁의 이면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던 병택이 어느 날 수하들을 불러 모았다. “소가죽을 끌어모아라!”

“예? 소가죽이라굽쇼?”

병택을 중심으로 양쪽 의자에 앉아 있던 장춘재와 백은수는 의아한 시선으로 병택을 바라보았다.“그래, 소가죽이라고 하였다. 이번 일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나와 너희 둘 외에 집안사람들도 알아서는 안 될 일이다. 각별히 유념하여라…….” 은근하였으나 비장한 말투였다.



을미년(1895년) 2월 12일 청(淸)의 북양함대 사령관 정여창이 마침내 일본함대에 항복했다. 전쟁이 끝난 그해 여름 기록적인 무더위가 계속되었다. 놈을 처음 만난 곳은 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기생집이었다. 기생집 안채에 주인인 듯한 기생을 떡하니 끼고 앉아서 마늘 냄새 나는 김치에 막걸리를 놓고 빈둥대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서른이나 되었을까. 얼굴은 동그스름했지만 눈매가 날카로웠고, 덩치는 작았지만 다부져 보였다. 놈은 마쓰오가 들어서자 비스듬히 누워 있다가 상체를 바로 일으키며 싱긋 웃었다. 마치 기다리던 먹잇감을 맞이하는 태도여서 속이 뒤틀어졌다. 천박한 자식. 몇 푼 던져 주고 가야겠구나.“소가죽이 필요하시다고요?”

거만하게 물어 와서 같이 거만하게 응대했다.

“몇 축 사러 다니는 건 아니고.”

“얼마나 사실 수 있소?”

“가진 게 얼마인가?”

건방진 놈은 스스로 답하지 않고 밖에 대고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창고지기 거기 있나?”

그러자 장지문이 열리면서 늙수그레한 노인 하나가 문을 조금 열고 대답했다.

“네, 사장님.”

“우리가 몇 축이나 가지고 있나?”

“파악 중이라 자세히는 모르오나, 십이만 축이 조금 넘는 것 같습니다.”

“십이만 축?”

마쓰오는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러 버렸다.

“방금 십이만 축이라 했소?”

그제야 마쓰오는 자신이 왜 소가죽을 구하지 못했는지를 확실하게 알았다. 이 여우 같은 놈이 어디서 정보를 듣고 미리 소가죽을 몽땅 매입해 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조선 땅의 소가죽을 몽땅 모으려면 적어도 한 해, 아무리 서둘러도 반년은 걸렸을 터인데. 도대체 이놈은 우리 황국 군대에 소가죽이 대량으로 필요할 때가 온다는 걸 어찌 알았다는 말인가.“좋소. 내가 다 구입하리다.”

“저희 창고에 있는 걸 전부 다 말입니까?”

“전부 다 사리다.”

이 정도면 놀라겠지 싶었다. 시장에서 한 축에 십 전인데 십이만 축을 다 사면 일만 이천 원이라는 거금이 생긴다. 이 정도 큰 거래인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웃기는 놈은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 태연히 젓가락으로 김치를 뒤적였다.

“한 축에 얼마에 사시겠습니까?”

“뭐 끌어모은 공도 있고 하니까 한 축에 이십 전 드리지.”

시중 가격이 십 전이니 두 배를 준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이제 놈도 태도를 바꿀 것이다. 그리고 횡재했다고 쾌재를 부르겠지. “농이 참 진하십니다.”

천박한 놈은 김치를 휘젓다 말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비스듬히 기대앉으면서 옆에 앉아 있던 나이 든 기생에게 고갯짓을 했다.“손님 나가신다. 모셔라.”

“아니? 이보시오. 이십 전이면 시중 가격의 두 배요, 두 배.”

마쓰오는 당황해서 따지고 들었지만 천박한 놈은 들은 체도 않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넋을 잃고 쳐다보는데 옆에서 기생이 일어나 문으로 가더니 장지문을 슬며시 밀어서 열었다. 나가라는 뜻이다.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아쉬움에 반문했다.“대체 얼마를 원하는 거요?”

천박한 놈이 흘끗 돌아보더니 한마디 내뱉는다.

“한 축에 이 원을 생각했소.”

마쓰오는 얼결에 목젖이 보일 만큼 입을 쫙 벌렸다. 이 원이라니. 도둑놈이 도둑질을 해도 적당히 정도껏 해야 하는 법이다. 스무 배라니. 더는 말도 붙이지 않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열심히 소가죽을 매입하러 다녔다. 웃돈을 얹어 주면서 흥정해도 이미 바닥난 소가죽을 구할 길은 없었다. 사방팔방을 뛰어다녀도 겨우 몇백 축을 구했을 뿐이다.

스가사와라 장군과 약속한 날짜는 바작바작 다가오는데 물량은 턱도 없었다. 달리 방법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빈손으로 가서 보고를 드릴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자신은 이제 끝장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작금의 시절에 군부의 눈 밖에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며칠을 보내니 살맛이 나지 않았다. 본토로 확 달아나 버릴까도 생각했다. 하루 한 끼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늘은 불려 나오게 되었다.

“한 놈이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

“무려 십이만 축이 넘게 다 쓸어 모아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달라든가?”

스가사와라 장군의 물음에 선뜻 말하지 못했다. 그런 액수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미친놈 소리나 듣고 쫓겨날 것 같다.“왜 말을 못하나? 가격도 알아보지 못하고 왔나?”

침을 꿀꺽 삼켰다. 여전히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가격이 높아도 어차피 구입해야 해. 이번 일의 중요성을 잘 알지 않나? 우리 일본은 이제 저 넓은 대륙을 향해 나아가야 하네. 그러려면 황국의 군대에 가죽 장비는 필수일세.”“그, 그야…….”

“꾸물대지 말게.”

급기야 장군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마쓰오는 고개를 팍 숙이고 옆구리에 붙인 주먹을 떨면서 간신히 말했다.“이 원씩 달라고 합니다.”

“뭐?”

스가사와라 장군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게 어느 황당한 조센징이냐? 감히 어디서 황국 군대를 상대로 코를 베려 들어? “그래서?”

“너무 황당해서 그냥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으음…….”

스가사와라는 자기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성질대로라면 당장 쫓아가서 요절을 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반도 놈들을 잘 달래서 물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본영의 지침이다. 아직은 완전히 삼키지 못했으니 참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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