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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로 가는 즐거움

현종 지음 | 공감
산사로 가는 즐거움

현종 지음

공감 / 2013년 9월 / 216쪽 / 14,000원









봄을 맞는 산사

현덕사 개원 이듬해 100여 그루나 심은 매실나무가 겨우 서너 그루만 남았다. 진주에서 이곳 강릉까지 온 것이라 기후 차이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 같다. 살아남은 몇 그루도 둥치만 굵어졌지 꽃을 못 피웠는데, 지난겨울 끝자락에 우연히 눈 속에서 수줍게 대여섯 송이의 매화 꽃망울이 보여 얼마나 반갑고 기특했던지…….

올해는 날이 풀리기도 전부터 매실나무에 문안을 했는데, 꽃망울이 많이 맺혀 있었다. 여태까지 꽃을 못 피운 것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것이었을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따스한 봄날을 시샘한 꽃샘추위와 춘설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꽃을 피우려 노력하는 매화나무가 안쓰러워 보였다.

어린 시절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 뒷산에 칡을 캐러 갔던 추억이 있다. 살이 없는 숫칡을 버리고 통통한 암칡을 흐르는 개울물에 씻어 먹었다. 단맛이 많이 나고 갈분도 많아 아이들의 봄 간식으로 최고였다. 요즘 절 주변 정리 작업을 하다가 칡뿌리가 나오면 그 맛이 그리워 먹어본다. 세월이 가면 입맛도 변한다는데, 칡뿌리 맛은 그때의 그 맛이다.

지난해 식목일에는 벌나무 50여 그루와 마가목 20여 그루를 사찰 주변에 심었다. 마가목은 잎이나 줄기 그리고 열매를 차로 달여 먹으면 좋고, 벌나무도 차나 약재로 최고란다. 그런데 칡이 얼마나 많고 번식이 왕성하던지 온 산을 칡넝쿨로 덮어버렸다. 애써 심어놓은 나무마다 칭칭 감고 올라가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고 가지를 부러뜨리는 아주 못된 나무다.

6월쯤이면 예쁜 보라색 칡꽃이 만발한다. 이때 칡은 꽃의 수정을 위해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려고 그 넓은 이파리를 접어 꽃을 드러내놓는다. 종족 번식을 위한, 자식을 위한 어버이의 지극한 사랑과 매한가지라 생각한다.

칡은 가시가 많은 엄나무나 참두릅, 찔레나무를 피해 유독 가시가 없는 벌나무나 마가목에 집중적으로 칡줄기를 감아놓았다. 칡도 생존을 위한 지혜가 있는 것이다. 내가 정성스레 심어놓은 마가목과 벌나무를 위해서는 잎이 나기 전에 칡넝쿨을 잘라 걷어내야 하는데, 벌나무와 마가목을 살리자고 죄 없는 칡을 마구 죽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소박하게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산중생활에서도 내 작은 욕심으로 부지불식간에 죄 없는 동식물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으니, 늘 조심해야 한다.

현덕사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사람들에 의해 죄 없이 죽어간 동물들, 식물들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오고 있다. 올해도 잊지 않고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사라져간 동식물들을 위한 천도재를 지낼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인 것이다. “모든 존재에는 불성이 있으며 서로 의지하여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릴 때 이 일은 의미 있는 행사임에 틀림없다.

이곳 강원도 산골은 가을은 빨리 오지만 봄은 아주 느리게 온다. 산에는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고 새순들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을 보면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동하고 저절로 대자연의 순리에 숙연해지고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여름



살아 있는 흙의 감미로움

지난 일요일 점심공양이 끝날 즈음이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거사님이 가족들과 함께 현덕사를 찾아왔다. 응당 공양을 하고 왔거니 생각했는데, 배가 고프다며 공양을 좀 달라고 했다. 다른 절 두 군데를 들렀다가 오는데, 그러잖아도 그 절에서 공양을 하고 가라는 것을 뿌리치고 왔단다.

거사님은 “이상하게도 부유하고 큰 절보다는 이렇게 소박하고 작은 절에서 공양을 해야 편안하고 밥맛이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내가 보기에는 별 반찬도 없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다. 가난한 현덕사를 찾는 사람들은 밥맛이 그렇게 좋다고들 한다. ‘뒤주 밑이 긁히면 밥맛이 더 난다’는 말이 있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손수 담그는 장과 산속에서 직접 키우는 채소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덕사는 소금강산 입구에 위치한 자그마한 산중의 절이다. 그래서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텃밭을 일굴 수 있다. 수박, 오이, 고구마, 옥수수 등 철 따라 나는 온갖 채소와 곡식,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종류의 채소와 곡식을 심는 것을 보고 가끔씩 거사님이나 보살님들이 “뭐 하려고 이렇게 많이 심으세요” 하고 묻기도 하고 가끔씩은 핀잔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딱히 다른 할 말이 없다. “저 혼자 많이 먹으려고 그럽니다” 하면서 웃고 만다.

도회지 사람들이나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의 소중함을 모를 것이다. 특히 맨발 맨손으로 느끼는 살아 있는 흙의 감미로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른 아침 산새들의 즐거운 지저귐을 들으며 맨발로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흙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며 사는 산중생활, 이것은 나만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

산사에서의 반찬이 뭐 특별한 게 있겠는가. 단지 현덕사의 공양상에는 항상 싱싱한 갖가지의 쌈채소가 오른다. 요즘에는 살이 단단하게 오른 풋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먹으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쌈 잔치는 봄부터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까지 계속될 뿐만 아니라, 눈이 하얗게 쌓인 한겨울에도 만날 수 있다. 하얀 눈 때문에 더 푸르게 보이는 싱싱한 배추를 차가운 계곡 물에 씻어먹는 맛은 정말 일품이다. 가을이면 속이 꽉꽉 찬 배추로 김장을 한다. 속은 안 차고 잎사귀만 무성하게 자란 배추는 따로 뽑아뒀다가 땅을 조금 파서 묻은 후 거적을 덮어놓는다. 그러면 이른 봄까지 싱싱함이 그대로다.

이곳에서는 밭을 일구어 씨앗을 뿌리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해 질 녘 뻐꾸기 소리를 벗 삼는다. 산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를 때면 샘물을 호스로 연결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채소밭에 물을 주며 수행자의 마음은 편안하고 넉넉해진다.



가을



산사와 원두커피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강릉은 언젠가부터 커피의 도시가 되었다. 커피는 도시문화의 산물이다. 언뜻 생각하면 문명의 때를 덜 입은 강원도의 깊은 산중과 커피는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금 강릉은 커피의 고장이라 불린다. 재작년부터는 강릉에서 커피 축제까지 열리고 있다. 강릉은 커피를 향유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경관 좋은 바다와 산, 그리고 풍류를 즐기는 오랜 문화가 서양에서 들어온 그윽한 커피향과 만났으니, 이보다 좋은 궁합이 어디 있을까.

그렇다 해도, 서양의 커피와 지극히 동양적인 사찰을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스님들은 수행을 할 때 차를 마신다. 차는 수행 중에 정신을 맑게 하고, 잠시 마음을 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스님들이 찻잔을 기울일 때 서양의 수행자들은 커피를 향유해왔다. 이렇게 보면 산사와 커피의 관계가 실상 그렇게 멀지만은 않다. 커피와 차는 모두 수행자의 곁을 지키는 고마운 음료인 것이다.

예전에 나는 커피를 즐기지 않았다. 그러나 산사를 찾은 신도들이 커피를 좋아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커피향도 나누게 되었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원두커피를 접한 후, 나는 그만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우선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긴 시간의 토론에도 피곤함을 잊게 된다. 배우고 정진하는 수행자로서 커피는 참으로 고마운 음료가 아닐 수 없다. 또 커피가 주는 즐거움은 어떤가. 커피는 부드러운 쓴맛과 신맛, 그리고 원두 고유의 매혹적인 아로마를 지녔다. 기분 좋은 친구같이 은근한 멋이 있다. 이 정도면 산사의 커피향이 반가울 만도 하지 않은가.

올여름 강릉은 유난히도 비가 잦았다. 여름비 내리던 한 날 현덕사에서는 불자들을 초대해 갖가지 커피를 내려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우리는 커피를 마시기 전에 ‘하와이언 코나’라는 귀한 커피를 부처님께 공양했다. 핸드드립으로 정성들여 내린 커피의 그윽한 양이 먼저 대웅전을 가득 채웠다. 아마도 부처님께 커피 공양을 올리는 것은 우리 현덕사가 처음이 아닐까. 안개비 자욱하던 현덕사 경내에는 커피향내가 진하게 퍼져 나갔고, 커피 맛 또한 더욱 깊어졌다. 이렇게 산사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모두들 그윽한 커피향에 취해 어느 때보다 더욱 진솔하고 격의 없는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현덕사의 커피 자리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는 커피를 전통 다완에 마신다. 두 손으로 다완을 감싸고 커피를 마시면 서양식 커피잔으로 홀짝이는 것보다 커피의 풍미가 더 깊이 느껴진다. 이런 ‘현덕사식 커피 마시기’를 접하면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자연스레 다완으로 커피를 즐기게 된다.

앞으로도 현덕사를 찾는 불자들에게 우리의 전통차는 물론이고, 세상에서 가장 품질 좋은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 이유는 하나다. 신도들과 격의 없이 편하게 소통하고 싶어서다.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나누는 데 전통차면 어떻고, 또 커피면 어떤가.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지는 가을이 오고 있다.

감나무와 다람쥐

가을이다. 따가운 햇살에 과일이 영글어가는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다. 시내 나가는 길가에 작은 사과밭이 있다. 나는 붉은색이 감도는 사과꽃이 피던 봄부터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겨울까지 사과나무를 지켜보았다. 눈 내린 다음 날은 하얗게 핀 눈꽃도 보았다. 무더운 여름도 혹한의 겨울도 이겨낸 나무다. 올가을에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예쁘고 고운 빛으로 붉게 익어가며 자태를 자랑한다. 사과가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이른 봄부터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를 해서 꽃이 피고, 벌과 나비들이 꽃가루를 부지런히 옮긴 수고로움으로 지금의 사과가 결실을 맺은 것이리라. 어디, 사과나무만 그렇겠는가.

강원도 산골에 있는 현덕사 도량에도 감나무 몇 그루가 나와 함께 산다. 가을이면 제일 먼저 감잎이 예쁘게 물들고 붉게 익은 감이 파란 가을 하늘을 이고 있다. 시골 절을 찾아온 도시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마치 그림같이 아름답다고 한다. 잘 익은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고, 빈 항아리에 넣어 겨우내 먹을 홍시를 만들기도 한다. 토종 납작감이라 보기에는 볼품이 없어도 곶감이나 홍시 맛이 그렇게 달고 좋을 수가 없다. 홍시에 흰 가래떡이라도 찍어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그러나 이 맛있는 홍시도 몇 년 후에는 못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양봉농가의 토종벌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전염병 때문이라고 한다. 지구의 변화가 이곳 현덕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벌과 나비 같은 곤충들이 없어진다면 수분은 이뤄지지 않은 채 꽃만 폈다 져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니 자연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도 ‘개발’이란 미명을 내세워 집채만 한 중장비로 전국의 하천이나 산을 깎고 파고 메우는 온갖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니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훨씬 더 안전하고 행복하다.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겨울 양식을 모으려고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귀여운 다람쥐를 바라본 적이 있다. 다행히 올해는 밤도 도토리도 풍년이라, 양 볼 가득 열매를 물고 가는 다람쥐의 모습이 한없이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언젠가 사람들의 탐욕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먹을거리가 없어지면 불쌍해서 어찌 볼까 걱정이다.

사실은 다람쥐보다 우리 걱정부터 먼저 해야 될 것 같다. 어느 해 김장철에 김장독을 묻으려고 땅을 파는데 그만 실수로 다람쥐의 보금자리를 건드린 적이 있다. 다람쥐는 가족을 이루어 공동생활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곳이 부처님이 계신 절 도량이어서 그런지 홀로 사는 ‘독신 다람쥐’였다. 도토리를 비롯해 온갖 열매와 씨앗의 껍질을 깨끗이 까서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게 작게 한 되나 되었다.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장만했는지 한 움큼 집어 먹고 싶을 만큼 맛있어 보였다. 만월산 다람쥐는 오늘도 땅속 깊숙이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부지런히 가을을 수확하고 있을 것이다. 다람쥐가 계속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면 좋겠다.



겨울



작은 절의 겨울나기

겨울 100일 동안 수행 정진하는 동안거 결제 기간이다. 각자 주어진 여건에 따라 화두를 들고 곳곳에서 근기(자기에게 알맞은 수행능력)에 맞춰 정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렵게 수행허가를 받아내는 방부를 들여놓고도 사찰 사정상 못 가고 현덕사에서 안거하기로 했다. 절은 작지만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어야 하기에 김장도 하고 문풍지도 바르고 봄에 넣어두었던 난방기구도 꺼내 손봤다.

올해는 동치미가 유난히 맛있게 되었다. 우리 절에는 효부 효자가 유독 많은데, 한 효자가 우리 동치미 맛을 보더니만 조금 덜어 달라고 했다. 그 거사님의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고 계시는데, 맛보게 해드리고 싶어서란다. 얼마 후 힘든 투병생활로 입맛을 잃었던 어머님이 시원한 동치미를 잡수시고 입맛을 되찾으셨다 전했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달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 먹을 거 생각지 말고 많이 가져가라 하고 공양주 보살님에게 더 넉넉히 담그라 했다. 더 담글 재료가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보살님들 억척이 때론 효행의 밑거름이다. 다행히 잘 아는 사람이 무 농사를 짓고 있어 무청을 가져가라고 했다. 말리면 겨울 반찬으로 영양 많고 건강에 최고인 시래기를 말이다. 작은 차로 두 번을 실어다 다듬어 걸대에 널어놓았다. 다 마르기도 전에 가마솥에 푹푹 삶아 솜씨대로 만들어진 시래깃국이며 무침을 해내면 인기 최고다. 내친 김에 택배로 서울도 보내고 멀리 미국까지 보냈다. 줄 건 없고 시래기 한 움큼이 최고의 선물이다.

겨울 문턱까지 싱싱한 배추쌈을 먹어보려는 욕심으로 배추를 뽑지 않고 그냥 두었는데 그만 눈이 내려 하얗게 묻혔다. 배추는 무하고 달라서 추위에 강하긴 하지만 눈이 녹으면 바로 뽑아 신문지에 싸서 보일러실에 두어 귀한 분들이 오시면 흐르는 샘물에 깨끗이 씻어 공양을 올리려고 한다. 귀한 분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현덕사에 오시는 분이 그대로 내게는 귀한 분이시다.

올해는 특히 겨울 반찬거리를 많이 장만했다.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고추밭에서 싱싱한 고추 잎을 여러 날에 걸쳐 따서 말려놓았다. 그리고 풋고추는 밀가루를 묻혀 쪄서 말렸다. 며칠 전 멀리 이란에서 템플스테이 체험 온 커플이 있었는데, 바삭바삭 튀겨낸 고추튀김을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옆에 있던 나도 덩달아 입맛이 돌았다.

공양주 보살님의 남다른 손맛도 물론이거니와 현덕사의 반찬은 어느 사찰 못지않은 으뜸이라 자화자찬하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다. 공기 좋고 특히 음식 맛을 좌우하는 물맛이 좋아, 음식이 한층 더 맛있지 않나 생각한다. 현덕사의 찻물이나 식수뿐 아니라 허드렛물까지 전부 지하수도 계곡물도 아닌, 오대산 줄기 타고 내려온 만월산 중턱에서 샘솟는 샘물로 쓰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장작불을 때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커피 볶은 숯불에 고구마를 구워서 나눠 먹었다. 옛 시절이 저절로 떠오르며 굴뚝의 연기를 보고 싶어졌다. 언젠가는 우리 절에 아궁이를 만들어 불을 때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모두 행복해하였으면 좋겠다. 올 동안거는 우리 절에서 함께 사는 삽살개 흰둥이, 깜둥이와 하려 한다. 지금도 그대로 감나무에 달려 얼다 녹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홍시를 산까치와 사이좋게 나눠 먹으면서 말이다.

부끄럽지 않을까

하심(下心, 자신을 낮추는 마음)과 인내(忍耐)로 행자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사미계를 받고 정식스님이 된다.(행자기간은 스님이 되기 전 거쳐야 하는 수행시기이고, 사미계는 정식스님이 되기 전 단계 수행과정이다.) 남자는 이후에 정식스님이 되는 비구계를 받고 여자는 비구니계를 받는다.

내가 사미계를 받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왜냐하면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하고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팔뚝 위에 물 먹인 굵은 심지를 올려놓고 불을 붙여 살갗이 타는 고통을 참으며 참회진언을 외우며 오직 부처님의 제자로 청정하게 살아가겠다고 굳게 맹세했었다. 깨끗하게 삭발한 머리를 만져보면서 마음속은 환희로 가득했었다. 회색 승복을 입은 모습을 남몰래 거울에 비춰보며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하지만 그런 순수한 신심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초라한 자존심만 남아 있다. 지금은 이 승복 입은 내 모습이 세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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