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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살아서 즐거운 나날들

원소영 지음 | 책이있는풍경
느리게 살아서 즐거운 나날들

원소영 지음

책이있는풍경 / 2013년 7월 / 344쪽 / 15,000원





봄편지 - 골목마다 이야기 피는 계절



웰컴 투 엑상프로방스 카니발

매년 4월, 프로방스의 작은 도시 엑상프로방스에서 화려한 카니발이 벌어진다. 그리스도 국가에서 금식을 해야 하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사흘에서 일주일에 걸쳐 마음껏 고기를 먹고 즐겁게 노는 행사가 바로 카니발이다. 원래는 가톨릭교회의 종교적인 행사였으나 지금은 화려하고 볼거리 가득한 축제로 변모했다.

그들 덕분에 우리가 신났다: 미라보 거리를 따라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앉아서 카니발 행렬을 볼 수 있는 자리는 이미 매진이었다. 우리는 거리를 따라 걸으며 이리저리 눈치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슬쩍 끼어 앉을 자리가 없을까 돌아다니다가 결국 포기하고, 대충 서서 볼 수 있는 자리를 골랐다. 그런데 그 자리가 명당이었다.

우리 앞에 앉은 젊은 커플이 쪽 소리 나게 키스를 하는 것이다. 하하, 즐거운 볼거리가 시작되려나 보다. 나는 가끔 이렇게 자유로운 사랑 표현이 부러워진다. 나잇값 못 한다고 흉봐도 할 수 없다. 점잖은 우리 정서로 볼 때 무분별한 애정 표현은 저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니까. 나도 노골적인 애정 표현은 싫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들의 자신감은 탐난다. 젊은 커플의 애정행각이 점점 짙어졌다. 카니발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네, 하면서도 괜히 부끄러워졌다. 슬쩍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데, 젊은 커플이 불쑥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갔다. 젊은 커플 덕분에 우리만 신났다. 우리는 얼른 그들이 앉았던 자리로 파고들었다.

코티용으로 물든 4월: 쿵쾅쿵쾅 신나는 음악과 함께 가장행렬이 시작되었다. 기괴한 옷차림을 한 마녀들이 음산한 춤을 추며 나타나자 기다리던 구경꾼들이 환호하며 알록달록 종이 꽃가루인 코티용을 뿌려댔다. 내 옆에 앉은 부부와 어린 딸아이도 열심히 꽃가루를 뿌리며 즐거워했다. 가만히 둘러보니 아이들의 옷차림이 범상치 않다. 백설공주 옷을 입은 여자아이, 꿀벌로 변신한 개구쟁이, 빨간 드레스에 악마 분장을 한 귀염둥이들이 카니발 행렬을 향해 꽃가루를 뿌려댔다. 가장행렬을 하는 사람들은 구경꾼을 향해, 구경꾼은 행렬을 향해 꽃가루를 뿌려주었다. 춤추는 마녀, 섹시한 마녀 그리고 예쁘고 귀여운 꼬마 마녀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행진하는 마녀들과 환호하는 구경꾼들 사이를 꽃가루가 날아다녔다. 알록달록한 꽃가루가 훨훨 날아 내 머리와 어깨 위에 사뿐사뿐 내려앉았다. 꽃가루들이 쌓이고, 카니발 행렬과 함께 거리는 꽃길이 되었다.

느리게 살아서 더 즐거운

시내로 나가는 길, 꼬마 마을버스를 탔다가 낭패를 보았다. 구시가지 골목길에서 승용차 한 대가 좁은 골목길을 막고 짐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굼벵이라도 삶아 먹었는지 짐을 내리고 올리는 동작이 느긋하기만 하다. 자기 때문에 차가 막히는 것도, 줄줄이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 아니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느긋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들 온순하게 앉아 그의 일이 끝나고 교통체증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탄 버스의 운전기사는 아예 신문을 폈다. 특별한 약속이 없었던 나도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나도 이제 프로방스 사람이 다 되었나 보다.

느린 게 아니라 즐기는 거야: 왜 모든 것을 빨리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젖어 있었을까? 왜 느리게 돌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일상을 비난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았을까? 왜 느리게 살수록 인생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목적지까지 헐레벌떡 뛰어가도 특별한 일 없이,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인생일 텐데.

물론 뛰어간 사람이 무조건 걸어온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은 억측일지 모른다. 빨리빨리 문화와 습관이 가져다준 장점이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빨리 뛰어가는 것보다 천천히 주위를 바라보고 느끼며 걷는 것이 더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여름편지 - 라벤더 향기 따라 흐르는 시간



프랑스 여자는 다 예쁘다

15년 전이었던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동창이 게으른 주부의 길로 접어들려는 우리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프랑스 여자들은 아침 일찍 바게트를 사러 갈 때도 화장하고 가더라. 너희도 아줌마 되었다고 늘어지지 말고 그들처럼 자신을 가꿔야 해. 그게 경쟁력이라고.” 푸하하,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과장도 심해라. 그깟 빵 하나 사러 가는데 화장하고 차려입고 나가냐? 우리가 프랑스에 못 가봤다고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냐?” 우리의 반응은 이랬다. 동창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프랑스 여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자신을 가꾸는지 알아둬.”라면서 “여자는 스스로 가꾸지 않으면 여자이기를 포기한 거야.”라는 선언까지 했다.

바게트 사러 가는 건 못 봤지만: 프랑스에는 멋쟁이들이 참 많다. ‘패션의 나라’ 국민이라 그런가. 옷차림도 세련되고, 늘 미모를 가꾸고 살아 그런지 날씬한 여자들이 많다. 몸매는 또 어찌나 우월한지 그들 앞에 서면 저절로 기가 죽을 정도다. 오리지널 남프랑스 사람들은 비교적 키가 작지만 다리가 길어 옷태가 좋다. 그들의 우월한 유전자를 부러워하다가 하루해가 다 갈 정도다. 바게트를 사러 가는 모습은확인하지 못했지만, 아침 시장에서 만나는 프랑스 여자들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멋쟁이인지는 실감하고 있다. 그녀들은 가까운 곳에 갈 때도 멋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 여자보다 할머니들의 패션이 눈에 띈다.

오늘도 아침 시장에서 샐러드를 사다가 아래층 할머니를 만났는데, 검은색 바지에 베이지색 블라우스를 입고 베이지색 단화를 신었다. 검은색 베레모와 선글라스를 매치한 그녀의 손에는 정열적인 빨간색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하늘하늘한 실크 원피스에 보색 대비로 카디건을 걸쳐 입은 중년 여인은 카디건과 같은 색의 신발을 신고, 같은 색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코발트색 진 바지와 구두를 매치해 입은 할머니가 노란색 장바구니를 끌고 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 시장에는 예쁘게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 프로방스가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곳이라 그런가 보다.

지중해는 오늘도 푸르다

프로방스로 오기 전, 내게 지중해는 상상 속에서나 만나는 곳이었다. 지중해에서 수영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비키니를 입은 늘씬하고 예쁜 여자와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근육남에게만 허락된 장소라고 생각했다. 프로방스에 온 뒤에도 여전히 지중해에서 수영할 엄두를 못 냈다. 지중해, 그곳은 멀고 먼 이상향 같은 곳이었으니까.

바다는 같지만 사람은 다르다: 오늘 우리가 수영하러 가는 곳은 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지중해 마을 카로.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30분만 달려가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 마을 해수욕장에는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물도 깊지 않아 온 가족이 해수욕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조심조심 지중해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투명하게 맑은 지중해가 우리를 감싸 안았다. 온몸을 지중해에 담그고 나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지중해라고 별것도 아닌데, 동해 바다보다 물이 따뜻한 것 빼고는 바닷물이 다 거기서 거기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한참을 지중해에 빠져 신나게 놀고 나니 배가 고프다. 준비해온 피크닉 가방을 열고, 바게트 샌드위치와 캔 맥주를 꺼냈다. 우리처럼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가족도 많이 보였다. 가볍게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준비해온 견과류와 커피까지 마신 우리는 벌러덩 누워 나른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햇살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을편지 -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야기를 따라 걷는 골목길

건조하고 차가운 미스트랄 바람이 날카롭게 불던 목요일 오전, 콜롬비에 씨가 주관하는 ‘엑상프로방스의 첫걸음’ 행사에 참가했다. 참가 인원은 모두 여덟 명. 대부분이 엑상프로방스로 막 이사 온 새내기 주민들이다. 엑상프로방스 주민 4년차에 접어든 나는 모임에서 알게 된 그의 꼬임에 넘어가 이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진짜는 골목 안에 있습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나고 자란 그는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로 엑상프로방스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을 피하느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옹색해진 걸음으로 그를 따라나섰지만 엑상프로방스 탐방 길은 의외의 재미와 소소한 정보들로 가득했다. “엑상프로방스도 18세기까지는 아비뇽처럼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답니다.” 콜롬비에 씨의 엑상프로방스 탐방은 역사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지금은 허물어져 사라진 엑상프로방스의 성곽을 언급하며 짧고 강렬하게 엑상프로방스의 역사를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 얼굴이 부끄럽게 달아올랐다. 4년이나 살았는데, 엑상프로방스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모범생처럼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저기, 알자스 음식 전문점이 보이죠? 저기서 파는 슈쿠르트(프랑스 알자스에서 즐겨 먹는 절인 양배추 요리)는 정말 맛있답니다. 본고장 맛 그대로예요. 이 오래된 카페에서는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값싸고 맛있는 프로방스 음식도 맛볼 수 있어요. 참고로 프로방스의 아이올리 요리는 매주 금요일에 하는데요, 아주 맛있답니다.” 줄줄 계속되는 그의 소개를 들으며 따라가는 산책길은 평소와 너무나 달랐다. 마치 ‘꽃이 내게로 와서 의미가 된 것’처럼,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거리와 그 거리에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를 알게 되자 갑자기 그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인 곳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주인공 프랜시스는 피렌체로 조명기구를 사러 갔다가 잘생긴 이탈리아 남자 마르첼로를 만난다. 그녀는 멋진 조명기구를 살 수 있다는 마르첼로의 말을 믿고 그를 따라 나선다. 운전대를 잡은 그는 전속력으로 교통신호를 무시하며 도로를 달린다. 그의 거친 질주에 겁이 난 프랜시스가 왜 신호등을 보지 않느냐, 삼색 신호등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가 기세등등하게 대답한다. “파란불은 달리라는 거고, 노란불은 장식용, 빨간불은 그냥 참고사항이죠.”

프랑스 사람처럼 운전하라고?: 한마디로 신호등에 연연하지 않고 운전한다는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운전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소 과장된 마르첼로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거친 운전환경에 적응한 운전자라도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니까.

프랑스는 어떨까? 영국 사람들은 프랑스 운전자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느긋한 프랑스 사람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급해진다는 말도 한다. 오죽하면 ‘사고 당하고 싶으면 프랑스 사람처럼 운전하라’는 농담까지 할 정도란다. 그런데 내가 프로방스에서 만난 현실은 달랐다. 거의 모든 운전자가 정직하게 교통신호를 지켰고, 운전도 조심스럽게 했다. 자동차는 물론 버스, 심지어 자전거도 명예를 걸고 교통 신호를 지키고 있었다. 양보는 또 얼마나 잘 해주는지, 이곳 사람들은 정말 신사적으로 운전하는구나 생각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오토바이들이 철저하게 교통신호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신호를 어기거나 헬멧을 쓰지 않은 오토바이 운전자는 한 명도 없었다.



겨울편지 - 마음 따뜻해지는 기억들



모두에게 감사, 모두에게 축복

“다음 주 화요일에는 우리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 하자. 모두들 좋지?” 제니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파티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일제히 환호하며 즉석에서 각자 준비해올 음식을 정했다. 좋은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붕붕 떠올랐다.

“어제도 그 때문에 잠을 설쳤어”: 드디어 디데이. 제니네 집 거실로 들어서자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씩씩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크리스마스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거실 한쪽에는 샴페인과 와인, 각종 치즈와 올리브를 곁들인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준비해온 음식들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선옥 씨의 꼬마빈대떡과 델리나가 구워 온 아메리칸 쿠키, 내가 가져간 새우칠리소스 요리가 곁들여졌다. 도린이 사온 맛있는 과일들도 풍성하게 자리를 잡았다. 열세 가지 프로방스식 디저트는 없지만 이만하면 더없이 멋진 크리스마스 식탁이다.

우리는 샴페인으로 건강을 기원하는 건배를 했다. 제니가 준비한 분홍빛 샴페인이 달콤하게 온몸을 휘감았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열흘이나 남았지만 우리에게는 오늘이 크리스마스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행복한 이 시간을 더 오래오래 붙잡아두고 싶어진다.

여자들이여, 즐겨라

매년 1월과 7월 프랑스 사람들은 지갑을 열 준비를 한다. 알뜰 주부들은 살 물건의 목록을 미리 적어놓고, 그날을 기다린다. 그날은 바로 1년에 두 번 있는 세일 날, 모두에게 축제 같은 날이다.

세일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니: 프로방스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3년. 그동안 여섯 번의 세일을 만났고, 세일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도 알았다. 꼭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세일 첫날부터 출동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지막 세일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쇼핑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냐고? 간단하다.

평소 사고 싶었던 10만 원짜리 옷을 세일기간까지 사지 말고 기다려라. 그 옷이 세일 첫 주에는 50퍼센트 할인되어 5만 원이 된다. 세일 덕에 5만 원을 절약했으니 그만큼 돈을 번 셈이다. 둘째 주에는 60퍼센트 할인하니 6만 원을 벌고, 셋째 주부터 마지막까지는 70퍼센트에서 90퍼센트까지 할인받아 3만 원이나 만 원에 살 수 있으니 최대 9만 원까지 절약하는 거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세일은 돈을 쓰면서 돈을 버는 방법이라고 한다.

프로방스로 오면서 짐정리를 한답시고 옷을 많이 버렸다. 이러다가 벌 받지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다시는 쓸데없이 옷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런데 세일이 시작되고 옷 가격이 반값으로, 며칠이 지나서는 70~80퍼센트로 떨어지자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매장에 걸려 있던 정품 옷의 가격이 반값으로, 5분의 1 값으로 뚝뚝 떨어지는데, 쇼핑을 안 한다면 바보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세일할 때 물건을 싸게 사서 쓰는 프랑스 사람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세일 쇼핑은 곧 돈을 버는 일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세일의 유혹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여행편지 - 내 안의 파랑새를 찾아서



프로방스 라벤더를 만나다

보랏빛 라벤더의 계절이 돌아왔다. 향긋한 라벤더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기 시작하면 나는 바람이 잔뜩 든 아이처럼 꽃구경을 가고 싶어 안달을 한다. 올해는 어디로 갈까? 관광정보센터에서 나눠준 라벤더 지도를 펴고 프로방스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라벤더를 만나러 갔던 코스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고르드 마을을 거쳐 세낭크수도원을 찾아갔던 루트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라벤더 향 가득한 마을에서: 라벤더 꽃밭을 달려 발랑솔에 도착했다. 언덕을 따라 자리를 잡은 소박한 마을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 입구에 있는 분수와 빨래터의 풍경이 활기차 보였다. 마을의 집들은 거의 낡고 오래되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돌흙이 떨어져나간 곳도 보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정갈하게 마을을 간직하고 있다. 집집마다 꽃 화분을 매달고, 파스텔 톤으로 덧문을 칠하며 치장하느라 열심이다. 짙은 화장으로 세월이 만들어 놓은 주름살을 감추려는 중년 여자 같다. 서글프지만 애틋해 더 정이 간다. 발랑솔은 인구가 3천 명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마을 풍경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도, 마을 출신 유명인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해마다 여름이면 이 마을은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라벤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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