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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이도흠 지음 | 자음과모음
이사부

이도흠 지음

자음과모음 / 2010년 7월 / 453쪽 / 12,000원





내물마립간을 계승한 지도자, 잇마로



산을 내려온다. 산신당 어귀에서 기다리던 사신(私臣, 오늘날의 비서) 미해는 여느 때처럼 내 보폭에 맞추어 가리온의 말안장을 얹을 뿐, 아무 말이 없다. 내 얼굴을 바라본다. 빙그레 웃어 보인다. 그 또한 웃는다.노래하고 춤을 추며 산을 내려오다 보니, 이내 골짜기가 끝났다. 저 멀리 실직성(지금의 삼척 혹은 강릉 일대) 위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지대로왕(지증왕, 재위 500년~514년)이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자 왕의 친동생인 내 아버지 아진종이 싸우기를 꺼려 이곳 성주로 오신 이후 침략이 없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지나는 바람에 피비린내가 잔뜩 묻어 있다. 미해도 같은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나를 쳐다보는 눈, 작은 눈에 두려움과 놀라움, 걱정이 교차한다. 산 아래쪽으로 피난민 행렬이 보인다. 그리로 달려갔다. 그 가운데 갑옷이 눈에 띄어 말고삐를 당기니 아버지의 젊은 부장인 과힐부절이다.“어찌 된 일입니까?”

“말갈 놈들이 팔천 명이나 쳐들어왔습니다.”

“성은?”

“성은 신시(申時)쯤 함락되었습니다.”

“성주님께서는?”

“아진종 성주님께서는 그만…… 그만…….”

“…….”

“성주님께서는 그만, 유시(流矢)를 맞아 전사하셨습니다.”

말갈 놈들은 화살촉으로 쇠 대신 청석을 쓰고 독을 바르기에 팔만 스쳐도 목숨이 위태롭다.

“아! 아버지……!”

겨우 남은 힘을 모아 재차 물었다.

“내, 내 어머니, 보옥공주께서는?”

“부인께서는 말갈 놈들에게 욕볼 수 없다며 그놈들이 내전으로 들이닥치기 전에 자결하셨습니다.”“정녕, 정녕 사실입니까?”

“네, 제 뒤에 있는 달구지에 실려 있는 것이 두 분의 시신입니다. 부장인 제가 목숨을 걸고 두 분의 시신만은 거두었습니다.”갑옷 사이로 보이는 과힐부절의 맨살은 온통 말라붙은 피와 상처투성이다. 깊게 파인 상처와 지친 낯빛, 애통함과 적개심과 의지로 범벅이 된 눈동자에 그동안 그가 겪었을 일들이 거울처럼 스쳐 지나간다.“장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가 이내 그의 몸을 떠나 달구지를 본다. 한 발가량 다리가 달구지 밖으로 삐져나온 모양이 필시 아버지 시신이다. 달려가 둘러싼 거적을 들추니 두 분이 맞았다.“아버지, 어머니!”

통곡을 한다고 두 분이 살아 돌아올 리도 없었건만, 너무도 비통하고 어이도 없다. 두 분이 그리 죽음에 이르는 동안 나는 평안하게 바위에 올라 선도를 닦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런 불효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리 내 자신이 미운 적이 없다.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백성들도 피란길을 멈추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을 하였다. 신라에서 가장 무예가 빼어나신 분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흐르는 화살에 맞아 유명을 달리하셨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하실까. 어머닌 또……. 미해가 부축하며 조용히 말하였다.

“부성주님, 여기 더 머물 틈이 없습니다. 말갈족이 들이닥치면 부성주님은 물론 백성들까지 화를 입습니다. 이제 성주님 대신 백성들을 이끌어야죠.”소매를 들어 눈물을 훔친 후 부절을 불러 물었다.

“왜 나를 부르지 않아 이토록 욕되게 하십니까?”

“적들이 갑자기 새벽녘에 야습을 한 바람에 그럴 틈조차 없었습니다.”

어금니를 깨물었다.

“남은 신라 병사는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성주님께서 전사하시자 힘을 잃고 많은 군사가 말갈 놈들에게 죽었고, 남은 군사는 뿔뿔이 흩어진 듯합니다.”“그럼, 저 혼자라도 부모님의 원수를 갚아야겠습니다.”

부절과 미해가 막아섰다.

“부성주님! 혼자 힘으로는 무리입니다. 훗날을 도모하소서.”

그들을 뿌리치고 말에 올랐다. 이번엔 부절이 말의 고삐를 잡았다.

“성주님께서도 이리 헛되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먼 훗날까지 참을 순 없다. 부절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미해가 칼을 뽑더니 돌차간에 말의 목을 베어버린다. 애마가 그대로 고꾸라진다. 말에서 잽싸게 뛰어내린 나는 반역을 한 죄인을 보듯 미해를 바라보았다. 미해는 조금도 두려운 표정이 없이 외려 큰소리로 날 꾸짖는다.“열아홉 살의 혈기와 힘만으로 어찌 적을 물리치며, 어찌 성주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리겠습니까? 그 분노를 곱삭였다가 가장 거룩한 순간에 활화산처럼 터트리십시오.”부절이 거든다.

“부성주님! 머물러 잘 생각하면 방법이 있을 듯합니다.”

난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그 자리에서 통곡하였다. 한참을 울고 나니 가슴에 맺혔던 것이 조금은 씻긴 듯하다.“적장은 누구입니까?”

“마골타입니다.”

세 해 전인가 하슬라주(지금의 강릉)에 쳐들어와 성을 점령하자마자 밤새 술을 마시고는 다음 날 홀연히 사라졌다는 그 장수다. 매양 선두에 서서 사람 머리보다 큰 철퇴를 지게 작대기처럼 움직인다는 놈이다. 철퇴에 투구가 두 쪽이 나고 골과 피와 살이 범벅이 되어 튀는 모습을 보면, 군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 오금을 펴지 못한다지…….그라면 다른 방법으로 싸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부모님의 시신을 쑥물로 깨끗이 닦고 소금을 구하여 염장하고 백성들을 두타산성으로 피신시켰다. 부절과 미해와 함께 평민 복장을 하고서 몰래 성 근처로 갔다. 일단 주막에 여장을 풀었다. 주모 말이 적장이 성안의 술로도 모자라 북문과 서문 밖의 민가를 뒤져 술을 거두어 갔단다.“주모, 여기 술이 얼마나 있는가?

“뒷마당에 묻은 것까지 치면 열다섯 말은 됩지요.”

“그럼, 내 좀 씁시다. 내 값은 나중에 후하게 쳐줌세.”

“미해는 저기 울타리 밖 산기슭에 있는 느릅나무 잎을 모조리 따오시게나.”

느릅나무라는 말이 떨어지자 미해는 벌써 내 계략을 짐작한 듯 빙그레 웃는다. 아버지께서 그를 사신으로 붙여주며 선생으로 생각하라 일러준 것을 살아갈수록 절감한다. 그는 광주리에 가득 느릅나무 잎을 담아 내오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절구에 찧어 즙을 낸다. 나는 술을 술통에 담고 느릅나무 즙을 섞어 휘휘 저었다. “자, 주모와 미해는 동문으로 가서 이 술을 적장에게 선물로 주고 오시라. 어느 정도 술을 먹었기에 유백엽(느릅나무 잎) 맛은 잘 모를 걸세. 혹시 묻거든, 정력을 보하는 데 좋은 삼지구엽초를 섞었다 하게나.”주모와 미해가 돌아오자 부절을 불렀다.

“장군께서는 저와 동행하시죠.”

부절은 내 계략을 대강 눈치를 챈 듯 씩 웃으며 “사내로 태어나 주군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도 괜찮은 삶이지” 하고는 칼을 굳게 잡았다. 헌 바랑에 칼을 숨기고 남문을 돌아드니 달빛이 능선을 미끄러져 바위를 따라 교교히 흐르고, 산허리가 틈을 내준 곳에 시구문이 보인다.“뭘 하시려고요?”

“쉿! 묻지 말고 저만 따라오세요. 여기는 제가 여러 해를 뛰놀던 터라 눈을 감고도 훤합니다.”시구문이 보이는 언덕의 숲에서 밤이 더 깊어지기를, 그들이 좀 더 술에 취하기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시구문의 위치를 알 리 없는 적들은 그곳을 지킬 염두를 미처 내지 못하였다. 쉽게 시구문을 지나 성안으로 들어드니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한 번 더 숨을 쉬니 술내가 피 냄새의 주름 사이로 스며들었다. 적장은 아마 어제까지도 내 아버지께서 주무시던 내전에서 잠을 자고 있으리라.느릅나무 즙이 통한 모양인지 말갈 병사들은 거의 잠들었다. 방 앞에 서니 코 고는 소리가 방 밖까지 꽤 크게 울린다. 부절에게 감시하라 눈짓하고는 살며시 문고리를 잡았다.탁주 냄새가 진동하는데 마침 구름 사이로 내민 달빛이 영창을 지나 어슴푸레 적장의 얼굴을 비춘다. 머리맡에 피가 엉긴 철퇴와 호랑이 꼬리로 장식한 투구를 보니, 영락없이 적장이다. 검은 수염에 뒤덮인 턱은 불쑥 솟아 언덕을 이루었다.코 고는 소리를 따라 목울대가 오르락내리락하며 거기 생명이 자리함을 하소한다. 목울대가 갑자기 커져 찌르려다 멈칫 멈춘다. 화살을 맞아 쓰러지시는 아버지, 칼을 가슴에 꽂는 어머니, 철퇴에 머리가 터져나가는 신라 군사들! 그대로 칼을 꽂았다. 칼을 빼자 검붉은 피가 칼을 따라 치솟더니 펑펑 흐른다. 사내는 목에 구멍이 뚫린 채로 벌떡 일어난다. 재게 칼을 휘둘러 목을 내리친다.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고, 이번에 뻥 뚫린 구멍에서 샘처럼 피가 솟는다. 부절이 문을 열고 더 지체할 수 없다는 눈짓을 보낸다.부절에게 곳간에서 기름통을 가져오게 한 다음, 군기창으로 달려갔다. 두 명이 망을 서고 있는데 한 명은 잠자고 있고 한 명은 졸고 있다. 칼등으로 간단히 제압하고 문을 열었다. 우리 무기에 더해 말갈의 창과 방패, 활과 칼까지 쌓여 있다.이럴 땐 빛보다 냄새가 빠른가. 말갈 병사들은 가죽과 나무가 타는 냄새를 맡고서 하나둘씩 잠을 깨 군기창 쪽으로 달려왔다. 잠시 망설이는데 부절이 다급하게 말한다.“부성주님, 적들이 옵니다. 빨리 도망쳐야죠.”

이제 제법 많은 숫자의 화살들이 등을 지나 우리를 앞질러 간다.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뒤돌아보니, 군기창 위로 불꽃만 무심하게 이글이글 피어오른다. 시구문을 빠져나왔다. 이제 제법 많은 말갈 병사들이 잠을 깼는지 성안이 꽤나 왁자하다.동살이 희붐하다.



***

신라 군사를 모았다. 부상자가 많았다. 밤새 군기를 만들었다. 성 앞의 언덕에서 군졸과 백성들이 군기만 들고 서 있게 하였다. 앞으로는 군사들을 내세우고 뒤로 백성들을 서게 하였다. 아마 성문 망루에서 보면 족히 오천여 명의 군사는 됨직하게 보이리라. 말을 타고 홀로 성문 앞으로 달려갔다. 저들이 눈치를 채고 화살을 쏘아대면 나는 그 자리에서 고슴도치가 될 것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잠시 일었지만 조금이라도 두려운 빛을 보이면 그대로 지는 싸움이다. 낯빛에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며, 그들이 당당하게 느끼게끔 어깨를 펴고 천천히 말을 몰았다.“나는 실직성 성주 아진종의 아들 부성주인 김상종(金祥宗)이다. 나는 어젯밤에 단신으로 들어가 너희들의 장수인 마골타의 목을 베고 군기창을 불태운 사람이다. 너희를 모두 죽여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 싶다만, 너희들은 마골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졸개일 뿐이라. 게다가 나는 본래 전쟁을 싫어하고 백성들의 안녕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자라 마골타를 죽인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부모님을 잃은 내가 이리 참는데, 너희들이 또 전쟁을 하고자 한다면, 나와 저 언덕 위에 대기하고 있는 신라 군사가 부모와 동료를 죽인 원수를 갚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것이다. 허나, 너희가 지금이라도 침략을 사죄하고, 그 뜻으로 옥에 갇힌 신라 백성과 군사들을 풀어주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너희들의 목숨을 살려줌은 물론, 이미 노획한 쌀도 가져가도록 내버려두겠다. 자, 싸워 이곳에 뼈를 묻을 테냐, 아니면 어린 자식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살 테냐?”망루에서 나를 쳐다보는 말갈족 군사들의 얼굴을 보니 멀리서도 내 기개에 눌린 듯하다. 이제 됐구나 싶어 성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그들에게 종용하였다. 그래도 답이 없어 열을 셀 때까지 결정하지 않으면 언덕 위의 군사에게 돌격을 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열을 세기 시작하였다.“하나…… 둘…… 셋……”

아홉을 세기 전에 성문에 백기가 올랐다. 나도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들은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옥에 갇힌 신라 백성과 군사들을 풀어주고 돌아갔다.껍데기만 남은 성을 채우려는 자들이 뒤늦게, 말갈족이 물러간 뒤 닷새나 지나서 왔다. 우진야현(지금의 울진) 쪽 길로 먼지가 자욱하다. 각 정(停)과 당(幢)의 군기가 휘황찬란하다. 금관에 금제 허리띠를 하고, 금동칼을 허리에 차고서 내게 큰아버지이기도 한 지대로왕이 몸소 군사를 몰고 나타나셨다.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위엄을 가진 분일 뿐만 아니라 밝혀누리 거서한(박혁거세, 재위 기원전 57년~기원후 4년) 이래 가장 센 사내다. 그는 신라라는 나라의 최초의 왕인 사내 중의 사내인 분이다. 나라 이름을 ‘여러 부족들의 연맹체’라는 뜻의 ‘사로(斯盧)’에서 ‘덕업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사방을 모두 뒤덮는다’는 뜻의 ‘신라(新羅)’로 정하고, ‘마루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마리한(麻立干)’을 버리고 자신을 스스로 ‘왕’으로 칭한 이다.그의 키는 일곱 척에 이르고 옥경은 한 자 다섯 치나 된다. 속궁합이 맞는 여자가 없어 신하들이 신라 방방곡곡을 헤맨 끝에 북만 한 똥을 누는 연제부인을 모셔 비로 삼았다. 거대한 몸만으로도 상대방을 능히 제압할 만한데 그의 눈빛은 독수리처럼 날카로웠고, 몸에서는 신비로운 기운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기백과 담력이 출중한 장수도 그 앞에만 서면 학질에 걸린 듯 몸을 떨었다. 비춰마리한(炤知麻立干, 재위 469년~500년)도 육촌 아우이자 신하인 지대로가 무력시위를 벌였을 때, 그 기에 눌려 순순히 자리를 내놓았다.지대로왕 앞에서 당당한 사람은 신라에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내 아버지 아진종. 그의 키는 지대로왕보다 한 뼘 정도 더 컸고, 굳센 기운과 함께 거룩한 기품이 흘렀다. 그가 지대로왕보다 못한 점이 있었다면 오직 늦게 태어났다는 점이었을 게다.지대로왕은 아우의 시신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내게 몇 차례나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에게 아우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왕권의 경쟁자였던 이가, 유일하게 자신의 위엄 앞에 굴복하지 않는 이가 자연스레 사라진 일은 홀가분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도 커다란 키처럼 드센 기운을 감출 재주는 가지지 못하셨다. 하늘에 해가 둘일 순 없었다. 게다가 정변을 계기로 두 분 사이는 멀어졌다. 아버지는 비춰마리한을 하늘이 낸 성군이라며 떠받들었다. 비춰마리한도 아버지를 친동생처럼 여겨 나를 아들로 삼았다. 아버지는 지대로가 무력으로 비춰마리한을 쫓아내고 마리한에 즉위하자마자 그날로 이찬직을 사직하고 월성을 떠나 변방인 이곳의 성주로 왔다. 적지 않은 이들이 아버지를 찾아와 비춰마리한을 다시 옹립하자고 했지만, 사람이 맺어준 형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하늘이 맺어준 형의 의리를 저버릴 수는 없다며 거절하였다. 슬기로운 왕은 안다. 아우가 죽은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치유하면서도 왕권을 더욱 강화하는 길을. 그건 경쟁자의 후손을 거두어 승자의 아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그 일은 잠재적 경쟁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짐이 얘기는 모두 들었다. 열아홉 살 청년의 담대함과 지략이 놀랍구나.”

“황공하옵니다. 대왕마마.”

“너의 지략과 용기는 너의 4대 할아버지이신 내물마리한을 쏙 빼닮았구나. 너는 내물마리한을 그대로 잇고 있으니, 앞으로 네 이름을 ‘내물마리한을 잇는 우두머리’란 뜻으로 ‘잇마로’라 하거라. 이두로는 ‘잇’은 음으로 갈음하고 ‘마로’는 훈으로 읽으면 되니 한자로는 김이종(金伊宗)이 어떻겠느냐, ‘잇’을 발음이 같은 ‘이끼 태(苔)’자로 하여 김태종(金苔宗)은 또 어떻겠느냐?”“소자에게는 모두 너무 과분한 이름이옵니다. 대왕마마.”

“과분할 것 없다. 우리 신라 사람은 이름과 삶이 같아야 하느니라. 이제 상종이란 이름을 버리고 이종이나 태종을 너의 이름으로 삼거라. 너는 앞으로 월성으로 나와 함께 돌아가 나를 친아버지로 삼아 지내거라.”“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마마!”

“헌데, 물어볼 것이 하나 있다. 장수는 싸움에서 배우는 것. 너는 이번 싸움에서 무엇을 배웠느냐?”“진정 큰 장수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너른 영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적게 죽이고서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더구나 온 세상의 모든 생명을 제 목숨처럼 여기는 풍류도를 따르는 선랑입니다. 이제부터 사람을 죽이지 않고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온몸을 다하여 정진할 것입니다.”“그래? 그게 가능하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앞으로 너는 큰 장수가 되어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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